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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세가지 키워드

critic & column | 2010/10/28 18:43


현대미술의 세가지 키워드


1. 예술공론장의 구조변동

근대적인 예술 개념과 제도는 예술 생산과 향유가 공론장으로 작동했던 자본주의 사회 초기에 성립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근거한 근대예술은 20세기를 지나면서 이른바 사사성(私事性)에 입각한 예술가의 자족적인 언어영역으로 변모했다. 근대사회의 성립을 주도했던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국가주도의 공공성이나 매스미디어가 유포하는 공론장이 대체함으로써 예술이 매개하는 공론장의 역할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공공영역의 일환으로 자율성을 획득한 예술이 스스로 좁은 길로 들어선 탓도 크다. 주문생산으로부터 자율생산으로 변모한 근대적 예술체제는 자본주의 시장체제로의 빨려들어 갔다. 20세기 후반 들어서 근대성을 반성하는 탈근대 담론의 결과로 예술의 공공성을 복원하기 위한 대안적 실천들이 예술의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물론 산업사회가 발흥하고 근대의 이념이 태동하던 시기의 예술공론장은 오늘날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공적 기제로서의 예술체제를 재정립하기 위해서 예술공론장의 구조변동에 주목해볼 시점이다.

탈근대적 사유와 실천이 야기하는 통합의 예술이 예술체제의 구조변동을 강력하게 추동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원형적 사유를 넘어 근대적인 분화 과정을 거친 근대예술이 이른바 통섭의 시대를 맞아 예술장르간의 혼융을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정보양식은 물질구조의 근대미학을 탈피하는 새로운 예술체제를 주고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를 분기한 생산양식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정보양식의 변동은 예술의 생산과 매개, 향유 체제에 커다란 변동을 야기할 것이다. 디지털과 영상, 인터넷 등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대하고 있는 새로운 매체환경이 이끄는 새로운 예술공론장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나아가 주문생산과 자율생산의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새로운 예술생산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그것은 작업실과 전시장이라는 단선적인 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체제 이후의 문제이다. 예술노동과 향유의 소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생산과 향유를 문화생산의 차원으로 재구조화하려는 공공미술이 새로운 예술체제를 주도하고 있다.


2. 로컬 액트 : 지역주의와 행동주의

전지구적 보편언어의 편재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이다. 제국주의 시대 이후 동시대의 글로벌리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예술은 제도영역에서 문화권력을 확대재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굳어지면서 삶의 언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른바 글로컬리즘의 ‘전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는 언명마저도 글로벌리즘에 포획된 자본의 이윤창출 논리에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오늘날과 같은 후기산업사회, 후기미디어사회에서 예술적 실천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은 글로컬리즘이 아니라 로컬리즘에 의해 설정 가능하다. 거대담론의 영역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권력의지로부터 이탈한 일군의 예술흐름이 도처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미시적 실천을 통해서 특수성을 발현하겠다는 이들의 기획과 실천이 대안적인 예술로 자리잡고 있다.

로컬 액트를 추동하는 두 가지 흐름은 지역주의예술과 행동주의예술이다. 지역주의예술은 일본제국이 조선과 대만에 강요했던 향토색과는 차별화한 지역적 사유와 감성을 예술생산의 가치로 맥락화하는 예술적 실천을 말한다. 그것은 예술적 실천의 결과를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영역에서 검증받고자 한다. 그것은 폐쇄적인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역간 연대 방식의 상호교류를 통해서 전지구적 보편언어와 지역적 특수언어의 공존을 모색하는 상호지역주의예술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실천은 구체적인 실행, 즉 예술행동을 결과한다. 예술적 실천이 곧 실재 영역에서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도록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행동주의예술이다. 그것은 커뮤니티아트, 뉴미디어아트, 프로젝트아트 등의 흐름과 친연성을 가지고 진화하고 있다. 요컨대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행동하는 예술, 즉 로컬 액트에 주목하는 것은 동시대 읽기와 미래 비전을 창출에 매우 유의미한 키워드이다.


3. 상호성 : 서로의 예술

상호주의는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태도를 가지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가치나 태도이다. 국가주의나 지역주의, 개인주의는 서로의 가치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국가주의는 국가와 지역의 이해와 요구를 우선시하는 태도로서 개인이나 계급 등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을 가진다. 지역주의나 개인주의 또한 지역과 개인의 가치를 최우선시 한다. 이들 이념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넘어서려는 것이 상호주의이다. ‘서로 상(相)’과 ‘서로 호(互)’를 묶어쓰는 ‘상호(相互)’라는 말이 예술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문화적 합의나 관행을 넘어서는 예술언어의 국제적 소통은 제국주의 시대 이후 전지구를 단일한 코드로 통일했다. 예술소통의 국제성은 이미 근대 초기부터 이뤄져왔다. 국가단위를 넘어서는 예술소통이다. 전지구적인 보편타당성을 인정받은 유럽과 미국의 예술은 전지구에 군림해왔다. 그것은 상호국가적이라기 보다는 제국주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서로의 예술’이 태동한다. 제국주의를 국제주의로 전환하는 역발상이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개인과 계급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 상호국가주의, 즉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적 커뮤니케이션도 이른바 국제주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문화제국과 문화식민의 관계가 창궐하다. 따라서 국가 단위의 상호성을 넘어서는 지역 단위의 상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호지역주의(inter-localism)가 그것이다. 상호성은 예술 바깥과의 통섭이라는 면에서도 중요하다. 과학과 종교, 예술 등으로 분화한 근대적 사회체제 이후, 과학과 종교는 상호대립적인 관계에 놓였다. 남은 것은 과학과 예술이다. 자연과 사회, 그리고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통섭의 시대에 있어 과학예술은 최전선에 위치한 ‘서로의 예술’이다. 서로의 예술은 국가와 지역, 개인, 장르, 영역 등의 차이를 섬세하게 성찰한다. 차이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상호부조의 관점에서 자아와 타자를 사유하는 상호주의 관점에서 나누는 ‘서로의 예술’은 우리시대의 새로운 좌표이다.

김준기 (GIM Jun-gi)

* 퍼블릭 아트, 2010년 11월호 특집,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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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로마자 표기
김준기 (GIM Jun-gi) * 제발 "Jun-gi GIM"이라고 쓰지 말아주세요.

2. 간략한 이력 * 편하게 줄여 쓰세요.

김준기(1968-)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예술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미술전문지 가나아트 기자 일을 시작으로 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 공공미술팀장으로 일했으며, 사비나미술관에서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했다. 2006년 부산비엔날레 조각프로젝트 전시팀장으로 일했으며, 공공미술추진위원회 팀장으로서 <아트인시티 2006> 프로젝트 매니저 일을 했다. 2007년에 석남미술상 젊은 이론가상을 받았으며, 경희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으며(2007-2010), 현재는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건너간다(2001). 작업실 리포트(2003), 리얼링15년(2004), 아시아의 지금 : 세계화와 지역성(2006), 분지의 바람(2007), 대추리현장예술아카이브 : 들 가운데서(2007), 돌아와요 부산항에(2008), 액티비스트 리포트(2008), 인터시티(2009)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1980년대 이후 한국리얼리즘미술에 나타난 현장성과 공공성의 문제’, ‘구본주론’, ‘정정엽론’, ‘박경주론’,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실천과 새로운 공공미술' 등의 글을 썼다.

2010/10/28 18:43 2010/10/28 18:43

여기가 어디일까요?

artpd clip | 2010/10/2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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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8 09:57 2010/10/28 09:57

표범과 은교

lense & world | 2010/10/2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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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시무시하면서도 무덤덤한 조응이란.
2010/10/27 20:41 2010/10/27 20:41

한큐협 월례포럼 + 대시미 아티스트 스터디 201010

artpd clip | 2010/10/21 12:23


한큐협 월례포럼 + 대시미 아티스트 스터디 201010

행사명 : 한큐협 월례포럼 + 대전창작센터 아티스트 스터디 201010
주최 : 대전시립미술관, 한국큐레이터협회
주제 : “20세기 타이완 동북아시아의 미술개념”
스페셜 게스트 : 챵포신 (타이난대학교 교수, 타이완)
장소 :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일시 : 2010년 10월 22일 금요일 오후6:30

한국큐레이터협회(이하 한큐협)는 대전시립미술관과 <한큐협 월례포럼 + 대시미 아티스트 스터디>(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10.22)를 연다. 이 행사에서는 타이완의 타이난국립대학교의 챵포신 교수를 초청해 <토요가 시각화 : 식민지 타이완에서 근대적 관찰자의 생성>라는 제목의 기조발제를 토대로 토론을 벌인다. ‘토요가 페인팅’은 일제식민지기의 타이완예술에서 ‘니혼가’로 알려진 근대화의 문화적 산물이다. 이 토론은 20세기 동북아시아의 문명사에 있어 미술 개념이나 제도의 성립과 관련한 역사적 성찰을 토대로 21세기 동시대의 새로운 비전 창출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나아가 오늘날 타이완이 처한 정치적 위치와 예술의 관계, 전지구화 여파 속에서의 동북아시아의 지역화, 타이완의 미술관 제도와 교류 가능성, 미술과 사회의 상호소통이나 상호작용 등 다양한 의제를 다룰 것이다.

* 2010.2.20 차이 짜오이(국립타이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2010.3.27 이가라시 리나(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큐레이터)
* 2010.4.10 리춘펑(독립큐레이터, 홍콩)
* 2010.5.15 한스 D. 크리스트(슈트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 디렉터)
* 2010.6.12 하정웅(재일교포 콜렉터)
* 2010.7.24 조이스 판(싱가포르현대미술관 큐레이터)
* 2010.8.28 서은아(비디오타주 큐레이터, 홍콩)
* 2010.9.13 글랜 바클리(시드니현대미술관 큐레이터)
* 2010.10.22 챵포신 (타이완 국립타이난대학교 교수)

2010/10/21 12:23 2010/10/21 12:23

2창수, 이대일 : 서울아트가이드 2010년 11월호 이달의 전시

critic & column | 2010/10/21 08:19


2창수, 모리스갤러리

이창수는 회화적 일루전을 볼륨으로 재구성했다. 유리 패널 위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들을 겹쳐서 입체 회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풍경이나 정물 등 다양한 소재들을 입체회화로 표현했다. 그는 회화의 소재나 주제들을 발견하는 과정을 일련의 프로젝트로 수행했다. 가령 과거의 기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을 토대로 사진 속 주인공과 현장을 동행답사하고 그 결과를 회화로 재현하는 방식이다. 예술적 실천을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 수용자와 생산자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끌어냈다.

이대일, 쿤스트독 프로젝트 스페이스

이대일은 도심의 골목 안에서 만나는 낯선 공간을 만들었다. 1500개의 나무판자로 콘테이터 박스 공간 바깥을 감쌌다. 공간의 바깥에 설치된 CCTV는 유리벽 안쪽을 들여다보는 관객을 실내에 설치된 모니터 위에 비춘다. 침대 위의 모니터에는 노이지 영상을 흐른다. 바깥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는 자신을 모니터로 보게 만드는 무인공간 <An Uninhabited Space>는 첨단의 소통매체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현대의 삶을 은유한다.

2010/10/21 08:19 2010/10/21 08:19

서울아트가이드, 한국큐레이터협회 소식, 2010년 11월호

critic & column | 2010/10/21 07:51


서울아트가이드, 한국큐레이터협회 소식, 2010년 11월호

한국큐레이터협회(이하 한큐협)는 대전시립미술관과 <한큐협 월례포럼 + 대시미 아티스트 스터디>(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10.22)를 열었다. 이 행사에서는 타이완의 타이난국립대학교의 챵포신 교수를 초청해 <토요가 시각화 :  식민지 타이완에서 근대적 관찰자의 생성>라는 제목의 기조발제를 토대로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다. ‘토요가 페인팅’은 일제식민지기의 타이완예술에서 ‘니혼가’로 알려진 근대화의 문화적 산물이다. 이 토론은 20세기 동북아시아의 문명사에 있어 미술 개념이나 제도의 성립과 관련한 역사적 성찰을 토대로 21세기 동시대의 새로운 비전 창출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나아가 오늘날 타이완이 처한 정치적 위치와 예술의 관계, 전지구화 여파 속에서의 동북아시아의 지역화, 타이완의 미술관 제도와 교류 가능성, 미술과 사회의 상호소통이나 상호작용 등 다양한 의제를 다뤘다.
2010/10/21 07:51 2010/10/21 07:51

임시거주의 체험과 기억 : 강진국제레지던스

critic & column | 2010/10/20 10:32


임시거주의 체험과 기억

예술가의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그가 머무는 곳, 즉 예술가의 처소이다. 그것이 영감이든 체험이든 예술가는 자신의 삶의 처소로부터 창작의 근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그곳은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곳일 수도 있고, 새롭게 이주해서 정착한 곳일 수도 있다. 과거의 기억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까지도 예술가의 삶의 장소는 그의 감성과 사유를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틀이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예술가의 기억과 체험을 생성하는 예술가의 거처는 긴 시간의 정주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의 임시거주도 포함돼있다. 그것은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얻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장소와 사건을 관조하는 차원을 넘어서 일정기간 동안의 머무름을 통해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참여와 개입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임시거주가 관조를 넘어선 참여로 이어지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곳곳에 존재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들이 장단기의 임시거주를 통해서 예술가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목표는 장소의 특성이나 상황과는 무관해 보인다. 물론 새로운 체험과 만남을 주선하고 정보교류와 국내외 네트워크 형성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를 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매우 유용하다. 문제는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유효적절하게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체험과 만남을 제공하느냐 하는 데 있다.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외형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되 실제 내용은 그냥 작업실 공간 대여 수준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또는 아주 잘 짜여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공간이 예술가들만의 폐쇄적인 네트워크 공간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레지던스 공간이 죄다 그 공간 바깥과의 연계를 모색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2010년 현재 대한민국의 예술생태계의 균형을 생각해봤을 때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을 제공한다거나 국제적인 예술가 네트워크 장을 만든다는 구상은 이미 일상적인 미술제도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오히려 적극적인 프로그램 대안 없이 공간 유지에 급급한 곳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생기를 잃은 박제화한 공간에서 예술가들끼리만의 커뮤니티를 생성하고 미술제도 내에서의 관계망 형성에 급급한 레지던스 공간과 그 곳에서 나오는 창작의 결과를 두고 ‘양계장 무정란’이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이제는 그 너머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야만 보다 진일보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강진국제레지던시 : 374년만의 재회 - 뉴 하멜 프로젝트>는 한국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공간들이 안고 있는 문제적 상황에 대해 대안적 사례를 남겼다. 우선 이 프로젝트는 장소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의 내적필연성을 확보했다. 왜 그곳에 작가들이 모여서 일정기간 거주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근거를 가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아가 이 프로그램은 예술가들의 임시거주를 공동체와 연계한 예술프로젝트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예술가들 사이의 만남만큼이나 예술가와 주민, 예술가와 마을의 결합을 중요시함으로써 예술가의 체험이나 임시거주의 가치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로그램 운영방식은 자연스럽게 참여와 개입을 만들 수 있었다. 예술가의 임시거주를 관조적 시선의 나그네나 객관적 시각의 관찰자로만 묶어두지 않고 장소와 상황 사이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가치이다.

이 프로젝트의 과정과 절차가 그곳 강진의 마을과 주민에게 남겨 놓은 것은 작품과 기억이다. 작품은 작품 나름의 운명대로 존속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기억이다. 이 프로젝트가 374년 전의 낯선 만남을 모멘트로 출발했던 것처럼, 주민들과 예술가들에게 남은 기억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 양자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우리는 충남 공주의 예술마을 원골이나 경기도 평택의 대추리, 서울 용산 등에서 이뤄진 주민과 예술가들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다. 비록 마을이나 주민들, 예술가들은 사라지거나 흩어질지언정 만남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기억을 다시 꺼내서 새로운 삶의 에너지로 재생할 기억 프로젝트가 있을 법하다. 강진에서 2010년의 뜨거운 여름을 보낸 많은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만남의 기억을 지속가능한 삶의 에너지로 이어나갈 수 있기를 기해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facebook.com/girp2010


2010/10/20 10:32 2010/10/20 10:32

아, 대추리

artpd clip | 2010/10/1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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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늦겨울, 오아시스프로젝트의 김윤환, 김강은 대추리 들판에 들불을 놓았다.
이듬해 봄, 구글어스의 인공위성 사진이 그 흔적을 남겼다.
2007년, 대추리 마을은 파괴되었다.
2010/10/19 17:59 2010/10/19 17:59

핸펀개통

artpd clip | 2010/10/18 09:24


일주일동안의 핸펀불통을 떨치고
엔젤서비스를 받아 핸펀개통.
그동안 전화나 문자 보내고도 응답을 못받아
은근히 열받았거나 화나신 분들, 혜량하여 주시옵기를 ...
아~ 전화기 하나에 사람의 인격이 오락가락하는 이 세상은 뭔가!
2010/10/18 09:24 2010/10/18 09:24

핸펀불통

artpd clip | 2010/10/13 16:51


지난 토요일이래 오늘로서 5일째, 핸펀불통.
여러군데서 원성을 들었지만, 대책이 없군요.
임대폰도 없다고 하고, 새로 신천한 아이폰4는 11월에나 나올 것 같고,
없이 살아보니까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겠군요.
그래도 이메일, 페이스북, 블로그 등등 막강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어느새 SNS 없이는 못하는 세상이 되었군요.
2010/10/13 16:51 2010/10/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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