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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 임영선 : 서울아트가이드 2011년 11월호 이달의 전시

critic & column | 2011/10/19 07:14


박은하, 안과 밤, 자하문미술관, 9.21-10.30
인간은 자연이 제공한 밤의 공포를 극복하면서 문명사회를 만들었고, 그 문명사회는 인간에게 또다른 형태의 밤의 공포를 제공한다. 박은하는 사회의 시스템이 개인에게 내리꽂는 문명의 폭력을 밤에 비유한다. 그는 어두움의 실체를 직시하도록 하는가 하면 그 배후의 구조들을 은유적 언어로 풀어낸다. 박은하 특유의 플라나리아 스타일 페인팅이 사회구조 속에 포획된 개인의 면면을 성찰하는 박은하 내러티브와 만나 성숙한 예술언어로 진화하고 있다.

임영선, 가나아트부산, 10.12-11.13
임영선은 티벳과, 몽골, 캄보디아 등의 어린이들을 만난 후 그들의 모습과 그곳 삶의 정황을 그린다. 풍경과 장면을 인물초상 속에 오버래핑 하는 그의 그림에는 척박한 오지의 삶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담겨있다. 섬세하고 치밀한 붓질로 인간의 존엄을 그려내는 임영선의 예술에는 직관적 소통을 매개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동아시아 주변부의 소수자 어린이를 통해 지구의 미래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이다.

* 서울아트가이드 2011년 11월호 이달의 전시

2011/10/19 07:14 2011/10/19 07:14

판화의 시대, 판화의 재정립 : 프린트에서 멀티플로

critic & column | 2011/10/04 08:58


판화의 시대, 판화의 재정립 : 프린트에서 멀티플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시각이미지의 소유 방식을 바꿨다. 사유(私有)에서 전유(專有)로. G20정상회의 시기의 쥐벽서 사건과 같이 한낱 변방의 에피소드에 불과했던 문화적 저항을 정치적 사건으로 뻥튀기 했을 때, 대중들은 인터넷이나 SNS는 물론 아날로그 T셔츠의 프린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원본을 전유하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이미 대중문화는 물론 예술작품들까지도 그 이미지를 사적으로 소유하는 사유(私有)의 시대를 지나 원저작의 문맥을 뒤집어 버리고 재구성하는 미적 전유의 시대로 전환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세계 전 영역에 걸쳐 벌어지곤 하는 미적 전유는 오늘날 원본의 아우라를 보다 널리 공유할 수 있다는 문화적 공화주의의 이상에 흠집을 내고 있다.
 
반면 미술문화를 소비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예술작품의 사적 소유를 통해서 원본의 아우라를 전취하고자 한다. 기실 예술작품이라는 물질형식을 화폐로 교환하여 사적으로 소유하는 일이 20세기의 미술을 견인했다. 20세기의 시장체제의 미술은 20세기 미술 그 자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장의 힘은 견고하고 강인했다. 물론 그 힘의 원천은 원본의 아우라, 일품성 등이었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저변을 뒤흔든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판화이다. 1960년대 이후 서구예술사에 등장해 선풍을 일으킨 판화의 열풍은 미술시장은 물론 미술의 역사를 새로 쓰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앤디 워홀이 20세기의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전위예술가인 이유이기도 하다.


민중미술의 시대, 목판화의 성가
판화의 대안적 가능성이 한국미술계에서도 실행모드로 접어든 시기는 1980년대이다.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판화운동은 기존의 미술제도에 대한 대안운동으로부터 비롯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롯이 미술시장에 대한 대안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민중미술계열의 예술가들은 오히려 미술시장 바깥의 새로운 소통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이들이 판화 작업을 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판화의 복수성을 활용한 대중적 소통가능성의 확장에 있다. 오윤은 민중미술 목판화의 전형을 창출한 선구자이다. 그는 다수의 목판화 작업에서 간결한 선묘의 맛과 힘을 드러냈다. 특히 20세기 초반부터 꾸준히 존재했던 출판미술의 전통을 이어받아 다수의 출판물에 목판화 작업들을 남김으로써 미술의 대중적 소통에 크게 기여했다.

목판화는 현장미술에서도 복수성의 매체파워를 극대화했다. 홍성담은 80년 오월광주행쟁 연작을 통해서 판화의 매력과 위력을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시민미술학교 판화교실을 열어 대안적인 미술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두렁은 노동현장에서 판화나 걸개그림으로 작업으로 소통하는 현장미술운동을 했다. 두렁의 목판화 작업들은 전통회화를 차용한 걸개그림과 그 양식을 공유하면서 그 가능성을 확산했다. 최병수는 현장미술의 맥락에서 목판화의 대중적 소통가능성을 극대화한 1987년작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남겼다. 연세대 재학생이었던 이한열이 시위도중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목판화로 만들었고, 이어 대형 걸개그림으로 옮겨져 대중적 파장을 일으켰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목판화는 보다 대중적인 소통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민중미술의 전형성을 창출하는 목판화 작업들을 해온 이철수는 명상적인 문구와 간결한 선묘의 맛을 살린 작업들로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김준권은 자연과 농촌마을 풍경을 주제로한 다색목판화 작업으로 서정성을 얻어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수인목판, 소성목판 등의 형식실험으로 목판화의 장르적 확산에 힘을 기울였다. 류연복은 1980년대 중반의 벽화운동 이래 모필을 사용한 글과 그림을 목판화로 이어냈는데, 1990년대 이후에 진경산수 연작을 발표하면서 생태주의 목판화가로서 새로운 목판화의 시대를 열었다. 1997년의 IMF 이후 미술시장의 침체에 따른 전반적인 불황의 늪은 판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와중에도 공방체제에 의한 대량생산체제와는 달리 1인작업으로도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목판화 작가들은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장서표 작업으로 대중성을 얻은 남궁산의 작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억의 실경산수 작업은 그 수공성과 독창적인 스타일로 목판화 작업의 동시대성을 확인해주고 있다. 행동주의예술가로서 대추리나 용산, 한진중공업 등의 현장에 참여하기도 하는 이윤엽은 예술가의 체험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목판화 작업과 동시대의 첨예한 이슈를 다루는 예술행동을 병행함으로써 주목받고 있다. 배남경은 목판 작업을 판각에 의한 목판화로서만이 아니라 평판개념으로 전환해서 리도그래프처럼 활용하는 리도목판 작업을 통해서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영정을 안고 있는 전태일 열사를 담은 최병수의 최근작은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장례식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 발표된 이 작품은 목판화가 여전히 생생한 소통기제를 생성하는 장르임을 확인해주었다.

목판화야 말로 화각인(畵刻印)의 삼박자 매력 포인트를 가진 판화의 본령이다. 예술가의 수행성과 수공성의 매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목판화이다. 목판화는 판화 원판과 그것으로부터 찍어낸 복제판 사이의 물질적 교감이 가장 정직하게 드러난다. 1980년대 미중미술의 시대 이래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목판화 장르의 매체실험 또한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화각인 프로세스의 목판화는 디지털 시대의 복제이미지 생산이라는 문제틀에 있어서도 매우 유력한 매체이다. 회화와 마찬가지로 목판화 역시 작가의 손길을 가장 정직하게 받아내는 물질형식이다. 목판화를 기조매체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관심과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판화열풍의 시대와 그 이후

1990년대는 판화가 일대 증흥기를 맞이한 시대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대중적 소통을 위하여 목판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본격적인 판화의 시대가 열렸다. 그것은 제도교육체제와 공방체제의 확산과 같은 물리적 토대의 구축과 더불어 판화의 수요 급증에 따른 시장의 확산에 따른 것이었다. 1980년대 말 이후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판화는 대학의 학제를 중심으로 성가를 이뤘다. 해외에서 판화를 전공한 다수의 교육자들이 대학과 사설교육 체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에 성신여대 대학원이 판화전공을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홍익대 학부에 판화과가 생기면서 본격적인 토대확충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전국적으로 판화 관련 교육 수요가 급증하면서 판화계의 물적토대가 단단하게 구축되었다.
또한 1990년대는 1960년대 이후에 서구에서 일어난 판화 열풍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들, 판화의 교육체계를 직접 체험한 유학파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곽남신, 김용식, 김승연, 윤동천, 강승희 등과 같은 판화가/교육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1990년대 판화의 시대가 열렸다. 판화공방 시스템이 본격화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황용진이나 이종협 등의 작가들이 서울판화공방과 대전판화공방 등을 열며 판화작품 생산의 물적 토대를 이루기 시작했다. 연화랑이나 가나판화공방 등도 생산체계를 갖추는 것은 물론 판화작품 유통망을 확립해서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교육현장과 작업실체제, 그리고 유통망 확산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판화의 시대는 미술계와 대중들에게 미술의 소통가능성을 높여주었다.

판화시장은 이제 막 컬렉션을 시작하려는 초보 컬렉터들까지 흡인하면서 매력적인 시장품목으로 떠올랐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단위의 시장형성은 판화의 양적 팽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른바 오리지널 판화 캘린더나 아트상품 개념의 대량판화 생산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인쇄기술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판화의 매력이 대량생산 대량유통의 시대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 판화의 양적 팽창은 성장세를 멈췄다. 특히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대량생산체제가 중단되면서 판화의 유통채널이 끊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비롯해서 멀티플 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복제예술의 폭이 넓어지면서 복수성의 장점을 누려왔던 판화의 독점은 점차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판화개념 자체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큰 동인은 디지털기술의 진화였다. 동판이나 목판 등을 이용해서 찍어내는 판화에 대한 디지털 프린트의 수준상승이 가파르게 이어지면서 예술성 논란까지 생기기 시작했지만, 여하한 논란과 자구노력들도 판화의 생산과 유통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벽에 액자를 거는 시대에서 모니텅 그림을 띄우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에서 언제든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제2미디어시대의 멀티플 시대에 판화의 존립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IMF로 인한 미술시장의 붕괴 이후 2006년 무렵의 미술시장 활황에도 불구하고 판화의 성가가 다시 찾아오지 않은 것은 10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디지털시대의 판화라는 문제의식 내지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판화의 위기는 곧 판화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판화의 대중성이 여하한 이유로 분산된 것은 사실이지만, 수백수천년간의 세월동안 축적된 전통판화의 기술적 수준은 여전히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작품의 보존연한이나 물질형식적 매력 등 섬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장점들이 많다. 게다가 무한복제의 디지털 프린트에 비해 사람 손을 거치는 수공성의 매력 또한 아직도 건재한 차별화 요소이다. 오히려 역발상으로 디지털 문명으로 인해 잃어버린 작가의 수공성이라는 매력을 살리는 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원판 없는 판화’와 같은 판화개념이랄지 에디션없는 판화의 독창성을 통해서 얼마든지 예술적 표현 방법으로서의 판화개념을 재생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판화가 에디션의 매력만이 아니라 수공적인 예술작품으로서의 특성화에 무게중심을 둠으로써 디지털 프린트의 일반화에 비해 차별성을 확립한다면 양상은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판화의 재정립

그러나 여하한 논의의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디지털 문명은 아날로그 문명과의 양립으로 인해 생성/존립가능한 개념이라는 점이다. 유사 이래 지금까지 존재했던 판화개념은 원본과 복제본, 일품성과 복수성 등의 이분법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문명은 이러한 이분법을 무화하는 새로운 문명이다. 디지털 시대의 판화개념은 이 문명의 전환을 수용할 것이다. 판화의 최대 특성은 복수성에 있다. 판화의 복수성에 최대의 충격을 안겨 준 것은 다름 아닌 디지털 미디어의 일반화에 있다. 에디션의 매력이 디지털 시대의 무한복제 가능성 앞에 점점 희석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창작과 시장의 영역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디지털 판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느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는 디지털 프린트 기법의 작품에 대해서 원본/복제본 논란이 일어나서 작가와 주최 측이 심난하게 논의 중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디지털 문명에 대한 이해와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예술과 기술은 동행할 부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의 경우 이미 정통적인 필름작업과 암실작업을 넘어 디지털 카메라와 디지털 프린트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디지털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사진은 동시대 예술적 소통의 중심에 서있다. 물론 디지털 문명이 커버하지 안/못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의 판화개념이 쌓아온 장점을 강화하는 것이 오늘날 판화가 처한 위기의식을 벗어나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라는 논의가 분분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그야말로 일부분의 차별화 전략일 수는 있으나 문명의 대세를 읽어내고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수동적인 태도이다. 멀티플의 매력을 과거의 매체나 기법, 장르 개념으로 한정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 개인의 선택 여부에 따라 장인적 고집으로서 칭송받는 일일 수는 있지만, 시스템으로서의 판화를 재정립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프린트가 아니라 멀티플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판화의 개념과 제도가 재정립하는 시대이다.

김준기(시각예술평론가)


* 월간미술 2011년 10월호 기고문

2011/10/04 08:58 2011/10/04 08:58

체험이 예술이 될 때 - 강은구의 경우

critic & column | 2011/10/04 02:08


체험이 예술이 될 때 - 강은구의 경우

예술가의 체험과 창작의 관계는 불가분의 것이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입수하는 정보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기억장치는 고도로 숙련된 예술가의 직관적 인식의 토대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의 모든 창작행위가 그의 체험에 귀속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는 체험 너머의 것을 끄집어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는 추체험(追體驗)이라는 게 있어서 육화한 경험으로서의 직접적인 체험을 토대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한다. 특히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현상 이면의 과거와 미래를 통찰하는 예지를 가지고 예술적 소통을 모색하는 예술가라면 더욱 더 크고 넓게 체험 너머의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예술가의 창작이 체험 바깥으로 확장할 때, 그 작업의 근거와 목표를 상실한 채 물질형식으로서의 작품 그 자체만으로 겉돌고 마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는 데 있다. 어쩌면 예술가 주체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우리시대에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가의 진정성 운운하는 일은 순진하고 철없는 옛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무수히 쏟아지는 예술 관련 정보들 가운데 작품을 둘러싼 어떠한 요소들이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지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작품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얻어내는 요소가 반드시 작품이라는 물질형식 그 자체만이 아니라는 점, 나아가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 주체에 관한 이해가 작품 이해의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을 관찰하는 관람객은 어떤 기준과 근거로 그 작품 속의 기표들을 해석해야하는지를 놓고 몇가지 견해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예술가의 체험을 작품 해석의 근거로 제시하는 일은 매우 정통적인 예술사회학적 논법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예술가들은 ‘태도를 형태로 만드는’ 예술가 주체와 예술작품의 순연구조 또는 순환구조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미술계의 작가들은 예술작품 그 자체의 논리나 논법에 따라 활동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경험과 창작의 관계를 분리하는 경우이다. 예술가 주체의 죽음을 운운하는 시대의 예술은 체험에 의존하지 않은 자율성의 영역이나 문화산업의 영역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측면에서 현대미술은 현실 체험이나 인식과는 무관한 관념의 세계일 수도 있다. 특별히 예술가와 작품의 관계를 체험과 창작의 순연구조 속에서 파악하는 경우 우리는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조망하곤 한다.

그 체험이 직접적인 것인지 아니면 간접적인 것인지, 그것이 삶의 체험인지 아니면 예술가로서의 리서치 과정에서 얻어진 것인지의 여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체험과 현실의 문제는 리얼리즘 예술의 키워드임에 분명하다. 리얼리즘 관점의 예술은 예술가 주체의 삶과 그 삶을 토대로 한 창작행위의 결과로서의 예술작품이 상호 연관을 가진다는 명제를 이론과 실천의 영역에서 진지하게 고수해왔다. 가령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을 분기하는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는 예술작품과 실재의 관계 문제를 보더라도 실재의 영역이 예술작품과 완고하게 분절된 상황을 극복하고 상호 유기적인 관계맺음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리얼리스트 관점은 새로운 에너지를 가진 중요한 논점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삶과 예술, 체험과 작품 등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를 잣대로 보았을 때, 강은구는 리얼리즘의 관점을 가진 예술가이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창작의 기초로 삼고 있다. 그것은 기억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동시대 현실의 문제로 이어져 현실인식의 단초를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관한 성찰에 이르기까지 강은구라는 예술가의 작품세계에 있어 그의 유년기와 성장기의 체험은 매우 결정적인 근거를 형성한다. 나아가 그가 현실 속에서 획득한 체험을 추체험으로 연결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예술적 성찰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은구에게는 체험과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리얼리스트 예술가의 면모가 있다.

강은구는 을지로의 철재공장거리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통해서 철공소의 노동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금속판 절단 일을 하는 아버지를 돕는 과정에서 금속노동자들의 삶을 보았고 노동으로 세상을 만드는 산업생산의 현장을 보면서 자란 강은구는 늦깎이로 조소를 전공하고 예술가가 되었다. 그의 작업은 철판 작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는 사진과 드로잉을 기초해서 형태를 만들고 그것을 레이저 커팅 과정을 거쳐 여러 층위의 철판 부조 형태로 재구성하고 거기에 조명을 넣어서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철판을 매우 감성적인 차원에서 다룬다. 부식을 통해서 변화해나가는 물질적 특성을 이용하거나 두께의 차이에서 오는 효과, 절단과 용접을 통해 견고한 구조로 재탄생하는 금속패널의 물질성 등을 통해서 철판에 대한 매체 친화력을 감지할 수 있다.

강은구는 다수의 을지로 연작을 선보였다. 간판글씨까지도 담아내는 철공소 거리의 풍경과 거리를 오가는 인물들을 여러 개 레이어로 결합한 철판부조 작업들로 을지로의 거리를 담았다. 과거의 추억을 담은 것들뿐만이 아니라 도심재개발로 인해서 점점 사라져가는 을지로나 청계천의 현실을 담기도 했다. 2009년 말의 프로젝트 <청계천 마지막 크리스마스>는 사라져가는 을지로철재거리에 대한 오마주였다. 산업개발의 시대를 표상하는 포항제철소의 야경을 통해서 한국의 근대를 견인한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에 대한 명상을 담기도 했다. 최근의 작업들은 도시 연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층 구조의 철판 부조 작업으로 서울의 아파트 구조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와 대비되는 달동네의 밤을 만들기도 했다. 개발과 성장의 논리에 따라 공사장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거대도시의 현실을 실루엣으로 재현하기도 했다.

강은구가 리얼리스트 예술가로서 한걸음 더 진화하는 데 필요한 것은 자신의 체험과 창작을 예술적 실천의 관점에서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다. 지금까지 그의 체험이 창작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토대로 앞으로도 그의 체험이 좋은 창작, 좋은 예술적 실천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의 창작이 기존의 예술시스템이 편재한 바대로 작업실과 전시장이라는 단선적인 구도 안에 갇혀 체험과 창작, 추체험과 예술적 실천 등의 순환구조를 상실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체험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 강은구가 지금까지 창작해낸 좋은 작품들이 혹시라도 도돌이표 예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추체험과 더불어 새로운 체험이 필요하다.

강은구는 지속적으로 도시를 다룰 것이다. 가령 예술과 도시, 부자의 도시와 빈자의 도시 등의 개념으로 세분화해서 도시를 해체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도시의 외형을 형성하는 자본과 권력의 문제 또한 주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그것은 현실의 도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거나 멋진 신세계의 판타지를 실현하는 일이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도시와 삶의 문제인데, 인터뷰나 협업의 방식으로 도시의 심리지도를 만들거나 도큐먼트 차원에서 접근하는 커뮤니티아트, 공공미술의 형태로 도시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예술을 기대할 수도 있다. 여하한 주제나 방식을 선택하든 간에 강은구의 체험적인 자기고백이 삶을 나누는 따뜻한 예술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는 체험을 통찰력있는 실천으로 연결하려는 예술가로서의 관점과 신념의 문제에 달려있다. 삶을 배반하는 예술이 난무하는 정보(홍수)시대이므로 더욱 더!

김준기(시각예술평론가)

* 난지창작스튜디오 워크숍 발제문

2011/10/04 02:08 2011/10/04 02:08

지구의 미래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 : 임영선 개인전 서문

critic & column | 2011/10/04 02:06


지구의 미래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

임영선은 변방의 아이들을 통해서 지구의 미래를 본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주변부 소수자에 주목해서 그곳 어린이들의 현실을 바라보는 임영선의 시각은 전지구화의 이면에서 떠오르는 지역화로서의 동아시아담론이나 중화패권주의의 급부상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거대담론의 틀에 묶여있는 동시대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게 해준다. 동아시아를 두루 꿰는 임영선의 행보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겠다’는 실현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예술가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그는 몽골이나 캄보디아, 티벳 등과 같이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의 변방 마을을 방문해서 예술적 실천을 하고 있는데, 방문 현장의 어린이들과 벽화나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가지는 한편, 한 없이 맑고 깊은 미소를 보내는 어린이들을 현지의 풍경과 오버랩해서 담아내는 회화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관찰자 시점의 방문객으로서만이 아니라 현지의 상황과 함께 호흡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그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생산한다.

다수의 예술가들이 국제교류의 장에 동참하기를 갈망하면서 국제적인 명망성을 갖춘 미술관이나 갤러리 공간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데에 골몰한다. 반면에 임영선은 동아시아 변방의 가난한 마을을 찾아간다는 점,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과 벽화 그리기 등의 예술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임영선의 행보에는 자원봉사자와 예술가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이 섞여있다. 애초에 그가 동아시아 어린이들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인연으로부터 나왔다는 점도 의미심장한데, 그러니까 임영선은 예술작품 생산을 위해서 동아시아의 어린이들을 만나온 게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는 게 중요하다. 동아시아 어린이들을 캔버스에 옮겨 그리고 있는 지금까지도 임영선은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지수를 높이는 사람이다.

임영선은 낭만주의자이다. 그는 감수성 예민한 청년시기를 대학생의 신분으로 보냈다. 1980년대 후반기인 당시의 가장 큰 이슈는 조국통일과 민주주의였다. 20대 청춘 시절에 꿈꾸는 낭만주의적 사상과 정서는 세월이 흘러도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을 간직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낭만적 이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리 만무하다. 2009년의 노무현 서거 정국에 고인의 초상화를 그려서 봉하마을로 달려갔던 임영선이다. 대형걸개그림을 그려 봉하마을에 기증하기도 했다. 임영선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깊고 넓게 한반도와 세계의 정세에 관해 생각하는 예술가이다. 그러한 그가 한반도의 두 국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이야기하지 않고 동아시아의 어린이들을 화면에 담는다는 점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좁은 틀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문제를 남한과 북한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고 동아시아 공동의 미래 속에서 성찰하겠다는 것이다.

임영선은 동아시아담론을 자신의 예술적 어법으로 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유사 이래 19세기까지 동아시아는 나름의 독자적인 틀을 가지고 흥망성쇠를 거듭해왔다. 특히 근세 수백년동안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중심이 정치와 경제, 문화의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놓지 않았지만, 20세기의 역사는 판이하게 달랐다. 거대한 힘의 상실은 새로운 양상의 전쟁과 경쟁을 낳았고, 오늘날까지도 상호간의 적대적인 태도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냉전시대를 지나면서 미국중심의 일극 패권주의에 빠져 동아시아를 공동체나 지역의 개념으로 설정하고 연대하는 일에 눈뜨지 못했다. 그나마 1980년대 후반 이후 동아시아담론이 대두한 탓에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지만 그것은 담론의 수준을 넘어 실행 모드로 이행하기에는 상당히 피상적인 것이었다. 물론 정치적인 변화와 경제적인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문화적 상호교류는 이전에 비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해있다. 하지만 예술적 상상력에 입각한 국가와 국가, 도시와 도시, 나아가 개인과 개인의 상호성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은 이미 제국주의의 냄새를 풍기는 고약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나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반한류 기류가 일각의 변죽으로만 듣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물며 몽골이나 캄보디아 등의 소수자 국가들의 대중들에게 한국의 존재는 일종의 문화폭력일 가능성이 크다. 한류는 한반도 남단의 작은 나라가 생산해내는 돈 되는 문화콘텐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물결을 타고 거대자본의 힘으로 덜 자본화된 국가의 사람들의 안방에까지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자본폭력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이윤창출의 극대화를 위해 10대 아이들을 심볼로 내세우는 한국발 대중문화의 전략을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칭송할 일이 아니다. 국가 간 경계를 허무는 전지구화 현상을 문화적 버전으로 실천하고 있는 한류에 대해 국가브랜드 운운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달콤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긴 관점에서 봤을 때 결코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화산업의 논리가 팽배한 시대에 작고 낮은 목소리로 동아시아 변방의 어린이들과 소통하는 임영선의 예술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임영선은 예술가적 양심에 따라 실천하는 ‘행동하는 예술가’이다. 그의 예술적 실천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의 해외 교류는 국가 간의 교류가 아니라 민간의 차원, 특히 임영선이라는 예술가 주체의 실천의지에 입각해 있다. 흔히들 예술가의 해외 활동을 국제교류라고 명명하곤 한다. 그런데 그 국제적(international)라는 말은 국가 간의 상호성을 의미한다. 그 상호성이라는 것이 국가 간의 엄연한 경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예술적 실천이나 소통의 문제와는 격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임영선의 행보는 국가 정체성을 대변하거나 대표하지 않는다. 그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활동하는 한 예술가로서 움직일 뿐이다. 물론 그를 규정하는 국가나 도시, 성별, 연령 등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임영선은 시대정신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예술적 실천 모색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예술가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임영선의 회화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꿰뚫는 염화미소(拈華微笑)가 깃들어있다. 꽃을 집어 든 석가에게 미소로 화답한 그의 제자 가섭의 이심전심(以心傳心)과 같이, 임영선의 그림에는 직관적 소통을 매개하는 힘이 있다. 임영선 회화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질은 붓질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진을 바라볼 때는 전혀 다른 회화 이미지의 매력이다. 가령, 어린이를 찍은 사진을 보는 관객이 ‘저기에 어린이(이미지)가 있다’라는 인지를 가질 확률에 비해서 임영선의 그림을 보는 관객이 ‘저기에 (어린이를 그린) 그림이 있다’라는 인지에 도달한 가능성이 훨씬 높다. 어린이와 어린이를 찍은 사진 이미지 사이의 간극에 비해서 어린이와 어린이를 그린 회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훨씬 커 보인다. 따라서 임영선의 회화는 회화적 표현의 대상인 어린이들에 대해 성찰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 자신의 시선을 의식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객관적 거리 두기를 통해서 그 깊고 넓은 세계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화려한 붓질과 빛나는 색채의 임영선 회화에는 직관의 힘으로 시대정신을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지구의 미래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가 있다.

김준기 (시각예술평론가)

2011/10/04 02:06 2011/10/04 02:06

조각 영역의 확장과 개념의 재구성

critic & column | 2011/09/27 15:52


조각 영역의 확장과 개념의 재구성

광화문 네거리의 고종황제칭경기념비전(이하 비전)에는 서예와 전각, 석조각, 목공예, 건축, 회화 등 다양한 예술장르들이 총집결해있다. 그것은 전근대적 예술의 통합적 양상을 대표하는 한국 전통예술의 마지막 총체예술 작품이다. 물론 이후에도 목각과 석조, 소조 등 여러 방식의 전근대적 공예품 생산이 존재했겠으나, 이 비전은 공예와 조각으로 분화하는 과정을 거쳐 근대적 의미의 예술로 영역을 획정하기 이전의 미분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사이트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비전에서 보이는 미술적 요소들은 재현의 문제를 초월한다. 오히려 사상이나 세계관의 시각적 표현을 비롯한 온갖 상징재현 장치들로 인해 낱낱의 요소들을 시각적 재현의 차원에서 조망한다는 것 자체가 무망한 일로 비춰진다. 따라서 한국의 전근대시기 미술을 함축하고 있는 이 비전은 재현과 비재현의 문제를 초월한 채 한국 근대사의 여명기에 걸쳐져 있는 전근대 미술/시각예술의 끝자락이라는 기념비성을 가지고 있다.

인사동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규모도 크고 지붕선도 좋은 고건축물을 동시대의 식음공간으로 고쳐쓰고 있는 이 집에는 석 점의 석조 조각품이 있다. 출입문 옆의 담벼락 아래에는 상단부를 반달모양으로 후벼판 커다란 돌판이 있다. 대문 안에 들어서면 좌대위에 얹어놓은 김성복의 석조 호랑이가 있고, 현관 앞에는 제법 연도가 올라갈 것 같아 보이는 고미술품 해치가 있다. 이 석 점의 조각들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추상과 재현의 문제와 관련한 나름의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반달조각 돌판의 경우, 그것이 빗물을 받아서 부레옥잠을 띄워 놓기 위한 공예품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고 조각 그자체로 보았을 때,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논점은 추상과 재현의 두 가지 문제에 걸쳐있다. 평평한 자연석을 가로지르는 유려한 곡선이 반달의 형상을 추상화한 것인지, 아니면 반달을 재현하고자 한 것인지를 명료하게 분간하기 어렵다. 게다가 자연석을 파고 들어갔을 때 나타나는 돌의 나이테는 자연석의 우둘두둘함과 대비되는 맨들맨들한 인공의 흔적으로 인해 자연의 숭고미를 들춰내기까지 한다.

반면에 김성복의 호랑이와 고미술품 해치는 동물형상의 해학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재현미술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 두 작품은 형상재현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형상재현에 충실하기보다는 대상물의 형상적 특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현미술이라고 특정하기에 애매한 구석이 있다. 이 두 작품은 전근대 시대의 석조공예와 근대적 개념의 조각이라는 프레임을 훌쩍 뛰어넘는 해학성이나 압축적 형상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아름답게 조우한다. 반달조각과 호랑이, 해치는 수백년에 걸친 한국 조각의 변화 과정과 동시대의 의제를 압축하고 있다. 20세기 이전과 이후를 잇는 통사적인 역사기술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역사가들에게 이 작품들이 시사하는 바는 근대와 전근대, 전근대와 탈근대로 이어지는 패러다임의 분절만큼이나 절실해 보이는 프레임의 재구성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 석 점의 돌덩이들을 각각 공예품, 고미술품, 조각작품으로 분류하는 시각뿐만 아니라 조각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구성해보는 프레임의 재설정 또한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반도라는 국가단위의 권역에서 이루어진 이른바 조각개념의 형성은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부터 배운 근대조각의 정신과 방법에서 비롯했다. 근대조각의 비조 김복진이 20세기 초에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윤효중 같은 식민지 시기의 작가들이 작품발표를 하면서 예술의 장 속에서 활동하는 조각가가 자리 잡았다. 근대적 의미의 예술가 주체로서의 조각가들에게 있어 재현의 문제는 물이나 공기와 같이 자연스러운 문제였다. 근대시기의 선구자들은 전근대시기의 정신이나 방법을 어떻게 당대의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남은 근대조각사의 면면은 일본을 통해 전수받은 서양예술의 방법과 정신이 대부분이다. 물론 미술사라는 영역이 역사기술의 방법론과 관점에 따라 변동가능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서술과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현재까지의 역사기술로는 20세기 한국의 분절적 역사관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김종영과 김정숙은 한국의 추상조각을 개척한 선구자로 꼽힌다. 이들은 비정형의 유기체적 이거나 기하학적인 형상을 통해서 재현의 문제를 넘어서 추상의 세계를 열어나갔다. 물론 김종영과 김정숙의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형상미술의 세계를 이어간 권진규나 전뢰진 등과 같은 예술가들이 조각영역의 깊이와 넓이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국조각은 1970년대 들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데, 이종각이나 조성묵, 박석원 같은 작가들이 추구한 세계는 형상표현을 통해 재현의 의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조형요소로 재현의 문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상의 논지에 따르자면 한국의 조각은 대략 50-60년의 세월동안 근대성을 도입하고 소화했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들이 추구한 구상조각과 추상조각의 세계가 이른바 모더니즘 조각의 정점을 찍은 이후 그 담론을 넘어설 포스터모더니즘의 시대와 조각을 명료하게 특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 원인은 전근대와 근대, 근대와 탈근대 시기의 장르 개념이 각각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문제는 근대이후의 미술이 이념체계/예술사조 중심의 운동개념으로 분절적 패러다임을 강요해왔다는 데 있다. 유사이래 수천년의 세월동안 존재했던 시각적 표현물들 가운데 추상의지에 충만한 작품들은 너무나 많이 존재했다. 선사시대의 토기와 도기, 농경문양청동기 등을 비롯해 역사시기 이후의 저 풍부한 상징체계의 깊이를 바탕으로 존재했던 전근대시기의 예술 또는 공예의 세계와 단절한 서구이식의 예술 잣대로 재구성된 한국의 근대미술이나 근대조각은 역사기술 뿐만 아니라 실체의 발견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난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모더니즘의 정점에서 탈근대적인 예술실천으로 조각의 역을 획기적으로 확산한 실험미술들 또한 추상이나 재현의 문제와 또 다른 논점을 형성한다. 해프닝이나 대지미술의 경향으로 나타난 실험미술의 양상들은 전통적인 조각개념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 가운데 가장 선구적이고 대표적인 예시이다. 대지에 불을 놓고, 쓰레기를 모아 바닥에 늘어놓으며, 살아있는 몸으로 인체조각을 대체하는 시대를 넘어 공동체를 재발견하고 사회를 조각하는 시대, 나아가 도시를 큐레이팅하는 시대에 이르러 과연 현대조각의 좌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는 여간 난망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동시대의 미술지형 속에서 1970년대, 혹은 1980년대 이전의 조각개념과 대칭을 이루는 영역이나 개념을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조각개념은 100년전에 성립한 아카데미의 분과개념이나 전문가 장인의 스튜디오에서 발견할 수는 있을지언정, 모더니즘 예술개념의 종말 이래 추상과 재현이라는 의제로 조각의 과거와 현재를 통사적 시각으로 꿰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패러다임의 분절을 망각한 채 동시대와 그 이전, 가까운 근대와 그 이전을 동일시하려는 시각으로는 조각이라는 명사를 (재)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근대적 개념의 조각을 동시대의 예술지형 속에 재발견하려는 시각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조각개념 자체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동시대미술의 좌표는 조각과 회화, 입체와 평명, 구상과 추상, 재현과 비재현의 문제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있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충분히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가까운 과거에 비해 조각의 동시대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대의 지형은 일극에서 분극으로, 방법으로부터 정신으로, 물질에서 개념으로, 단일성으로부터 다원성으로, 환원으로부터 확산으로 전이한 오래이다.

김준기(시각예술평론가)

* 미술세계 2011년 10월호 기고문

2011/09/27 15:52 2011/09/27 15:52

한큐협 소식 20110921

critic & column | 2011/09/21 21:33


한국큐레이터협회 소식 20110921

한국큐레이터협회는 9월3일 예술가의 집 세미나실에서 2011년 정기총회를 열었다. 이날 총회에서는 경과보고, 회계보고, 정관개정 등의 안건을 처리한 후, 윤범모 경원대 교수를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 윤범모 회장은 호암갤러리와 예술의 전당 등에서 큐레이터 및 디렉터로 일 했으며, 미술사와 미술언론 등의 영역에서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윤 회장은 ‘큐레이터계의 원로와 중진을 잇는 가교역할을 할 것이며, 신입회원 영입으로 제2의 도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협회는 이어서 박래경 전임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고 위촉장과 감사패를 증정했다. 지난 4년간 협회를 이끌어온 박 명예회장은 수락연설에서 회원들과의 지속적인 만남과 대화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진 축사에서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은 박물관이라는 큰 틀에서 큐레이터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준비과정을 거쳐 올가을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할 예정이다.
2011/09/21 21:33 2011/09/21 21:33

이진석, 안현숙 : 서울아트가이드 2011년 10월호 이달의 전시

critic & column | 2011/09/19 18:23


이진석, 공존하는 풍경2, 2011.9.14-9.20, 갤러리이즈
역설적인 얘기지만, 당대 화가들의 그림에서 먼로가 아닌 강호동을 볼 수도 있다. 평양으로의 1박2일을 그린 이진석의 그림에서. 그는 100분 토론이나 미수다 같은 티비 프로그램들을 패러디한 연작들에서 초현실 또는 미래현실을 보여준다.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 자리한 촛불기념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북조선 관광객도 있다. 현실의 당위를 계몽하기보다 미래의 꿈을 낙관하는 예지가 돋보인다.

안현숙 : 잡음(White Noise), 9.15-9.23,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과거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개발을 향해 질주하는 현대 도시의 구조 문제를 다뤄온 안현숙이 그 구조 속 개인의 존재를 들춰내는 소셜 퍼포먼스 작업을 했다. 도시공간 속의 행위자 개인, 그 가운데서도 최전선의 마이너리티, 노숙자를 다룬 것. 작가 스스로 노숙자로 변신해서 직접 체험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다. 노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2011/09/19 18:23 2011/09/19 18:23

인터로컬을 실천하는 동북아시아의 허브 작업실, 오픈스페이브배

critic & column | 2011/08/31 21:31


인터로컬을 실천하는 동북아시아의 허브 작업실, 오픈스페이브배

예술체제에 대해 생각해본다. 체제는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묶어내는 결속력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사회체제’는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메커니즘을 이르는 말인데, 가령 87체제라는 말은 1987년에 일어난 변화로 인해 그 이후 동일하거나 유사한 패러다임에 의해 꾸려지고 있는 사회체제를 87체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술체제는 어떠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술사조 따위의 개념으로는 미술의 체제를 운운하기가 참 난감하다. 따라서 미술 외부적인 변동과 같은 큰 틀의 사회적 변화와 동행하는 새로운 변화의 흐름들을 묶어서 미술체제를 분기하는 것이 적절할 텐데, 그렇다면 역시 근대성의 발호를 분기로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그 이후의 근대와 탈근대 패러다임을 놓고 예술체제를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러저러한 예술체제가 아니라 이 답답한 사회체제 아래서 예술가로서 살아가겠다고 선언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처지이다. 창조적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절대다수의 예술가들. 이들이 꿈꾸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꿈꿀만한 세상이 아닐까?

지금은 누가 뭐래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지배를 받는 시대이다. 따라서 예술체제도 예술작품의 생산과 매개와 향유-소비 등 일련의 흐름이 시장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미술시장과 다른 길을 걸으며 새로운 예술체제를 꿈꾸는 기관, 단체들이 있다. 비영리공간들이다. 이들은 이윤창출이 아닌 가치창출의 최우선의 목표에 두고 움직인다. 그렇다면 부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각예술분야의 대표적인 비영리공간은 무엇일까? 물론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비엔날레를 꼽을 수 있다. 역시 관급 조직의 규모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을 찾는 미술 매니아들이 선망하는 곳은 대안공간들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대안공간이 부산에 있다. 광안리의 대안공간반디가 그 주인공이다. 디렉터 김성연의 헌신이 부산의 새로운 미술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아는 사실이다. 부산대 앞의 독립문화공간 아지트도 있다. 독립문화, 스트리트아트, 복합문화공간, 다원예술 등 몇 가지 키워드를 대면 부산 아지트의 구헌주가 떠오를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어려움을 겪던 다대포의 아트팩토리도 새롭게 진영섭 체제를 꾸려 심기일전하고 있다고 하니, 부산은 정말 비영리예술공간이 활성화한 도시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세 공간과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진 대안공간이 있다. 저기 위쪽 기장군 일광의 오픈스페이스배이다. 이 공간은 접근성으로 보면 정말 힘든 공간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비포장도로를 거쳐야만 도착할 수 있는 실재의 배밭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공간의 활력과 대내외적 인지도를 들여다보면 부산의 대표적인 대안공간 가운데 하나로 전혀 빠지지 않는다. 특히 레지던스 분야에 있어 단연 최고의 역량을 보이는 곳이다. 해마다 국내외의 예술가들을 공모방식으로 선정해서 빼곡한 프로그램으로 일정을 소화해낸다. 작가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발표하고 여러 패널들과 토론하는 가운데 예술로 한 생을 살아가는 전문가로서의 연대의식을 진하게 느끼는 곳이다. 해가 갈수록 불어나는 배 작가들은 해마다 봄여름에 열리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다. 전국 여러 도시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작가들 또한 빠지지 않고 자신이 머물렀던 배를 찾아가곤 한다.

무엇이 이토록 끈끈하게 오픈스페이스배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을 뭉치게 만드는 것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렉터 서상호의 독특한 리더십이다. 그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작가들과 24시간을 함께 보낸다. 서상호 특유의 열정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온갖 일들 속에서 그는 예술가들과 함께 부딪기고 뒹굴면서 봄여름을 보낸다. 배밭의 결속력은 무엇보다도 디렉터의 불룩한 배처럼 두둑한 뱃심에서 나온다. 그러나 인간성만으로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그는 탁월한 프로그래머이자 코디네이터이다. 레지던스에 참여한 작가들에게 혼자 쓸 작업실이 필요하다면 배밭은 부적절한 곳이라는 사실을 미리 각인시킨 후, 함께 소화하는 일정을 촘촘히 배치한 후 매우 성실하게 하나하나 소화해 나간다. 특히 공공미술이나 커뮤니티아트, 예술프로젝트 등 예술적 소통을 공공장소나 커뮤니티, 과정중심의 쇼설 퍼포먼스 등의 수준에서 공유하고자하는 명료한 예술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배밭 주인장의 큰 장점이다. 또한 이러한 생각들을 실제 실행하는 추진력 또한 매우 뛰어나다.

올 여름의 끝자락 8월 말부터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에서 <인터로컬2011: 동북아, 우리공동의 미래>라는 전시를 열었다. 베이징과 홍콩, 타리페이에서 온 배밭 출신 참여작가들과 더불어 서상호 디렉터도 오랜만에 작가로 참여했다. ‘동북아, 담론에서 실천으로’라는 주제의 심포지움을 열고 이틀에 걸친 심포지움도 열었다. 3박4일간의 공동여정을 소화하면서 느낀 건데, 배밭은 함께 머물면서 나누는 데 매우 익숙한 곳이라는 점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역시 자신의 삶의 전부를 걸고 무언가는 실천하는 사람의 진정성이면 아무리 어려운 조건에서라도 뜻한 바를 이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에 모인 예술가들은 상호주의를 이야기했다. 그것은 국가상호주의(internationalism)아니라 지역상호주의(inter-localism)이다. 배밭은 서울과 한밭을 이어줄 뿐만 아니라 같은 중국문화권의 베이징과 홍콩과 타이페이를 이어주고 도쿄와 교토를 잇는 허브역할을 하고 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참뜻은 이런 데 있다. 오픈스페이스배는 인터로컬을 실천하는 동북아의 허브 작업실이다. 국가 정체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예술생산기지의 허브 말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 부산문화재단 계간지, 공간 그리고, 가을호 기고문

2011/08/31 21:31 2011/08/31 21:31

실천적 몽상가들의 아름다운 동행, 대지의 꿈

critic & column | 2011/08/31 04:04


실천적 몽상가들의 아름다운 동행, 대지의 꿈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해온 인권운동단체인 “인권재단 사람”과 한국의 대표적인 리얼리스트 예술가들이 만났다. 삶의 예술, 진실의 예술을 추구하는 리얼리스트들의 꿈은 “인권재단 사람”이 걷고 있는 사람 사랑의 큰 길과 맞닿아있다. 이 전시 <대지의 꿈>은 오랜 시간동안 예술과 사회, 예술과 인간 삶의 접점을 모색해온 예술가들이 “인권센터 사람”의 설립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마음을 모은 연대의 실천이다. 26인의 참여작가들은 이 전시를 통해 인권센터 설립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나아가 물적 토대 구축을 돕기 위해 자신의 대표작들을 출품했다. 인권운동의 지평 확산에 공감하는 리얼리스트 예술가들과 “인권재단 사람”의 실천가들이 함께 꾸는 꿈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이들은 대지를 꿈꾸는 현실 지평 위의 몽상가들이다. 여기 어머니 대지를 꿈꾸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

나아가 이 전시는 26인의 참여 작가 작품을 통해서 한국의 리얼리즘 시각예술의 면면을 가늠해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1980년대 민중미술 계열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 다수는 ‘현실과 발언’이라는 대표적인 리얼리스트 그룹에서 활동했다. 또한 ‘광주자유미술인협회’, ‘임술년’, ‘두렁’ 등의 그룹 활동을 통해서 민중미술 운동을 주도해온 대표적인 작가들도 많이 참가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시의 출품작들이 회고전 분위기의 구작들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이응노나 오윤, 구본주 등 몇몇 작고 작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근작들을 출품했다. 따라서 이 전시는 1980년대 민중미술 계열의 리얼리즘 예술가들의 현재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요컨대 이 전시는 민중미술 계열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한국 리얼리즘 시각예술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긴 세월동안 한결같이 현장을 지키며 인권운동에 투신해온 활동가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전시에 참가한다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가치지향을 나누는 실천이다. 이 전시는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후배세대들을 통해서 이들이 이어오고 있는 예술적 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최평곤이나 류준화, 박영균, 이윤엽, 노순택 등 40대 작가들의 작품세계는 민중미술 이후의 리얼리스트들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해준다. 이들 젊은 세대 리얼리스트들이 선배 세대들과 공유하는 지점은 민중미술이나 리얼리즘으로 분류되는 시각예술 흐름의 동질성만이 아니다. 이들이 인권운동가들이나 선배 세대 리얼리스트들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시각예술 내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그 외부와의 관계, 즉 삶의 지평 속에서 예술적 실천을 모색하며 나눔의 정신을 공유해왔기 때문이다.

출품작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유형별로 나눠보다면, 가장 눈에 띄는 작품들은 ‘뜻을 담은 풍경화들’이다. 강요배와 김정헌, 민정기, 손장섭, 이종구, 황재형 등은 민중미술 1세대로서 현재까지도 꾸준히 풍경을 담는 회화작업을 통해서 예술세계의 일관성을 지켜오고 있는 예술가들이다. 금강산 풍경 연작을 출품한 강요배가 특유의 거칠면서도 깊은 서정성으로 풍경의 단면을 포착했다면, 민정기의 회화는 땅과 삶의 정서를 단단하게 담아내고 있다. 김정헌의 회화는 유머와 냉소의 서사를 함께 담은 정치적 풍경이다. 손장섭은 꿈틀거리는 붓질의 울림으로 독창적인 스타일을 일군 풍경화를 출품했다. 이종구의 경주남산 풍경은 검푸른 하늘과 달빛, 그리고 산야의 선율 속에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담았다. 황재형은 태백에서의 삶의 체험을 토대로 한 붓질과 색채의 맛이 잘 살아있는 회화를 출품했다.

사물이나 상황을 초현실적인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들로는 김용태와 임옥상, 박불똥, 박종해, 신학철 등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김용태는 미군부대 준변의 기념사진들을 모아 분단현실을 속살을 드러낸 기념비적인 작품 <DMZ>를 선보인다. 임옥상은 코나 귀와 같은 인간신체의 부분과 꽃 이미지를 결합한 근작을 출품했다. 박불똥은 코카콜라와 화염병을 결합한 자신의 대표적인 사진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옮겨 그린 작품을 선보인다. 박종해는 특유의 엷은 수채화로 거대한 구조 속에서 꿈틀거리는 인간존재를 담고 있다. 4대강 공사 현장과 쇠고기파동 등의 왜곡된 현실을 합성한 신학철의 회화 또한 동시대의 난맥상을 집약한 초현실의 세계이다.

민중미술의 중요한 화두였던 전통적 미감의 동시대적 재생이라는 관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도 많다. 이응노와 오윤, 신영복, 김봉준, 홍성담 등의 공통점은 모필이나 수묵, 채색 등의 전통을 각자의 어법으로 재생했다는 데 있다. 이응노의 1987년 작 <군상>은 사회변혁의 에너지가 넘쳐났던 1980년대의 거리 풍경을 역동적인 운필로 표현한 작품이다. 오윤의 걸개그림 <통일대원도>는 전통회화와 현대미술을 접목하고자 했던 그의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신영복은 이번 전시에 출품하기 위해 새로 쓴 서예작품 <세계인권선언문>을 선보인다. 김봉준은 붓그림의 맛을 살려 글과 그림을 한 폭에 담아 복지의 시대정신을 표현했다. 홍성담은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는 도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회화 <도시 텃밭 농부>를 출품했다.

민중미술 목판화의 옛 기억과 더불어 동시대의 감성을 살린 근작들도 여러 점 있다. 이 작품들은 민중미술의 시대 이후 지금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목판화라는 장르의 독특한 매력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게 해준다. 80년대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정서적 공감대와 에디션의 미덕을 가진 목판화라는 장르의 특성은 이번 전시가 품고 있는 나눔과 연대의 정신과 잘 맞아 떨어진다. 류연복과 이철수, 최병수, 황선웅 등이 그 작가들이다. 류연복은 목판의 질감과 목판각의 맛을 살린 대작목판화를 출품했다. 이철수는 목판각의 묘미와 화면구성의 절제미, 그리고 서사 구성의 힘을 겸비한 목판화 작품 여러 점을 출품한다. 최병수는 심플한 형상을 목판화의 맛과 결합한 작품 두 점을 선보인다. 홍선웅의 연작 두 점은 문자와 선묘, 색채를 결합하여 독도의 서사를 담고 있다.

민중미술의 시대 이후의 리얼리스트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작업들 또한 한국 리얼리즘 시각예술의 지평을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다. 최평곤은 거대한 대나무조형물을 통해 공공장소를 시각적으로 환기하면서 동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구본주의 기념비적인 대작 갑오농민전쟁은 1980년대의 사회변혁 에너지를 대변하는 걸작이다. 류준화는 문자도와 만화 캐릭터 등의 다양한 도상들을 차용해 독창적인 스타일과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박영균은 동시대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을 만화와 인형이 등장하는 팝아트 양식으로 보여준다. 용산참사 현장을 재구성한 이윤엽의 목판화는 현장예술가의 면모를 확인하게 해준다. 촛불의 현장을 담은 노순택의 작품은 기록의 힘과 표현의 묘미를 절묘하게 공유하고 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여기 사람 있다”.

20년 세월의 간극을 넘어 아직도 이 두 문장을 떨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1980년대에 들었던 정태춘의 노래를 21세기 동시대에 이윤엽의 걸개로 다시 보아야만 하는 현실이다. 둘 사이에는 청각언어와 시각언어라는 기표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속뜻은 같다. 노래와 그림뿐만 아니라 시와 춤 등 우리 시대의 수많은 예술은 이렇듯 척박한 현실을 담아왔다. 리얼리스트의 이름으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서서 현실 너머 초현실을 노래하는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인권운동의 실천가들 또한 현실의 지평에서 서서 현실 너머의 탈현실의 세계를 추구한다. 예술가들과 인권운동가들에게는 공히 실천가로서의 면모가 있다. 이들은 늘 연대해왔다. 담론적인 실천행위인 예술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실천행위인 인권운동과 동행해온 짧지 않은 역사가 이렇듯 가슴 따뜻한 만남을 낳았다. 여기 어머니 대지를 꿈꾸는 실천적 몽상가들의 아름다운 동행이 있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 <인권재단사람 기획전 2011 : 대지의 꿈> 전시 서문

2011/08/31 04:04 2011/08/31 04:04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2011년 9월호 : 이만우, 임옥상

critic & column | 2011/08/22 14:19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2011년 9월호

이만우, 모리스갤러리
섬세한 필치로 논바닥을 그리는 이만우의 그림은 농지화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논갈이를 하고난 논바닥의 물과 흙, 볏그루와 볏짚 등이 얽혀 독특한 화면을 구성하는 그의 그림은 작가 자신의 논농사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그림들이 그림 속 이미지의 재현에만 무게를 두는 것은 아니다. 화가의 본업인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 그 자체의 맛과 멋에 대한 집요한 파고들기 도한 그의 작업이 주는 은근한 매력이다.

임옥상, 가나아트센터
지난 10여년간 공공미술에 천착해온 임옥상이 8년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물, 불, 철, 살, 흙’을 다룬 그는 물질의 근본 요소들을 가지고 삶과 현실의 지평 속에서 재구성했다. 평면회화와 입체조형, 오브제 설치 등 전방위에 걸친 그의 작품세계는 토탈아트로 불리운다. 매체나 의제의 규정을 넘어서서 예술가의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사회와 역사와 개인의 문제를 다룬 그의 세계는 끊임없이 동시대와 호흡하는 통섭의 언어이다.

2011/08/22 14:19 2011/08/2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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