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ns:thr="http://purl.org/syndication/thread/1.0">
  <title type="html">gimjungi.net: 김홍희-포스트-미디어-시대의-개념예술에 달린 최근 댓글/트랙백 목록</title>
  <id>http://gimjungi.net/blog/</id>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lang="ko" href="http://gimjungi.net/blog/" />
  <subtitle type="html">artpd@korea.kr;artpd68@naver.com</subtitle>
  <updated>2010-02-16T12:37:37+09:00</updated>
  <generator>Textcube 1.7.6 : Staccato</generator>
  <entry>
    <title type="html">김피디님의 댓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gimjungi.net/blog/entry/%EA%B9%80%ED%99%8D%ED%9D%AC-%ED%8F%AC%EC%8A%A4%ED%8A%B8-%EB%AF%B8%EB%94%94%EC%96%B4-%EC%8B%9C%EB%8C%80%EC%9D%98-%EA%B0%9C%EB%85%90%EC%98%88%EC%88%A0#comment1021" />
    <author>
      <name>(김피디)</name>
    </author>
    <id>http://gimjungi.net/blog/entry/%EA%B9%80%ED%99%8D%ED%9D%AC-%ED%8F%AC%EC%8A%A4%ED%8A%B8-%EB%AF%B8%EB%94%94%EC%96%B4-%EC%8B%9C%EB%8C%80%EC%9D%98-%EA%B0%9C%EB%85%90%EC%98%88%EC%88%A0#comment1021</id>
    <published>2010-02-03T23:01:57+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김홍희의 &amp;lt;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amp;gt;
2009.12.10-2010-1.10/코리아아트센터

“카메라에 GPS를 달고 사막으로 들어간 방랑하는 사진가 얘기 들어봤나? 전봇대도 없고 마을도 없고 누군가 지나간 흔적조차 금새 바람에 지워지고 마는 사막. 방랑하는 사진가가 고비에 갔었지. ‘고비’라는 말 참 의미심장하지 않는가? 고비(Gobi)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사막이라는 뜻일세.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지만 생물들이 전혀 살지 못하는 사막과는 다르지. 단지 살아가는데 힘겨운 고비가 있을 뿐이야. 우리말로 어떤 중요한 단계, 혹은 막다른 절정이라는 뜻을 가진 고비 말일세. 그러니까 몽골어의 고비와 우리말의 고비가 인과적으로 서로 소통하고 있단 말이지. 고비를 보기 전에도 사진가는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어 방랑을 했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말이야. 그러다가 어느 해 고비에 딱 들어선 거야. 지금까지 사진가의 눈이 되어온 카메라로는 모래와 바람이 이루는 언덕 말고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지. 그리고 몇 해가 지난 후 또다시 사막으로 들어갔어. 이번에 디지털 장비인 GPS를 카메라에 달고서. 

왜 그랬을까? 막다른 절정에서 길을 잃기 싫어서였을까? 사막이란 원래 길을 잃는 자들을 위한 장소지. 생에 단 한 번도 헤매고 싶지 않은 자들은 사막으로 갈 필요가 없어. 사막은 길을 헤매며 제 몸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곳이란 말일세. 낙타의 다리를 빈다고 해도 사막을 온전히 건너는 방법은 뜨거운 태양과 모진 바람과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제 몸 전체로 견뎌내는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사막에서 믿을 것은 자신의 몸이 전부이고 동시에 사막에서 견뎌내야 할 것도 또한 자신의 몸 자체인 셈이지. 고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멀리 당도해야 할 땅이 아니라 자신의 발이 닿고 서있는 그 위치, 그러니까 곧 자신의 몸의 자리가 아니겠는가?”

세계 어디에 있든 좌표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위성항법장치(Global Positioning System), 간단히 GPS라고 불리는 그것은 나침반과 달리 위도·경도·고도 뿐만 아니라 3차원의 속도 정보와 정확한 시간을 제공한다. 인공위성에 탑재되어 있는 3개의 원자시계는 3만 6000년에 1초의 오차를 갖는 시간 정보를 제공한다고 한다. 방랑하는 사진가는 그것으로 고비에서 자신의 좌표를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눈과 카메라가 보지 못하는 것을 GPS라는 디지털 물건이 끊임없이 일깨워주었을 것이다. 35°09’24.99″N과 129°10’37.66″E이 교차하는 어느 지점. 그 정확한 숫자 값을 사진가는 길을 찾는데 쓰지 않고, 눈으로는 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계 속에 어떤 좌표를 심는데 사용했다. 

수많은 길을 헤쳐 나온 자신의 몸으로 삶과 예술이라는 고비 위에 하나의 점을 찍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경계를 넘고 국경을 지나 그가 두 다리로 지나온 길들이 새로운 좌표를 생성하고 그 점들이 지나온 선이 모여 마침내 길이 될 것을 믿으며. 이 때 방랑하는 자신의 몸과 고비의 능선이 따로 있지 않고 관능적인 하나의 곡선으로 일체화 되어버린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 곡선의 고비고비가 그토록 육감적이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도. 어쩌면 인공위성이 쏘아주는 디지털 정보는 외부로 난 길이 아니라 자신의 몸 안으로 난 길을 들여다보는 내시경의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윗글은 사진 예술 2009년 12월 호에 실린 카피라이터 최현주의 春畵(춘화)를 만드는 그들만의 방식 중 김홍희의 &amp;lt;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amp;gt;를 발췌한 것이다.

최현주/카피라이터 www.copychoi.com</summary>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