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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대인시장 프로젝트 리뷰 : 파견예술과 상호지역주의

critic & column | 2010/01/28 07:44


2009 대인시장 프로젝트 리뷰
파견예술과 상호지역주의

2009년 대인시장 프로젝트에는 개인작가들 뿐만이 아니라 대안공간들이 참가했다. 마산의 프로젝트쏠, 부산의 오픈스페이스배, 안산의 커뮤니티스페이스리트머스, 그리고 부산의 아지트, 이렇게 네 개 공간이다. 이들 각 지역의 대안공간들은 지역의 대안성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그룹이며 단체이자 공간이다. 이들은 중단기 레지던스 개념으로 작가들을 대인시장에 파견해서 일관된 현장미술 활동을 펼쳤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도 현장의 경험이었으며 새로운 체험을 통한 지역간 소통이었다. 개별 공간마다 각각의 프로그램 성격이 다른 이들 공간, 단체들이 대인시장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그 공동체와 호흡하는 데는 일정정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들에게 특정한 성과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프로젝트쏠은 마산의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공공미술을 펼쳐온 단체로서 탁월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대인시장의 다양한 주체들과 협업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재래시장이라는 동질성의 경험은 프로젝트쏠의 참여주체들이 무엇을 해야할지에 관한 선행 이해를 바탕으로 빠른 시간 안에 이웃한 작가, 단체들과 협업하는 열린 마음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이들은 주변의 작가나 상인들에게 필요한 만들기나 그리기를 함께 함으로써 현장에서의 실천력을 인정받았다. 마산의 재래시장과 광주의 재래시장서 차이와 같음을 발견하는 일을 이들의 실천적 예술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대인시장을 예술생산을 위한 장소로만 이해하지 않고 그 너머의 문화생산을 위해 자발적으로 동참해온 이들의 경험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커뮤니티스페이스리트머스는 안산의 경계없는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다문화 활동을 펼치는 공간이다. 이들은 국내외의 왕성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대와 협업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이번 대인시장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다소 한계를 보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공간에 대한 이해나 프로젝트의 접근 방식은 다분히 실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대인시장이 보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개방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지속적으로 동행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예술이 감성적 소통의 영역인 동시에 인식론적인 소통의 방식이라는 점을 이 공간의 활동을 통해서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보탠다.

부산의 아지트는 독립문화공간으로서 대인시장의 매개공간미나리와 함께 한국예술위원회의 다원예술매개공간 지원대상인 공간이다. 이들은 부산대 앞의 젊은이 문화가 독립문화이자 저항문화로 자리잡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독립문화단체인 재미난 복수를 모태로 한다. 이들은 아지트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작가들을 대인시장에 파견해서 작가 나름의 공간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그 바깥과 연계한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앞서 말한 바처럼 성과보다는 교류에 무게를 둔 이번 프로그램의 특성상 사업의 지속성이 담보된다면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오픈스페이스배는 부산의 대안공간이자 레지던스 프로그램 공간으로서 대인시장의 대안공간 교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특히 토론 프로그램을 시도하거나 신진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참여작가를 대인시장에 파견하는 등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토론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의 문제점과 한계 상황에 관한 의견 교환가지도 오갔다고 들었다. 도시와 도시, 지역과 지역, 공간과 공간의 교류가 상호성에 입각한 내밀한 네트워크로 지속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두 공간 사이는 물론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여러 주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의 간략한 언급에서 파견이라는 말을 몇 차례 반복했다. 파견이란 특정 공간이나 단체에서 단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용역을 제공하는 일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용불안정을 대표하는 파견노동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 용어를 예술가들의 연대활동에 적용하는 것은 다소간의 역설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 역설을 이용해 예술가 주체의 활동방식을 되짚어 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서울의 용산참사 현장예술 작가들이 스스로를 파견미술가라고 부른 사레와 더불어, 대인시장 프로젝트의 대안공간 교류 프로그램은 파견예술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짚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대인시장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한 단체가 예술가를 다른 단체나 공간에 파견했다는 것의 의미를 잘 새길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예술가는 수동적인 고용노동이 아니라 능동적인 예술노동의 주체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자율적인 주체이다. 그러한 예술가들이 스스로 파견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활동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파견 개념은 예술가 주체가 공동체에 결합하는 데 있어 미션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표방하는 방식이다. 무목적의 목적성을 내세우는 예술가들의 관행에 대인시장 프로젝트의 미션을 위해 이 공간에 임시 정주하는 예술가들의 체험과 실천은 예술가들의 행동방식을 새롭게 구조화하는 데 초석이 될 중요한 과정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예술생산의 과정에 지역이나 공간의 특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상호 대화와 협업을 통해서 참여하고 개입하는지를 이들 파견 예술가들을 통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타 지역의 대안공간이나 단체들이 대인시장에 참여하고 동행한 결과는 새로운 경험과 차이의 확인, 나아가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상호지역주의 관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다. 상호지역주의는 지역과 지역의 나눔에 있어 서로의 차이와 같음을 나누는 과정을 전제로 한다. 예술을 인간의 감성적 소통을 위한 보편적 언어로 규정했을 때 발생하는 중심주의 관점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이 특수성을 용인하거나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개념이 지역주의 관점이다. 시각언어의 특수성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문화적 종다양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에 지역주의, 나아가 상호지역주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대인시장 프로젝트가 지역공동체의 소통이라는 특수한 국면을 전지구적 보편 언어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바로 상호지역주의라는 열린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2009 대인시장 프로젝트 자료집] 기고문 : 대안공간 교류 프로그램 리뷰

2010/01/28 07:44 2010/01/28 07:44

용산예술 리뷰 : 여기 예술이 살아있다

critic & column | 2010/01/28 06:12


용산예술 리뷰 : 여기 예술이 살아있다

2009년 1월 20일.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극의 현장을 접했다. 그 후로 1년이 다 되어서야 민간인 희생자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미결과제를 남겨둔 것이었지만 협상 타결에 따라 고인들을 땅에 묻기까지 정치와 사회, 종교, 언론 등 각계의 주체들이 그들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공론의 장을 이어갔다. 이 글은 그 용산참사 공론장에 예술의 이름으로 함께 한 아름다운 실천이 있었다는 점을 잊지 않기 위해 주간지와 용산예술 자료집에 실었던 필자의 글을 간추려 몇몇 작품과 논점을 중심으로 고쳐 적은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용산현장을 찾아 현실을 체험하고 예술작품을 쏟아냈다. 미술가들은 참사 직후 <망루전>을 꾸렸다. 사적소유, 재개발, 생존권, 자본과 권력 등의 의제를 다룬 기획전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전주, 대구, 울상, 광주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그것은 서울에서 벌어진 참사를 한 도시의 특수한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로 확장하기 위한 공론장으로 작동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뒷 건물에 만든 레아미술관은 현장을 지키는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했다. 그것은 참사 현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현장에 대한 상황 인식을 매개하는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용산참사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현실의 정황을 헤아리게 하는 애도의 예술이었으며, 자본과 권력의 폭력이 나약한 개인들에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감성의 정치학이었다. 용산예술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여기 사람이 있다>이다. 용산참사 직후에 나온 이윤엽의 이 판화작품은 걸개 그림 뿐만 아니라 수백장의 판화와 티셔츠 프린트로도 널리 쓰였다. 하늘을 떠받히며 절규하는 손, 웅크리고 앉아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이윤엽은 용산 현장의 절규를 담았다.

2010년 10월 9일의 장례식 날 쓰인 열정은 전진경의 붓그림 원화를 확대 프린트한 것이다. 수묵채색화의 독특한 기법을 잘 살린 이 그림은 간결하게 흐르는 먹선과 얼굴에만 색을 입혀 영정그림의 일반적인 도식과는 다른 감성을 보여주었다. 열사부활도는 이윤엽의 판화를 원작으로 한 대형 인쇄물로서 분노와 저항의 이미지를 담는 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서로 팔짱을 낀 다섯 열사들이 환한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애도의 감성학과 분노의 정치학을 동반한 거리의 영정과 만장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는 전유이다.

참사현장을 은유적인 작품으로 처리해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발표한 작품도 있다. 상호대립하고 충돌하는 가치의 문제를 명료한 시각언어로 보여준 노순택의 <그날의 남일당>이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옥상 망루의 화재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그는 불에 타 일그러진 망루를 찍었고, 그 일그러진 철판들이 만들어낸 곡선의 상하좌우를 극단적인 흑백대비로 단순화했다. 그 결과 프레임 안쪽의 화면은 추상적인 선의 흐름이 지배하는 흑과 백 두 개의 면으로 나뉘었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실의 모습을 담은 역작이다.

용산의 예술가들은 현장을 통해서 예술가로서의 현실인식을 현장실천으로 옮긴 행동주의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정치와 사회의 비정한 맥락을 벗어나 인간의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영혼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토대로 현장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우리시대 지식인의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 그것은 예술생산을 상품생산과 등치시키는 시장주의 편향과는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술가들이 자율결정에 따른 지식생산을 염원하는 자율적 주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들 용산의 예술가들은 공론장에 참여한 자율적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각성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협업과 연대로서의 예술행동이다. 협업은 개인과 장르와 사회를 향한 예술가들의 열린 태도에서 나온다. 물론 개별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예술가 주체의 사적인 체험을 표현한 시각표현물로서 공공성을 향한 절차와 방법을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콘텐츠를 환류하는 방법자체가 상당히 차별화한 공공적인 것이었으므로 용산 예술은 넓은 의미에서의 공론장, 또는 공공영역으로서의 예술실천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다양한 참여주체들은 상호이질적인 언어와 방법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 그 다양성을 맥락화 하고 증폭하는 역할을 맡은 주체 역시 예술가 자신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상징투쟁으로서의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확인시켰다. 예술은 상징체계를 이용해 가치의 문제를 다룬다. 용산의 예술가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성찰적 태도로 그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나아가 그들은 참사의 근저에 깔린 우리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태도를 가졌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그들은 용산참사 현장을 둘러싼 지난 1년간의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시각언어로서 참여하고 개입했다. 그들이 다룬 것은 죽음이라는 현상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생명의 희망이었다.

예술은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가? 용산참사 현장을 다룬 예술 작품들은 사회적 이슈의 현장과 만나 우리 시대의 고통을 기록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는 예술행동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우리 삶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며, 사회적 의제에 후행하는 작업실의 사유를 넘어 생동하는 현장에 함께 뛰어드는 예술적 소통이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절규한 용산의 예술은 ‘여기 예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현장의 예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화폐를 발견하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는 동시대예술에 대해 낮은 깊은 목소리로 예술체제의 변동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월간미술 2010년 2월호 기고문

* 한겨레21과 용산참사현장미술자료집에 실은 글을 따다가 다시 씀.

2010/01/28 06:12 2010/01/28 06:12

"르네상스에서 현대미술까지"라는 주제에 관한 단상

critic & column | 2010/01/28 04:56


"르네상스에서 현대미술까지"라는 주제에 관한 단상

르네상스 예술은 통합의 가치와 원형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동시에 르네상스는 예술을 기술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영역으로 성립시키는 데 씨앗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 이후 수 세기동안 서구의 미술가들은 종교와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 도전과 실험을 거듭했다. 인상주의는 그 씨앗을 근대적인 예술개념으로 이끈 전환기의 이념이다. 그것은 예술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린 서구 근대사회의 힘이었다.

20세기 예술은 자율성을 획득한 예술가 주체들이 예술영역을 확장한 것인 동시에 예술의 영역을 예술 그 자체로 환원한 결과를 낳았다. 그에 대한 반성이 탈근대 예술이다. 한국 또는 동아시아 지역의 예술은 20세기 서구예술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점차 독자적인 시각언어를 구축했나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문화적 독자성이라기보다는 전지구적 표준화에 가깝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전지구화의 영향은 예술영역에 있어서도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촉발하고 있다.

전지구적인 보편언어로서의 현대미술은 그러나 그 극단에서 다시 미술의 지위와 역할을 물을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예술을 가늠하는 여러가지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예술을 성립시킨 역사에 관한 성찰을 배경으로 현대미술의 향배를 가늠해보는 것이 절실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원형적 사유와 실천이 탈근대적 기획과 맞닿아있는 그 지점에서, 동아시아에서 예술이 수행했던 통섭의 예술, 공동체 예술의 원형을 재발견함으로써 동시대 예술의 체제변동을 깊이 들여다볼 시점이다.


2010/01/28 04:56 2010/01/28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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