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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와 분권의 시대와 지역미술관

critic & column | 2009/11/29 01:23


자치와 분권의 시대와 지역미술관

바야흐로 국토균형발전론이 국가적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전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어서 지역성 논의 자체가 매우 버거운 형편에 미술관 문화의 지역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난 10여년간의 미술관 문화의 성장은 한국의 미술문화를 진일보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의 지자체 공공미술관들은 숫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으로 도약했다. 서울과 대전 부산 광주, 이들 네 도시의 공공미술관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지역미술관 시대가 본격화 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1998년에 부산시립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지자체 미술관의 시대가 본격화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88년에 개관했지만 2002년에 대법원 건물을 개조해서 현재 건물로 이사한 이후에 보다 본격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광주시립미술관도 1992년에 문을 열었지만 독립적인 미술관 건물을 갖추지 못하다가 2007년에 들어서야 현재의 건물로 옮겨서 새 출발을 했다.

경남과 전북의 도립미술관은 지자체로서는 한 발 앞선 2004년부터 독자적인 미술관을 설립해서 운영해 왔다. 후발주자이면서도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경기도미술관은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배후지역으로서 중심과 주변의 상황논리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그 향배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대구가 10년간의 논의를 거쳐 개관을 앞두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미술관이 없는 광역자치단체는 인천, 강원, 충북, 충남, 전남, 울산, (대구), 경북 등이다. 서울, 경기, 대전, 부산, 경남, 광주, 전북, 제주 등 8개의 미술관 있는 지자체와 8개의 미술관 없는 지자체가 반반 섞여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지역 미술관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역미술관 확산의 조짐은 중소도시의 미술관 설립에서 잘 드러난다. 서귀포시나 양구군 등의 기초 자치단체에서 만든 이중섭이나 박수근 등 작고작가 미술관은 매우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개관을 목전에 둔 포항시립미술관의 경우 인구50만의 도시에 걸맞은 미술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좋은 선례를 남겨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광역자치단체 뿐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의 공공미술관 건립은 앞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3백개의 넘는 공공미술관이 있다. 물론 경제위기에 따라 이들 미술관들도 안팎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는 하지만, 10여개 남짓한 한국의 공공미술관 수를 생각해보면 경이롭기만 하다.

전지구화의 호명이 개인에게 직접 투여되는 시대에 지역의 미술관이 독자적인 가치를 만들고 지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 부산과 대전은 해양도시의 개방성과 과학기술도시의 미래비전을 중심으로 소장품을 늘이고 기획전을 통해 미술문화를 확산하는 데 주력해왔다. 광주시립미술관은 하정웅 콜렉션을 바탕으로 예향광주의 위상을 찾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대법원 건물 이전 이후 정기적인 기획전으로 시민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 미술관이 지역성을 찾아가는 데 가장 큰 장애는 문화적인 보편주의가 지역적 특수성을 잠식한다는 점이다. 특히 블록버스터 전시의 포퓰리즘은 논란거리이다. 블록버스터는 1천만명이 줄 서서 보는 대박영화 한편으로 1년치 문화생활을 마감하는 대중들에게 누구나 아는 상투적인 서구 콘텐츠의 확대재생산한다. 대신에 미술관이 감당해야할 자생적인 에술을 소개하거나 활성화하는 일과는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시민에게 친숙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이 자칫 포퓰리즘의 폐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각이 많은 것은 이런 까닭에서이다.

아마도 기성의 편견에 따르자면 ‘지역미술관’이란 서울 이외의 지역에 존재하는 미술관을 가리키는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틀렸다.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으로 지역을 사유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가령 뉴요커의 시각으로 서울을 재단한다면 어떨까? 서울의 지역성과 서울지역미술관의 정체성을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것이 중소도시이건 거대도시이건 간에 혹은 수십개의 기초자치단체를 가진 광역자치단체이건 간에 특정 지역의 미술관은 해당 지역의 미술(관) 문화를 향한 분명한 미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시민, 또는 도민과 함께 호흡하는 미술관일 것이다. 어느 미술관이든 이러한 미션을 부인하는 곳은 없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지역에 관한 편견을 씻는 데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중앙과 지역을 나누는 이분법은 퇴행적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있다고 해서 중앙미술관이고 국립현대미술관이 경기도 지역 과천에 있다고 해서 지역미술관인 것은 아니다. 지자체 미술관의 존재는 자치와 분권을 지향하는 시대정신의 소산이며 모든 지역에 예술 생산과 향유의 기회가 균등하게 존재하는 국토균등발전의 소명을 지니고 있다. 또 하나 염두에 둘 것은 미술관이 지역의 미술생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문화생산을 견인할지에 대한 것이다. 대안공간과 화랑, 언론 등의 활성화와 더불어 상생할 때 공공미술관의 지위와 역할이 더욱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10년의 짧은 역사 동안 쌓은 압축성장이 향후 독이 되지 않고 약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제 미술관 밖으로 눈을 돌려 도시생태 전체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준기(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 아트인컬쳐 2009년 12월호 기고문

2009/11/29 01:23 2009/11/2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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