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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로컬컵

critic & column | 2010/06/30 17:35


월드컵과 로컬컵

월드컵이 한창이다. 월드컵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은 건 2002년의 일이다. 붉은 악마 신드롬으로 거리가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그해의 한국 첫 경기는 폴란드전이었다. 손석희와 브리짓 바르도의 개고기 논쟁이 있었던 터라, 나는 주변 사람들과 ‘개고기 월드컵’이라는 파티를 벌였다. 개고기와 월드컵이 엮이는 게 싫었다. 문화적 차이를 경멸하는 1세계의 저주를 조롱하고 싶었다. 그 다음 경기는 거리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서 봤다. 공놀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거리의 사람들이었다.

시민들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월드컵 이벤트는 위험한 흐름을 동반했다. 전지구를 들었다 놓는 월드컵은 가면 갈수록 공놀이가 아니라 돈놀이에 힘자랑으로 번져가고, 상업주의와 국가주의가 급부상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뒤돌아볼 틈도 없이 온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의 소비 대중으로 직조되고 있었다.

월드컵의 일방주의를 성찰하는 의미로 <로컬컵>(쌈지스페이트, 2002)을 기획했다. 많은 작가들이 월드컵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이한열을 패러디한 조습의 퍼포먼스 사진과 1987년과 2002년의 거리를 교차편집한 박영균의 영상과 페인팅 등 명작들이 탄생했다. 매스미디어와 대중, 광장의 문화정치, 국가와 자본 등 다양한 이슈들 속에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에 관한 성찰이 녹아들었다.

다시 월드컵을 넘어 로컬컵을 생각한다. 월드컵이 전지구적인 차원의 뜬구름 같은 놀이라면 로컬컵은 우리동네 차원의 몸에 와 닿는 삶 그 자체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전지구적 소통이나 국가적 의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터에서 벌어지는 나날의 상황과 풍경이다. 국민으로서 행복을 찾는 것보다 가까운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생활 속의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다. 나라사랑을 선언하기 보다는 동네사랑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최근에 <넥스트 코드> 참여작가 5인을 선정, 발표했다. 김미소, 이원경, 김훤환, 신성호, 조경란.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새 얼굴들이다. 전국적인 예술가, 세계적인 예술가의 출발점은 여기 대전이다. 대전을 위한, 대전에 의한, 대전의 예술가를 주목하는 것이 문화민주주의를 향한 첫걸음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도시의 예술가를 따뜻하게 품어 안을 때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예술가가 나올 수 있다.

염홍철 시장의 취임 첫날 오후 일정에 대전시립미술관 전시 개막식 참석이 있다. 첫 현장 방문지로 미술관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문화시장으로서의 지향성을 감지할 수 있다. 문화정치는 관과 민의 협업에 의해 완성된다. 관료의 통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관민협치(Governance)이다. 문화도시 대전의 로컬컵을 월드컵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상의 축제로 완성하는 일은 시민의 몫이다. 월드컵에서 뛰는 선수들도 어릴 적 동네 축구부터 시작한다. 대전발 예술이 세계적인 예술의 출발점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2010/06/30 17:35 2010/06/30 17:35

남경민의 호시우행접영(虎視牛行蝶泳)

critic & column | 2010/06/30 08:32


남경민의 호시우행접영(虎視牛行蝶泳)

산업재해보험 처리도 안되는 자영업자 같은 처지의 화가에게 있어 어깨와 팔의 통증 같은 직업병은 스스로 관리하고 치유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천형이다. 예술창작. 그 얼마나 진하게 몸과 마음을 다바쳐 부딪혀야만 하는 일이던가. 남경민은 최근의 개인전 이후 관절과 근육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소시적에 접배평자에 잠영과 입영까지 뗀 나로서는 이제 막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음~파~’ 수준의 초보학습생이 대견해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큰 것은 부러움이었다. 나로서는 한 10년 이상 실감하고 있지 못한 몸의 실존을 나날이 재발견하고 있는 그에 대한 부러움이다. 운동은 직업병을 완화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몸을 재발견하는 매우 값진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그는 얼마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그가 당분간 나비처럼 행복하게 유영하는 접영(蝶泳)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를.

고장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운동을 해야만 하는 남경민은 지난 10년간 무섭게 질주했다. 고흐와 자신을 동일시하기까지 했던 30대 초반의 그는 지난 10년간 그는 1백점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 그 가운데 절반은 그림 그리는 것을 생의 목표로 정한 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지낸 세월이었다. 그는 실내공간과 나비를 그리다가 어느날 문득 작업실을 그리기 시작했다. 2004년 작 <고흐의 방>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생각한 실존적 자화상에 가깝다. 안양 석수동 작업실에서 예술가의 작업실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예술가 주체로서의 남경민 자신을 향한 투명한 고백이었다. 그 이후에 송은미술상 우수상을 받았고, 스톤앤워커와 브레인 팩토리에서 현대화랑에 이르기까지 개인전을 연 공간의 폭도 다양해졌다. 그동안 그의 그림은 한결같이 작업실 이야기였다. 석수동(안양) 작업실에서 출발한 그는 고양창작스튜디오와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를 거쳐 지금은 청계동(의왕) 작업실에 자리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남경민과 나는 나이가 같다는 점 이외에 또 한 가지 닮은 점이 있다. 작업실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작업실 그림으로 나는 작업실론으로 작업실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작업실 그림으로 브레인팩토리에서 개인전을 가지기 얼마전, 나는 <작업실 리포트>(2003)를 기획했다. 작품론이나 작가론의 관점이 아닌 작업실론의 관점으로 예술을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작업실의 변동 양상을 가지고 예술의 변화를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지난 5년여동안 서양미술의 대가들의 작업실 공간을 통해서 예술가와 예술작품들의 면면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업실 그림은 대가들의 작업실에 빗대어 남경민 자신의 실존을 들여다보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대가에 대한 오마주이자 예술에 대한 예술이다. 작업실 그림은 예술가 그림이나 마찬가지이다. 작업실의 주인인 예술가의 몸을 제외한 공간의 구성과 기물들을 비롯한 온갖 상징 장치들을 통해서 그 예술가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남경민의 작업실 그림이다.

큐레이터와 평론가 질을 겸하고 있는 나는 작가와 만나면 인터뷰로 시작해 카운슬링에 주제넘는 컨설팅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경민과 나는 동갑의 부담없음을 배경으로 비교적 신랄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지금까지의 남경민 그림은 실존적 고백으로부터 대가에 대한 오마주로 옮겨왔다.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그는 지난 5년여동안 매우 빠르게 압축성장했다. 그동안 그는 다양한 변주를 풀어낼 시간도 없이 대가들의 작업실 탐방으로 일관해야했다. 그러다보니 그가 좋아하는 연구와 탐색을 거친 프로젝트성 작업을 풀어낼 시간이 없었다. 아직 남은 것들이 있다. 좀더 크리티컬하거나 좀더 시티컬해질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령 일생의 야심작으로 자신의 아틀리에를 그린 리얼리스트이자 액티비스트, 쿠르베는 어떤가? 거리의 예술가 바스키아나 키스 헤링도 있다. 잡동사니 고물상 같은 백남준 작업실도 이미 그의 머리 속에 있다. 그 다음은 유럽미술에 심취해 있는 지금의 멘탈리티를 한국의 고전과 근대 화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보는 일이다.

올여름 제주도 서귀포에서 임시거주 작업을 할 예정이니 이중섭 작업실 그림이 나올 것이고, 창신동의 박수근, 수덕사나 파리의 이응노 등도 나름 가능할 것 같은데, 문제는 조선 이전의 예술가들이다. 남경민 당사자가 아닌 내 머릿 속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왜일까? 먹그림 화가들을 유화로 그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 아니면 우리 고전에 대한 무지와 몽매? 아니면 자국의 과거를 찌질한 것으로 폄하하는 식민성? 아무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문득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렸던 <한국미술사 +화가의 초상>(2009)이 떠올랐다. 그 전시를 기획한 최열 선배와 소개팅을 시키는 것으로 한국 고전에 대한 얘기를 매듭지었다. 선배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법. 올해가 호랑이 해라며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되 한걸음씩 내딛는 소걸음)이라는 신년문자를 보낸 그에게 ‘호시탐탐 우측보행하는 이 시대를 반영한 멘트’라는 답문을 보냈던 바 있다. 호랑이-소와 나비의 만남이다. 유럽을 유영하고 있는 남경민의 나비 날개 짓이 최열 선배의 호랑이 눈에 소걸음과 만나면 뭔가 아름다운 말씀이 오갈 것 같다.

지금 우리 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예술가들은 어떨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다. 치열한 전장과도 같은 양평의 안창홍 작업실은 어떨까? 작업실의 예술가 자신을 성찰했던 최진욱 작업실도 있다. 포르노그라피 공장 최경태 작업실은 또 어떨까? 빈 건물을 점거해서 작업실 공간으로 사용하는 점거아틀리에도 있고, 문래동 공장지대나 대인시장 같은 상가에 자리잡은 뜨거운 공간도 있다. 고전적인 작업도구들 대신에 영상과 컴퓨터 장비로 가득찬 액티비스트 아트스트의 작업실도 있다. 여기저기 떠도는 레지던시 작가가 있는가 하면 붙박이 작업실에 온갖 물건들을 빼곡히 모아놓는 넝마주이 작가도 있다. 남경민의 공간탐사는 유럽예술가들에서 전지구의 예술가들로, 고전이나 모던에서 컨템포러리로, 아티스트의 공간에서 아티스트 아닌 사람의 공간으로까지 무한히 넓어질 ‘착한 아이템’임에 틀림없다. 공간의 상징을 통해서 인간의 내포와 외연을 담아낸다는 것.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남경민은 근대 시기의 거장들을 그들의 작업실로 불러 세워 그들과 대화한다. 그들의 작품 이미지를 등장시키는 것은 물론 주인공의 세계를 상징하는 도상들을 보여준다. 그는 예술가 주체의 몸을 배제한 상태에서 그 예술가의 세계를 집약적인 상징언어들로 예술가의 세계를 표현한다. 남경민의 회화에는 예술가의 면면을 꿰뚫는 상징들이 가득 담겨있다. 그는 작업실 공간을 통해서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은유한다. 작업실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예술가를 공간의 기억을 통해서 재현하는 남경민의 회화는 그래서 실재 넘어서는 실재로 작동한다. 남경민의 그림은 주인공의 부재나 결핍을 대신해서 채워주는 상징들을 통해서 더 넓은 해석의 지평을 열어준다. 남경민의 서사는 그림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림으로 끝난다. 그의 그림은 그림에 의한 그림을 위한, 그림에 대한 그림이다. 따라서 그가 그림 내부가 아닌 그림 외부로부터 서사를 끌어오는 변화의 지점에 서 있다. 예술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즉자적인 자세에서 예술 바깥의 리얼리티로부터 지금 여기의 서사를 발견하는 자세가 필요하는 얘기다.

물론 지금까지 그가 천착한 고전 속의 상징게임들과 그 속에 개입하는 나비로서의 예술가 주체의 문제는 충분히 흥미롭게도 진지한 성찰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하는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가 안양 석수동 작업실에서 절치부심했던 30대 중반의 그 어느 대목에서 작업실을 지키고 있는 자신으로부터 조용필보다 더 고독하게 살다가 고흐라는 사나이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절절한 실존의 문제로 되돌아가 작업실 바깥의 꿈틀거리는 리얼리티와 대면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아마도 나보다 그 자신이 더욱 깊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작업실을 통해서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는 성찰의 메시지도 가능할 것이다. 작업실의 심리학과 작업실의 사회학을 오가는 분주한 발걸음 속에서, 고독한 창작의 산실로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작업실 담론을 생각한다. 부디 남경민의 예술이 예술 너머의 예술을 향해 호시우행접영(虎視牛行蝶泳)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를.

2010/06/30 08:32 2010/06/30 08:32

전문성과 지역성의 동행

critic & column | 2010/06/24 18:25


전문성과 지역성의 동행

지금으로서는 한 시대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공미술은 10년 전만 해도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공공미술보다는 환경조형물이라는 이름이 공공장소에서의 미술을 대변했다. 1986년 이래 건축물미술장식품으로 대한민국 도처에 자리 잡은 미술작품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정작 시민사회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을 찾아보기는 드물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 공공미술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한 세미나에서 공공미술 논의에 대해 부분적으로 반대한 적이 있다. 건축물미술장식품 제도를 공공미술제도로 바꾸자는 데는 완전하게 찬성이었다. 그러나 전국 각 지역에 공공미술위원회를 설치하여 이 제도를 운영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즈음에 영리법인에서 공공미술, 정확히 말하면 건축물미술장식품 컨설팅 일을 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각 도시의 특성들을 잘 알고 있었다.
요즘은 많이 나아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건축물미술장식품은 좋은 작품을 세우기보다는 각 도시에서 힘자랑, 돈자랑 하는 각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복마전이었다. 지역성이나 전문성은 안중에도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한 도시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열심히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백방에 수소문해서 가능성이 높은 젊은 작가 몇 명과 인터뷰를 마친 상태였는데, 본부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그 도시의 유력자 모씨와 통화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 이러한 작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고 설명했지만 그 유력자의 답변은 단호했다. 뜻밖의 일을 당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중진작가를 만나 일을 치르고 말았지만, 지금까지도 당시 공공기관의 장이었던 그의 행동을 잊을 수가 없다.
각 지역 단위에 공공미술위원회를 설치하고 공공기금을 조성해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뻔한 일이었다. 각 지역의 예술가 혹은 기획자들이 지역 전문가와, 주민, 건축가 등과 협업의 차원에서 대화하고 타협해서 공공영역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역부족인 상황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다. 물론 그 사이에 한국 사회는 공공미술 부문의 좋은 경험들을 많이 축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어난 공공미술 담론, 2006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문화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각 지역 자치단체와 문화재단 등에서 진행하고 있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들은 이전의 양상과는 사뭇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지역별 편차는 극심하다. 전문성에 입각한 일처리보다는 정치나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지배하는 예술경영/매개 분야의 현실은 여전히 희뿌연 안개속이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합리성이 절실하다. 한국의 지역 도시들은 아직 체계적인 영역분할을 통한 예술계 생태의 성립을 이루지 못했다. 인구 1백만이 넘는 거대도시가 다섯 개나 되는데도 서울을 제외한 지역 거점도시에서 예술생산과 매개가 자생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예술경영/매개자 인력의 전문성 문제는 더 심각하다. 각 도시별로 예술 영역의 전문인력 양산 시스템은 이미 수요를 초과할 정도로 공급 과잉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예술생산을 소비로 연결할 매개자 전문인력을 양산하는 시스템은 태부족이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예술 매개자를 길러내는 교육 시스템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예술 관련 대학의 학부나 대학원에서 매개자를 길러내는 데 매우 인색한 형편이다. 실기 관련 교수들의 자리를 줄이고 이론/경영 부분의 학제를 만드는 일이니, 문제제기는 있으되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매개자들을 수용할만한 기관이 없다는 게 악순환의 연속을 만드는 이유이다. 물론 매개자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인력의 지위와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전문 인력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전문가의 영역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실력을 갖춘 인재를 채용해서 제대로 일을 풀어나가기보다는 학연과 지연, 인맥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지방도시의 예술 관련 매개 인력들의 전문성은 그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예술매개자 전문인력이 일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는 강력한 중심주의 프레임 속에 있다. 물론 개발경제의 추진에 필요한 몇몇 지역은 경제적으로 수혜를 누린 사례도 있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제반 영역에 있어 결핍과 부재의 상황이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난 10여 년 전부터 도시 간 소통의 활성화,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른 제도의 정비 등에 따라 지역 간 편차가 줄어들 기미가 보인다. 이러한 조짐이 확고하게 자리 잡으려면 개별 주체들뿐만 아니라 공론장 차원의 각성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경영/매개 관련 전문가들이 제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기한 바와 같이 각 지역의 예술경영 전문 인력이 부재하거나 부족하다는 인식은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을 모색하게 한다. 아직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사례를 일반적인 관행으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역 활동가로서의 예술인들을 들 수 있다. 각 지역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대안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예술가, 예술 매개자들이 해당 지역은 물론 전국적인, 또는 국제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례들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고 있는 이들 공간들만 해도 인천과 서울, 안양, 안산, 수원, 원주, 청주, 청송, 부산, 광주, 진안, 대전, 공주 등 전국 각지에 분포해있다. 오히려 이들 공간은 벌써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한 공간들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공간과 개인들이 각 지역을 기반으로 커뮤니티 아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서울이라는 단일한 중심을 벗어나서 각 지역의 다양한 거점을 중심으로 국내외를 오가며 지역 간 교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역의 예술을 얘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것이 인프라의 부재이다. 하지만 물리적 인프라보다 중요한 것인 인적 인프라이다. 좋은 공간보다 중요한 것이 좋은 경영인/매개자를 세우는 일이다. 전국에 산재한 문화공간들이 제 기능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프로그래머/큐레이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전문인력의 부재나 결핍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지역간 연대가 있다. 각 지역의 예술 전문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넘치는 것을 나누고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것이다. 디지털과 인터넷, 그리고 영상이 매개하는 정보양식의 비약적인 발전은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는 데 큰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더 이상 지역의 경계가 치명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정보양식 아래의 예술경영/매개자들은 서로의 부재와 결핍을 보충하고 대리하는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 열린 《A4Demo》전은 각 지역의 작은 힘이 열배 이상의 확산을 만들어냈다. 각 지역에서 섭외한 예술작품들을 함께 나눔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경우이다. 아트포액트(www.art4act.net) 주최로 열린 이 전시는 전국의 13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는데, 오프라전시공간을 기반으로 디지털 데이터를 공유한 온라인 네트워크 프로젝트로까지 확장됐다. 서울의 Lab39, 청주의 톡톡, 광주의 미나리, 부산의 아지트, 수원의 대안공간눈 등 익히 알려진 공간도 있지만, 각 도시의 풀뿌리 문화지형을 이루는 새로운 공간들도 대거 참여해 변화 양상을 실감하게 했다. 의정부의 문화살롱공과 대구의 작은공간이소, 제주의 이디가갤러리, 대전의 카페이데, 춘천의 스페이스공 등 새로운 매개공간/매개자들의 활동이 눈에 띄었다. 안산의 스푼빌, 전주의 남부시장하늘정원 등과 같은 커뮤니티스페이스도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퍼져나가고 있다. 예술 영역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변화의 양상이다. 각 지역에서 나고 자란 예술인 또는 예술경영/매개자가 그 지역의 전문가로서 도시나 공동체 차원의 예술적 소통을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는 것을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주의(localism)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지역의 예술 전문가들이 다른 지역과의 네트워킹을 통해서 사유와 실천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을 상호지역주의(inter-localism)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소수의 운동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관행과 제도의 차원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교육과 시장, 개인, 기관, 관료사회가 예술분야의 지역 전문가들과 협업하려는 자세를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전지구화가 개인에게 내리 꽂는 보편언어가 횡횡하는 시대이다. 지역성과 전문성의 동행은 지역적 사유와 지역적 실천에서 나온다. 그것이 전지구적 보편언어 속에서 지역 공동체의 지방언어를 살리는 길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예술경영지원센터 웹진 기고문 100623

2010/06/24 18:25 2010/06/24 18:25

배달래와 홍상식 :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critic & column | 2010/06/22 20:08


배달래
6.16-29, 팔레 드 서울

배달래의 보디페인팅 퍼포먼스는 몸과 벽과 바닥 전체에 열정적인 에너지의 흔적을 남긴다. 모델의 몸을 따라 흐르는 그의 격렬한 붓질은 퍼포먼스, 사진, 페인팅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원소스 멀티유즈로 진화한다. 근엄한 백학도와 봉황도, 송죽문호 등의 고전 이미지들과 뒤섞인 남녀의 누드들은 시공을 초월해서 새로운 만남을 주선한다. 거리에서 만난 예술가, 직장인, 음악가 등과 펼치는 프로젝트도 이 작가의 넓은 운신 폭을 잘 보여준다.

홍상식
2010.6.10-6.23, 모리스갤러리

속이 텅 빈 길다란 원통 모양의 빨대 더미에 볼륨을 더해서 부조형식의 일루전을 창출하는 홍상식의 작품이 빛을 만났다. 프레임 속에서 비치는 조명으로 인해서 입술과 꽃잎, 구두, 그리고 누드에 이르기까지 송상식의 빨대부조는 빛의 세계로 진화했다. 정형화한 스타일로부터 한걸음 이탈해 변주를 감행한 이번 전시는 한 작가에게 있어 스타일과 내러티브가 얼마나 지난하게 얽혀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 서울아트가이드, 평론가가 선정한 6월의 전시 기고문

2010/06/22 20:08 2010/06/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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