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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회화사진술과 정신성의 공진화共進化

critic & column | 2016/01/07 23:38


임채욱, 회화사진술과 정신성의 공진화共進化● 한국 사람들은 정신성의 뿌리를 산에 두고 산에 기대어 삶을 꾸리면서 문명을 일구어왔다. 임채욱은 산에서 예술을 길어 올렸다. 그의 산 작업은 그러한 한국인의 자연 인식에 담긴 역사성과 정신성을 집약하고 있다. 험산준령을 오르내리며 그는 대자연의 거대한 품에 안겨 있는 인간존재의 의미를 돌이켜보았다. 근경과 원경의 아득한 실루엣을 포착해 한국산 고유의 중첩 이미지를 담아내면서 그 속에 담긴 유장한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끌어낸다. 그것은 자연이 발산하는 거대한 힘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나아가 그의 예술은 그 자연에 기대어 살아온 인류문명의 가치에 대한 존중의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고전 속에 담긴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동시대의 문화현상과 생태의제를 아우르며 산악예술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임채욱의 예술은 사진이라는 장르예술의 경계를 넘어 대중문화와 고급예술의 경계를 넘어서며, 고전과 동시대의 만남, 회화술과 사진술의 융합, 평면과 입체의 공존, 감성학과 생태의제의 결합 등 다양한 주제를 두루 관통한다.● 임채욱의 산 작업은 산악과 사진이라는 두 가지 문화적 차원이 절묘하게 결합한 데서 출발한다. 오늘날 산악문화는 대중적인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인공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얻으려는 현대인의 마음은 산이라는 자연의 품으로 향한다. 산에 안겨 마음의 쉼을 얻고, 삶의 뜻을 깨치며, 하늘과 땅의 이치를 다시 생각하곤 한다. 이렇듯 대중적인 문화현상 가운데 하나인 산악문화는 사진문화와 짝패를 이룬다. 카메라라는 기계의 발명과 인류문명에서 시각성이 차지하는 위치를 한 단계 다른 차원으로 견인했다. 게다가 디지털 카메라의 발전은 동시대 사진예술의 대중화를 초래했다. 이제 카메라 조작술은 고전적인 기술에 속할 뿐만 아니라 포토샵을 비롯한 디지털 정보처리 기술은 전문가들의 것이 아닌 약간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취미활동으로 확산됐다. 사진술과 디지털문명의 대중화는 역설적으로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간극을 넓혀놓았다. 근대적인 예술의 신화는 탈근대적인 시각문화의 편재화로 전환하고 있다. 따라서 설악산을 다루는 임채욱의 작업은 대중적인 문화코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렇듯 대중성 코드를 기반으로 하는 임채욱 사진은 그것을 넘어서는 예술의지를 지니고 있다. 물론 임채욱의 출발은 설악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는 다큐멘터리 기반의 리포트다. 하지만 그 너머에 존재하는 감성학적인 문제는 그의 사진을 예술적 소통의 수준으로 전환하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전통 예술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재생산하는 문제와 관련이 깊다. 그의 예술은 대자연이 품고 있는 정신성의 면면을 성찰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고전 속에 꽃피었던 진경정신을 어떻게 동시대 감성으로 재해석하고 그것을 예술적 소통으로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그의 목표는 산수풍경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동시대 감성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 그것은 재현에서 표현으로 확장하려는 예술의지다. 화론에서 사형(寫形)과 더불어 사의(寫意)를 강조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임채욱은 산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의 정신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것은 사물의 형식과 내용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통합의 관점에서 다루려는 세계관에서 나온다.● 임채욱 예술의 시작은 ‘Mind Spectrum’ 연작이다. 풍경사진의 사실성에 더해진 디지털 감성으로 인해 이 연작은 재현으로서의 사진을 넘어서는 표현으로서의 사진으로 임채욱 스타일을 만든 원형이다. 특히 <월천리 솔섬> 연작은 그에게 예술가로서의 길을 넓혀주었다. 그것은 대중의 감성을 현대미술의 언어로 끌어들이는 특유의 사진술에서 나왔다. 사진에 특정한 색채를 가미하여 대상의 리얼리티를 넘어서는 판타지를 연출한 이 작품들은 빨주노초파남보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풍경사진의 감성코드를 극대화했다. 무색의 여백을 색으로 채운 그의 사진은 풍경의 드라마를 더욱 극적인 감각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의 색채 사진은 텅 빈 것의 무한성에 색의 판타지를 입힌 것으로, 이른바 여백의 미를 동시대 감성으로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이 연작은 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사실 색면을 채우는 부분은 애초에 여백의 공간이었다는 점을 되새겨보건대, 그것은 비움의 가치에 대한 재해석에서 나온 역발상의 결과였다.● 사진과 한지의 만남은 임채욱의 사진을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게 했다. 한지의 가치에 주목한 그는 특별 제작한 프린트용 한지를 이용해 사진과 수묵화의 가치를 절묘하게 결합한다. 그는 수묵화의 미덕인 먹의 필선과 농담, 그리고 여백의 멋과 한지의 매력을 사진예술로 전유한다. 울산바위를 품은 산자락의 웅장하면서도 유려한 곡선이 힘찬 필선으로 나타난다. 운해가 덮은 바위산의 장엄함은 대자연의 숭고미를 발산한다. 운해 속의 바위 봉우리들은 시각적 판타지를 제공한다. 눈과 바위, 그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들로 이뤄진 겨울산을 바짝 당겨 한 컷의 추상적인 선과 면의 조화를 재구성한다. 눈 쌓인 산악의 바위와 나무들이 빚어내는 흑백의 화면은 자연이 그려낸 선과 면의 조화가 경이로운 추상화면을 연출한다. 흑백으로 처리한 바위산의 곡선과 명암은 먹의 깊은 색을 보는 듯 깊이를 더한다. 검은색 바위산과 눈이나 운해의 흰색 모두 한지 특유의 질감과 색감으로 인해 깊은 매력을 발산한다. 먹의 색이 천변만화하는 것처럼 임채욱의 사진 속에서도 두터운 색의 층위를 발견할 수 있다. 흑백의 대비와 여백의 미는 그의 사진을 그림 같은 풍경으로 읽히게 한다.● 설악산을 주제로 거대한 예술 다큐멘터리를 쓴 그는 대자연의 장관을 펼쳐 보이며 다양한 시각언어를 구사한다. 대관산수의 한 장면을 포착해 한 폭의 먹그림을 그려내고 화려한 채색화를 선보이기도 한다. 또한 프린트된 사진을 이용한 부조와 입체 작업으로 사진술의 지평을 넓히며 영상과 설치, 퍼포먼스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아트스펙트럼을 펼친다. 그의 카메라는 설악 깊숙이 들어가 그 속에 담긴 시각성의 맛과 멋을 살뜰하게 캐낸다. 바위와 폭포, 벼랑과 비탈 등 눈부신 산수풍경을 흑백과 컬러로 풀어낸다. 또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보는 듯한 장관이 한눈에 펼쳐지는 내설악의 아름답고 웅장한 서사를 바로 눈앞으로 가져온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역사적인 장소성을 자신의 눈으로 재발견하며, 천년의 역사 속에 담긴 종교적 가치를 만나기도 한다. 나아가 임채욱이 투척하는 설악산 서사는 생태주의 관점을 공유하려는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산에 들어가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그의 시작이었다. 부지런히 설악산을 오르내리면서 실물의 설악산을 익히는 동시에 그는 글과 그림으로 설악산을 공부했다. 그것은 고전을 찾아나서는인문학적 아카이브다. 단서는 김창흡의 글과 김하종의 그림이다. 조선시대의 문인 김창흡의 설악산 기행문을 찾아 읽고 김하종의 그림을 재발견하는 과정에서 그는 설악산의 역사성과 만났다. 또한 봉정암 부처바위와 사리탑을 만나 역사 속에 담긴 정신성의 뿌리를 발견했다. 고전에 담긴 내설악의 풍경에 대한 임채욱의 마음은 매우 각별하다. 그가 따라 걸은 길은 만해 한용운의 백담사에서 출발해 <설악일기>와 <유봉정기>, <동유소기>를 쓴 삼연 김창흡의 길이다. 또한 매월당 김시습의 오세암과 자장율사의 봉정암 등 역사 속에 길이 남은 예인들의 자취가 깃든 곳이다. 사진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로서는 다소간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는 고전으로부터 자신의 예술적 실천의 근거를 길어 올리려는 연구자의 자세로 출발했다. 또한 자신의 작업에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고전과 더불어 현대 산악문화의 흔적을 수집하고 정리한 아카이브 또한 각별하게 그의 뜻을 담은 작업들이다.● 이렇듯 자기 예술의 근거를 찾아 조사 연구를 실행한 임채욱의 예술은 전근대적인 감성을 호명하여 동시대의 고급예술과 대중문화 사이의 간극을 좁혀준다는 점에서 뜻깊다. 이 점은 한국의 근대가 남긴 식민주의 콤플렉스를 넘어설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는 먹의 맛과 색의 힘, 그리고 종이와 여백의 멋을 아는 예술가다. 이러한 맥락은 임채욱의 사진을 차별화하는 요소다. 사진술이 공예적인 제작술의 일환으로 확장돼 미적 가치 실현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는 마당에 전통 회화술을 익힌 예술가가 사진술을 자신의 주된 매체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은 20세기 한국 문명사의 질곡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씨앗이다. 이러한 태도는 원소스 멀티유즈 방식의 확장성에서 나온다. 그는 프린트된 사진뿐 아니라 영상 작업으로 움직이는 이미지의 매력을 끌어들이며, 그것을 음악과 함께 엮어 색다른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나아가 사운드를 끌어들여 시각과 청각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임채욱의 예술의 진면목은 그의 독특한 회화사진술에 있다. 그는 구겨진 사진을 통해 사각 프레임 속의 프린트된 이미지라는 사진에 대한 통념을 훌쩍 넘어 회화적 표현으로까지 확장하는 회화술과 사진술의 융합 실험을 하고 있다. 임채욱은 사진의 상투성을 시각예술의 감성체계로 재해석하면서 회화술과 사진술의 공진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복고주의와 상투성에 머무르기 십상인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화두에 모종의 각성을 제시하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문명적 융합이라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임채욱의 스타일을 변별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사진을 프린트하던 그는 오류로 인해 구겨 버린 사진에서 독특한 시각효과를 찾아냈다. 한지에 프린트된 채 구겨진 사진이 사물의 입체감을 더해준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사진을 구겨 이차원 평면 위에서 일종의 환영으로 존재하는 입체감을 삼차원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바위 사진을 구겨 더욱 실감나는 입체감 표현을 얻은 것이다. 이후 그는 사진을 구겨 만든 부조나 입체 설치작업으로까지 확장했다. 나아가 그 입체들을 관객 참여 퍼포먼스로 연결함으로써 매체 통합적인 방법론을 넓혀가고 있다.● 구겨진 사진은 한지 특유의 유연성을 발휘하며 작가의 행위에 우연성의 의미를 더해준다. 그것은 풍경사진과 현대미술의 접점에서 그 너머로의 진화를 시도해온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구겨진 사진은 우연에서 출발한 필연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수묵산수화가 다시점을 엮어 한 화면에 담아내듯이 구겨진 사진에도 삼원법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통 회화의 관점을 재해석한 것으로, 한 장의 사진으로 다시점의 화면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사진에 나타난 사물들을 구겨진 사진의 굴곡에 따라 근경과 중경과 원경 등의 분절체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자연의 빛이 제시한 명암과 색채 인식에 더해 구겨진 사진을 비추는 인공의 조명은 제2의 빛으로 작용해 프린트된 이미지의 형상에 새로운 입체성을 부과한다. 구김의 미학은 평면의 사진을 구기는 연출 과정에서 출발하지만 한 장의 종이를 구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연적인 요소들의 반복으로 뜻밖의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사진술에서 출발해 그것을 회화적으로 재생산하고 입체와 설치, 퍼포먼스 개념으로 진화시키는 예술적 실험의 길이다.● 전통 회화가 산수풍경을 그림의 소재와 주제로 채택한 것은 동아시아 문명의 독특한 역사 과정에서 나온 정신성의 산물이다. 산수화를 통해 자연의 깊이를 새기고 자연 속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따라서 산수화는 동아시아 문명권을 대표하는 성찰의 예술이다. 임채욱은 그러한 산수화의 뜻을 새겨 동시대적인 감성으로 산을 담아낸다. 그것은 자연에서 우주의 근본원리를 찾으려는 고민과도 만난다. 산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처소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풍수사상의 두 가지 기본 요소인 바람과 물 또한 산과 그 흐름을 같이하는 요소다. 산으로부터 뜻과 멋을 구하려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수많은 고전 속에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남겨두었다. 그들은 글과 그림으로 산의 뜻을 새기고자 했다. 한국의 자연을 담은 고전 진경산수가 그려내려 했던 것도 자연을 재현하려는 고민을 넘어 자연의 뜻을 새기려 했던 바, 오늘날 예술가들이 다루고 있는 대자연의 모습에도 그러한 자연의 뜻이 잘 담겨 있다. 특히 임채욱의 예술은 고전과 현대의 감성적 교차점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설악산은 고유의 생태적 가치와 더불어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명산이지만, 오늘날의 설악산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자본의 탐욕에 노출된 비즈니스 모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정치와 경제의 담합에 따른 설악산 계발 계획에 따르면 설악산 케이블카는 단건의 이벤트가 아니라 산악자전거, 산악승마, ATV 체험, 산정호텔과 레스토랑 등 온갖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전초전일 가능성이 크다. 천혜의 요지에 자리 잡은 종교적 정신성의 장소, 봉정앞 사리탑 저 너머로 케이블카기지가 들어서고, 이어서 능선과 계곡마다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것은 생태적 가치를 소중하게 길러내고 생명평화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시대정신과 역행하는 일이다. 다수의 선의에 비해 소수의 악의는 치밀하고 집요하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합세한 개발프로젝트들은 소수의 이윤창출을 위하여 자연유산을 유린하는 비윤리적인 행위다. 임채욱은 이렇듯 거대하게 작동하고 있는 힘 앞에서 고군분투하며 설악산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임채욱의 서사는 설악산의 가치를 생태의제로 확장하게 해준다. 자연의 품 안에서 삶과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깨치며 살아가는 그는 설악산을 다룬 고전 문학과 회화를 찾아냈고 전통 회화를 전공한 자신의 감성을 담아 회화사진술을 펼쳤다. 고전과 동시대성의 결합에서 그가 추구한 것은 독창적인 스타일만이 아니다. 그는 설악산의 역사성과 정신성을 공유하는 예술공론장을 펼친다. 임채욱은 부조로 만든 봉정암 부처바위 앞에 종이로 만든 돌멩이들을 쌓아두고 관객이 참여해 돌탑을 쌓게 하는 관객 참여형 설치미술로 연결한다. 종이돌탑을 쌓는 관객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설악산의 정신적 가치를 다시 생각할 것이다. 유신론자들에게 그것은 신앙의 대상으로 만나는 인격신을 향한 기도일 것이며, 무신론자들에게 그것은 우주적 가치를 향한 정신성의 깨우침일 것이다. 임채욱은 이토록 간절히 구하는 마음을 모으는 일에 자신의 예술이 일말의 쓰임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설악산의 대서사를 펼치고 있다. ■ 미술평론가 김준기 *<임채욱-설악산>(다빈치, 2016) 수록 비평문
2016/01/07 23:38 2016/01/07 23:38

한국큐레이터열전 : 최태만 - 학문, 비평 그리고 전시

critic & column | 2014/10/2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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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큐레이터열전 : 최태만
학문, 비평 그리고 전시

격년제국제미술행사 <창원조각비엔날레 2014>의 예술감독 최태만은 전시주제를 달그림자(月影)로 잡았다. 최치원의 월영대와 마산공단 여성노동자들의 달그림자, 그리고 오늘날 통합창원시의 앞바다를 비추는 야경 모두를 두루 꿰는 화두다. 그것은 도시의 역사성을 동시대 삶의 공간에 투영하는 일이다. 또한 그는 조각프로젝트의 범주를 퍼포먼스와 공동체예술로 확장했다. 문신미술관, 돝섬, 마산항 중앙부두 등에 설치한 조각 작품 이외에도 부림시장·창동 등 마산 원도심 곳곳에서 지역사회와 동행하는 예술을 내세웠다. 통합창원시의 에너지를 공공미술과 공동체예술의 흐름에 접목한 것이다. 그는 동시대 첨단의 의제를 모아 밀물처럼 밀고 들어 왔다가 썰물처럼 쓸려나가는 이른바 비엔날레급 전시의 허영을 걷어치우고 삶 속으로 파고드는 예술을 지향했다.

광주와 부산, 대구, 서울, 대전 등 한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열리는 격년제국제미술행사들 가운데 이렇듯 전시장 바깥 삶의 공간을 주요장소로 선택하는 미술행사는 없다. 조각프로젝트라고 해서 특정 주제의 조각들을 모아서 일회성 전시에 출품하거나 단선적인 장소특정성에 머무는 조각들의 나열을 피하기 위해 그는 도시의 서사를 끌어들였다. ‘달그림자처럼 삶 속에 스며드는 예술과 같은 대표문구는 시각예술에 대한 오랜 동안의 공부와 글쓰기, 현장기획력이 뭉뚱그려진 결과이다. 대학 교수이면서 동시에 뮤지움과 비엔날레의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면서 그가 길러온 힘은 학문과 비평의 두 영역을 동시대 미술현장과 연결하는 큐레이터정신이다.

문학소년으로 자란 그는 대학시절 미술평론가로 데뷔했다. 필명 최정해. 현장에서 민중미술운동을 경험한 그는 군복무 중에도 현장의 미술인들과 교류하며 형상회화에 대한 비평적 경향성을 다졌다. 이후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던 그는 모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하면서 조각 관련 글쓰기와 공부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면서 <휘트니비엔날레서울>, <민중미술15년전> 등의 전시를 추진하면서 1990년대 전반기의 한국미술계가 생성해낸 변화의 중심에서 큐레이터십을 발휘했다. 미술관에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그는 꾸준히 미술현장의 전시기획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인권, 민주, 평화 등 동시대 인류의 보편가치를 향한 예술적 실천의 가치를 학문과 비평, 그리고 전시 세 영역에서 고루 펼쳐왔다.

최태만과 같은 50대 초반의 2세대 큐레이터들 가운데 1980년대 초반 이후의 미술계 현장을 목격하며 성장해온 큐레이터도 드물다. 그는 현실과 발언 등과 같은 소그룹운동의 태동과 전개과정을 목격했으며, 형상회화를 주도했던 부산미술계의 생생한 현장과 동행하며 성장했다. 뮤지움과 비엔날레를 두루 섭렵하며 큐레이터로 활동해온 그의 이력 뒤엔 미술평론과 미술사학이라는 학문적 토대 이전에 풍부한 현장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동서문화교류사에 관한 연구와 특히 동아시아의 근대성과 동시대성에 관한 인류학적인 접근으로 역사와 동시대에 대한 문명사적인 시각과 실천을 강조한다. 특히 그가 주안점을 두는 큐레이터정신은 역사적 관점을 동시대의 예술적 소통과 매개하는 현장의 실천이다.

최태만(1962-)은 서울대 회화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미술학 석사 및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전쟁과 미술-선전·경험·기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란미술관 기획실장(1990-1992),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1993-1997), 서울산업대 조교수(1997-2003)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교수(2003-현재)로 재직하고 있다. <로댕, 위대한 손>(예술의 전당, 2002), <2004부산비엔날레>(2004), <어제안에오늘: 잊혀진전쟁, 새로운기억>(2008), <인권, 사람이 하늘입니다>(2009),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2009, 2010) 등을 큐레이터 및 예술감독으로서 추진했으며, <2014 창원조각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현대조각사 연구>(아트북스, 2007)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1회 조각평론상(1992), 한국미술저작상(김세중기념사업회, 2007) 등의 수상경력이 있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서울아트가이드 2014년 11월호 기고문

2014/10/21 17:37 2014/10/21 17:37

한국큐레이터열전 9 : 이인범, 좋은 뮤지엄 제도를 향한 공화주의자의 꿈

critic & column | 2014/01/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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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큐레이터열전 9 : 이인범
좋은 뮤지엄 제도를 향한 공화주의자의 꿈

큐레이터 이인범(1955-)을 실천적 지식인으로 만든 힘은 ‘좋은 뮤지엄 제도를 향한 공화주의자의 꿈’에서 나온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뮤지엄 제도의 변화와 발전 과정과 동행하며 자신의 성취와 좌절을 그 속에 묻어 두었다. 그 시작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군 정훈장교로 일하던 시절 멸공관 사업을 전환해 10전투비행단기념관 설립을 추진했다. 이후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준비팀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큐레이터의 삶을 살았다. 그가 참여한 ‘독일꼴라쥬’, ‘바우하우스’, ‘백남준’, ‘젊은 모색 92’ 등의 전시기획에서 현역 큐레이터 이인범의 체취가 묻어난다. 초기 활동은 전시진행이었지만 이후 그의 관심사는 컬렉션 매니지먼트와 한국근현대미술자료 아카이브로 이어졌다.

1993년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와 본격적으로 뮤지올로지 연구자의 길을 걸으며 정책의제를 발굴하는 한편,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물 조기이전 및 해체반대운동에 나서면서 문화영역의 국가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했고, 일본국제교류기금 초청을 받아 오키나와예술대학 비교예술학연구소, 도쿄 일본민예관, 동경예대 미학연구실 등에서 연구했다. 삼성현대미술관건립 기초계획수립(1995), 광주국제비엔날레 개혁TF팀(1998) 등에도 참여했다. 1998년부터 한예종 한국예술연구소에서 일하며 발간한 『미술관제도연구』(1998)는 그의 뮤지엄 관련 실천적 활동과 연구 성과의 중간 기착지 성격을 지닌다. 그 이후 2007년까지 한국예술아카이브 설립에 가담하여 운영을 맡았고,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2002-2007)이라는 성과를 일궈내며 국립예술자료원 설립에 모멘텀을 제공했다.

그는 늘 뮤지엄 제도 관련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하는 실천가의 면모를 보였다. 1999년엔 이른바 박미법 6조 박물관미술관학예사 제도 채택을 위한 문관부의 학예사제도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그 제도화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뮤지엄 종사자 관련법의 왜곡에 문제의식을 갖고 그는 2000년 한국큐레이터포럼(회장 나선화, 현 문화재청장, 당시 이대박물관 학예실장) 창립을 주도하여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수 년 간 뮤지엄 프로페셔널로서 큐레이터들의 자기정체성 확립운동에 주력했다. 2004년에는 문화기관책임운영기관화 TF팀에 참여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화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개혁 TF팀에 참여하여 박물관 운영 식민잔재, 유신잔재 청산, 국립서울박물관으로 명칭변경 등을 제안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 그는 주목할 만한 뮤지엄프로젝트와 국제미술행사를 조직하고 기획했다. 2002년 유영국문화재단 설립에 참여하며 관련 전시들을 기획하고, 『유영국 저널』편집인으로 활동했고, 2004년 치우금속공예관 설립에 참여한 후 초대관장으로 2009년까지 활동하며 현대공예와 예술의 재편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들을 기획했다.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상명대 조형예술학과에 재직하며 ‘신사실파 창립 60주년 기념전’(2007)을 기획했으며, 2009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을 맡아서 ‘만남을 찾아서’라는 주제 아래, ‘인공의 지평’, ‘오브제, 그 이후’, ‘생활세계 속으로’ 등의 전시를 조직했다. 이후 ‘2011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으나 중도 사퇴하고, 그 대신 ‘세라믹스코뮌’ (아트선재센터, 2012)을 개인 기획으로 개최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의 선택은 늘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이상 실현을 유보하는 쪽이었다.

큐레이터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그는 뮤지엄 관련 기고와 강연, 논문발표, 교육프로그램 설립 운영 등을 지속하며 그 언저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의 활동은 뮤지엄 관련 연구자나 종사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지식생산과 현장활동을 병행하며 뮤지엄 제도의 지형 변경을 도모하는 뮤지엄 운동 차원으로 확장해갔다. 이에 관한 그의 확고한 태도에는 근대 ‘예술개념의 수용과 성립사의 일천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대안적 문제의식이 드리워져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난관을 대처한 그의 선택들에는 지식인의 양심과 자신의 사적 이익을 내려놓는 선비정신이 배어있다. 뮤지엄이라는 공화주의 이상을 향한 그의 도전과 실험은 지난 30년 세월의 성취와 좌절을 넘어 지속가능성을 향해 열려있다. 인류사적인 유산을 갈무리해서 공공영역의 자산으로 등재하고 그것을 만인과 함께 나누는 뮤지엄의 이상에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서울아트가이드 2014년 2월호 기고문

2014/01/21 21:57 2014/01/21 21:57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이원호개인전, 해인아트프로젝트2013-마음

critic & column | 2013/10/16 18:43


이원호 : 층 Story, 10.12-10.24, 쿤스트독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선물의 경제학으로 존재하는 나눔의 윤리와 그 속에 담긴 권력과 욕망의 함의를 들춰낸 프로젝트. 이원호는 공공장소에서 적선행위를 하는 사람들과 흥정을 벌여 그들이 하룻동안 번 돈과 그것을 담은 플라스틱통이나 종이상자, 모자 등을 구입했다. 구걸과 적선에 담긴 우연과 필연의 법칙을 전시장에 펼친 그의 예술은 소셜퍼포먼스이며 오브제아트이자 개념미술이다.

해인아트프로젝트 2013 : 마음, 9.27-11.10, 해인사 일원
천년고찰 해인사에서 열린 종교와 예술의 융합. 면벽수행과 기복신앙을 넘어 영성의 장으로 이행하고 있는 동시대 종교의 진화를 보여준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듯 마음은 수상행식(受想行識-감정, 지각, 의지, 의식)의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있다. 설치, 영상, 퍼포먼스, 회화 등 다양한 장르의 국내외 30인(팀) 예술가들이 사찰경내와 성보박물관, 소리길 일원에서 ‘만인불타 만사예술’의 정신으로 마음을 다뤘다.

* 서울아트가이드 2013년 11월호, 이달의 전시 리뷰

2013/10/16 18:43 2013/10/16 18:43

도시특정적 가치와 공공미술

critic & column | 2013/09/24 22:00


도시특정적 가치와 공공미술

김준기(미술평론가)

공공미술은 특정적이다. 공공미술이 특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장소의 특정성과 필연적으로 만날 뿐만 아니라 그 작품의 제작을 지원하거나 주문하는 재원의 특정성과 만나고, 공공적인 의제라는 특정성과 만나기 때문이다. 재원의 공공성이야 기본 전제조건이라 치더라도 장소성과 의제의 문제는 좀 곤란한 형국에 놓이기 십상이다. 대체로 장소성의 범위를 작품 주변의 물리적 환경으로 국한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 작품이 어떤 의제를 다루며 소통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고민이 적기 때문이다. 전시장과 같은 전문화한 미술문화 공간에서의 작품 설치는 작품을 둘러싼 주변 공간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작가의 선택 폭이 넓다. 그러나 그 바깥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미술작품을 위해서 주변 공간을 뒤바꾸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이 주변 환경에 맞춰서 자신의 모양과 크기, 빛깔 등을 결정해하는데, 공공미술의 이러한 낮은 처신은 ‘장소 특정성(site specific)’이라는 개념이 바닥에 깔린 개념이다.

특정 공간의 장소성은 작품 주변의 물리적인 여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작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면면에 대한 섬세하고 신중한 헤아림도 매우 중요하다. 사용자들이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인지, 그들은 작품을 어떤 각도에서 감상하며 그 동선은 어떻게 흐르는지, 그들의 몸이 작품과 만나는 방식을 어떤 것인지 등에 관해서도 배려와 성찰이 있어야 한다. 건축물미술장식품들의 경우는 장소 특정성을 고려하기에 매우 난처한 처지에 놓인다. 건축설계 도면을 들고 작품의 위치를 선정하면서 동시에 작품의 주제와 형태, 크기, 재료 등을 정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길 깔기와 나무 심기 등의 조경 작업들도 작품과는 무관하게 일방통행하기 일쑤다. 작가가 자기 작품의 소통 가능성을 높이려고 해도 준공검사 맞추기에 급급한 현재의 제도로는 건축물과 그 주변을 이어주는 좋은 공공미술 작품이 탄생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는 건축주의 마음이 예술적 소통을 통해서 건축물과 그 주변의 장소성과 동행하는 차원의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데 있느냐 하는 점이 커다란 변수인데, 불행히도 그런 경우는 드문 게 사실이다. 작품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주의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와 같이 예술가와 시민 사이에 입장의 차이가 발생했을 때, 어느 것이 공공의 이해에 부합하느냐 하는 공공미술의 잣대가 앞설 수밖에 없다. 예술가의 자율성은 시민사회의 공공성과 대결 국면을 맞아서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20세기뿐만 아니라 역사 속의 진리이다. 어쩌면 예술의 자율성을 운운했던 20세기가 누렸던 예술가의 지위는 역사상 가장 특별했던 시기로 꼽힐지도 모르겠다. 모더니스트들이 얘기했던 자율적 영역으로서의 이념이 이미 상당부분 자본권력에 의해 잠심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모더니즘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의 차원을 가지고 있는 공공미술의 영역에서는 어떻겠는가.

공공성의 견지에서 예술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장소성의 문제는 대체로 무심하게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역으로 장소성을 절묘하게 살림으로써 날개를 다는 경우도 많다. 옛 동베를린 지역에 있는 몇몇 공공미술 작품들의 경우에 장소 특정적 예술의 사례로 언급할 만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훔볼트 대학 앞에서 유태인 학자들의 책을 불태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만든 공공미술 작품은 낮은 공공미술의 대표적인 표본이다. 유태인인 미하 울만(Micha Ullman)은 야만적인 문명학살을 지하 서고로 표현했다. 광장 한 가운데 지하를 파고 그 속에 하얀 빈 책꽂이를 설치한 것이다. 밤이면 그 속에서 나오는 빛으로 마치 지난날 책을 불사를 때와 유사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청계천 시발점에 세워진 올덴버그의 <스프링>은 장소 특정성을 철저하게 배반했다. 생태하천을 표방한 도심 속 하천 공원의 시점부에 세워지는 것이기에 많은 서울의 중요한 랜드마크 기능을 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장소의 특정성과 무관하게 국외유명작가의 명품주의로 흘러버린 이 작품은 두고두고 실패사례로 언급될 것이다.

현대미술은 특정 공간으로부터의 해방으로부터 출발했다. 현대미술 이전의 미술이 특정 공간에 묶인 것이었다. 모더니즘 이전 시대의 미술작품은 그 처소가 어디인가에 따라서 근본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역사적인 명작들은 최초에는 특정한 장소에서 나름의 쓰임새를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대다수의 조각들은 건축물의 일부였다. 회화작품들도 제작단계부터 어느 공간에 배치될 작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품의 주제와 형태와 색채, 재료, 크기 등을 결정한다. 미술이 독립적인 영역과 체계를 갖추면서 그 이전에 미술의 전제 조건이었던 장소의 맥락은 대부분 그 의미를 상실했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본격화한 모더니즘 예술은 회화 그 자체, 조각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변모했다. 장소로부터의 해방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념 아래서 매우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장소 개념과 상관없이 미술작품을 향유하면서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미적 가치 운운하는 것도 이러한 특정 공간으로부터의 해방 덕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작품이 공간이나 장소의 개념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미술작품을 하나의 예술적인 물질로 이해하는 한 우리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물질로서 예술작품을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미술작품의 소통을 매개공간은 전시장이라는 공간이다. 전시장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으로 약속된 공간이다. 미술관이 하나의 제도 공간으로 자리를 잡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비평하는 체계적인 제도를 만들어 온 것이다. 미술작품이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전시장 공간에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역사적인 진보이다. 전문적이고 전문적인 미술작품의 수집과 보존, 연구와 전시,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는 미술관이라는 제도가 있음으로 인해서 미술계는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바깥에서 벌어지는 예술적 소통이 전시장 공간과 동일한 시각의 일방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데 있다.

서울 도심의 공공장소에 있는 미술작품들은 어떤 방식으로 장소와 만나는가? 광화문 앞에는 <해태상>이 있다. 돌조각의 형태미나 비례, 세부 표현 등을 따지고 들어 미학적인 평가 판단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조형적인 비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작품의 장소 특정성이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다. <해태상> 인근에는 가장 기념비적이고 상징적인 조형물인 <이순신장군동상>이 있다. 물론 이 작품은 군인출신의 정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문화정치의 결과이다. 이 작품 자체로만 보면 탄탄한 조형성과 상징성을 가진 명작이다. 그러나 세종로라는 장소성과 이순신이라는 전쟁영웅의 동상이 공존하는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현대사의 한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은 다른 문맥에서 읽어볼 대목이다. 장소 특정성을 활용하는 것 자체가 예술을 진리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공미술은 이렇게 장소성을 오용하고 남용한곤 한다. 어찌 보면 그것이 주문생산형 공공미술의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독일의 옛 동베를린 지역에 있는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의 <모자상>은 작품을 둘러싼 공간의 조건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작품 감상을 좌지우지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만큼 전쟁의 상처를 깊이 담을 수 있는 것이 그 무엇이 있겠는가.” 전쟁의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이 작품에 대해 초라해 보인다거나 비극의 처절함이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논평들에 대해 콜비츠는 이렇게 말했다. 텅 빈 공간 속 한 가운데에 아들을 안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그것도 처연하게 비를 맞고 있다. 건물 천정이 뻥 뚫린 상태여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아무 장치도 없이 공간 한가운데 바닥에 놓인 브론즈 조상이 있고 그 위에 빛을 떨어뜨리는 천정의 구멍. 그것은 빛을 끌어들이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눈과 비를 끌어들이는 장치이다. 그 천정의 구멍 하나로 인해 이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도 많이 변했다. 도시의 곳곳에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건축물미술장식품법이라는 법제도 때문에 억지로 세운 것들이 많기는 하지만, 획일적인 문화정치에 따라 동일한 작품이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으로 배치되는 일이 반복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60,70년대식의 직접적인 이데올로기 주입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공간 가운데 우뚝 서서 주변을 지배하며 웅변하려드는 남근주의는 여전하다. 역사성이나 장소의 특수성과는 상관없이 알 수 없는 작가주의를 앞세워서 공공공간의 미술작품으로는 함량미달이라는 지적을 받는 경우도 많다. 물론 좋은 사례도 있다. 새로 지은 서울역사 앞에 있는 박기원 작가의 작품 <자-넓이>이다. 형태는 매우 심플하다. 철판과 돌로 만든 직각 자 형태의 기하학적인 구조물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외관상 얼마나 미적인 형태와 색채와 재질감을 가지고 감상자에게 미적인 감동을 전달하는가 하는 점이 감상 포인트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작품은 공공장소에 놓인 작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의미심장한 논점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기능을 겸하고 있는 스트리트 퍼니처다. 그런데 그 공간은 대체로 노숙자들의 전용공간이다. 나는 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저 자리를 독점하고 있는 노숙자들이 저 작품을 잘 사용해 주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왜 저들만이 저 작품을 독점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동시에 가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을 바꿨다. 서울역 안의 벤치들이 노숙자들이 드러눕지 못하도록 자리 사이사이에 팔걸이를 만들어 놓은 비인간적인 행태를 목격한 이후의 일이다. 그 작품이라도 있어서 역 앞에 드러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소수자에게 금지가 아닌 허용을 허락하는 공간을 만드는 예술작품이다. 이렇듯 공공미술 작품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의미 해석의 폭이 달라진다.

인간의 삶이 집결해 있는 공동체와 장소성의 만남은 한층 더 깊게 공공미술이 영역을 확장한다. 경기도 평택의 사라진 마을 대추리 현장예술 작품들은 공동체와 예술가의 만남을 새로운 공공미술의 가능성으로 이끈 사례이다. 지난 2004년부터 3년간 이 마을을 찾은 수많은 예술가들은 마을의 장소성과 동행했다. 이들의 작업은 장소 특정성을 넘어 의제 특정성(issue specific)을 획득했다. 장소의 특수성을 반영한 작업이라는 공간의 조건뿐만 아니라 그 장소의 상황까지도 끌어들여 특정한 이슈를 작업의 조건으로 삼는 것이 의제 특정적인 예술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 마을 곳곳에 고운 흙더미를 쌓아 둔 채 해를 넘기고 있던 대추리 마을을 찾은 이종구는 그 흙더미 뒤편 벽에 일하는 농부를 그려넣어 그 공간의 장소성을 절묘하게 살렸으며 동시에 그 마을의 이슈를 감동적인 예술 작품으로 남겼다. 이윤엽의 마을 박물관은 동네 곳곳의 버려진 집에서 수집한 잡동사니들과 주민들의 사진이미지들을 모아서 꾸민 오브제 설치 작업이다. 최병수는 부서진 대추분교의 잔해더미 위에 일상의 사물들을 매달아 솟대 작업을 했다. 대추리 예술은 장소 특정성을 의제 특정성으로 진일보시킨 커뮤니티 아트이자 액티비스트 아트의 좋은 사례들이다.

도시 속에 자리 잡는 공공미술 작품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수량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건축물미술장식품들의 경우 장소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 아직도 생산자 중심의 사고에 사로잡혀서 작가의 스타일 그 자체를 특정 장소에 개입시키려는 일방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장소와 예술 작품은 서로를 배반하지 않아야 한다. 장소성과 예술성이 동행이라는 아름다운 걸음걸이에 의해서 상호보완적인 개념으로 작동할 때 진정한 공공예술 작품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 개념과 공존하는 것이 공간 개념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상호 의존적이다. 예술은 시간과 공간의 축선 위에 존재한다. 동시에 예술은 그 시간과 공간의 축선을 벗어나 시공을 초월한 세계를 추구한다. 이 명제를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장소 특정성과 예술 생산 또는 향유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장소 특정성은 예술을 구속하면서 동시에 구원하는 개념이다. 예술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시공간의 개념 속에 뿌리 내린 판타지이자 리얼리티이기 때문이다.

도시특정적인 가치와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 장소특정성과 의제특정성을 아우르는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1977년 이래 10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독일의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10년 단위로 변화해나가는 예술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 도시의 실재공간을 대상으로 장소성과 역사성을 살리는 예술적 실천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뮌스터의 아트는 미술의 공공성과 현장성을 재검토하게 한다. 그것은 장소성의 문제와 더불어 의제와 결합하는 미술의 필연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행사에서는 뮌스터가 애초에 재기한 도시공간 속에 스며드는 미술이라는 장소성의 이슈, 즉 물리적인 장소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장소나 지역의 역사성과 동시대의 이슈를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공공의 장소라는 특성을 드러낼 뿐더러 시민시회가 공유할 수 있는 공론의 정황들을 매우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동시대 어느 미술행사보다도 전위적인 새로운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뮌스터는 연륜이나 규모가 베니스에 훨씬 못미치는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베니스의 노후한 시스템에 비해서 훨씬 더 열린 개념의 미술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을 만국박람회 개념으로 집대성해놓고 집단적인 관람문화를 이끌어내는 베니스에 비해 차분하게 도시의 장소와 맥락을 따라서 창작과 향유를 통한 문화생산의 분위를 이끌어내고 있는 뮌스터는 미술의 생산과 소비에 관해 진일보한 관점과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뮌스터와 카셀의 비교 또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뮌스터는 도시의 실제 공간 속으로 파고들어 작품을 영구설치하는 데 비해서 카셀은 현대미술의 첨예한 이슈를 중심으로 일시적인 전시 행사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일정한 공간에서 대규모 작품전시를 통해서 현대미술의 담론과 실천을 집중조명하는 카셀과 달리 뮌스터는 유동하는 관람개념을 가지고 있다. 작품이 흩어져있고 관람자는 도시를 유영하며 작품과 조우하는 방식이다. 자전거를 타고 도시 곳곳을 질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제공하는 곳이 비단 뮌스터 뿐만은 아니겠지만, 자전거 여행과 미술작품 감상을 결합시킨 이 도시의 독특한 매력은 가히 독보적이라고 말할 만하다. 호수와 녹지대, 오래된 건축물로 가득 찬 도시 곳곳에 작품들이 스며들어 있다. 사실 여느 도시에 비해 특출한 볼거리를 가진 곳은 아니지만, 뮌스터라는 작은 도시에 수십만의 사람들이 몰려들 수 있는 것은 전시장이나 조각공원이 아닌 곳에 예술작품을 배치해두고 관람객들로 하여금 자전거를 이용해서 혹은 걸어서 찾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하게 하는 배치의 미학 때문이다. 세계 유수의 대규모 미술축제들이 많이 있지만 뮌스터만큼 알차게 행사 이후 지속적으로 도시공간 속에 조각 작품을 남기는 축제는 드물다.

오래된 건축물과 호수와 녹지대로 가득찬 도시의 곳곳에 작품들이 스며들어 있다. 구스타프 메츠거 같은 작가는 장방형의 돌덩어리들을 매일 다른 장소에 옮겨서 설치하면서 갖가지 조형과 상황들을 연출해낸다. 안드레아스 지크만은 현대도시가 쏟아낸 합성수지 조형물들에 갖가지 기호들을 새기고 그것을 해체해서 거대한 구체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미지를 생성하고 소비해내는 방식을 뒤집어보고 있다. 마이크 켈리는 커다란 텐트를 치고 그 안에 소와 말, 양, 닭 등 동물을 풀어 놓았다. 가운데는 소금기둥을 깎아서 만든 조각 하나가 서있고 주변에 영상 세 개가 매달려 있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끌어들인 작품이다. 소금기둥과 동물들과 영상이 어우러진 이 설치작업은 소금기둥을 핧아먹는 동물들에 의해 그 의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파트 알트하메르의 <길>은 잔디밭의 잔디를 일직선으로 길게 걷어내어 길을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무심코 지나쳐서는 도저히 작품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작업이다. 호수물을 끌어들여 다시 내뿜는 살수차 작품은 귀욤 빌의 작품 또한 일반적인 조각 개념을 위반한다. 작품의 조형적 요소보다 물을 정화한다는 메시지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다.

뮌스터의 작품들은 단순하게 작품을 어디에 설치 혹은 배치해두었는가 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생태와 역사를 동시대적인 예술언어로 끌어안음으로써 예술적 공공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안네트 베흐만의 <아스파(AaSpa)>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철제 담장 너머로 공사현장을 목격하게 한다. 도시의 수익창출을 위해서 온천을 개발해야 한다는 논쟁에 대해 실제의 상황보다 한발 앞서서 중장비들을 동원해서 거대한 공사판을 벌여놓은 것이다. 아트의 영역을 기성의 장이나 그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카셀도쿠멘타에서도 이와 비슷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는데, 카셀의 고성 아래 둔덕에 태국작가 사카린이 만든 계단식 논이 그것이다. 유럽의 고성에 동남아시아의 농경문화를 접목시킨 것이다. 현대미술은 이렇듯 문화유적지를 현대미술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얼핏 보아서 그냥 흙을 파헤쳐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대지미술 작품은 인간이나 기계의 행위의 흔적 자체를 남기는 행위를 넘어선 현대미술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선이나 볼륨, 숭고미 등과 같은 미학적인 문제들에 접근하는 미술의 문제에 수렴하는 이슈가 아니라, 지역의 현안이나 대륙을 횡단하는 이질적인 문화 접목 등과 같은 의제특정적(issue-specific) 미술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뮌스터의 장소특정적이며 의제특정적인 미술은 모더니즘과 포스터모더니즘의 경계를 넘나들며 도시 전방의 장소와 의제를 아우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모더니즘 미술 작품은 부르스 나우만의 역피라미드 작품이다. 25미터 정방형의 역피라미드를 땅밑 2.3미터 깊이로 파고들어 콘크리트로 마감한 이 작품은 1977년에 나온 계획을 30년만에 실현한 작품이다. 본격모더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경향을 보이는 이 작품은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의 환경을 각각 다르게 체험하는 현상학적 미학관점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어찌 보면 구시대적 발상이지만, 그러나 미술작품이 도시의 공간 속에서 관람자의 시지각 체험을 각성하는 일을 지속할 필요가 있는 한 여전히 유의미한 작업일 수 있다.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의 <색다른 뮌스터>라는 작품은 지난 30년동안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 참가해서 설치된 작품들의 미니어처를 만들어서 공원 잔디위에 설치했다. 한도시의 곳곳에 자리잡은 작품들의 다양한 형상과 색채를 동일한 공간에서 한눈에 내려다 보면서 실제의 도시 공간에 다른 크기로 설치되었을 때의 맥락과 비교해보도록 한 것이다. 조각이 장소와 맥락에 따라서 얼마나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난 수십년간 지속된 뮌스터의 핵심 의제는 개입으로서의 조각이었다. 뮌스터조각프로젝트의 캐치프레이즈는 ‘지역적 상황과 환경에 개입하는 조각’이다. 이것을 비평적 용어로 부를 수 있는 말이 워크 인시투 아트(work insitu art)이다. 한국에서 주로 현장미술이라고 불러왔던 개념과 유사한 것이며, 조각심포지움의 형태로 열리는 현장작업미술축제와도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현장미술의 일회성이나 조각심포지움의 작가중심주의 프로젝트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것이 워크 인시투 개념이다. 여타의 작품생산과 향유의 개념과 차별화하는 워크 인시투 개념은 라티어 인시투(insitu)에 있다. 인시투는 장소와 상황의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그것은 장소특정성(site-specific) 개념이 강조하고 있는 예술작품의 장소성 문제를 넘어선다. 장소성이 공간의 문제에 한정되어 있다면, 시간성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이 인시투개념이다. 특정한 장소는 영원불멸의 공간으로 귀속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상황과 조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시투 개념은 시공간을 총체적으로 투영하는 예술창작과 향유를 지향한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조각은 어떤 좌표 위에 놓여있는가?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보여주고 있는 장소와 의제를 맥락화하는 예술프로젝트는 시스템 모방 이상의 진지한 토론과 실천이 있어야 실현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모두 함께 돌아볼 시점이다.

*이 글은 장소 및 내용 특정적인 공공미술에 관한 필자의 글들을 재구성하여 가필한 것이다.

2013/09/24 22:00 2013/09/24 22:00

국제주의와 물신주의를 넘어서는 비엔날레 : 아트인컬쳐

critic & column | 2013/09/10 11:41


국제주의와 물신주의를 넘어서는 비엔날레

새로 생긴 격년제국제미술행사 평창비엔날레가 끝났다.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와 동해 앙바엑스포전시관에서 열린 이 프로젝트는 여름철 피서 성수기에 다수의 관객을 맞이할 계획이었으나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물론 여름철 피서와 전시 관람을 접목하겠다는 전략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피서와 전시 관람은 별개의 일인 것 같다. 관람객 문제는 비판의 초점이 됐다. 하지만 전시의 흥행성만이 전부는 아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 전문가 집단의 능력이나 타 비엔날레와의 차별화 전략, 예산과 행정력의 뒷받침, 지역성에 대한 고려 부족 등 여러 가지 원인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첫 행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타의 문제들은 다음 행사에서 보완할 수 있겠지만,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방향성에 관해서는 좀 더 심각하게 논의해볼 문제가 있겠다 싶어 몇 가지 단상을 적어보려고 한다.


이번 행사의 장단점 몇 가지를 언급해 보자면
, 우선 아트뱅크라는 제도로 출품작 중 일부를 공공 컬렉션으로 남겨두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 한국의 비엔날레들이 그 많은 예산을 투여했으면서도 예술작품을 도시의 유형-무형의 자산으로 남겨놓데 무관심했다는 점에서 많이 아쉬웠는데, 평창은 시작부터 비엔날레와 컬렉션을 연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긍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 작품들이 미술관 수장고로 들어가는 것뿐만이 아니고, 자연과 마을을 만나는 것이면 더 없이 좋겠다. 평창은 도시라고 부르기에 낯설 정도로 인공의 도시보다 거대한 자연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따라서 자연환경과 마을을 잇는 생태미술, 대지미술, 장소특정적미술, 커뮤니티아트 등의 키워드로 접근하면 엄청난 문화자산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시각은 사람들마다 좀 달랐다. 강원도의 예술생산이나 향유 조건으로 보아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와 대중적인 접근 차원에서 의미있는 시도였다는 평가가 교차했다.


아직 도립미술관도 없을 정도로 척박한 강원도의 문화환경 속에서 어렵사리 대규모 국제미술행사를 만들었건만
, 격려와 찬사보다는 비난과 비판이 거셌다. 두어달 만에 뚝딱 만들어진 졸속행사 평창비엔날레. 세간에서 쏟아지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 나는 약간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는 못했지만 연전부터 이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이 행사가 행정력과 예산 뒷받침을 받지 못해 난항을 겪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무래도 공공기관에 몸담고 일을 하다 보니 행사의 성립을 앞두고 어떤 식의 내홍이 있었을지 대략 짐작되는 바가 있다. 이 행사의 문제점에 대해서 두둔할 수는 없겠지만, 비판의 내용이 좀 더 넓은 시각을 견지할 수는 없는지에 대해서 보탤 말이 있다. 나의 관심은 이 행사의 행정적인 추진과정이나 전시의 외형만큼이나 비엔날레라는 행사 자체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점 자체에 있다.


지금 하나의 물신이 한국미술계를 떠돌고 있다
. 비엔날레라는 물신이다. 비엔날레라는 예술축제의 한 방식이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미술행사라는 형식 이상의 그 무엇으로 부풀려져 여기저기서 난립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는 길은 비엔날레에 대한 보편적인 관념을 벗어나 특수한 국면을 창출해 내는 데 있다. 이른바 특성화 전략이다. 이미 비엔날레 과잉이라는 따가운 시선이 있는데 굳이 평창비엔날레라는 이름을 왜 썼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동시대 미술의 의제를 생성하는 국제적인, 다시 말해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미술언어 게임의 장이었지만, 점점 도시정체성을 확인하거나 확대재생산하는 공론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평창비엔날레는 당연히 평창의 가치에 좀 더 구체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창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대변하거나 대표할 리 없겠거니와, 오히려 그 반대로 철저하게 평창의 지역적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국제주의와 물신화를 넘어 평창의 가치를 만드는 길이다.


물론 평창의 지역성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틀 안에 있긴 하지만
, 여타의 비엔날레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보다 미시적인 단위의 도시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국가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즉 국제성(The inter-national, 국가상호성)만이 아니라 도시정체성을 염두에 둔 도시상호성(Inter-city)을 전략적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평창이라는 도시의 지역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특성을 살려 특성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평창의 지역성을 도시상호성의 관점에서 엮어 냄으로써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인 이념과 연결하려는 시각도 필요하다. 평창비엔날레를 탄생시킨 최초의 계기를 살리되 그것을 넘어서 지속가능성을 발견하는 지혜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서 나올 수 있다. 평창비엔날레가 국제주의의 미망과 비엔날레라는 물신을 넘어 평창의 가치를 끌어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 아트인컬쳐 기고문 2013년 10월호

2013/09/10 11:41 2013/09/10 11:41

섬의 노래여 바람을 타고 : 제주해전 리뷰, 아티클 2013년 8월호 기고

critic & column | 2013/08/05 19:12


섬의 노래여 바람을 타고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부두시설을 건설하겠다는 정치와 군사, 그리고 기업이 결합한 해군기지 프로젝트는 21세기의 동북아 군사전략에 필요한 거점기지라는 점에서 한미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 한 시대착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건설프로젝트는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밀어붙인 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다녀갔다. 그들 가운데 예술가들도 많이 있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해군기지 건설에 맞선 평화를 지키지 위한 범시민 차원의 현장활동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함께 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들의 활동을 정리한 아카이브전시가 열렸다.

강정마을의 예술행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아카이브전시 <제주해전>에는 거의 모든 시각언어가 다 모였다. 현장을 다녀간 수백명 예술가들의 흔적들이다. 예술가들은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짓고,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강정마을의 공동체가 얼마나 피폐해져가고 있는지, 구럼비바위가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야만의 현장을 비판하고 그 폭거에 저항했다. 이들은 마을 곳곳에 입체작품을 설치하고 벽에 그림을 그렸다. 펜스에 낙서를 하거나 프래카드를 걸고 사진을 찍었다. 전시장에는 현장의 예술활동을 정리한 파일들과 더불어 영상과 사진 등의 활동자료들이 죄다 모였다. 또한 그림과 탁본, 사진 등의 작품들도 함께 했다.

최병수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나무솟대를 세웠다. 홍성담의 평화 현수막과 최평곤의 대나무인간, 홍보람의 커뮤니티아트, 이윤엽의 현장판화와 파견미술팀의 활동적인 협업작업 등 많은 작품들이 마을 속에 들어갔다. 홍원석은 제주도에 머물며 운전퍼포먼스를 했고, 노순택은 따듯하면서도 날카로운 카메라로 현장을 담았다. 초인적인 단식활동을 해온 영화인 양윤모와 아나키스트 음악가 조약골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고길천이라는 빼어난 액티비스트가 있어 현장활동의 폭이 넓어졌다. 윤돈휘를 비롯한 여러 제주도 작가들도 현장을 지키고 있다. 아카이브전시를 함께 만든 김상돈과 권용주, 남상수, 윤결, 윤두현 등 5인의 노력도 빛났다.

21세기 들어서 예술가들의 현장 활동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흐름 가운데 전시장보다는 현장을 선택했던 현장미술 진영은 종종 정치의 선도와 예술의 복무 구도를 받아들이곤 했다. 물론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도 ‘필요에 따라 무언가를 위해 도구로 쓰이는 예술’이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2004년의 경기도 평택 대추리의 현장예술 활동을 기점으로 예술가들은 스스로 예술적 실천의 장소와 시기, 규모와 방법 등을 결정하여 참여와 개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우연한 일이겠지만, 강정의 현장예술은 대추리마을이 완전히 철거되던 2007년 그해부터 시작됐다.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학살의 아픔을 담은 오키나와 풍의 노래 ‘시마우타’(섬의 노래, 島唄)의 마지막 구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섬의 노래여 바람을 타고 전해주오 나의 노래를.“ 불행하게도 오키나와의 비극은 제주도로 전해왔다. 그것은 6.25전쟁 전후에 벌어진 제주4.3항쟁의 학살에서 그치는 얘기가 아니다. 타이완, 오키나와 그리고 제주도로 이어지는 20세기 제국주의의 폭력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바로 이 야만적 폭력의 현장에 함께한 강정마을의 예술행동은 살아있는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생명의 평화를 노래하는 우리시대의 공론장이자 미래의 눈과 귀로 되살아날 기억투쟁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제주 강정마을 현장예술 아카이브 전시 : 제주해전 리뷰 - 아티클 2013년 8월호 기고.

2013/08/05 19:12 2013/08/05 19:12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 강홍구, 부산발

critic & column | 2013/03/19 20:34


강홍구 : 사람의 집 - 프로세믹스 부산. 3.2-5.9, 고은사진미술관
감천동, 물만골, 수정동, 안창마을, 아미동 등 부산의 산동네를 포착한 그의 시선은 가깝고도 멀다. ‘프로세믹스’라는 단어를 빌어 공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경위들을 찾아내려는 뜻을 전시 타이틀에 담았다. 공간의 특성을 따라, 그리고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하나씩 쌓아간 인공적인 공간구성을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포착해낸 강홍구의 시선이 살뜰하다.

Local Review 2013 : 부산發, 3.1-4.28, 성곡미술관
각 지역의 특수성을 갈무리해보는 성곡미술관의 새 전시포맷 로컬 리뷰의 첫 번째 전시. 김성연, 류회민, 방정아, 심점환, 심준섭 등 5인의 중견작가를 통해 부산미술을 조망해보는 자리이다. 회화와 영상, 설치에 이르는 참여작가들은 각각 다른 위치에서 부산의 로컬리티를 내비치며 동시에 우리시대 미술의 보편성을 발산한다.

2013/03/19 20:34 2013/03/19 20:34

서울아트가이드 2013년 3울호 이달의 전시 : 김준기, 카이스트와 함게 하는 과학과 예술의 상상미래

critic & column | 2013/02/18 17:59


김준기 : 타자(他自)의 초상, 2.14-2.24,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김준기의 릴레이 프로젝트 개인전. <타자의 초상> 연작은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바라본 자신의 모습이다. 거울의 이면에 이미지를 새기는 과정을 거쳐 만든 빛그림으로 그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각성한다. 빛그림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사라지는 기억을 포착하는 방법이자, 기록으로서의 재현을 넘어서는 표현의 문제를 고민해온 그의 해법이다.

KAIST와 함께하는 과학과 예술의 상상미래, 2.19-3.31, GS칼텍스 예울마루
전라남도 여수에 문을 연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열린 기획전. 카이스트에서 열렸던 같은 전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을 추구하며, 생태의 문제를 다룬 이 전시는 김승영, 김종구, 안종영, 이수영, 하원 등 대전 전시작가들의 작품에 여수에 사는 작가 최병수의 생태 관련 작품이 추가되었다. 인간중심의 과학기술이 자연을 대상화함으로써 나타나는 전지구적 의제들을 과학예술의 시각으로 다룬 전시.

박성태, 2.15-2.28, 공아트스페이스
알루미늄 철망으로 사물과 그림자의 이중이미지를 만들어온 박성태가 작품에 형광안료를 입혀 공간설치작업을 선보였다. 탐영(貪榮)이라는 주제의식 아래 인간의 탐욕을 대변하는 존재로 생태계를 교란하는 황소개구리를 등장시킨 <신화> 연작이 그것이다. 공간을 유영하며 빛을 발하는 탐욕의 상징들은 인간 개인은 물론 자본주의 사회와 제국주의 역사를 은유하며 비판적 성찰을 촉구한다.

황세준 : 목단행성, 1.31-3.17, 로열갤러리
황세준은 물질적 풍요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정신적 빈곤과 결여를 들춰낸다. 그는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목단 이미지처럼 한국사회 깊숙이 내면화한 키치를 서늘한 풍자로 들여다본다. 그의 회화는 풍경과 일상 속에 담긴 삶의 정황을 담담한 언어로 담아낸다. 도로 한 가운데 씌어 있는 버스라는 글자에서 버스, 을 읽어내고, 고가도로 아래의 가스통 트럭에서 도시고속화도로의 위태로움을 발견하는 블랙 유머가 콧등 시큰하게 다가온다.

2013/02/18 17:59 2013/02/18 17:59

한국큐레이터협회 성명서 : 김준기-사비나미술관 사건의 종결을 환영한다

critic & column | 2013/01/29 11:51


한국큐레이터협회 성명서
김준기-사비나미술관 사건의 종결을 환영한다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원인 김준기 전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과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이 7년간 이어온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이 종결되었다. 지난 2005년 11월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김 전 실장의 원직 복직과 해고기간 중의 임금 지급 결정을 낸 이후, 세 차례의 행정소송의 결과 2008년 5월에 대법원이 같은 취지의 확정 판결을 낸 바 있다.

이어서 임금지금 문제로 두 차례, 집행의 문제로 한 차례 법정 선고가 있은 후,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진행 중 2012년 12월에 재판장이 제시한 화해권고를 양측이 받아들여 6,50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하여 8차에 걸친 소송이 마무리됐다.

우리 협회는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사비나미술관이 김 전 실장을 해고한 일이 부당해고임을 인정하였고, 해고기간 중의 임금 지급에 관하여는 화해가 이루어짐으로써 이 사건이 원만하게 마무리된 것을 환영하며, 큐레이터의 권익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이번 사건의 종결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의 박물관계와 미술계에서 관장과 큐레이터 간에 불편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며, 박물관 정신을 바탕으로 한 디렉터십과 큐레이터십의 정립을 위해 모든 주체들이 함께 관심을 가지고 성찰하며 발전적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둘째, 우리 협회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갈등하고 대립했던 양측이 화해와 상생의 길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관 기관, 단체, 인사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며, 박물관과 미술관, 관장과 큐레이터, 기관과 민간, 문화생산자와 매개자, 시민 등이 함께 박물관 문화와 미술문화의 발전을 위해 토론하고 실천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셋째, 우리 협회는 한국박물관협회 등 미술관 제도와 유관한 기관 단체들과 협의하여 큐레이터의 권익을 옹호하고 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조사연구와 토론회 등의 노력을 실천할 것이다.

2013년 1월 25일 한국큐레이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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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사비나미술관 부당해고 및 기간임금 지급 사건 일지

김준기 전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과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해고의 정당성 여부는 물론 기간임금 지급의 문제, 사단법인 사비나미술관회와 사비나미술관의 책임성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여왔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회에 걸쳐 원직복직과 기간임금 지급을 결정했으며, 이에 대해 사비나미술관은 서울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행정소송을 진행했으나 모두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인정하는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다.

이어서 기간임금 지급문제를 놓고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소송에서도 사비나미술관회의 책임을 물었다.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은 김 전 실장이 사단법인 사비나미술관회 소속이었으므로 이명옥 관장 개인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2년 5월에 이명옥 관장에게 해직에 대한 책임을 물어 판결 당시 기준 1억원 상당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어서 고등법원 재판장은 6500만원에 화해할 것을 권고하는 결정문을 통보했고(2012.12), 이 같은 화해권고를 양측이 수용함으로써 이 사건은 법정 종결을 맞았다.

큐레이터의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고용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이 사건은 한 큐레이터와 미술관 관장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박물관 제도의 모순과 한계를 대변하고 있다. 그것은 급속한 성장 속에서 일군 성취에도 불구하고 전문성과 윤리성에 있어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2005. 11. 김준기 :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 제기
2006. 1. 서울지방노동위원회 : 원직복직, 기간임금지급 판결
2006. 2. 사비나미술관회 :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
2006. 8. 중앙노동위원회 : 원심 확인
2007. 7. 서울행정법원 : 사비나미술관회의 취소소송 청구 기각
2008. 2. 서울고등법원 : 사비나미술관회의 항소 기각
2008. 5. 대법원 : 사비나미술관회의 상고 기각
2009. 7 서울중앙지방법원 : 부당해고 기간의 임금 지급 판결
2011. 3. 서울중앙지방법원 집행관이 미술품 등 동산 압류 절차 시도하였으나
           사단법인 사비나미술관회와 사비나미술관은 별개라는 주장에 따라 강제집행 중단.
2012. 5. 서울중앙지방법원 : 사비나미술관은 원고에게 기간임금 중 일부를 지급하라고 판결
2012. 12. 서울고등법원 : 6500만원에 화해할 것을 권고하는 결정
2012. 12. 양측의 화해권고안 수용으로 사건 종결
2013/01/29 11:51 2013/01/2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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