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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대인시장 프로젝트 리뷰 : 파견예술과 상호지역주의

critic & column | 2010/01/28 07:44


2009 대인시장 프로젝트 리뷰
파견예술과 상호지역주의

2009년 대인시장 프로젝트에는 개인작가들 뿐만이 아니라 대안공간들이 참가했다. 마산의 프로젝트쏠, 부산의 오픈스페이스배, 안산의 커뮤니티스페이스리트머스, 그리고 부산의 아지트, 이렇게 네 개 공간이다. 이들 각 지역의 대안공간들은 지역의 대안성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그룹이며 단체이자 공간이다. 이들은 중단기 레지던스 개념으로 작가들을 대인시장에 파견해서 일관된 현장미술 활동을 펼쳤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도 현장의 경험이었으며 새로운 체험을 통한 지역간 소통이었다. 개별 공간마다 각각의 프로그램 성격이 다른 이들 공간, 단체들이 대인시장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그 공동체와 호흡하는 데는 일정정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들에게 특정한 성과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프로젝트쏠은 마산의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공공미술을 펼쳐온 단체로서 탁월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대인시장의 다양한 주체들과 협업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재래시장이라는 동질성의 경험은 프로젝트쏠의 참여주체들이 무엇을 해야할지에 관한 선행 이해를 바탕으로 빠른 시간 안에 이웃한 작가, 단체들과 협업하는 열린 마음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이들은 주변의 작가나 상인들에게 필요한 만들기나 그리기를 함께 함으로써 현장에서의 실천력을 인정받았다. 마산의 재래시장과 광주의 재래시장서 차이와 같음을 발견하는 일을 이들의 실천적 예술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대인시장을 예술생산을 위한 장소로만 이해하지 않고 그 너머의 문화생산을 위해 자발적으로 동참해온 이들의 경험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커뮤니티스페이스리트머스는 안산의 경계없는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다문화 활동을 펼치는 공간이다. 이들은 국내외의 왕성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대와 협업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이번 대인시장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다소 한계를 보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공간에 대한 이해나 프로젝트의 접근 방식은 다분히 실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대인시장이 보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개방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지속적으로 동행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예술이 감성적 소통의 영역인 동시에 인식론적인 소통의 방식이라는 점을 이 공간의 활동을 통해서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보탠다.

부산의 아지트는 독립문화공간으로서 대인시장의 매개공간미나리와 함께 한국예술위원회의 다원예술매개공간 지원대상인 공간이다. 이들은 부산대 앞의 젊은이 문화가 독립문화이자 저항문화로 자리잡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독립문화단체인 재미난 복수를 모태로 한다. 이들은 아지트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작가들을 대인시장에 파견해서 작가 나름의 공간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그 바깥과 연계한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앞서 말한 바처럼 성과보다는 교류에 무게를 둔 이번 프로그램의 특성상 사업의 지속성이 담보된다면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오픈스페이스배는 부산의 대안공간이자 레지던스 프로그램 공간으로서 대인시장의 대안공간 교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특히 토론 프로그램을 시도하거나 신진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참여작가를 대인시장에 파견하는 등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토론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의 문제점과 한계 상황에 관한 의견 교환가지도 오갔다고 들었다. 도시와 도시, 지역과 지역, 공간과 공간의 교류가 상호성에 입각한 내밀한 네트워크로 지속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두 공간 사이는 물론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여러 주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의 간략한 언급에서 파견이라는 말을 몇 차례 반복했다. 파견이란 특정 공간이나 단체에서 단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용역을 제공하는 일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용불안정을 대표하는 파견노동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 용어를 예술가들의 연대활동에 적용하는 것은 다소간의 역설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 역설을 이용해 예술가 주체의 활동방식을 되짚어 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서울의 용산참사 현장예술 작가들이 스스로를 파견미술가라고 부른 사레와 더불어, 대인시장 프로젝트의 대안공간 교류 프로그램은 파견예술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짚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대인시장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한 단체가 예술가를 다른 단체나 공간에 파견했다는 것의 의미를 잘 새길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예술가는 수동적인 고용노동이 아니라 능동적인 예술노동의 주체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자율적인 주체이다. 그러한 예술가들이 스스로 파견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활동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파견 개념은 예술가 주체가 공동체에 결합하는 데 있어 미션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표방하는 방식이다. 무목적의 목적성을 내세우는 예술가들의 관행에 대인시장 프로젝트의 미션을 위해 이 공간에 임시 정주하는 예술가들의 체험과 실천은 예술가들의 행동방식을 새롭게 구조화하는 데 초석이 될 중요한 과정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예술생산의 과정에 지역이나 공간의 특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상호 대화와 협업을 통해서 참여하고 개입하는지를 이들 파견 예술가들을 통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타 지역의 대안공간이나 단체들이 대인시장에 참여하고 동행한 결과는 새로운 경험과 차이의 확인, 나아가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상호지역주의 관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다. 상호지역주의는 지역과 지역의 나눔에 있어 서로의 차이와 같음을 나누는 과정을 전제로 한다. 예술을 인간의 감성적 소통을 위한 보편적 언어로 규정했을 때 발생하는 중심주의 관점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이 특수성을 용인하거나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개념이 지역주의 관점이다. 시각언어의 특수성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문화적 종다양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에 지역주의, 나아가 상호지역주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대인시장 프로젝트가 지역공동체의 소통이라는 특수한 국면을 전지구적 보편 언어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바로 상호지역주의라는 열린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2009 대인시장 프로젝트 자료집] 기고문 : 대안공간 교류 프로그램 리뷰

2010/01/28 07:44 2010/01/28 07:44

용산예술 리뷰 : 여기 예술이 살아있다

critic & column | 2010/01/28 06:12


용산예술 리뷰 : 여기 예술이 살아있다

2009년 1월 20일.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극의 현장을 접했다. 그 후로 1년이 다 되어서야 민간인 희생자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미결과제를 남겨둔 것이었지만 협상 타결에 따라 고인들을 땅에 묻기까지 정치와 사회, 종교, 언론 등 각계의 주체들이 그들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공론의 장을 이어갔다. 이 글은 그 용산참사 공론장에 예술의 이름으로 함께 한 아름다운 실천이 있었다는 점을 잊지 않기 위해 주간지와 용산예술 자료집에 실었던 필자의 글을 간추려 몇몇 작품과 논점을 중심으로 고쳐 적은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용산현장을 찾아 현실을 체험하고 예술작품을 쏟아냈다. 미술가들은 참사 직후 <망루전>을 꾸렸다. 사적소유, 재개발, 생존권, 자본과 권력 등의 의제를 다룬 기획전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전주, 대구, 울상, 광주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그것은 서울에서 벌어진 참사를 한 도시의 특수한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로 확장하기 위한 공론장으로 작동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뒷 건물에 만든 레아미술관은 현장을 지키는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했다. 그것은 참사 현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현장에 대한 상황 인식을 매개하는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용산참사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현실의 정황을 헤아리게 하는 애도의 예술이었으며, 자본과 권력의 폭력이 나약한 개인들에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감성의 정치학이었다. 용산예술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여기 사람이 있다>이다. 용산참사 직후에 나온 이윤엽의 이 판화작품은 걸개 그림 뿐만 아니라 수백장의 판화와 티셔츠 프린트로도 널리 쓰였다. 하늘을 떠받히며 절규하는 손, 웅크리고 앉아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이윤엽은 용산 현장의 절규를 담았다.

2010년 10월 9일의 장례식 날 쓰인 열정은 전진경의 붓그림 원화를 확대 프린트한 것이다. 수묵채색화의 독특한 기법을 잘 살린 이 그림은 간결하게 흐르는 먹선과 얼굴에만 색을 입혀 영정그림의 일반적인 도식과는 다른 감성을 보여주었다. 열사부활도는 이윤엽의 판화를 원작으로 한 대형 인쇄물로서 분노와 저항의 이미지를 담는 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서로 팔짱을 낀 다섯 열사들이 환한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애도의 감성학과 분노의 정치학을 동반한 거리의 영정과 만장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는 전유이다.

참사현장을 은유적인 작품으로 처리해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발표한 작품도 있다. 상호대립하고 충돌하는 가치의 문제를 명료한 시각언어로 보여준 노순택의 <그날의 남일당>이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옥상 망루의 화재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그는 불에 타 일그러진 망루를 찍었고, 그 일그러진 철판들이 만들어낸 곡선의 상하좌우를 극단적인 흑백대비로 단순화했다. 그 결과 프레임 안쪽의 화면은 추상적인 선의 흐름이 지배하는 흑과 백 두 개의 면으로 나뉘었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실의 모습을 담은 역작이다.

용산의 예술가들은 현장을 통해서 예술가로서의 현실인식을 현장실천으로 옮긴 행동주의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정치와 사회의 비정한 맥락을 벗어나 인간의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영혼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토대로 현장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우리시대 지식인의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 그것은 예술생산을 상품생산과 등치시키는 시장주의 편향과는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술가들이 자율결정에 따른 지식생산을 염원하는 자율적 주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들 용산의 예술가들은 공론장에 참여한 자율적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각성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협업과 연대로서의 예술행동이다. 협업은 개인과 장르와 사회를 향한 예술가들의 열린 태도에서 나온다. 물론 개별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예술가 주체의 사적인 체험을 표현한 시각표현물로서 공공성을 향한 절차와 방법을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콘텐츠를 환류하는 방법자체가 상당히 차별화한 공공적인 것이었으므로 용산 예술은 넓은 의미에서의 공론장, 또는 공공영역으로서의 예술실천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다양한 참여주체들은 상호이질적인 언어와 방법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 그 다양성을 맥락화 하고 증폭하는 역할을 맡은 주체 역시 예술가 자신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상징투쟁으로서의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확인시켰다. 예술은 상징체계를 이용해 가치의 문제를 다룬다. 용산의 예술가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성찰적 태도로 그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나아가 그들은 참사의 근저에 깔린 우리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태도를 가졌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그들은 용산참사 현장을 둘러싼 지난 1년간의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시각언어로서 참여하고 개입했다. 그들이 다룬 것은 죽음이라는 현상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생명의 희망이었다.

예술은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가? 용산참사 현장을 다룬 예술 작품들은 사회적 이슈의 현장과 만나 우리 시대의 고통을 기록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는 예술행동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우리 삶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며, 사회적 의제에 후행하는 작업실의 사유를 넘어 생동하는 현장에 함께 뛰어드는 예술적 소통이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절규한 용산의 예술은 ‘여기 예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현장의 예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화폐를 발견하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는 동시대예술에 대해 낮은 깊은 목소리로 예술체제의 변동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월간미술 2010년 2월호 기고문

* 한겨레21과 용산참사현장미술자료집에 실은 글을 따다가 다시 씀.

2010/01/28 06:12 2010/01/28 06:12

"르네상스에서 현대미술까지"라는 주제에 관한 단상

critic & column | 2010/01/28 04:56


"르네상스에서 현대미술까지"라는 주제에 관한 단상

르네상스 예술은 통합의 가치와 원형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동시에 르네상스는 예술을 기술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영역으로 성립시키는 데 씨앗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 이후 수 세기동안 서구의 미술가들은 종교와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 도전과 실험을 거듭했다. 인상주의는 그 씨앗을 근대적인 예술개념으로 이끈 전환기의 이념이다. 그것은 예술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린 서구 근대사회의 힘이었다.

20세기 예술은 자율성을 획득한 예술가 주체들이 예술영역을 확장한 것인 동시에 예술의 영역을 예술 그 자체로 환원한 결과를 낳았다. 그에 대한 반성이 탈근대 예술이다. 한국 또는 동아시아 지역의 예술은 20세기 서구예술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점차 독자적인 시각언어를 구축했나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문화적 독자성이라기보다는 전지구적 표준화에 가깝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전지구화의 영향은 예술영역에 있어서도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촉발하고 있다.

전지구적인 보편언어로서의 현대미술은 그러나 그 극단에서 다시 미술의 지위와 역할을 물을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예술을 가늠하는 여러가지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예술을 성립시킨 역사에 관한 성찰을 배경으로 현대미술의 향배를 가늠해보는 것이 절실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원형적 사유와 실천이 탈근대적 기획과 맞닿아있는 그 지점에서, 동아시아에서 예술이 수행했던 통섭의 예술, 공동체 예술의 원형을 재발견함으로써 동시대 예술의 체제변동을 깊이 들여다볼 시점이다.


2010/01/28 04:56 2010/01/28 04:56

시공간을 포착하는 빛의 언어 : 안종연

critic & column | 2010/01/27 07:28


시공간을 포착하는 빛의 언어

만남은 생산을 주선한다. 이 프로젝트는 문학과 시각예술의 만남에서 나왔다. 인간의 삶 속에서 죽음을 발견하고 시간의 주름을 읽어낸 소설가 박범신과 빛의 세계 속에서 시간과 공간, 생성과 소멸을 포착해온 시각예술가 안종연이 만났다. 박범신은 [주름]에서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 소멸하는 존재들에게 헌사를 바쳤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을 통해서 나온 ‘시간의 주름에 관한 기록’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인간 존재에 관한 방대한 저작 속에 담긴 시간성의 문제는 시각예술가 안종연에게 성찰적인 모티프를 선사했다. 이전부터 빛과 공간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시간성의 문제에 천착해온 안종연은 박범신의 화두를 자신의 시각언어와 결합해 새로운 버전의 안종연 서사를 펼쳤다. 이들의 만남은 새로운 예술생산을 매개했으며, 나아가 탈장르 소통이라는 문화생산을 견인했다.

안종연의 출발은 여전히 빛이다. 그는 빛을 테마로 다양한 변주를 펼치는 과정에서 장대한 문학적 서사를 압축적인 시각언어로 재발견하면서 시간의 주름을 포착하고 있다. 안종연 서사는 기존에 존재했던 소설가와 화가의 만남에서 보여주었던 문학서사와 시각서사의 단선적인 만남을 넘어서는 심층의 차원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충분히 문제적이다. 안종연은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문학적 서술을 시각화하는 데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박범신 서사의 낱낱을 후행하기보다는 그가 말하고자하는 바의 심급으로 단도직입했다. 그는 문학서사를 풀어헤친 형상회화에서 미니멀한 평면과 입체, 그리고 영상과 설치에 이르기까지 예술언어 전 영역을 두루 꿰뚫었다.

시간의 켜를 발견하는 가장 깔끔한 방법은 중첩이다. 사진 위에 에폭시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매번 색의 느낌을 달리해 줌으로써 맑고 투명한 계열 색을 얻어내되 그 가운데 안료의 중첩을 시간성의 축적으로 연결한 에폭시 작업들이 있다. 워낙 금속 위주의 강한 재료를 많이 다뤄왔던 터라 액체 성분의 에폭시를 붓고 굳히는 과정을 반복한 이 작업들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그는 이 작업들을 통해서 새로운 표현 언어를 체화했다. 그는 재료와 기법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가로 유명하다. 탁월한 매체 장악력은 안종연의 최대 미덕이다. 언제나 새로운 상황과 대면해서 도전하고 실험하는 자세가 그의 언어를 고착화한 자기만의 언어가 아닌 유동적인 상호성의 언어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배경으로 쓰이는 프린트의 이미지들이다. 그는 유리 캐스팅 작업을 통해서 다양한 크기와 문양의 유리 입체를 얻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도 완결된 조형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빛을 투사했을 때 그 빛을 굴절해서 환상적인 빛 놀이를 펼치게 하는 매개자 역할을 수행한다. 안종연은 이 ‘빛놀이’를 변형, 확장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생성한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 개념이다. 유리 캐스팅은 그 색과 문양으로 인해 빛을 조절하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그것으로부터 나온 빛은 공간을 투영하는 판타지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것을 다시 사진과 영상으로 전환하여 제2, 제3의 작업으로 연결시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업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빛나게 하는 현란한 변주곡이다.

블랙 미러를 쪼아서 빛의 형상을 담은 <빛의 에젠> 연작은 맑고 깊은 안종연식 평면이다. 그것은 중앙아시아의 영성을 담고 있는 에젠(Ezen) 개념을 끌어들인 제목으로 빛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유도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빛의 존재를 통해서 영매로서의 예술(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빛의 여백> 연작은 컬러 스테인리스스틸 판재 위에 전동 드릴로 쪼아서 형상을 새기고 그것을 다시 열처리 과정을 거쳐 완성하는 안종연 특유의 기법으로, 물결의 파동이나 풍경 등을 통해서 빛의 확산을 시각화 한 작품들이다. 안종연 자신과 이 프로젝트의 동반자인 박범신 두 인물을 새긴 초상 작업과 더불어 이들 블랙 미러와 컬러 스테인리스 작품들은 근 몇 년간 금속 패널 위에 그림을 그려온 안종연의 독특한 시각 언어들이 얼마나 성찰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회화의 일루전이 불러일으키는 판타지가 매력적인 작품도 있다. <바이칼의 에젠>은 현실과 이데아 사이에 존재하는 도시의 모습을 담은 역작이다. 붓질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액체 성분의 에폭시를 부어 고착화 시키는 과정에서 얼어붙은 이상향의 도시를 펼쳐 보이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같은 개념의 페인팅 <폭설>과 비교해보면 표면 처리의 변주에 따라 그의 그림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여느 작품들에 비해서 비교적 명시적으로 소설의 서사를 끌어들여 상황과 장면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캔버스 페인팅에 반짝이는 보석들을 붙이고 에폭시를 부어 만든 이 작품들은 페인팅이 여전히 강력한 시각언어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증거하고 있다.

가장 미니멀한 방식으로 접근한 작품으로는 에폭시 드리핑 페인팅(epoxy dripping painting)을 꼽을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평면 위에다가 에폭시를 붓고 그 위에 색을 얹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시간의 켜를 쌓는 수행성을 동반한다. 켜켜이 쌓이는 시간의 주름을 안종연은 물질의 중첩으로 은유하고 있다. 그 결과는 가장 심플하게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는 원의 형상이다. 문학서사와 시각서사를 연동시키는 데 있어 최소주의 방식을 채택하면서도 그 심급을 가장 깔끔하게 담아낸 작품이 <새날들의 시작> 연작이다. 이 작품들은 여러 겹으로 중첩된 에폭시 층에 맑은 안료를 반복해서 펼친 결과물이다. 경계선이 뚜렷한 원형을 이루는가 하면 진한 것에서 옅은 것으로 번져가는 형상, 동그라미의 선을 이루는가 하면 그 선을 깨트리거나 생명체의 원형질 같은 형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평면을 넘어 공간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시각성이 가져다주는 지각의 깊이를 실감하곤 한다. 녹슨 스틸 판재를 얽어서 만든 <빈 중심>은 평면에서 입체로 코드를 전환함으로써 공간을 생성하고 그 속에서 시간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예술적 직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각각 다른 크기의 판재 원들을 겹쳐서 입방체 타원을 만들어냈다. 인간 형상을 넣은 판재들이 켜켜이 겹쳐져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들 사이에서 영원의 세계로 이어지는 시간성의 사유를 포착한 작품이다. 녹슨 쇠의 물성도 그러하거니와 판재의 중첩으로 입체를 만들고 그것으로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이 작품이야말로 안종연 언어의 특성을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페인팅이나 드리핑 기법에 의한 평면 작품들과 더불어 철재, 목재, 사진, 영상 등으로 매체를 확장하는 안종연의 예술은 조명으로까지 이어진다. 안종연은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유리 공예술을 첨단의 조명기술과 연동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유리 캐스팅 안에 LED 조명을 넣고 그것을 거울 앞에 펼쳐서 볼록이나 오목의 원형으로 확장한다. 안종연의 조명술은 빛의 에너지로 시각적 판타지를 생생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공간의 확장을 끌어내고 시간의 주름이라는 일관된 주제로까지 연결해내는 통섭의 예술을 잘 보여준다. 입체와 영상을 결합한 <만화경>은 에폭시 페인팅 연작에서 얻은 이미지들을 다양한 화면으로 변주한 애니메이션을 거울 설치와 조명과 함께 연동함으로써, 켜켜이 확장하는 공간 속에서 무한히 증식하는 시간과 공간, 즉 만다라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빛을 이용한 안종연의 공간설치는 우주의 공간 속에서 시간성의 원형을 체험하게 하는 방대한 스케일이 시각 서사를 구축한다. 안종연의 시각 서사가 마침내 웅장한 장면과 상황으로 전개하는 곳이 바로 이 빛 공간이다. <빛의 에젠>은 유리 캐스팅으로 만든 다양한 구체들을 통과한 빛들이 펼치는 판타지의 세계이다. 그는 이 빛 공간에 이르러 마침내 자신이 추구하는 시간과 공간, 생성과 소멸의 문제가 하나의 화두로 집약하고 있음을 내비친다. 그것은 그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빛의 세계이다. 그에게 있어서 빛은 예술언어의 출발이자 결말을 이룬다. 그 빛은 삶을 성찰하는 예술가의 영성과 직결한다. 영매로서의 예술가 주체를 향한 안종연의 걸음이 오롯이 담긴 것이다.

안종연의 세계는 예술과 기술, 물질과 비물질, 조형과 개념, 시각예술과 문학 등 서로 이웃하면서도 경계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영역과 범주들에 두루 걸쳐있다. 그는 예술 영역에 발 딛고 서서 그 범주를 확장하는 예술인일 뿐만 아니라, 그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영역을 이어주는 메신저이다. 그는 예술과 그 바깥을 두루 꿰뚫는 인터아트(Inter-art)의 영역으로 자신의 존재양식과 활동방식을 무한히 확장한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과 지금 걷고 있는 길, 그리고 그가 앞으로 걸어갈 길 모두에 있어서 안과 밖을 넘나드는 탈경계의 상호성은 그의 삶과 예술 전체의 핵심을 이룬다. 그것은 예술가의 지위를 상호작용을 통해서 협업하는 사유의 실천가로 재정립한다. 이런 맥락에서 안종연은 탈근대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예술을 열망하며 예술체제의 전환을 실천하는 통합과 통섭의 예술가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안종연 개인전 (2010.2.3-, 학고재) 서문

2010/01/27 07:28 2010/01/27 07:28

少年時代 쇼넨지다이 소년시대

songs | 2010/01/24 08:19


少年時代 쇼네지다이 소년시대

작사,작곡,노래 : 井上陽水 INOUE Yosui

http://www.youtube.com/watch?v=SqUA_UQsKE4

夏が過ぎ 風あざみ 誰の あこがれに さまよう
나쯔가스기카제아자미다레노아코가레니사마요우
여름이지나 바람에흔들리는엉겅퀴 누군가 그리워 방황하네

青空に残された 私の心は 夏模様
아오조라니노코사레따와따시노코코로와나쯔모요우
푸른하늘에 남겨진 내 마음은 여름모양

夢が覚め 夜の中 永い冬が 窓を閉じて
유메가사메요루노나까나가이후유가마도오도지떼
꿈에서깨면 한밤중 영원한 겨울이 창문을 닫아

呼びかけたままで夢はつまり想い出のあとさき
요비카케따마마데유메와쯔마리오모이데노아또사키
소리쳐 부르지만 꿈은 즉 추억의 앞뒤

夏まつり 宵かがり 胸の高なりに 合わせて
나쯔마쯔리요이카가리무네노타카나리니아와세떼
여름축제 초저녁 화톳불 심장의 고동에 맞추면

八月は 夢花火 私の心は 夏模様...
하찌가쯔와 유메하나비 와따시노 코코로와 나쯔모요우
8월은 꿈의 불꽃 내 마음은 여름모양

目が覚めて 夢のあと 長い影が 夜にのびて
메가사메떼 유메노아또 나가이카게가 요루니 노비떼
눈을뜨면 꿈의뒷편 긴그림자가 밤이면늘어나

星屑の空へ 夢はつまり 想い出の あとさき
호시쿠즈노소라에 유메와쯔마리 오모이데노 아또사키
작은별들의 하늘로 꿈은 즉 추억의 처음부터끝까지

夏が過ぎ 風あざみ 誰のあこがれに さまよう...
나쯔가스기 카제아자미 다레노 아코가레니 사마요우
여름이지나 바람(에 흔들리는)엉겅퀴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방황하네...

八月は 夢花火 私の心は 夏模様...
하찌가쯔와 유메하나비 와따시노 코코로와 나쯔모요우
8월은 꿈의 불꽃 내마음은 여름모양

2010/01/24 08:19 2010/01/24 08:19

노순택, 독일 아리랑

critic & column | 2010/01/23 09:56


노순택
1.16 - 3. 28 고은사진미술관
미군기지 확장으로 마을을 빼앗긴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레이다돔을 포착한 ‘얄읏한 공’, 이른바 찍새들이 현실을 성실하게 재현하고 있는 상황을 포착한 ‘중계자’, 정치적 풍경의 현실과 그것을 조작하는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은유한 ‘배후설’. 세 섹션에 걸친 그의 사진은 현실을 은유함으로써 일상을 직조하는 현실의 근저를 성찰한다. 정치, 사회적인 이슈를 포착한 재현으로서의 기록들을 예술적 언어로 전유하는 노순택 사진은 현실의 재현이면서 동시에 재현에 대한 메타크리틱이다.

독일 아리랑, 45년에 묻다
1.16 – 2.1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독일에서 가져온 석탄을 오브제 설치 방식으로 전시장에 투척한 박경주와 파독광부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한 다큐 사진을 제시한 박찬경. 두 예술가의 파독광부 리포트는 역사적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투쟁이다. 우리가 묻어버리려고 하는 45년을 되묻는 이들의 예술적 실천은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르포르타주가 얼마나 깊이 있는 성찰을 매개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 [서울아트가이드] 미술평론가가 평가한 2월의 전시, 기고문.

2010/01/23 09:56 2010/01/23 09:56

예술가의 자율결정과 공공성, 그리고 안창마을 프로젝트

critic & column | 2010/01/19 01:13


예술가의 자율결정과 공공성, 그리고 안창마을 프로젝트

안창마을 프로젝트가 세 번째 작업을 마쳤다. 2007년의 관주도 공공미술 <아트인시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첫 작업을 시작한 이후, 공식적인 공공기금 없이 두 번째, 세 번째까지 왔다. 그것은 서상호라는 한 예술가의 공공미술에 관한 열정과 헌신으로부터 나온 것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가 지난 3년간 만들어온 관계들이다. 그것은 공공미술 기획자와 예술가, 예술가와 예술가 지망생, 예술가와 주민 등 많은 주체들 사이에 맺어진 만남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씨앗을 만들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거이다. 이제 안창마을에 예술가들이 집단적으로 미술프로젝트를 벌이는 일은 당분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이 일들을 주도했던 주체들이 일단의 결말을 지었기 때문이다. 많은 성과와 한계가 있었을 테지만, 안창마을 프로젝트는 주민의 입장에서 그리고 예술가들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가치부여가 가능한 몇 가지 지점들을 토대로 우리의 삶과 예술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2009년의 신작들은 잔잔하면서도 알차다. 허수빈의 LED조명 작품 '창문가로등'은 마을의 밤을 밝히는 창문이다. 샛길이 뻗어나가는 삼거리에 위치한 이 작품은 하늘에 떠있는 창문이다. 하늘에 떠있는, 하늘을 내다보는 창에서 따뜻한 빛이 새어나온다. 이러한 따스함이 이 마을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은 허수빈이라는 한 작가의 상징이 설치된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 마을에 있어 이 작가가 구축해온 상징체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 마을의 정서와 어떻게 부합하느냐 하는 데 있다. 시시때때로 색깔을 바꾸며 마을을 비추는 하늘 창의 서정이 마을의 밤하늘을 감싸는 훈훈한 장면은 잔잔하면서도 인상적인 랜드마크 역할을 할 것이다. 예술작품은 그 처소가 감상의 태도나 해석의 가능성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창마을에서 만나는 허수빈은 전시장에서 만나는 허수빈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전명희, 김은주, 임혜림이 참여한 골목 벽화는 시시하면서도 산뜻하다. 금이 간 담장 라인을 담쟁이 줄기로 끌어들여 주변에 가지와 잎을 그려 넣은 이 벽화는 소소하게 지나치는 풍경을 예술창작의 모티프로 끌어들인 즐거운 작품이다. 그 주변에 그려 넣은 스파이더맨 캐릭터 인형들도 인상적인데, 그것이 주민들의 정서나 삶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가 골목 한구석을 차지하는 것도 동일하게 회색 시멘트가 이어지는 벽면에 소소한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캐릭터가 그곳 벽면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쉽지 않다는 점은 공공미술이 감당해야할 딜레마로 보인다. 예술의 이름으로 공공미술이 감당할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어떻게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을지는 여전히 우리 모두의 난제로 남아있다.

회색의 슬레이트 패널 지붕 아래 시멘트 미장으로 마감한 벽, 그리고 그 위에 베이지색 정도의 컬러링. 대체로 안창마을의 벽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 벽면들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작가 특유의 서사를 구축하는 것에 앞서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벽화 이미지가 그 벽면과 주변의 분위기와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느냐 하는 데 있다. 권진무, 손수연, 정하랑이 그린 벽화는 소파와 옷장, 테이블과 창문 이미지로 구성돼 있다. 검은 선으로 윤곽을 두르고 단색으로 처리한 깔끔한 일러스트 풍의 그림이다. 특히 벽면으로부터 돌출해 있는 오브제에 흰색과 검은 선을 주어서 옷장 이미지를 만든 것에서 재치와 유머를 읽어낼 수 있다. 거리에 노출된 물건들에 선과 색의 변화를 주어 그 물건 자체의 이미지를 바꿀 뿐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통일성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도 시사점이 뚜렷한 작품이다. 

완만하게 꺾이는 건물 벽을 타고 세 개의 동그라미를 만든 오브제 설치작업도 있다. 오픈스페이스 배의 에듀케이터 이욱상씨가 마을 아이들과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써 함께한 이 작품은 장난감과 가재도구 등 일상의 사물들을 이용한 벽면 설치작업이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 물건들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벽면에 부착해서 원을 만든 작업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의 조형성이나 서사구조가 아니고 그 물건들에 담긴 사연이다. 이 작품을 가장 자주, 많이 사용(감상)하는 주체들은 당연히 마을 주민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이 작품은 벽면에 설치한 동그라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삶의 체취가 묻어있는 물건이 마을의 공공장소로 이동해 예술작품의 일부로 바뀌어 지속가능한 전시작품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그들로 하여금 개인의 영역과 공공의 영역에 대한 단절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창마을 프로젝트는 한 해의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3년간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공공미술을 커뮤니티 아트의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해야할 당위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커뮤니티 아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예술가들 자신이 아니라 커뮤니티 그 자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와 동행하는 예술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적 소통의 지향은 그러나 예술가의 열정과 헌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안창마을 프로젝트의 여러 참가자들은 뼈저리게 배웠을 것이다. 특히 참여 예술가들은 이 점에 대한 각별한 배움 그 자체를 깊은 성과로 간직했을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미술이라는 장르를 가지고 한 생을 살아갈 전문가로서 확고한 소신을 심어주는 계기였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막연한 이상으로는 뛰어넘지 못할 현실의 벽을 실감하는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양자 모두에게 안창마을 프로젝트의 경험은 예술 안쪽에서만이 아닌 안팎의 시각으로 둘러본 소중한 체험이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을사람들에게 남은 미술의 추억이다. 2007년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난 일군의 예술가들이 마을 곳곳에 예술 창작 행위를 하고 다닐 때, 낯선 기대를 안고 그것을 지켜보았을 그들이다. 그 몇 년 동안 이 마을은 공공미술의 이름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고, 카메라를 들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 이듬해에도 젊은 작가들과 학생들이 여럿 다녀갔고, 여러 작품들이 새로 들어섰다. 올해도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했다. 마을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그간의 예술가와 학생들의 노고가 고맙기도 할 것이고 혹은 시덥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뭔가 대단히 크게 변한 것도 없다. 그렇게 그들의, 우리들의 삶은 여전히 흘러간다. 무엇인가 거창하게 바뀔 것 같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게 쉽게 과거를 삭제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의 현실참여는 이래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과 현실 사이에 가로놓은 장벽을 넘어서는 것은 지난 백년 이상의 역사를 뒤집는 일이니 한 순간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그것은 기나긴 투쟁을 거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미래의 일이다. 그 미래를 일구어나가는 과정에서 안창마을 프로젝트라는 더없이 소중한 우리 체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배태한 씨앗으로 남았다. 주문생산으로부터 이탈한 예술가 주체, 자율성을 획득한 이후 각자의 자율 결정에 입각해서 생산하고 소통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은 20세기의 추억을 지나 주문과 자율 사이의 애매한 경계 선상에 서 있다. 국가단위 공공자금의 수혈을 받지 않고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지속한 안창마을 프로젝트는 어쩌면 (아직은 그 주체가 누군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주문자를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2010년 1월 세째주 [한겨레21] 기고문
2010/01/19 01:13 2010/01/19 01:13

여기 예술이 있다 : 용사참사 현장예술 읽기

critic & column | 2010/01/18 11:37


여기 예술이 있다 : 용사참사 현장예술 읽기

1년 전 한겨울에, 우리는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예술가의 절규를 접했다. 예술작품을 통해 망루에서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의 절규를 가슴에 새겼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현실의 정황을 헤아리게 하는 애도의 예술이었으며, 자본과 권력의 폭력이 나약한 개인들에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감성의 정치학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 예술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려준다. 그것은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보다 적극적인 소통의 장으로 인도하는 현장예술의 지속가능성을 알리는 귀중한 자산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용산현장을 찾아 현실을 체험하고 예술작품을 쏟아냈다. 전시장에서 희생자들의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를 열고, 전국의 각 도시로 돌며 순회전을 열었다. 현장에 미술문화공간을 차려 지속적으로 전시를 열었으며 집회장과 거리에 함께 나섰다. 참사 1주기를 얼마 앞두고 고인들을 묻어드리는 장례식 행렬에 이들의 예술작품이 함께 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예술체제의 변동을 증거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도출에 동참한 행동주의 예술의 아름다운 과정을 거쳤으며, 예술공론장을 형성한 아름다운 예술을 결과했다. 이 글은 현장에 함께 한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용산참사 현장예술이 연대의 마음과 협업의 실천으로부터 나온 행동주의 예술이라는 점. 나아가 그것이 상징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예술의 공공성과 예술가 주체의 자율성 사이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었는지를 언급해 볼 것이다. 사회체제의 변동에 따른 예술체제의 전환이 다양한 사례들 속에서 조금씩 구체화 하고 있다. 이 글은 작품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비평적 접근 보다는 용산참사 현장예술의 전반적인 활동이 지금의 미술체제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제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이 글은 <한겨레21> 기고문을 늘려서 고쳐 쓴 것이며, 작품 분석론에 중점을 둘 미술전문지 기고문 내용과 일부 중복될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1.

미술가들은 참사 직후 <망루전>을 꾸렸다. 사적소유, 재개발, 생존권, 자본과 권력 등의 의제를 다룬 기획전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전주, 대구, 울상, 광주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그것은 서울에서 벌어진 참사를 한 도시의 특수한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로 확장하기 위한 공론장으로 작동했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한 도시의 문제를 전국적 의제로 채택하고 그것을 동시대의 일반 모순으로 인식한 상호 연대의 표현이기도 했다. <망루전>은 순회전의 특성상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움직일 때마다 그 도시의 예술가들이 결합하면서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결합했고, 용상참사를 지역적 특수성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인 보편성의 문제로 인식하게 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뒷 건물에 만든 레아미술관은 현장을 지키는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했다. 예술가들은 유족과의 합의를 통해서 고 이상림 열사가 운영하던 레아호프를 미술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참사 현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현장에 대한 상황 인식을 매개하는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용산참사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평면과 입체, 설치, 퍼포먼스 작업을 했으며, 회의와 토론을 이어갔다. 레아미술관에서만 지난 1년동안 22회의 전시가 열렸다. 개인과 단체, 회화와 입체, 설치, 영상, 만화 등을 망라한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그것은 전시를 위한 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장의 가치를 담은 상징을 만들고 현장을 망각으로부터 차단하려는 예술행동이었다.

현장을 지킨 수많은 이미지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들 가운데 하나가 <여기 사람이 있다>이다. 용산참사 직후에 나온 이윤엽의 이 작품은 걸개 그림 뿐만 아니라 수백장의 판화와 티셔츠 프린트로도 널리 쓰였다. 하늘을 떠받히며 절규하는 손, 웅크리고 앉아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이윤엽은 용산 현장의 절규를 담았다. 이 작품들은 용산 현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걸개그림으로 시작한 이 작품은 판화, 티셔츠, 참여미술, 온라인 배너 등 다양한 방식으로 퍼졌다. 특히 그가 만든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문구는 굵직한 선의 맛이 제대로 담긴 시각언어와 만나 증폭하면서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 하는 데 있어 예술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참사현장을 은유적인 시각언어로 처리해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발표한 작품도 있다. 상호대립하고 충돌하는 가치의 문제를 명료한 시각언어로 보여준 노순택의 <그날의 남일당>이다. 그는 2009년 1월 20일 새벽, 그 현장에 있었다. 그는 보도사진 기자의 전력을 가진 예술가이다. 참사 현장에서 옥상 망루의 화재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그는 레아미술관 옥상에서 불에 타 일그러진 망루를 찍었다. 그것은 일종의 기록이다. 그런데 그는 이 기록물로서의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끌어올렸다. 일그러진 철판들이 만들어낸 곡선의 상하좌우를 극단적인 흑백대비로 단순화했다. 그 결과 프레임 안쪽의 화면은 추상적인 선의 흐름이 지배하는 흑과 백 두 개의 면으로 나뉘었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실의 모습을 담은 역작이다.

2010년 10월 9일. 1년 가까이 뒤로 미룬 다섯 분의 장례식날을 치르기 위해 미술가들은 희생자들의 영정과 열사부활도, 만장 등을 제작했다. 대형 프린트로 각각의 차량 위에 설치된 열정은 전진경의 붓그림 원화를 확대 프린트한 것이다. 수묵채색화의 독특한 기법을 잘 살린 이 그림은 간결하게 흐르는 먹선과 얼굴에만 색을 입혀 영정그림의 일반적인 도식과는 다른 감성을 보여주었다. 열사부활도는 이윤엽의 판화를 원작으로 한 대형 인쇄물로서 분노와 저항의 이미지를 담는 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서로 팔짱을 낀 다섯 열사들이 환한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만장에는 장례식의 숙연함을 담은 문구들과 더불어 먹선으로 그린 인체와 글이 담긴 상형 만장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역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노제를 위해 용산까지 이동하는 동안 긴 행렬과 함께한 이들 시각 표현물들은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감성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거리에서 실질적인 쓰임새를 발휘하는 시각물은 일견 미술작품의 범주에서 비껴있는 것으로 보는 경향도 있겠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쓰인 작품들은 디지털 프린트를 이용한 복제물이라는 점에서 예전과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1990년 전후의 열사장례식 작품들이 짧은 기간에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나름의 어법을 전형적인 어법을 창출했던 것에 비해 이번 장례식의 경우, 원본 그림을 제작하고 그것을 확대인쇄로 처리함으로써 한결 밀도있는 시각적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2.

용산의 예술가들은 현장을 통해서 예술가로서의 현실인식을 실천한 행동주의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정치와 사회의 비정한 맥락을 벗어나 인간의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영혼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토대로 현장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우리시대 지식인의 사명을 다한 실천가이다. 그것은 예술생산을 상품생산과 등치시키는 시장주의 편향과는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술가들이 자율결정에 따른 지식생산을 염원하는 자율적 주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들 용산의 예술가들은 공론장에 참여한 자율적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각성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오늘날 공공미술의 이름으로 공공자금을 가지고 공적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이 얼마나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되돌아 보는 차원에서도 용산의 예술은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협업과 연대로서의 예술행동이다. 특히 협업은 용산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덕목이다. 용산참사 현장예술 활동은 대추리마을 ‘들사람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용산에서 다양한 작품을 제작, 발표하면서 지속적으로 현장에 참여한 이윤엽은 대추리마을에 살면서 작업을 했던 현장예술가이다. 동네 집수리를 시작으로 버려진 물건들 모아 마을박물관 만들기에까지 이른 것이 3년 전의 일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대추리 현장과 용산 현장을 동일 선상의 문제로 인식했다. 시인 송경동과 음악가 조약골, 미술가 이윤엽, 노순택, 전진경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 예술가들은 예술생산을 독자적인 생산 영역으로만 파악하지 않는다. 이들은 예술과 개인과 개인, 장르와 장르, 예술과 사회의 상호 협업이 자신의 예술생산을 얼마나 더 풍부하게 만드는지를 잘 알고 있다.

협업은 개인과 장르와 사회를 향한 예술가들의 열린 태도에서 나온다. 물론 개별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예술가 주체의 사적인 체험을 표현한 시각표현물로서 공공성을 향한 절차와 방법을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콘텐츠를 환류하는 방법자체가 상당히 차별화한 공공적인 것이었으므로 용산 예술은 넓은 의미에서의 공론장, 또는 공공영역으로서의 예술실천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다양한 참여주체들은 상호이질적인 언어와 방법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 그 다양성을 맥락화 하고 증폭하는 역할을 맡은 주체 역시 예술가 자신들이었다는 점에 좀 더 신중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발견할 있는 미덕이 자율적 주체들의 창의적인 연대이다.

다른 장르의 예술과 협업하고 연대해온 용산 예술은 장르 분화의 한계를 넘어 탈장르와 혼합장르의 일로에 서있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시인 송경동은 이라크전쟁, 한미FTA. 이랜드, 대추리, 기륭전자, 콜트-콜텍 등 우리 사회의 아픔이 있는 곳을 찾아 온몸으로 그 현실과 마주해온 액티비스트이다. 그는 시를 써서 집회장에서 시낭송을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장르의 예술과 들과 연대해서 상징투쟁을 벌이는 데 있어 온몸을 바치는 헌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조약골은 대추리 마을에서 지은 노래 <평화가 무엇이냐>로 유명한 음악가이다. 그는 참사 후에 남일당 뒤 레아호프 자리를 사용한 레아미술관 1층을 지키며 현장을 지켰다.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은 물론 현장의 주민들과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대화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줄곧 레아미술관을 지켜온 전진경의 경우도 대추리 이래 용산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지키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장의 이슈를 중심으로 집결하여 참여하고 개입하는 예술가들을 통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예술의 가치는 연대의 마음이다. 이른바 자족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예술가에게 있어 연대의 마음은 자칫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지기 십상인 그들에게 새로운 체험과 실천을 이끄는 원천이다. 특히 특정 의제를 다루는 현장예술의 경우 예술가의 활동 준거지를 설정하는 문제는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회적 이슈의 현장을 찾아 삶의 처소 자체를 옮기는 일은 예술가에서 부여된 특권인 자율성을 그야말로 제대로 행사하는 일이다. 예술가를 유목인에 비유한다면, 이렇듯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이탈한 삶을 위해 ‘자율’을 획득했을 때의 일이 아니겠는가.


3.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상징투쟁으로서의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재발견하도록 해주었다. 예술은 가치의 경쟁이다.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전 영역은 서로 다른 가치를 놓고 선택하고 분별한다. 가치는 정치와 경제와 문화 전 영역에 걸쳐서 선택과 판단의 근거를 제공한다. 가치의 경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예술은 상징체계를 이용해 가치의 문제를 다룬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과 동행하고자하는 생각과 실천이 용산에 함께한 예술가들이 선택한 가치였다. 용산의 예술가들이 만든 상징체계들은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산자들이 죽음 너머 새로운 삶의 씨앗을 발견하도록 하는 생명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상징투쟁으로서의 용산예술은 국가권력과 자본의 힘을 배경으로 하는 언론의 공론 유포와 대립했다. 용산의 예술가들은 소수자들의 생존권을 보호하지 않는 권력의 부조리함을 비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공론장으로서의 예술적 실천이다. 예술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자율적 주체들의 소통 영역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통이란 사적인 영역과 공공의 영역 양자를 포괄한다. 예술가들의 세계는 사사성과 공공성 양자 모두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용산의 예술은 사사성에 입각한 예술가의 내밀한 언어에서 출발하여 공공성을 향한 사회적 발언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고도 깊다. 따라서 용산의 예술은 공공성과 자율성의 경계선상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점차 제도화하고 있는 공공미술의 의미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위한 공공미술이며, 누구를 위한 공공미술인가? 물론 예술은 무엇이나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 그자체로서의 자기 완결성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의 긍정적인 가치가 있었기에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이 주문 받는 바대로 생산하지 않고 각자 나름의 삶을 걸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여 예술가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공공미술 담론이 횡횡하는 시대에 역설적인 얘기지만, 요즘 시대 예술가들에게 절실한 것은 자율성이 아니겠는가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용산참사 현장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예술가의 자율성을  설려는 예술가들이 공공영역에 자신들을 스스로 파견했다. 그들은 스스로 공공영역의 주문을 생성하고 예술가 주체들이다. 자율적 예술생산자 주체들의 공공적인 주문 수주 행위는 공공성과 자율성을 둘러싼 불필요한 개념대립을 일소하는 실천적인 사례이다.

용산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생산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서 사용했다. 그들은 용산참사라는 충격적인 재앙 소식을 접하고 즉각적인 행동에 나섰다. 거리에서의 사진은 물론 판화와 걸개, 퍼포먼스 등의 방식으로 이 사건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는 데 앞장섰다. 도시의 테러리스트로 지목받아 죽음으로 내몰린 희생자들의 명예를 지키고 그들의 희생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는지, 이 문제에 대한 정치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어떻게 풀어야하는지에 관한 공론을 형성하는 데 시각예술언어로 함께했다. 사회적 약자로서 생존을 위해 망루로 올랐다가 공권력에 의해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의 문제가 용산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시대 모두의 아픔이라는 사실을 절규하는 언어로 표현했다.

예술가들의 사적인 체험은 각자의 고유한 언어로 표현된다. 그것은 감상의 대상자들로 하여금 사건과 상황의 인식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한다. 용산 예술도 이렇듯 일반적인 예술의 생산과 수용 메커니즘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과정과 방법들이 용산 예술을 비상한 예술행동으로 성립시킨다. 그들은 용산참사 현장의 리포터 역할을 자임했다. 거리로 나서는 것은 물론 여느 도시로 공론의 장을 확산했다. 나아가 희생자들의 가족과 용산 재개발 지구의 주민 및 입주자들, 용산 현장의 활동가 및 단체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활동과 동행했다. 이러한 과정은 용산 예술을 새로운 합의 도출을 위한 행동주의 예술로 확장시켰다. 여기에는 당연히 예술가의 일방적인 생산 및 전달 체제가 아닌 상호작용이라는 과정이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했다. 현장의 관계자들과의 유기적인 대화와 협력이 없이는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현장미술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생산과 매개, 그리고 소통 또는 수용을 둘러싼 매우 주목할 만한 개념이 하나 더 있다. 이른바 ‘파견미술’이라는 개념이다. 서울민미협 대표로서 지난 1년동안 용산참사 현장예술과 함께 해온 전미영은 참사 직후 망루전을 꾸리고 그것을 전국 6개 도시 순회전으로 잇고, 현장과 전시장을 분주히 오가면서 총 40여회의 프로젝트를 꾸린 용산참사 예술활동을 ‘파견미술’이라고 불렀다.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시장권력과 문화권력에 이끌려 또 다른 주문생산자로 전락한 후기근대의 시대에 파견미술이라는 역설적인 개념이야말로 탈근대적인 예술체제를 이끌 새로운 개념이자 실천이다. 용산에 자신들을 스스로 파견해서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절규한 현장의 예술가들이야말로 타락의 부패의 나락에서 허덕이는 예술을 향해 ‘여기 예술이 있다’라고 외치는 진정한 자율성의 주인공들이 아니겠는가.

용산에 함께 한 예술은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고 개입한 동시대의 예술적 실천으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고 기록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기억투쟁은 동시대를 헤쳐 나가는 일일뿐만 아니라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일과도 깊게 관련이 있다. 용산참사 현장예술은 지난 1년간 사회적 망각으로부터 용산 이슈를 지켜내는 데 매우 유효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새로운 기억투쟁이 있다. 제2의 용산이 서울 각지, 전국 도처, 아시아 곳곳, 아니 세계 전역에 산재해 있다. 예술적 상징은 지금 여기의 동시대성과 현장성을 바탕으로 그 너머 역사성과 보편성을 획득한다. 동시대에서 미래로, 서울에서 전세계로 시각을 확장해서 용산참사 현장예술의 해석의 지평을 넓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무능하고 참담하게 현실의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의 자율결정을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주문 체계에 귀속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름 아닌 시장의 주문이다. 예술노동의 사회적 교환이 시장체제로 귀결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귀결일지는 모르겠다. 이제 그 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근대성에 입각한 자율적 예술가 주체들이 주문생산을 거부하고 지식인으로 거듭났듯이, 후기자본주의시대의 전환기를 맞은 탈근대적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체제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현장 참여를 통해서 체험을 배가하고 예술의 실천적 가능성을 확인해온 한국현대미술의 역사가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으로 살아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이 글이 다 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덧붙일 말이 있다. 참사 1주년을 맞아서 발간되는 자료집은 용산참사 현장에 함께 한 예술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예술과 사회의 지위와 역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수십년동안 한국사회에서 예술행동을 통해 사회운동과 결합한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기록하고 평가할만한 자료들은 거의 소멸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자료집을 만들어 기록을 남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현장의 미학이 불멸의 명품을 향한 미학적 탐미와 다른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철저한 아카이브를 통해서 현장예술의 가치를 되새길 기초 자료들을 챙겨두는 것은 너무나 절실한 일이다. 예술가로서의 삶보다 활동가 또는 운동가로서의 삶에 더 큰 무게를 둠으로써 예술적 성취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선배세대들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현장예술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현장의 예술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꾸준히 현장을 지킨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자료집에 이 글을 보탠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용사참사 현장예술 자료집] 기고문.

2010/01/18 11:37 2010/01/18 11:37

노순택, 그날의 남일당 : 다시 보기

artpd clip | 2010/01/15 10:20


노순택 개인전이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대추리와 서울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걸리지 않았다. 얼마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보여준 것이라서...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분들 장례식 마친 이 즈음에, 다시 이 작품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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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남일당. 2009년 노순택의 역작이다. 그가 그날 거기에 있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는 여느 예술가들과 남다르다. 더불어 블랙앤화이트로 이 상황을 전달하는 감성 또한 남다르다. 흑백의 논리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야만 하는 우리에게 과연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느 정도 선상에 와 있는지를 이 사진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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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5 10:20 2010/01/15 10:20

남일당, 용산, 서울, 대한민국

lense & world | 2010/01/1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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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1 06:31 2010/01/1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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