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1234567 ... 52   다음 

사회적 의제의 최전선에 선 행동하는 예술가 전진경

critic & column | 2012/07/15 13:49


사회적 의제의 최전선에 선 행동하는 예술가  전진경

돌아가신 분을 관에 모시고 영영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순간. 전진경은 너무나 황홀하게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다. 생전에 그토록 냉엄하고 강인했던 어머니를 입관하던 순간, 관 속에 누워계신 어머니에게 꽃을 채워넣는 그 짧은 시간동안에 전진경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뇌리에 담아두었다가 한 달 뒤에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와 영원히 헤어지는 순간에도 그는 그림 그릴 생각을 했던 것이다.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는 ‘너무 아름다웠던 그녀’의 얼굴에는 작가 자신의 얼굴이 그대로 들어있다. 전진경은 근 몇 년동안 돌아가신 분들 여럿을 그림 속에 담았다. 용산참사에서 돌아가신 다섯 분의 영정을 비롯해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님과 민주화운동의 대부 고 김근태님의 장례식에 쓰인 초상화가 전진경의 붓끝에서 나왔다. 철거민들과 명사들의 죽음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맞은 전진경은 삶과 죽음의 뜻을 성찰하며 그림을 그려왔다.

전진경은 대학에서 수묵채색화를 전공하기 시작한 이래 20년째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고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개인전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갤러리나 미술관이 아닌 공장건물에서 열리는 전시다. 그는 수년째 장기농성을 벌이고 있는 인천의 악기제조회사 콜트콜택의 빈 공장건물에서 몇몇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점거를 진행하고 있다. 스쾃(Squat)이라 부르는 예술점거운동이 일반화한 유럽에서라면 몰라도, 한국과 같이 예술적 실천에 대해 관대한 시각이 부재한 나라에서 남의 빈 건물에 들어가 작업실을 꾸리겠다는 발상은 여러모로 난관에 부딪혔다. 건물주 측의 거센 항의를 받는 것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고 한다. 고비의 순간들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전진경은 빈방 하나를 작업실로 꾸미는 데 성공했고, 그곳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진경은 벽면을 정리하고 간단한 집기와 화구들을 배치한 후, 그동안의 작업들을 옮겨놓고 신작 제작에 들어갔다. 불법침입자인 그는 버려진 공장 건물 여기저기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모아 작업도구로 쓰기도 하고, 작업실 벽에 벽화를 그리기도 하며 공장아틀리에를 꾸리고 있다. 그는 콜트콜택 사건을 공론의 장으로 확산하자는 뜻에 공감한 스무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공장아틀리에 개인전을 연다. 한국사회와 같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사적 소유가 완벽하게 관철되는 국가에서 예술점거를 벌이는 드문 경우이기도 하지만, 그곳 점거아틀리에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여는 작가는 전진경이 유일할 것이다. 그는 이번 개인전을 통하여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고 있다. 스스로 머무르는 곳을 결정하고 예술적 의제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예술가 전진경, 투쟁의 현장 속의 뛰어들어 사회적 의제의 최전선에 선 ‘행동하는 예술가 전진경’이라고 말이다.

그가 첫 개인전 장소를 점거 중인 공장으로 선택하여 자신의 뜻과 길을 드러내는 것은 일종의 개념예술적 행위이다. 그는 지난 2006년부터 경기도 평택의 대추리마을에서 지킴이 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이후 서울의 용산참사 현장을 비롯한 사회적 고통과 갈등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현장에 거주하거나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주민과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렇듯 사건과 상황에 관한 심층적인 체험은 그의 작품을 진정성의 국면에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10여년간의 작업을 일시에 개인전 방식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진경의 경우 초기의 긴 시간동안을 현장미술운동에 할애하였으므로 개인작업보다는 집단창작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이유로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대부분 지난 5년여 동안 대추리를 비롯한 현장에서 제작한 액자그림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진경의 그림들이 현장에서의 쓰임새를 위해 즉발적으로 그려진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다수의 작품들은 자신의 체험이 쌓아준 기억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만다. 가령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과 같은 작품은 서울역에서 만난 곰돌이 모자를 쓴 아저씨와 몽골에서 만난 아저씨의 모습을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그린 그림이다. 평택 대추리마을에서 지킴이 활동을 했던 그는 2007년 봄, 마을을 내주고 모든 주민이 떠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주민들과 함께 그 마을에 머물며 그들의 아픔을 지켜봤다.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마음에 담아둔 전진경은 몇 점의 그림들로 대추리를 기억한다. 대추리의 일상과 사건을 그린 그림들 속에서 전진경은 인간의 삶에 있어 기억의 문제를 깊고 무겁게 다루고 있다.

전진경의 작품에는 대부분 인물이 등장하는데, 몇몇 작품들에서 그는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작업을 했다. 전북 진안에서 만난 이장님을 그린 그림 <진화>는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고 있다. 과거를 가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 태어나고자 하는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애써 그린 인물화 위에 하안 분칠을 하곤 했다. 그는 몇 점의 연작에서 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는 그 위에 하얀 분칠을 했다. 유독 한 작품에서만 그는 얼굴 전체를 지우는 분칠을 멈추고 이마 가운데와 미간 사이에만 분칠을 했다. 존엄을 뜻하는 에스페란토어 제목의 그림 <Digno>이다. 이 그림은 자신을 그린 것인데, 오랫동안 생각하며 완성한 이 작품을 통해서 그는 비로소 마음의 병으로부터 온전하게 탈출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본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그리기도 한다. <이런 겨울>은 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니의 뒷모습인데, 대부분의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싸우며 지키고 있을 때, 먼저 떠난 주민들 가운데 일부가 자신의 고향이 궁금해서 차마 낮에는 돌아오지 못하고 밤에 마을 주변을 서성거리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린 그림이다. 먼저 떠난 주민의 슬픈 마음이 담긴 그림이다. <꽃을 좋아하는 남자>는 전북 진안 방곡마을에서 거주할 때 평생 초등학교 소사로 일하신 할아버지가 죽어가는 화분을 가져다가 되살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의 집은 화초들로 넘쳐났다. 평택과 진안의 두 사람을 기억하는 전진경의 마음에는 쓸쓸함과 따뜻함이 교차한다.

용산참사 현장에서의 예술행동은 전면적인 기억투쟁이었다. 참사가 벌어진 후 1년이 다 되어서야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그 참혹한 사건이 잊혀지지 않고 공론의 장에서 살아있도록 하기 위해서 전진경은 주민들을 만나고 그림을 그렸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돌아가신 철거민 다섯 분을 그린 영정 그림은 먹선의 맛과 멋으로 윤곽을 잡고 정교한 채색으로 인물의 생동감을 살린 작지만 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장례식 때 크게 확대 프린트해서 장례행렬에 쓰였다. 그는 용산포차에서 일식집 메뉴판에다가 그림을 그렸다. 철거민 가족들의 모습을 만화풍으로 그렸는데, 이후 다수의 주민들로부터 서로 자신들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아 메뉴판그림 연작을 했다. 용산참사의 현장을 정리할 때 그는 ‘나무그림증정식’을 열어 주민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나눠줬다.

용산참사 현장작업 이후 전진경은 현장미술팀의 일원으로 예술행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 그는 제주도 강정마을을 찾아 현장 작업을 했다. <구럼비의 신>은 구럼비바위 표면을 종이찰흙으로 떠내고 그것으로 만든 종이부조 가면이다. 이 작품은 해군기지 건설현장이라는 한국사회의 매우 특수한 국면에 참가해서 제작한 것으로서 파견미술팀과 함께 진행한 것이다. 파견미술팀은 회화, 판화, 조각, 설치, 문학,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구사하는 예술가들, 전미영, 이윤엽, 신유아, 안규환, 송경동 등이 함께하는 네트워크의 이름이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조건의 파견노동자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마음으로 첨예한 의제의 현장을 찾아 예술행동을 실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진경은 대학에서의 학업을 정리한 후 곧바로 현장미술활동에 뛰어들었다. 현장의 무대미술을 중심으로 한 현장미술그룹인 그림공장 멤버로 활동한 것이다. 인송자, 김성건, 김주철 등의 선후배들과 함께 한 10년간의 현장미술 활동에서 그는 무수히 많은 거대한 그림들을 그렸다. 그는 단위노조에서부터 전국단위 노동자조직에 이르기까지 무대미술로서 노동자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전진경은 그림공장에서의 10년 활동을 정리한 후 그는 대추리로 갔다. 그곳에서 전진경은 현장미술의 새로운 방법론을 채득했다. 현장에 살면서 그곳의 삶을 이야기하는 예술가로 진일보한 것이다. 노동자대회 등과 같이 수천 수만명이 운집하는 집회의 무대 뒤에 걸린 걸개그림보다는 작고 소박하지만 내용적으로 알차고 진솔한 예술적 실천을 발견했다. 개인적인 선택 따라 삶의 장소와 작업 내용을 채택하는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한 것이다.

그는 대추리와 용산,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콜트콜택 등 사회적 갈등의 최전선에서 예술행동에 동참했다. 특히 대추리와 용산, 그리고 최근의 콜트콜택의 경우는 현장 거주 및 점거를 예술적 행위와 접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미군의 군사전략과 농민의 생존권이 충돌하는 지점에 뛰어들었으며, 죽음을 부르는 자본의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 함께 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직장폐쇄에 맞서 공장을 지키고 있는 악기제조회사 노동자들과 함께 빈 공장을 지키며 점거아틀리에를 꾸리고 있다. 만약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전진경의 점거아틀리에를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진경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빼어난 화가이자 소외된 이웃의 삶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활동가이다. 전진경의 삶은 예술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다. 그는 사회적 갈등의 현장을 찾아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을 창의적으로 결합하고자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는 행동하는 예술가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 전진경 개인전 서문

2012/07/15 13:49 2012/07/15 13:49

인터뷰 : 거리의 예술가 구헌주

critic & column | 2012/06/26 15:02


인터뷰 : 거리의 예술가 구헌주

“그래피티를 하게 된 것은 힙합음악을 좋아하면서 알게 된 힙합문화 때문입니다. 힙합음악에 빠져들고 난 후, 문화 자체에 눈을 돌려보니, 힙합에서 무용은 비보잉, 노래는 랩, 연주는 디제이, 미술은 그래피티더라구요. 그리고 무대는 거리.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래피티겠다’ 생각했죠.”

고등학교 시절부터 록과 힙합 음악을 즐겨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대중문화의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문화에 젖어들었던 구헌주는 비주류문화의 수용자에서 생산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바꿔나갔다. 오늘날의 그래피티아티스트 구헌주는 거리의 문화에서 나온 힙합 정신을 몸으로 익히며 서서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래피티라는 기술을 익히기 전에 그 근저의 문화적 토양에 해당하는 힙합문화를 이해하고 체험하며 성장한 것이다. 구헌주는 한국의 그래피티 아트스트들이 결여하고 있는 힙합정신의 본질에 충만한 보기 드문 힙합정신의 소유자이자 그 정신을 실천하는 행동하는 예술가이다.
30대 초반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구헌주는 언젠가부터 그는 부산을 대표하는 대안예술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난 2005년, 그러니까 그가 미술대학 회화전공 4학년 학생일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그는 부산대 앞 지하철역 아래의 천변 공간을 중심으로 한 그래피티 씬에서의 지속적인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명 ‘똥다리’라고 불리는 이 곳은 구헌주를 비롯한 많은 젊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활동해온 곳이다. 한때는 국제적인 그래피티의 메카로 알려져 국내외의 내노라하는 아티스트들이 이곳을 방문해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곳 벽을 사랑했다. KAY2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그는 무수히 많은 그림을 남겼다. 1980년대의 시위 사진 위에 모니터 속 윈도우 프로그램의 ‘삭제’ 아이콘을 그려넣기도 한 그는 초기부터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건드리며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는 대학가의 주류공간이 미술제도 영역으로부터 한 발 비껴난 언더그라운드 문화공간을 자신의 근거지로 삼았다. 그는 재미난 복수라는 문화운동단체에서 활동해왔다. 그는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취향을 지향하며 차근히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지난 몇 년간 그는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꾸리고 있는 공간인 아지트의 운영을 주도해왔다. 올해 봄까지 4년여동안은 아지트의 총괄 운영과 기획을 담당했는데, 이제는 본연의 일인 작업의 길로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다원예술매개공간 지원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한 이 공간은 말 그대로 탈장르복합문화의 실험장이었다.
구헌주는 아지트에서 잔뼈가 굵었다. 아지트는 그에게 액티비스트의 자질을 키우고 실천의 근거를 제공한 배우지이다. 아지트는 류성효과 구헌주, 김건우 등이 꾸려온 대안문화공간이다. 류성효는 대안문화 기획자이자 네터워커이다.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의 접점을 만드는 김건우 또한 아지트의 대들보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손지현, 이정민, 이광혁 등의 문화기획자, 댄서, 뮤지션들이 아지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지트는 미술과 음악, 퍼포먼스 등이 공존하는 탈장르복합예술의 아방가르드 그 자체이다. 장르와 장르의 만남, 예술과 사회의 만남, 세대와 도시와 국가 등의 경계를 넘어 그 모든 것을 뒤섞어 버리는 말 그대로 첨단예술의 아지트이다.
한 사람을 보려면 그 주변을 봐야한다는 말이 있다. 구헌주가 좋아하는 인물들을 보면 그의 취향과 지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존경하는 인물 1번으로 꼽을 정도로 류성효를 좋아한다고 한다. 류성효는 구헌주에게 있어서는 불굴의 예술적인 기획자이자 진정한 아티스트이다. 재미난 복수의 주요 멤버인 류성효는 ‘써브컬쳐씬의 네트워크작업과 축제컨텐츠에 대한 열망이 많은 사람‘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은 ’리얼 아티스트인 김일두‘. 그래피티 아티스티스트 지알(Jial1)은 10여년 전에 불모지였던 부산의 그래피티 문화를 일군 선구적 역할을 했다. 뱅크시와 블루 등 해외의 스트리트 아티스트도 그를 이끈 예술가들이다.
돌이겨 보건대, 구헌주는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여느 신진작가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미술평론가로서, 혹은 독립큐레이터나 미술관 큐레이터로서 수년간 그를 만나왔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7년에 류성효가 경성대미술관에서 기획한 그래피티 아카이브 전시였다. 그래피티의 정신에 대해 토론하며 나는 그가 미술대학을 졸업한 여느 신진작가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그해 가을에 독립큐레이터 일을 맡아 그를 초대한 것은 <아트인대구 2007 : 분지의 바람>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대구의 원도심에 있는 삼덕맨숀의 벽에 거대한 그래피티 작업을 했는데, ‘눈감고, 귀막고, 입막고 있는 대구사람들’의 정치적 보수성을 일갈한 그 작업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이듬해에는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서 <아트인부산 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구헌주를 초청했다. 그는 전시장 안에 사각부스를 만들고 그 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다. 그는 쇠고기 이슈를 다루며 MB를 그려넣더니 급기야 불경스러운 도상을 그려넣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공무원 큐레이터인지라 ‘살살하라’며 약간의 자제를 당부했고, 그도 웃으면서 약간 살살하기도 했지만, 2009년 이후의 살벌한 정국을 생각하면 MB정권 초기의 약간은 널럴했던 분위기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후에도 대안공간반디와 상상마당 등에서의 기획전에 그를 초대하고 작가추천을 하기도 하면서 지켜보아온 그는 한결같았다.

“아트신과 관계를 어떻게 맺을까라는 고민은 한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지는 상황이나 기회들이 아트신과 닿아 있다면 거스를 필요도 없지만, 굳이 그쪽만을 바라볼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홀로서기를 한 지금 저의 생각과 저의 결과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여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만 할 뿐입니다. 우선은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게 가장 먼저인 것 같습니다.”

미술계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젊은 작가도 참 드물 것 같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도권 미술계에 찌들지 않고 꿋꿋하게 한길을 걷고 있다. 나는 그의 이러한 두둑한 뱃심이 저항문화에 관한 성찰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의 현대사에 면면히 흐르는 저항문화의 흐름을 나름의 시각으로 가늠하고 있다. 그는 1980년대식의 정치적 저항문화를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세대가 지난 세대와 어떤 점에서 맞닿아있고, 어떤 점에서 단절의 지점을 형성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1980년대 방식의 정치적 저항운동과 2000년대 방식의 문화적 저항운동의 차이를 가르는 변곡점에 서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세대 간의 단절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4,50대 선배 세대와의 만남에도 마음을 여는 네트워커이다. 제도권 미술계에서 일하는 나는 비제도권 문화계에서 일하는 그와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세대 간의 차이를 넘어 대화할 수 있는 많지 않은 후배세대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그를 꼽곤 한다. 그래봤자 12년 차이 나는 것이니 마음만 열면 세대공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물론 그는 그렇게 생각 안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도 나는 안다).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구헌주의 다음과 같은 언급으로 봐서 그는 자신의 좌표를 비교적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정치적 저항은 민주화나 현실정치 개혁 등의 거대담론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2000년대 저항문화는 다양성이 결여된 기존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시작으로 각자의 행복추구, 자기표현 등이 중심이 된 개인의 발견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나 작은 사회의 특수성에만 매료되어 큰 삶, 큰 사회의 이야기와 단절된 채로 사는 것은 원치 않지만, 저마다 다른 다양한 삶의 모습,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함께 존중받고 지켜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구헌주는 부산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활동반경을 넓혀왔다. 광주와 대구, 서울의 도심에는 그의 그래피티가 남아있다. 그의 해외활동은 주로 일본과 연관이 있다. 일본의 그래피티 작가들이나 문화활동가들과의 협업이 주를 이룬다. 후쿠오카시청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아지트의 레지던스프로그램에서 만난 해외 작가들과의 밀접한 관계도 큰 재산이다. 조만간 스트리트아트의 메카인 베를린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싶다. 이왕이면 그의 생각대로 ‘예술을 점령하라’는 모토로 국제적인 액티비스트들의 집결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베를린에서 구헌주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일한 구헌주, 떠나라!”

김준기 (미술평론가,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부산문화재단 <공감 그리고> 2012년 여름호 기고문.

2012/06/26 15:02 2012/06/26 15:02

서울아트가이드, 2012년 7월호, 이달의 전시 : 정장직, 박홍순

critic & column | 2012/06/18 11:14


정장직 : FACE-the Gate of Sprit, 갤러리이안, 6.01-6.15
정장직의 그림이기도하고 문자이기도 한 픽토그램을 작품 속에 끌어들인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창구로서의 얼굴에 주목한다. 회화, 드로잉, 판화 등으로 풀어내는 얼굴 그림들은 한 사람의 삶을 통하여 쌓인 시간성을 압축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특정인을 대상으로 재현적 형태의 픽토그램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그가 그리고 쓴 얼굴들은 익명성에 가려진 현대인의 군상이다.

박홍순 : 대동여지도 중간보고서, 한미사진미술관, 6.23-8.19
대자연의 풍경 속에 끼어든 인공의 흔적을 찍어온 박홍순의 중간결산 전시. 백두대간의 수많은 봉우리들과 동강과 평화의 댐에서 양수리 두물머리에 이르는 한강도 있다. 서해안의 시화호와 새만금도 있고, 남해안의 진도에서 완도, 강진갯벌, 순천만과 여자만, 거가대교, 그리고 해운대도 있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의 15년동안 한반도 남단의 산과 강, 해안을 훑고 다닌 박홍순의 대서사시.

2012/06/18 11:14 2012/06/18 11:14

안치인, 김영진 :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20120220

critic & column | 2012/02/20 18:34


안치인, 모리스갤러리
퍼포먼스에서 드로잉과, 페인팅, 설치, 그리고 영상 작업에 이르기까지 지난 대매체적인 총체예술을 지향해온 안치인이 드로잉과 페인팅 근작들을 선보였다. 이미지와 텍스트, 흑과 백, 추상적 기호와 구상적인 이미지 등이 섞여있다. 그의 평면들은 작가의 행위가 결과하는 일루전을 만들어내기보다 행위 그 자체를 증거하는 장으로서 쓰인다. 인치인의 그림은 그것이 인간 행위의 결과물임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행위로서의 그림’이다.

김영진, 나무화랑
꼼꼼한 형상표현과 그것을 군데군데 뿌옇게 만드는 식으로 김영진의 회화는 사실의 재현과 예술적 표현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 전지구화시대의 자본주의 사회의 풍경을 담아낸 그의 근작들은 현실과 비현실, 또는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 모두를 몽타주하며 그 속에서 ‘실재’를 발견한다. 김영진에게 있어 실재는 거대하면서도 미세하고, 의식세계 안에서 포착가능한 것이면서도 뿌옇게 사라지고 마는 세계에 대한 예술적 탐색이다.

2012/02/20 18:34 2012/02/20 18:34

이재갑, 정원철 : 서울아트가이드 2012년 2월호 이달의 전시

critic & column | 2012/01/17 23:11


이재갑 : 상처 위로 핀 풀꽃, 1.11-2.10, 스페이스99
‘강제징용된 조선인의 흔적을 중심으로’라는 부제를 단 이 전시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갑이 후쿠오카와 오키나와 등 일본 열도를 다니며 담아낸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태평양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군부대 진지, 탄광, 광업소, 댐, 해저탄광, 지하 터널, 비행장, 통신시설 등의 풍경들을 통해서 잊혀져가는 과거의 역사를 되살려내는 지식인 예술가의 기억 투쟁이 돋보인다.

정원철 : ‘展示’展 혹은 ‘轉市’展 : 일곱 개의 삶, 1.20-2.2, 갤러리쿤스트독
소비자본주의사회에서 상품으로서의 예술의 효용가치와 소통방식을 근본적으로 되묻는 예술프로젝트. 정원철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통인시장의 꿈보다해몽공작소에서 ‘꿈을 예술로! 오늘은 내가 쏜다!‘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7회의 릴레이 개인전을 열었다. 시장상인들과의 협업을 진행한 그는 예술행위를 예술작품이라는 물질형식의 생산에 국한하지 않고 예술적 소통을 실천하는 비물질적인 행동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2012/01/17 23:11 2012/01/17 23:11

전지구를 다루는 미시적인 예술 : 최대진 리뷰

critic & column | 2011/12/24 16:55


전지구를 다루는 미시적인 예술 : 최대진 리뷰

최대진은 여러 매체를 구사한다. 입체와 설치, 드로잉과 페인팅, 그리고 영상과 벽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매체의 다양성 속에는 의제의 일관성이 들어있다. 자본과 권력의 문제이다.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이 문제를 다루곤 한다.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것이냐, 아니면 명확한 문제의식 아래 뚜렷한 메시지를 가지고 등장하느냐 하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정치-사회적인 의제를 다루는 예술이 하나의 트렌드인냥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이것은 대단히 심난한 문제이다. 기실 예술이 자본을 의제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예술가가 전지구적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황망한 일이다. 최대진은 그 부담과 황망함을 넘어 대립과 갈등, 폭력과 분쟁의 현장을 미시적 시각의 개인적인 언어로 들춰낸다.

벽에 직접 그린 그림들에서 정형화한 붓질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물감을 질질 흘리며 두루뭉술하게 이어진 선들과 부정확한 뎃생은 강렬한 표현 효과를 얻어낸다. 그의 그림들은 매우 간략한 최소한의 형상을 띄고 있지만, 흑백의 강한 대비효과, 이미지들의 크기와 간격조절 등의 장치가 있어 그 소통효과는 매우 강렬하다. 비행기의 두 날개를 잠식한 두 개의 콘크리트 덩어리는 오브제와 좌대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의미구조를 지탱하는 지지체 역할을 한다. 철망 안에 갇힌 수많은 교회 미니어처들 또한 그 작품이 최대진의 삶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에 관한 관심보다는 최대진이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최대진의 작품들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제들을 다룬다는 점들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예술이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과연 예술이 사회와 정치를 다룬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기나 하는 것인지에 관해 의구심을 드는 시대이다. 어쩌면 최대진도 그냥 ‘원오브뎀’일지 모른다. 우리가 최대진에 주목해볼 수 있는 것은 그가 다루는 의제라기보다는 그가 어떻게 그런 의제를 다루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는 미시적인 언어로 전지구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작업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지구인들에게 보편타당한 시각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특수성이 어떤 것인가에 관심의 초점을 모을 일이다.

판문점 미니어처를 두 종류의 탱크가 지탱하고 있는 작품은 한반도의 대립과 긴장을 압축한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빡빡하게 짜여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최대진은 왜 한반도 분단을 다루는가? 부산 출신의 불문학 전공자로서 20대에 프랑스로 건너가 미술을 전공한 후 미술가가 된 최대진이 자신의 이번 생과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분단의 문제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지구’라는 거대한 구조체를 탐색한다. 그에게 전지구화, 신자유주의, 분쟁 등의 전세계적인 의제는 자신의 삶으로부터 나왔다기보다는 자신의 예술가 정체성으로부터 나왔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최대진의 작품은 최대진 자신을 구축하는 상수이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고 작품은 예술가를 재구성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아트인컬쳐 2012년 1월호 기고문

2011/12/24 16:55 2011/12/24 16:55

최대진, 옥정호 : 서울아트가이드 2012년 1월호 이달의 전시 리뷰

critic & column | 2011/12/22 10:00


최대진, 루프
최대진은 입체와 설치, 드로잉과 페인팅, 그리고 영상과 벽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매체를 구사한다. 매체의 다양성 속에는 의제의 일관성이 들어있다. 자본과 권력의 문제이다. 기실 예술이 자본을 의제화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예술가가 전지구적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일견 황망한 일이다. 최대진은 그 부담과 황망함을 넘어 대립과 갈등, 폭력과 분쟁의 현장을 미시적 시각의 개인적인 언어로 들춰낸다.

옥정호, 풀
갯벌에서의 요가 퍼포먼스 사진에 등장하는 대형마트의 카트는 자연 속 인간의 존재를 은유한다. 자연과 도시의 어색한 공존, 꾸며진 하천과 거대한 빌딩들, 태극기가 휘날리는 공원, 거대한 인공폭포를 옆에 둔 축구장 등의 풍경들을 포착한 옥정호는 우리의 삶을 직조하는 일상의 허구들을 캐낸다. 야구장과 경마장, 놀이공원과 등산 등의 풍경은 도시인의 일상 속에 들어있는 익숙함을 낯설어 보이게 한다.

2011/12/22 10:00 2011/12/22 10:00

구본주 임영선 : 비판적 휴머니즘 Critical Humanism

critic & column | 2011/12/07 15:46


구본주 임영선 : 비판적 휴머니즘 Critical Humanism

구본주와 임영선은 1980년대 후반의 역동하는 시대를 대학생의 신분으로서 같은 공간에서 보냈다. 이들은 계급과 민족의 모순을 넘어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나가고자 했던 사회의 변혁 에너지에 몸을 싣고 캠퍼스와 거리를 종횡무진 했다. 졸업 이후 이들은 입체조형과 평면회화 분야의 뛰어난 예술가로 활동했다. 한 시대의 집합적인 에너지를 예술적 실천의 차원으로 끌어들인 이들의 세계는 예술가에게 비판적 성찰의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구본주는 계급이나 노동, 자본, 일상 등의 관점에서, 임영선은 민족이나 지역, 인종, 국가, 소수자 등의 차원에서 인간의 문제를 다뤘다. 이들은 거대담론 수준의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문제를 미시적인 수준의 예술 언어로 승화했다. 삶의 예술, 현실의 예술을 지향한 두 예술가의 예술세계에는 비판적 관점의 휴머니즘이 깃들어있다.

서른 일곱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구본주는 학생신분이었던 1980년대 후반부터 2003년까지 활동했다. 형상미술과 리얼리즘 정신을 근간으로 인간의 문제를 다룬 그는 학생미술운동 이래 현장미술 활동을 포함해 전업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일관되게 현실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성을 작업의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의 샐러리맨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국사회의 팍팍한 현실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주로 학생시절이나 졸업 직후인 20대에 만든 작품들이다. 대작을 위한 에스키스 소조나 목조각, 또는 금속을 두드려 만든 작업들을 통해서 그가 탄탄한 형상화 능력과 명쾌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간의 문제를 다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임영선은 변방의 아이들을 통해서 지구의 미래를 본다. 그는 몽골이나 캄보디아, 티벳 등과 같은 주변부 지역의 마을을 방문해서 어린이들과 벽화나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가지는 한편, 한 없이 맑고 깊은 미소를 지닌 어린이들을 현지의 풍경과 오버랩해서 담아내는 회화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주변부 소수자에 주목해서 그곳 어린이들을 담아내는 임영선의 시각은 동시대 인식의 지평을 확장한다. 그것은 전지구화의 이면에서 떠오르는 지역화로서의 동아시아담론이나 중화패권주의의 급부상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거대담론의 틀에 넘어서는 예술적 실천이다. 화려한 붓질과 빛나는 색채의 임영선 회화는 직관의 힘으로 우리시대를 성찰하게 한다. 그것은 지구의 미래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拈華微笑)이다.

김준기 (큐레이터)

* <2011 HoMA 큐레이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구본주 임영선 2인전의 서문.

2011/12/07 15:46 2011/12/07 15:46

오브제로 바라본 한국현대미술, 고승욱 :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2011년 12월호

critic & column | 2011/11/22 12:59



오브제로 바라본 한국현대미술,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 11.11-12.4
김해문화의전당과 한국큐레이터협회가 공동주최한 이 전시는 김종길, 김준기, 박정구, 박천남, 정준모 등 5인의 큐레이터가 추천한 작가들을 통해 한국의 오브제미술을 조망했다. 이승택, 하종현, 신학철, 김구림 박현기 등 1세대 작가들과 윤진섭, 이재효, 정재철 최병수 등 2세대 작가들, 그리고 배영환, 이윤엽, 김상돈 등과 같은 3세대 작가들이 함께했다. 예술적 의제로서의 오브제에서 사회적 실천의 도구로서의 오브제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고승욱, 말더듬 두 번째, 평화박물관, 11.11-12.10
고승욱은 대안공간 디렉터로서, 소셜퍼포먼스의 기획자이자 연출자로서, 또는 작업실의 아티스트로서 동두천 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고승욱이 지난 2008년 이래의 연작을 정리했다. 캔들 패널의 불빛은 나체의 전면을 비추는 동시에 벽면에 인물의 그림자를 만든다. 빛과 그림자의 공존이다. 일관성을 가지고 하나의 주제를 다루되 방법론을 다양화함으로써 소통의 순도와 심도를 높인 예술프로젝트이다.

*지난 달과 중복으로 게재 안함
안세권 : 서울, 침묵의 풍경 II, 10.14-11.27
2003년의 청계천 프로젝트 이래 거대도시 서울의 도시생태를 담아온 안세권이 근작들을 정리해서 돌아보는 전시를 가졌다. 그의 도시연작에는 나약하게 부서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소수자들과 거대자본의 힘으로 포크레인 삽질을 앞세우는 현대도시의 개발논리가 담겨있다. 도시의 소멸과 생성, 개발과 재개발에 따른 소외의 풍경이다. 놀라운 것은 분노를 촉발하는 그의 작품 안네 소수자의 소멸마저도 따뜻하게 그려내는 감성의 역설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2011/11/22 12:59 2011/11/22 12:59

실재와 상징으로서의 오브제 : 배영환, 이반, 정재철, 파견미술팀

critic & column | 2011/11/13 19:40


실재와 상징으로서의 오브제 : 배영환, 이반, 정재철, 파견미술팀

예술작품은 소통을 매개하는 물질형식이다. 이 가운데서도 실재의 장소와 상황, 사건 등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오브제를 사용하는 예술작품은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서사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대목에 주목하여 이 섹션 ‘실재와 상징으로서의 오브제’에서는 현장성과 지역성을 기반으로 민주주의와 분단극복, 자율, 생태 등의 이슈를 추구해면 작가들의 오브제 작품에 주목한다. 광주 금람로 거리에서 채취한 벽돌에 민중가요 새긴 배영환의 작품은 민주화운동의 현장의 대변하는 사물의 상징성에 채집한 오브제에 노래가사를 새기는 개념적인 작업이다. 이반이 DMZ 프로젝트에서 사용했던 오브제들과 정재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현수막 오브제 작품들은 오브제 그 자체로서 감성적인 아우라를 풍긴다기보다는 실재의 공간에서 벌어졌던 예술가의 퍼포먼스와의 연계 속에서 온전하게 의미망을 형성한다. 용산참사의 비극적인 현장에서 유가족과 방문객들에게 예술적 소통을 매개했던 파견미술팀의 용산포차 오브제들은 현장의 예술행동이 남긴 결과물들이다.

1. 배영환 : 민중가요 가사를 새긴 금남로 거리 벽돌
배영환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페인팅과 오브제 작업으로 유행가 연작을 해왔으며, 이후 새로운 공공미술 작업으로 노숙자 수첩, 도서관프로젝트 등을 해왔다. 그는 1980년대라는 한국현대사의 격변의 현장을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체험한 세대로서의 감성을 작품 속에, 또는 작업 태도 속에 담아내는 예술가이다. 또한 그는 1980년대의 리얼리즘 미술운동이 남긴 예술적 감성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에 대한 각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21세기 리얼리즘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오브제는 가장 효과적으로 현장의 상황을 증거하고 대변하는 물질이자 그 사물 속에 담긴 정서를 극대화하는 소통의 매개이다. 그는 작업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창백한 물질로서의 종이나 캔버스, 물감 등을 사용하기 보다는 시간성과 장소성, 사건의 흔적 등을 가진 사물들을 작업의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문제의식을 매우 확대재생산한다.
이 작품은 배영환이 1990년대 후반에 광주의 금남로 거리에서 채취한 벽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새긴 것이다. 그는 45개의 벽돌에 한 음절씩의 노래 가사를 적어서 그것을 전시장 바닥에 펼쳤다. 평면과 입체, 영상 등으로 노래 연작을 해온 그의 연작들 가운데서 이렇듯 실재공간에서 채집한 사물을 사용한 작품들은 노래에 담긴 시적 정서를 강렬하게 자극한다. 특히 이 작품은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주요 현장이었던 광주시 금남로 거리의 보도블록이라는 점에서 물질 그 자체로서 일종의 역사적 기록으로 작용한다. 아나가 그것은 시멘트 블록을 일일이 칼로 긁어서 가사를 새긴 작업 방식이나 태도로 인해서 한국현대사의 비극이자 저항의 역사성을 간직한 1980년 5월 광주를 정서적으로 환기하는 예술적 소통으로 작동한다.

2. 이반의 DMZ 프로젝트의 오브제들
이반은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명제를 그 한 몸으로 보여주는 예술가이다. 예술가 이반은 20세기 한반도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동시대 한반도 민중의 고통이 민족모순이라는 본질과 유관한 것이라면, 그 본질의 현현을 이반이라는 한 예술가의 실존으로부터 명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나아가 그는 '본질의 현현으로서의 존재'라는 사유의 틀을 넘어 본질을 재구조화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행위자 주체로서의 실존'을 위해 투쟁해왔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반, 특히 분단의 상황을 예술언어로 표현하는 행위자로서의 예술가 이반은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의 본질로부터 이탈하려는 실존의 몸부림을 보여주었다. 분단작가로 불리는 예술가 이반은 개인사적인 삶의 고통을 딛고 분단의 어두움을 넘어 통일과 생태의 예술행동을 펼쳐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반은 실존적이며, 이반의 예술은 이 질곡의 20세기 한반도를 살아온 실존의 몸부림이다. 그는 분단체제를 살아온 인간실존을 예술적 실천에 투영한 행동주의예술가이다.
문자/상징언어의 정치학은 시회적 의제를 감성적인 차원에서 매우 선정적으로 다루곤 한다. 이반은 사회적 의제들을 감성적 수사학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매우 체계적으로 일관되게 다루었다. 예술적 격정을 가지되 그것을 일관된 기조의 기획 속에서 연작으로 풀어냈다. <한라백두수토통합통혼제>(1990년)에서 그는 제례의식의 형식을 빌어서 남북의 상징인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과 물을 섞었다. 이것은 예술의 장 내에서 벌어진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오갔고, 비무장지대를 주제로 한 작업전을 한해씩 걸러 네 차례에 걸쳐 열었고 그 결과들을 묶어서 <<비무장지대의 과거·현재·미래>>를 편찬했다.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백두산과 한라산에서의 퍼포먼스에 쓰였던 오브제와 비무장지대의 호박을 캐스팅한 브론즈, 현장의 흔적을 담은 캔버스와 포스터 등 비무장지대예술운동을 전개하면서 현장에서 쓰였던 오브제들이다.

3. 정재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현수막 작품들
정재철의 플래카드아트(placard art)는 버려진 사물의 무용성을 전시품으로써의 유용성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정크아트로 불리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무진하는 소셜 퍼포먼스로 이어짐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예술적 소통을 매개한다. 그는 현수막이라는 오브제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작품들을 가지고 무용지물을 유용지물로 전환하는 일종의 개념미술을 수행했다. 그는 전세계 각국의 각각 다른 문화적 풍습과 상황, 장면, 사건들을 두루 꿰어내는 여행 과정에서 현수막으로 만든 작품들을 제시하거나 제공하고 그것을 실재 공간에서 쓰일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작가에게도 새로운 체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현지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도 새로운 체험이거나 유용성의 발견이었다.
정재철은 그 쓰임새를 다한 현수막들을 모아서 만든 재킷 등 의류 석 점을 출품한다. 의류 고유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현수막이라는 소재로 제작되었으므로 실재 사용할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유용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오브제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옷이기도 하고 옷이 아니기도 하다. 옷의 외형과 플래카드의 사물성을 동시에 갖춘 이 작품을 통해서 정재철은 ‘이것은 옷입니다’와 ‘이것은 옷이 아닙니다’라고 문장을 함께 제시하는 셈이다. 이 작품은 옷의 일루전과 플래카드의 오브제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정재철은 이 작품들을 통해서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하면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의 소통을 매개한 플래카드가 실재의 사물이자 동시에 일종의 일루전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4. 파견미술팀의 용산포차
파견미술팀은 용산현장 뿐만 아니라 한국의 첨예한 의제 현장을 찾아 예술행동을 펼쳐왔다. 파견미술이라는 이름은 부평 대우자동차의 비정규직 시위 현장에 참가해서 현장예술활동을 할 때, ‘비정규직들인 자신들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파견노동자들이다’라는 얘기를 듣고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파견미술가들로 정한 데서 유래했다. 나규환, 문정현, 송경동, 신유아, 윤성현, 이윤엽, 이윤정, 전미영, 전진경, 한상덕 등이 그 멤버들이다. 이들은 미술가들을 비롯해서 종교인, 시인, 한의사 등의 여러 직업군이 섞여있다. 현장미술활동을 위해서 미술가들과 함께 논의하고 실천하는 협업과 연대의 대상이 그룹활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만 하다. 이들은 용산참사 현장 뿐만 아니라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부평 대우자동차, 콜트콜텍, 사대강사업현장, 유성기업, 강정마을, 평택 쌍용자동차 등의 현장에 그들 스스로를 파견했다.
걸개그림, 현장설치미술, 판화, 각종 디자인 작업 등을 통해서 파견미술팀은 ‘현장에서 현장을 현장답게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가령 그곳이 농성현장이라면 파견미술가들은 그곳을 가장 농성현장답게 만드는 일했다. 이것은 역설적인 의미의 장식미술이다. 물론 이들이 장식미술의 단계에 머문 것은 아니다. 이들은 현장의 주민, 공동체 구성원들과 협업하고 연대함으로써 커뮤니티아트, 행동주의예술을 실천했다.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현장이 요규하는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그들은 예술이 실천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왔다. 이른바 ‘예술의 쓰임새’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일이 파견미술팀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 이들은 작업의 목표를 현장에서 잘 쓰이는 일로 설정했다. 이들의 예술행동으로 인해 현장의 투쟁이 물리적 대치에서 상징투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기륭전자의 포크레인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위력적인 상징투쟁의 오브제로 존재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파견미술팀의 출품작 <용산포차>는 2009년에 용산참사 현장에서 고인들이 실재 사용했던 포장마차의 실내의 물건들을 예술가들이 일종의 재활용미술품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용산참사 이후 그 포장마차는 유족들의 쉼터이자 방문자들에게는 전시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은 그 곳의 사물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다. 냉장고에 그림을 그린다거나 매뉴에 유족의 얼굴을 그려넣고, 포장마차에 판화를 붙여놓기도 했다. 시위현장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들, 일인시위할 때 섰던 표현물들을 포함해서 주변의 버려진 물건들로 만든 오브제 조각들과 창틀이나 밥그릇에 그림을 그려넣은 것도 있고, 그림을 그린 밥솥도 있다. 파견미술팀이 출품한 오브제들은 용산참사 현장의 사물 그 자체들이다. 예술가들은 그 사물들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조형작업들을 했는데, 그것은 사물 그 자체로서 서사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그리기와 만들기 작업으로 이중의 의미작업을 생성한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오브제로 바라본 한국현대미술, 김해문화의 전당 윤슬미술관, 섹션 서문

2011/11/13 19:40 2011/11/13 19:40

 이전  1234567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