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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무박이일 : 2010년 여름 고양스튜디오 체험기

critic & column | 2010/09/29 07:12


일기일회 무박이일 : 2010년 여름 고양스튜디오 체험기

두어 달 전에 <양계장 무정란과 창작스튜디오>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양계장에서 자라는 닭들이 쏟아내는 무정란들이 마치 박제화한 제도 공간, 특히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있는 작가들이 생산해내는 틀에 박힌 예술작품들 같다는 세간의 비평을 끌어다가 레지든스 프로그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글이었다. 애초에는 예술가들에게 작업실 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였으나 공간제공 그 자체를 넘어서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매개 공간과 프로그램으로서의 의미가 더 커진 게 요즘의 창작스튜디오들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 언어에 빠지지 않도록 다양한 주체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인 것은 분명하지만, 예술인들끼리의 만남, 제도미술 안에서의 만남일 뿐, 예술가 사회, 제도와 비제도, 주류와 비주류의 접선 장소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덧 양계장 소릴 듣고 있다는 얘기였다.

저녁 만찬을 시작할 때, 인사말을 하면서 그 글의 일부를 소개했다. 오늘날의 창작스튜디오를 두고 일각에서 양계장이라고 부른다며, ‘오늘 여기 국립양계장에 모인 우리가 이곳에서 만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하게 얘기해보자’는 취지에서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그날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아련한 밤안개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그날 내가 그곳에서 만난 작가들 가운데는 양계장 무정란을 쏟아내고 있다는 세간의 비판을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우 진지하고 절박하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고민하고 있었다. 미술제도가 한정한 공간 안에서 어떻게 예술적 실천과 예술가로서의 생존을 병행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그들의 육성은 미술관이라는 제도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도 같았다.

지난 수년간 고양스튜디오를 비롯한 많은 레지던스 프로그램 공간들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설펐지만 이제는 매우 중요한 제도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항간에는 미술시장 편향의 작가가 있는가하면 레지던스 편향의 작가가 있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창작스튜디오가 그 위상이 높아지고 다원화하는 만큼 각각의 다른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시점이다. 국립창작스튜디오의 미션이 있다. 국가 단위의 예술정책을 펼치는 공간으로서 국가적 차원에서 이 나라의 예술가들에게 기회와 자극을 제공하고 전국과 전지구의 예술계에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목표 말이다. 여러 얘기가 있겠는데, 지자체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는 나로서는 국립창작스튜디오에서 표준말이 아닌 지역어를 발견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예술마저 표준화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울 경기권 이외의 중부권이나 영남, 호남의 작가들의 지역어를 고양이나 창동에서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일박이일 프로그램이 의도했던 바, 게스트와 호스트 사이의 진한 교감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10여년 전에 미술전문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로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밤에서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매우 귀중한 학습의 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얻는 정보들은 공식적인 간담회나 인터뷰, 탐방, 취재 등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표면적인 정보에 비해서 훨씬 더 농밀한 것들이었다. 그 시간은 진담만을 제공하지 않았다. 긴 시간동안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의미에서의 알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1박2일이 아니라 무박2일일 때가 더 좋았다. 그날도 그랬다. 2층 테라스에 둘러앉아 집단음주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가면서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는 결국 단 두 사람만이 남을 때까지 우리는 인간을 발견하기 위해 긴 대화를 이어갔다.

말과 글의 간극이었다. 시간이 깊이지고 대화에 참여하는 인원이 줄자 일행들의 대화가 각자의 일들에 대한 논평으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 어쩌다 비평적 글쓰기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나는 종종 미술관 큐레이터가 아닌 미술평론가의 입장에서 전시서문이나 리뷰를 쓰곤 한다. 그 글들에 대한 논평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데, 얘기인 즉, 내 생각과는 다르게 글을 대하는 작가 입장에서는 훨씬 더 심난하게 받아들였더라는 얘기다. 그것은 작가와 평론가로서 글로 만난 적이 있는 작가나 그냥 간접적으로 내 글을 대했던 사람들 사이에 공통되는 의견이었다. 지금까지 작심하고 누군가의 작품을 비판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행해본 적이 별로 없었고 그들의 말이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행간을 읽었노라고 했다. 숨길 수 없었던 그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고 했다. 평생에 단 한 번의 기회로 알고 누군가와의 만남을 소중히 하라는 가르침이다. 만남에는 여러 방식이 있겠는데, 사적인 만남과 공적인 만남이 있을 것이고, 제도가 주선하는 만남이 있는가하면 개별적인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만남이 있을 것이다. 국립스튜디오는 만남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계속 일하는 매개자들이나 그곳을 거처가는 예술가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하는 여러 주체들이 각자 나름의 생각으로 만남을 가질 것이다. 그 많은 만남들은 대부분 매우 짧은 순간 스쳐지나간다. 때로 그런 만남들은 매우 어색하거나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러한 결핍과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스튜디오를 방문해서 각각의 작업실을 쓰윽 둘러보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훌쩍 떠날 수밖에 없는 만남 이외의 다른 방식들이 필요하다. 일박이일은 예술가들의 야행성 라이프 스타일에 잘 맞는 괜찮은 자리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한 가지 고언이 있다면, 이 프로그램의 이름 바꾸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무박이일로.

김준기(미술평론가)

2010/09/29 07:12 2010/09/2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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