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오프닝 안내 010817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0 18:05


[건너간다] 전시안내문
* 안녕하십니까? <가나아트컨설팅>에서 공공미술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김준기입니다.
* 8월17일 금요일 5시에, 성곡미술관 외부기획전으로 열리는 <現場 2001 : 건·너·간·다>라는 전시 개막식을 합니다.
* 80년대 말 이후 10여년 동안 현장성을 바탕으로 작업세계를 이어온 9인의 현장미술가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 이른바 386세대 작가들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역량있는 작가들을 "현장성"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다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 전시 기획/진행 문의
기획자 김준기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 컨설팅)
Tel. 02-3217-0235 H.P. 011-9500-9000 artpd@ganaart.com
진행자 전혜정 (성곡미술관 인턴) H.P. 016-690-1417 diatiger@hanmail.net

* 전시장 문의 :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 경기연 큐레이터 Tel. 737-8643

개막식 안내
장소 : 성곡미술관 별관 전시장
일시 : 2001.8.17 오후 5시
내용 : 참여작가 인사, 전시 관람, 간단한 다과 후 식사(장소는 당일 공고), 퍼포먼스
* 퍼포먼스 : 최병수 얼음조각 - <펭귄이 녹고 있다>
얼음덩어리를 전기톱으로 썰어 펭귄을 만들고 이 펭귄이 녹아 내리는 과정을 통해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상기시키는 행위미술.

뒷풀이 안내
장소 : 홍대 앞 클럽 (일명 왕파리)
일시 : 8.17.금 저녁 9시-
내용 : 클럽 대표이자 공연-음악 기획자인 하성채 씨가 프로그래머로 참여, 2-30대 감수성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에 있어서의 현장성을 담은 음악들을 중심으로 클럽파티를 연다.

2001년 8월 17일, 일정 안내5시 - 개막 및 전시관람
5시 30분 - 퍼포먼스 : 최병수 얼음조각 <팽귄이 녹고 있다>
7시 - 뒷풀이 장소 홍대앞 클럽 로 이동
8시 - 9시 담화 및 다과 (김밥, 떡, 음료, 주류)
9시 - <현장2001:건너간다> 맟춤 파티(프로그래머 하성채)


現場 2001 : 건·너·간·다1. 개요
전 시 명 : 現場 2001 : 건·너·간·다
전시 장소 : 성곡미술관 별관
전시 기간 : 2001.08.17(금) ~ 08.31(금)
주 최 : 성곡미술관
기 획 : 김준기
진 행 : 전혜정
전시 분야 : 평면, 입체, 영상
참여 작가 : 구본주, 김태헌, 박경주, 박은태, 방정아, 배영환, 이중재, 최병수, 최평곤

2. 기획 의도
- 80년대 이후 현장성을 살린 창작을 이어온 30대 작가의 작품 세계 재조명
<민중미술 15년 전>(국립현대미술관, 1994) 이후 미술계에는 80년대 민중미술의 영향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작가로서의 성장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개별화, 파편화, 일상화로 상징되는 좌표부재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일종의 진공상태를 겪으면서 80년대식의 선명한 정체성을 잃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서도 자기 중심을 잡고 현장성을 살린 창작에 몰두해온 젊은 작가들이 있다. 이들의 10여년 작품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현장(주의)미술의 정황을 진단해보는 전시이다.

- 21세기 현장(주의)미술의 가능성 진단
화두를 잃어버린 시대, 노매디즘(Nomadism)과 글로벌리즘(Globalism)의 세례 속에서 갖가지 절충주의와 수정주의가 난무하는 시대에 문화예술이 시대정신의 메신저로서의 기능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그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현장(주의)미술을 제시한다. 생생한 삶의 현장과 급박한 시대상황으로서의 현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파편화 된 개별 영역 간의 연대를 모색하는 태도로서의 현장(주의)미술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자리이다.

- 386세대 미술 작가들을 통해 문화예술계 30대 역할론 부각
지난 90년대에는 세대 정체성을 근간으로 하는 X세대-Y세대-N세대 등의 상업적인 신세대 담론이 이어져 왔다. 심지어는 386세대라는 민주화운동의 후예들마저 섣부르게 제도권으로 편입하기 시작했다. 이 전시는 현장성을 기반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해온 작가들이 연대의 첫발을 내딛는 계기를 마련해, 향후 문화예술계에 진정한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30대 역할론'을 제기하는 자리이다. 요컨대 현실과 발언이 70년대 모더니즘 미술의 대안세력으로 자리 잡았다면, 30대 미술인들을 주축으로 현장(주의)미술이 민중미술 이후 90년대와 21세기 초의 분열적 상황을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세력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인 것이다.
(* 자세한 내용은 전시 서문 참조)

3. 전시 구성
- 옴니버스형 모듬展
특정 테마에 따른 작품 창작보다는 참여 작가들의 작품 성향과 창작 태도를 제시함으로써 특수성의 집합으로서의 보편성을 부각시키는 형태이다. 전투적 리얼리즘의 세례를 받은 30대 혹은 40대 초반 작가들의 다양한 모습을 엮은 전시이다.

- 작가별로 80년대 이후 10여년 간의 작품 비교 전시
80년대 말 이후의 초기 작품부터 신작에 이르기까지 각 작가들의 변모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직설과 은유의 공존, 담론구조의 분화, 매체의 다변화 등에 적응해온 젊은 작가들의 태도와 결과를 일별하는 자리.

- 전시장 구성
1층 : 구본주 배영환 이중재 / 입체, 설치, 영상
2층 : 김태헌 박은태 방정아 / 평면, 사진
3층 : 박경주 최병수 최평곤 / 설치, 사진(자료)
정원 및 옥상 : 최병수, 최평곤 대형 설치 작업 및 행위미술(개막행사)
2005/01/30 18:05 2005/01/30 18:05

게시판 글 모음 : 아트시월 2001.6.29-10.5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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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간다 관련 게시판 글 전체 모음
2001.6.29-10.5 www.artoctober.com
■ 현장전 기획서 / 김준기 2001-06-29 오전 9:42:39

■ 이곳에 방을 마련했습니다 / 김준기 / 2001-06-29 오전 9:48:20
현장전에 참여하시는 작가님들과 이곳에서도 만나고 싶습니다.
서로 현장미술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진행을 맡아줄 코디네이터를 소개합니다.
전혜정씨인데, 홍대 예술학과 대학원에 재학중이고, 성곡미술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조만간 성곡미술관 별관에서 성곡인턴기획자들의 기획전이 열리는데, 그 전시의 공동기획자이기도 하구요.
앞으로 작가님들께 혜정씨가 연락 드리고 자료 취합 등을 진행할 것입니다.
좋은 만남이 되길 희망합니다.

그럼 이만 총총

■ 현장전 참여작가 연락처 / 김준기 / 2001-06-29 오전 11:07:27
참여작가 연락처
▶구본주031-542-7742,017-363-7742 daumier@kornet.net
▶김태헌016-246-9223 ktaisan@hanmail.net
▶박경주016-870-1104 zoopict@lycos.co.kr
▶연영석018-466-1199 yys21@jinbo.net
▶박은태031-252-6293
▶방정아051-554-9550/016-554-9550 부산시 북구 화명동 313 도시화명그린아파트 104-1506 artbang1@hanmail.net
▶배영환019-205-3931,934-3931 messing@netian.com
▶이중재3784-6011/019-473-5104 pd@blupers.com
▶최평곤018-413-4445/041-352-4445 http://www.djngo.or.kr/
▶최병수011-497-1431/063-584-1431부안군하서면장신리 http://www.choibyungsoo.com
▶M조형연구소,이경복011-311-0339/ slowlee@kornet.net 박찬국391-8512/018-232-3535/306-6254/

▶기획 : 김준기 011-9500-9000 / 3217-0235 가나아트컨설팅 / 02-323-4505 아트포럼시월
artpd@ganaart.com
▶진행 : 전혜정 016-690-1417 diatiger@hanmail.net
▶성곡미술관 02-737-7650 http://www.sungkokmuseum.com
▶아트포럼시월 02-323-4505

■ 성곡미술관 별관 평면도, 꼭 열어보세요 / 김준기 (artpd) / 2001-06-30 오후 4:29:04
성곡미술관 별관 전시장
꼼꼼히 살펴 보시고 작품 설치 공간에 관해 논의해 보죠.
천장높이 : 2600mm
현관높이 : 2050mm
전시실입구높이 : 2650mm
계단높이 : 2650mm
기둥면 : 570mm
1, 2, 3층 전시실 공통
* 옥상도 있습니다.

■ 아웃사이더... 처음엔 이런 고민을 했었습니다. / 김준기 / 2001-06-30 오후 4:41:05

■ 안녕하세요, 전혜정입니다. / 전혜정 / 2001-07-01 오전 12:41:40

현장전에서 진행을 하게 될 전혜정입니다.
현재 홍대 예술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 중이고,
성곡미술관 별관에서 7월 5일 목요일 부터 7월 25일 수요일 까지 열리게 될
'休(휴)'의 공동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전시 보러 와주셨으면 합니다.
현장전에서 만나뵙게 되어 반갑구요,
앞으로 즐겁게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최병수의 경우를 통해본 90년대와 이후에 대한 생각 / 김준기 / 2001-07-04 오전 10:55:45

■ 이런... 코리아의 작가들... / 김준기 / 2001-07-05 오후 7:13:22
웹에 들어오질 않으니 원,
구본주와 방정아 두분 작가님들이 그래도 가장 선진적인 정보통신문화의 여건을 가졌거나, 부지런하거나, 현장전에 관심이 많거나... 뭐 그런 것 같군요.

혜정님이 오늘 오픈했으니, 내일이나 모래부터는 뭔가 달라지겠지...

* 전시 준비에 바쁘다보니, 방정아(artbang1), 2001-07-05
수고 많으십니다. 준기씨.
글쎄 아직 이 게시판이 썰렁한 건 미디어에 좀 둔한 화가들의 스타일 탓도
있겠지만(은태형은 휴대폰 조차 없지 않은가)
전시 준비에 바빠서 그런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너무 열 받지 마슈
근데 작품 슬라이드는 몇장이 필요한지 모르겠네요

* 한 장이요 / 김준기 (artpd) / 2001-07-06 오후 1:56:35
한 장만 있으면 되죠.
인터넷 환경에 적응 안하는 화가들의 습성이야 뭐 익히 알고 있지요.
...^^
방선생과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시간 정해놓고 채팅을 하든지
아니면 이메일로 하든지
아니면 전화로 하든지
아니면 직접 만나든지...
방법을 찾아봅시다.

* 이런 방법, 방정아 (artbang1), 2001-07-06 오후 9:28:39
글쎄 어떤 인터뷰가 왜 필요 한지 잘은 모르겠지만
가능 하기만 하다면 채팅도 괜찮겠군요
그리고 작품 슬라이드는 구작이어야 하나요?

* 언론에 게재하지 않아도 ... / 김준기 (artpd) / 2001-07-07 오전 9:01:25
궁금한 거 물어보고 답하고 뭐 그러는 게 인터뷰 아닌가요^^
자연스런 대화 정도...
슬라이드는 가능하면 신작으로 부탁드립니다.
채팅은 언제할까요?
제가 접속 중일 때 대화 신청해주시던가
시간을 정해 주세요...

* 언제냐면 / 방정아 (artbang1) / 2001-07-07 오전 11:02:32
평일 오전 중에는 대체적으로 가능합니다
월요일 오전 10시경에 접속중이면 대화하죠


■ "현장2001:건너간다" 어때요 이 카피... / 김준기 (artpd) / 2001-07-05 오후 7:16:45
현장전 참여 작가들 대부분이 격정적인 80년대를 그냥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고,
저주받은 90년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의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90년대를 건너가야죠.
21세기라고들 하지만 아직 90년대의 미망 아래 놓여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건너간다.
사실은 정태춘의 노래 제목 패러디한 겁니다.
굵직한 첼로 반주에 맞춘 단순하고도 처절한 음악입니다.
우리모두 건너가고 있지요.
코멘트 한마디씩 부탁함다...

■ [정태춘 노래 가사] 건너간다 / 김준기 (artpd) / 2001-07-15 오후 7:33:25

■ 건너간다 보도자료 7.18 버전 / 김준기 / 2001-07-18 오후 2:02:55

■ 수고하셨습니다 / 박경주 (zoopict) / 2001-08-09 오후 3:16:55
김준기님.
자료실에 올려주신 새 보도자료 읽어보았습니다.
글이 마음에 들어서 한 자 적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경주

■ 깜박 / 박경주 (zoopict) / 2001-08-10 오후 3:45:40
전혜정님
공부하시랴 인턴하시랴 바쁘실텐데 전시회 준비에 너무 너무 수고가 많으십니다.
오늘 조금 지쳐보이시던데 재충전하세요.
전시회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면 더 바빠질테니까요.
박경주 드림

■ <현장2001:건너간다> 서문 / 김준기 (artpd) / 2001/08/1

현장을 안고 시대의 강을 건너간다

■ 현장전 전시안내 / 김준기 / 2001/08/17

■ 보도현황 / 김준기 (artpd) / 2001/08/27

■ 광주롯데화랑으로 현장전이 건너갔습니다 / 김준기 (artpd) / 2001/09/21

어제는 정태춘박은옥의 이야기 노래마당을 보고 왔습니다.
여전히 아름다운 청년같은 부부의 모습에 잔잔한 감동에 흠뻑 젖어서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가을이군요.
<현장 2001 : 건너간다>전이
광주롯데화랑(광주시 동구 대인동 7-1 롯데백화점8층)에서
오늘, 그러니까 9월 21일 6시에 오픈합니다.

10월4일까지 한 보름 정도 되고 추석 대목에 백화점에서 열리는 전시이니, 광주 지역의 많은 관객들이 현장장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직접 오픈 현장에 가보지 못하는 참여작가들도 마음으로나마 광주전시가 잘 되기를 바라고 계실 겁니다.

전시 준비하느라 뛰어다니신 방성현 큐레이터님께 전화라도 한 통화씩 해주시죠.
박성현 062-221-1808
아니면 이메일로 편지라도 한통 보내주시던지요.
pooh4321@hanmail.net

그리고 전시 끝났다고 서로 연락 끊지 말고
계속 얘기들을 좀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 <현장2001;건.너.간.다> 광주전 오픈 / 전혜정 (diatiger) / 2001-09-22 오전 3:02:52
광주 롯데 갤러리에서의 전시 오픈이
9월 21일 오후 6시에 있었습니다.

작가분들이 바쁘신 일정상 한 분도 참석하시지 못한 채,
광주시립미술관의 김선희 실장, 변길현 학예연구사,
광주 신세계의 황호경 큐레이터,
그리고 광주 작가 2분이 참석하셨습니다.

모든 작품들이 다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광주에서의 좋은 반응이 기대됩니다.

■ 미술세계 9월호 기고문 전복을 꿈꾸는 자들의 저항을 생각한다 / 김준기 (artpd) / 2001/09/23

■ 수고하셨습니다 / / 박경주 (zoopict) / 2001-10-05 오후 8:36:4
안녕하세요.
전시회가 끝나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군요.
모두들 너무너무 수고 많으셨고요.
특히 기획자인 김준기님 그리고 힘든 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주신 전혜정님 수고 많으셨어요.
다음에 전시회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고요.
2001년 가을 아름다운 추억들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박경주 드림
2005/01/30 16:18 2005/01/30 16:18

윤기자의 필화사건 : 한미협에 대한 기대와 걱정

artpd clip | 2005/01/28 19:36


윤기자의 필화사건 : 한미협에 대한 기대와 걱정


얼굴 측면 선이 너무 너무 매끈한 윤동희 기자. 전 월간미술 기자이며 현 아트인컬쳐 편집위원인 그가 쓴 글 하나가 오후에 몇몇 미술동네 사람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에 관해 그가 쓴 글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에 윤기자의 글은 그다지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제목 그대로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고 출발하는 단체라는 얘기.

그러나 한미협 관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기사 내용이 기본적으로 한미협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깔고 있다고 본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기사 가운데 유일하게 인용처리된 부분이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의 코멘트였다.

"그렇다면 혹시 기사의 전반적인 기조가 김실장의 정보제공에 의해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노골적인 질문을 받았다. 황당한 입장에 처한 김준기는 우습게도 결백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뻔한 일. 사립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사립미술관협회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에 유일하게 실명이 거론되었으니 입장이 난처할 수밖에. 나로서는 기업미술관 큐레이터들이 한미협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더라는 윤기자의 말에 대해 앞으로는 그들이 열심히 움직여야 협회가 잘 굴러갈 거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윤기자가 인용한 대목도 정확하게 그 얘기를 옮겼을 뿐이다.

"따라서 “미술관의 실질적인 전시 업무를 책임지는 큐레이터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한 상태다."

윤기자와 통화도 하고, 나중에 만나서 저녁 먹으며 얘기 해본 결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신기남의원 홈페이지에서 퍼옮겼고, 다시 데일리 스프라이즈에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결국 일은 윤기자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실린 글이므로 삭제하라고 말했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늘 일로 인해 남은 게 있다면, 한미협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에 실명이 거론된 김준기.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지만, 몇몇 한미협 관계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새로 출발하는 단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할 것이다. 나로서는 윤기자한테 뭐라고 볼맨소리를 한 사안도 아니고...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는 내 얘기가 안 한 말도 아니고 틀린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심사가 불편한지. 이런 게 삶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일인가.

열분덜 함 읽어보시라... 오늘 몇몇 미술관들을 뜨겁게 달구었던 윤기자의 필화사건. 그 전문을 게재한다. 윤기자는 몇 대목을 바꿀 것이다. 기사 전체의 흐름과 김준기 코멘트가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내 말은 빼달라고 부탁했고, 한두 군데 가벼운 오류를 수정하기로 한 것. 윤기자의 블로그에는 수정된 글이 오를 것이다. 여기 올리는 글은 바로 오늘 문제의 그 글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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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 드러낸 한국사립미술관협회, 기대만큼 걱정도 많아
- 삼성미술관의 참여도 관심사,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 터


지난 1월 7일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사립미술관협회 창립총회 광경.

지난 1월 7일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한국사립미술관협회(상임대표 노준의 토탈미술관장)’가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날 18개 미술관에서 22명의 관장 및 큐레이터가 참석한 가운데 그 모습을 선보인 한국사립미술관협회는 미술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내 24개 사립미술관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토탈미술관, 사비나미술관 등 개인미술관들을 중심으로 2003년에 결성된 ‘자립형미술관네트워크(자미넷)’이 법인 단체 또는 기업이 설립한 미술관까지 받아들임으로써 몸집을 불린 셈이다. 그 동안 사립미술관이 개별적으로 운영하던 문화 사업이 ‘네트워크’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이루어짐으로써 이른바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

사립미술관협회는 각 미술관의 학예연구직과 작품 교류를 강화하고, 미술대학 졸업생을 중심으로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현대미술의 주요한 흐름을 점검하는 연구발표회 및 학술지 등을 발간하겠다는 내용의 사업 구상을 밝혔다. 그 동안 당연시되었으나, 미술관이 하지 못했던 사업들이다. 구상대로만 된다면 “건전한 미술관 활동을 통해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하며,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협회의 창립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립미술관협회가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일단 국내의 대표적인 사립미술관인 삼성미술관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하는 점이 걸림돌이다. 현재 협회 가입을 검토중인 동아일보사에서 운영하는 일민미술관의 참여 역시 협회의 위상을 가늠할 지표로 꼽힌다. 그러나 현재로선 삼성미술관이 사립미술관협회에 참여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삼성미술관은 작년 가을, 서울 한남동에 ‘리움’이라는 새 이름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 문제는 당분간 삼성미술관이 과거 서소문동 시대와 같이 대중을 상대로 한 전시를 개최하기보다 당분간 소장품을 위주로 한 상설전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데 있다. 사실상 다른 사립미술관과는 다른 길을 걷는 셈이다.

사립미술관협회 상임대표를 맡은 노준의 토탈미술관장

협회 이사진의 구성 역시 미술관을 운영하는 관장들의 이름값을 의식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사진에는 박강자(금호미술관장), 박문순(성곡미술관장), 노소영(아트센터나비 관장), 박미정(환기미술관장), 박현주(영은미술관장) 등 8명이 선임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미술관 사이의 실질적인 교류보다 개별 미술관 운영에만 관심을 보였던 이들이 협회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미술관의 실질적인 전시 업무를 책임지는 큐레이터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한 상태다. 여기에 광주의 우제길미술관 등 서울이 아닌 지방에 흩어져 있는 사립미술관들 역시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원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무엇보다 사립미술관협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협회의 향후 일정에 따른 재정 중 상당 부분을 정부에 기대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협회는 작년 11월 문화관광부가 국립현대미술관 사무국 산하에 미술관정책과를 조직해 공·사립미술관에 대한 지원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는 눈치다. 그러나 기업이 후원하는 사립미술관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협회가 정부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양새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립미술관이 97년 외환위기 이후 긴축 경영에 들어감으로써 국내 미술계를 위축시킨 장본인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이다. 실제로 사립미술관협회에 가입한 대림미술관의 경우 모기업(대립그룹)의 위상과 달리 작년에 수석 큐레이터를 내보내고, 작가들로부터 대관료를 받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사립미술관협회는 창립 선언문에서 올바른 미술관 문화의 정착과 미술관이 대중들이 즐겨 찾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잡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비전은 추상적인 법이다. 비전이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연히 씨앗(돈)이 필요하다. 정부의 정책적·재정적 지원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첫 삽을 뜬 사립미술관협회가 정부의 주머니를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술계의 바람처럼 정부가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면 사립미술관협회는 굳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문의 (02)736-4371

| 윤 기자
2005/01/28 19:36 2005/01/28 19:36

가족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파헤치는 이중재의 피해보고서

critic & column | 2005/01/28 11:43


가족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파헤치는 이중재의 피해보고서
가족의 허구적 실체와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국가체제 비판

가족. 인간의 삶을 보듬어주는 절대 절명의 소중한 가치이다. 그 누구도 가족을 쉽사리 부정하지는 못한다. 한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서 길러내는 소중한 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 가족이라는 걸 자본과 권력이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 귀에 익숙한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이라는 문구는 가족 단위의 삶을 파고드는 송곳 같은 광고카피를 너무나 부드럽게 유포하고 있다. 가족 모델을 국가 모델로 옮겨 국가체제의 지도자를 한 가족의 아버지처럼 모시도록 하며 그 지도자의 아들에게도 대를 이어 충성하게 하는 가부장 모델의 국가체제도 있다.

이중재, Home sweet home, 비닐봉지, 모터, 음향, 조명 등 혼합매체 설치, 800×1500cm, 2004. 전시장 공간 전체를 비닐봉지로 빡빡하게 채워 가족주의의 “탈출구없음”을 은유하고 있다.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가족 개념 비판
'자본, 국가, 가족’으로 이어지는 주제의식을 통해서 세 차례의 “피해보고서” 시리즈 개인전을 연 이중재 작가는 가족의 문제를 자본과 국가 권련의 문제에 대입해서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 자신이 마흔의 나이에도 결혼이라는 가족시스템에 대해 별 계획을 세우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시각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의 지점을 ‘거대한 것에서 미세한 것으로’ 옮겨오면서 다시 그 ‘세세함을 가지고 거대한 구조에 접근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이기도 하다.
이중재는 90년대 중반 이후 10년 동안 여러 차례의 개인전과 기획전에 참가하면서 영상설치 작업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잡아왔다. 90년대 중후반의 작품들은 당시의 새로운 매체를 이용한 작가들 가운데 발군의 성과들로 평가받았으며 이 속에 비판과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왔다. 또한 ‘푸른사람들’을 통해 창작 소그룹 활동을 펼치면서 1세대 웹아티스트로 자리잡아 왔다. ‘www.blupers.com’은 사진, 영상설치, 웹아트 등이 결합된 푸른사람들의 사이트로서 웹아트의 1세대로 그룹이다. 플래쉬나 쇽 웨이브, 자바 등의 툴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을 비롯해서 웹상에서의 이미지나 텍스트를 이용해서 자본, 제국, 국가, 여성, 통일, 환경 등 시사적인 이슈에 민감한 인터넷 매체의 특징을 이용한 작업들이 펼쳐왔다.
가족개념을 국가개념과 뒤섞어 놓은 체제를 말하는 “가국체제” 개념은 이중재의 가족 이데올로기 비판의 기본 개념이다. 그는 세 덩어리의 설치작업으로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이중재의 피해보고서 III : 로망스-가국家國체제의 파시즘 연구>에서 선보인 작품들이다. 쓰레기 봉지를 천장에 매달아 공간을 꽉 채운 「Home sweet home」, 유리와 애드벌룬 설치작업인 「스마일-웃어요, 웃어봐요」, 그리고 수십만 마리의 파리를 배양해서 가변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게 하는 「자본문제국강국가속가족과파리종」이 그것이다.

빡빡한 행복과 살벌한 미소 : ‘홈 스위트 홈’, ‘스마일’
「Home sweet home」은 한마디로 공간을 꽉채운 물건들 사이에 좁은 통로를 만들어서 관람객에게 깝깝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전시장 공간을 지배하는 덩어리들과 소리들 가운데 좁은 통로를 만들어 둠으로써 가족주의의 허구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편히 쉴 곳은 집, 내집 뿐일세”. 유명한 가사 첫 구절이 강변하고 있듯이 가족 단위로 구성되는 가정은 우리의 휴식공간이며 생산을 우한 재충전의 장으로 기능하는 삶의 터전이다. 이러한 가족의 구성에 대한 이중재의 비판은 가족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가족 체제를 이용하는 국가와 자본의 체계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비닐봉지에 사물들을 가득채운 후 전시장 천정에 매달아 공간을 빽빽하게 채운다. 사방 공간의 여백 부분만이 좁은 통로로 남고 관객은 그 사이로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뿐이다. 좁은 통로 공간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이자 실체이다. 전시장에는 300리터짜리 비닐봉지 98개를 채운다. 여기에는 진동모터를 비롯한 여러 장치를 동원해서 사단장의 연설, 부모의 잔소리, 웅성거리는 말소리, 목사의 설교, 미혼모들의 원한 섞인 얘기,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 거친 숨소리, 웨딩마치, 새마을노래, 수재의연금방송 등 열러가지 소리들이 혼재된 세상의 모습을 담는다. 이렇듯 검은 실체들의 가장자리에 비좁게 열린 통로를 따라 관람객의 동선이 구성되고 그 좁은 길은 가족과 국가의 관계를 암시하는 첫 번째 요소로 기능한다. 가족체제로 구성된 사회적 삶의 최소 단위로서의 가정이 담고 있는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좁은 통로로 은유된 가족 안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꽉 막힌 공간 가장자리의 좁은 통로를 따라 걸어 나오면 깨진 유리판 위해 서서 애드벌룬을 바라보는 공간으로 이어진다. 「스마일-웃어요, 웃어봐요」는 직경 90cm의 유리판 70여개를 10여미터 길이의 바닥에 깔아 둠으로써 깨진 유리를 밟고 서서 저편에 떠있는 스마일 애드벌룬을 바라보도록 한 설치작품이다. 6미터 높이의 천정 아래 허공에 떠있는 애드벌룬 허구로 가득한 행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이 유리판 위에 서서 스마일 마크가 새겨진 큰 풍선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가족주의를 통해 보장되고 있는 행복한 삶에 대해 그 허구성을 상기하게 하는 작품이다. 가족주의를 통한 불안한 행복, 불안한 공공성에 관한 얘기다.

이중재, 스마일-웃어요, 웃어봐요, 유리와 애드벌룬 설치, 500×1500×600cm, 2004.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불안한 스마일. 그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과 가족에게 던지는 미소이다.

가족을 테러하는 이미지 : 파리가족사진
학창시절 생물시간에 ‘계문강속과종’으로 이어지는 생물학 분류체계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중재는 이 체계를 자본주의 사회와 가족으로 연결한다. 곤충을 이용해 가변적으로 형성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설치작업「자본문門/제국강綱/국가속屬/가족과種/파리종種는」생물 분류 개념에 ‘자본-제국-국가-가족-파리’를 대입한 것이다. 바닥에 웨딩드레스를 깔고, 그 위에 가족사진 이미지에 설탕 등의 유인물로 파리를 꼬이게 만들어서 명암에 따라 파리가 가족사진 형상을 만들게 한 것이다. 종종 지저분하고 잔혹한 이미지들을 사용해온 작가는 이번에는 한국유용곤충연구소의 협찬으로 전시장에서 수십만 마리의 파리를 배양한다. 그 파리들이 가족의 의미를 상징하는 ‘가족사진’을 만든다. 소중하고 따뜻한 가족의 이미지는 결국 설탕물에 꼬인 파리 때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처럼 가변적이고 언제든지 해체가능한 허술한 것임을 드러낸다. 가족체제가 허상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허구적 실체로서의 가족, 가족이미지는 흩어졌다가 다시 꼬이기도 하는 불안한 것이라는 점을 신날하게 폭로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마지막 피난처가 가족이다. 답답하고 꽉 막힌 빡빡한 시스템은 가족 이외의 피난처를 허용하지 않는다. 공동체적 삶의 최소단위를 가족에 환원함으로써 국가와 사회가 분담해야할 역할을 가족이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중재는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꽉 막힌 공간을 제시함으로써 가족주의에 묻혀 공공성이나 사회적 안전망 없이 빡빡하게 짜여진 우리의 삶을 환기시키고 있다. 다른 공간에서는 허공에 붕 뜬 풍선 같은 행복의 허구성을 보여주며, 나아가 가족을 통해 보장되는 행복이 허구적이며 가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파리 때 설치작업으로까지 나아가면 가족에 대한 이중재의 비판은 어쩌면 독설적인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이중재는 다음과 같은 육성으로 보다 확실하게 가족주의 비판의 저의를 밝히고 있다.
“가족의 사랑이라는 말은 어떠한 의문도 사전에 제압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가족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그 표현 뒤에 숨어있는 다른 뜻은 없는가. 언제부터인지 대우가족이나 삼성가족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노동자의 파업은 "아빠, 힘내세요"로 바뀌었다. 가족은 이미 경제적인 동원대상으로 변질되었고 이런 사실을 국가주의의 산물이라고 눈치 채기도 전에 눈물, 정, 정서 등등의 신화적 언어에 호소되어버린다. 가족사회는 이처럼 가족을 신화화함으로써 오히려 가족을 억압하고 개인의 욕망을 거세한다. 아니, 가족은 곧 다시 권력이 된다. 주인 없이 노예와 노예의 명령만 난무한다. 가족이 더 이상 파시즘의 씨앗을 뿌리는 도구로 전락되지 않기 위해서, 순환-반복되는 가족기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이 전시 또한 무슨 도구의 사용설명서처럼 사용되기 바란다."
가족 안에서 안정을 찾는 것은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일면 가족과 가정의 개념은 신성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시스템이 그것을 이용해서 왜곡된 가족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이점은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개념이 국가체제의 변형태인 가국(家國)체제이다. 오늘날 개인과 가족과 국가 사이의 유기적인 시스템에 대한 준비는 무망한 일이 되었다. IMF를 맞아 그나마 부실했던 제도화된 시스템의 안정성이 일시에 무너지고 가족체제가 그 충격을 완화해 주었다.
이중재, 자본문門/제국강綱/국가속屬/가족과種/파리종種, 철재프레임, 방충망, 수십만 마리의 파리, 가족사진, 설탕, 열선, 석고가루, 온도조절기, 웨딩드레스, 사료, 300×360×300cm, 2004. 파리가 붙어서 가변적인 형상을 만드는 가족사진이다. 가족의 가치는 단 것을 찾아 파리가 꼬이듯 가변적인 가치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허약한 공공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 가국체제는 개인과 가족의 희생을 전제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개인과 가족의 희생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가부장과 가족단위가 그 문제를 떠안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을 통해서 국가와 자본의 시스템은 더욱 공고한 체제를 만들어 나간다. 이중재가 예술의 영역에서 국가나 가족이라는 체제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허구적 실체에 대한 유의미한 비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이중재(1966-)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중앙대 회화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비판적 리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국내외 기획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영상설치작업과 웹아트 작업으로 유명한 이중재는 피해보고서라는 주제로 세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첫 번째 <피해보고서(damage report)>(이십일세기갤러리, 1996)는 동영상 설치작업들로 배금주의에 빠진 자본주의 비판의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두번째 보고서는 <피해보고서 2 : 사이-코코코>(한원미술관, 2001)라는 제목으로 ‘국가체제’에 운영되는 개인의 삶을 거대한 그 무엇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통일, 권력, 언론 등의 문제를 다뤘다. 세 번째 <피해 보고서 3 : 로망스-가국체제연구>(유아트스페이스, 2004)는 국가체제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로서의 가족체제에 주목하고 이것을 가국체제로 규정함으로써 가족주의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2005/01/28 11:43 2005/01/28 11:43

뮤지움토크 1 녹취록 : 강홍구, 김세진 + 성완경, 김계중

project/시각서사 0414 | 2005/01/27 16:31


시각서사 뮤지움토크 1 녹취록 : 강홍구, 김세진 + 성완경, 김계중

작가 : 강홍구, 김세진
초청패널 : 미술평론가 성완경, 서울실험영화페스티벌 프로그래머 김계중
2005.1.15( 토) 오후3시, 사비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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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 안녕하세요. 시각서사 뮤지엄 토크의 사회자 김준기입니다. 뮤지엄 토크는 일단 작가 두 분의 프레젠테이션을 간단하게 듣고,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두 분 작품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미술과 영화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 패널 분들과 이번 전시를 관람하신 관람객여러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강홍구 선생님부터 먼저 시작해주세요.

강홍구 : 예, 강홍구입니다. 제가 했던 것은 주로 꽤 오래된 작품이에요. 그러니까 대체로 96년에 한 게 굉장히 많고요. 실제사진과 결합을 시켰거나 혹은 다른 사진과 결합시켜서 작업을 하고요. 이 경우에는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과 다음, 주차장사진은 제가 찍었던 것을 짬뽕으로 만들었어요. 그때도 그랬습니다마는 지금 봐도 포토샵으로 적당히 조작한 티가 나죠. 저렇게 똑같은 패턴이 연속되어 있는 것하며 그리고 저 얼굴만 본인입니다. 다음, 역시 비슷한 거죠. 이것도 실제 사진과 붙인 건데 저 뒤에 배경은 인천 월미도입니다. 월미도를 갔었는데 저 앞쪽에 있던 ‘조국의 미래 청년의 책임’이라는 저게 너무 황당무계하고 (웃음) 그것 참 웃긴다고 생각해서 표현해 본 것입니다. 다음, 이것 역시 저수지의 개들의 장면을 복사해놓은 것이고 전부다 제 얼굴이고 똑같은 겁니다. 다음도 마찬가지로, 저수지의 개들 첫 장면이고 옐로, 화이트, 퍼플 이런 친구들이 쭉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저건 제 얼굴을 일부러 다른 사람들 얼굴에 모두 합성해 본 것입니다. 뭐 다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도 있었고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이 들어있었죠. 이제 보니까 스미스 요원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만.(웃음) 이것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파리의 미국인이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저 얼굴은 저 아주 젊었을 때 얼굴입니다. 이제 보니까 리마리오 약간 비슷해 보이기도 하네요.(웃음) 다음, 이것은 브로컨 애로우의 한 장면이네요. 저것은 존 트라볼타입니다. 참고로 존 트라볼타하고 저하고 아마 나이가 같아요. 그리고 이것은 독립영화 인디 다큐의 한 장면이었고 원래는 티비라는 전시를 누군가 기획해서 있었었는데 오래전 일이었습니다만. 그때 냈던 작품이죠. 그러니까 철거촌 배경으로 도망가는 장면이었고 그렇게 해서 이건 도망자라고해서 시리즈로 몇 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뒤의 것은 역시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의 한 장면입니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저 영화 스틸사진은 오현경씨가 찍었더라고요. 그리고 이것은 잡지에서 카피한 사진입니다. 저 뒤에 그 때가 91년도에 일어났던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다음, 이것은 어느 잡지에서 따온 공동묘지 사진이었습니다. 실제로 다 남의 사진, 영화부터 시작해서 가져와서 그걸 모아 놨던 거죠. 다음, 이것은 어느 자동차광고사진이었습니다. 아마 에어백을 강조하려고 했던 광고사진이었습니다. 다음, 이건 역시 아까 봤던 꽃잎이고요, 그리고 저 앞에 달리는 인물은 영화 ‘북극선 으로 진로를 돌려라‘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입니다. 다음 꺼요. 이것은 영화장면 비슷해 보이는 시리즈였습니다. 행복한 우리 집이라는 시리즈 작품입니다. 뒤에 나와 있는 것은 광고사진이고 앞에 불난 것은 역시 짜깁기해서 만든 것으로, 아마 전쟁장면에서 따와서 연기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다음, 이건 역시 의류광고사진의 일부와 돈뭉치와 기타 등등 다 결합시켜놓은 것이었습니다. 역시 행복한 우리 집 연작이었습니다. 이 장면도 역시 외국 인테리어 잡지와 그 다음에 어떤 폭력적 영화를 결합시켜 놓은 것입니다. 저쪽에는 지금 딸내미를 손으로 이렇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입니다. 다음, 이 작품 역시 두개의 광고사진을 결합입니다. 저 뒤에 있는 침대는 침대 광고 사진이었고요. 앞에 있는 발은 향수 광고 사진입니다. 원래는 발을 저렇게 들고 남자한테 키스하는 장면이었습니다만, 물론 쓰이는 곳은 달랐죠. 다음, 역시 이것은 잡지에서 따온 사진입니다. 욕실장면이고 저 뒤의 박쥐는 아마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따온 것 같아요. 다음, 이것은 영화와 관계없이 하나 만든 것입니다. 저 뒤의 개집은 제가 그냥 찍은 거고 저 뒤의 자화상도 제가 그냥 찍은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두개의 영화가 짬뽕되었었던 것 같네요. 저 뒤에 배경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그리고 앞 쪽 장면은 ’총잡이‘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영화는 굉장히 재미없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은 두 장면을 결합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이 뭐였더라... 불길한 예감이었던가,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던가 그렇습니다. 다음, 이것은 레옹이었습니다. 저 뒤에 배경은 신촌입니다. 이대앞이고요, 인물들은 보시는 바와 같이 레옹과 마틸다입니다.

김준기 : ‘레옹’인물이 작가본인으로 바뀌신 건 아닌가요?

강홍구 : 아니요. 작가본인은 아닙니다. 원래 레옹이고요. 다음 것은 여의도 관광엽서였습니다. 그리고 저 뒤의 부서진 비행기는 잡지에서 따왔던 이미지요. 그리고 저 뒤에 불나는 63빌딩은 만든 거고요. 그리고 911하고 아무 관계없죠. 97년쯤에 만들었으니까.

김준기 : 전 깜짝 놀랐네요,

강홍구 : 다음, 이것 역시 관광엽서 사진이었습니다. 이건 전쟁공포 연작이었어요. 그러니까 일종의 재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건 스텔스기가 서울관광엽서 항공을 지나는 장면입니다. 다음, 이건 약간 에로틱버전이군요. 이건 헝가리영화였는데 기억이 안나요. 기억은 안 나고 왼쪽에 있는 저 얼굴도 제 얼굴입니다. 잘 안 믿기긴 합니다만.(웃음) 이것은 데니 보이드의 셀러브레이브의 한 장면입니다. 앞쪽의 얼굴은 물론 제 얼굴입니다. 다음, 이것은 이제 버전이 달라집니다. 영화버전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봤던 게 대체로 영화를 중심으로 한 버전인데. 그냥 몇 개만 참고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렇게 보니까 영화장면인지 실제장면인지 잘 구분이 안 가네요. 그냥 쭉 몇 개만 넘겨보죠. 기억은 나네요. 남해 상주해수욕장에서 찍었던 장면이고요. 이 때부터 스캐너를 버리고 디지털카메라를 무리를 해서 구입을 해서 디지털 카메라를 쓰기 시작했던 때에요.

김준기 : 그게 몇 년도 인가요?

강홍구 : 그때가...제가 99년에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샀거든요. 99년 말에. 그래서 2000년부터 21세기부터 쓰기 시작했던.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디지털카메라가 너무 고가여서 살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때만 해도 이 카메라가 쿨픽스 990이었는데 이때도 거의 150만원이었으니까 굉장히 거금이었죠. 지금은 30만원도 안할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세트장에 가서 찍었던 역시 그 디지털카메라를 쓴 세트장입니다. 세트가 영화하고 약간 관련이 있기도 하겠네요. 다음 것은 세트는 아니지만 세트처럼 보이는 씬 입니다. 남해 하동이었던 것 같아요. 이것은 그 유명한 야인시대의 명백한 세트입니다. 동대문이고요. 이건 부산비엔날레의 부산물인, 부산에 가서 부산비엔날레에 가서 찍다가 하나 만든 겁니다. 해운대고. 저 갈치는 몰론 진짜 갈치이긴 하지만 가짜 상황입니다. 다음 이것은 지금은 사라져 버린 홍대 앞의 공터였습니다. 지금은 술집이나 고깃집만 잔뜩 들어섰지만요. 다음, 이것은 부천일대입니다.‘뱀닭’이라는 표지판은 물론 가짜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김준기 : 동네 이름이 어떻게 되죠?

강홍구 : 오세리 근처고요, 이것은 그 근처에 살 때 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한강시민공원 연작이네요. 다음, 이것 역시 오세리 연작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찍은 것입니다. 네. 여기까지 작품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김준기 : 네, 대체로 이제 작업에 관해서 간략하게 보여주시고 프레젠테이션 해주셨는데 이후 진행될 대화에서 더욱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 김세진 작가 부탁드립니다.

김세진 : 저도 97년부터 비교작업을 시작해서 작업이 산발적으로 많아요. 일단 비디오작업이라서 강홍구 선생님처럼 하나하나 보여드릴 수는 없고요. 대체적으로 설명을 드린 다음에 몇 개 정도만 보여 드릴게요. 시간이 걸리니까. 다 보시려면 2시간정도 걸리거든요.
먼저 영상 스틸 사진을 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제 작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업으로, 'REVERSE-되돌려진 시간'라는 작업인데 이건 좀 이따 보여 드릴게요. 98년도에 했던 작업이고요. 사물을 거꾸로 돌렸을 때 새롭게 나타나는 이미지에 대해서 6가지 채널로 만들었던 비디오 작업이에요. 다음, 제가 애초에 비디오 뉴미디어에 관한 관심 때문에 이런 형식적인 실험을 많이 했어요.
다음, 작업을 하다가 어떤 부분에서 내러티브라는 게 생기더라고요. 그러니까 보통 미술이라는 작업에 대해서 그냥 시각적인 이미지 뿐 아니라 내용적인 면이 자꾸 보이니까 영화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게 됐죠. '이너뷰'라는 작업을 했고, 이것도 가족, 소통의 단절에 대한 이야기고요. 참고로, 여기 이분이 바로 강홍구 선생님이시거든요. 너무나 연기를 하고 싶어 하시는 간곡한 청약에 의해서.(웃음) 이 작업에는 사운드가 없고요. 4가지 채널로 보여줘요. 빈 방,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인데, 아빠와 딸, 같이 있을 때 어떤 동적인 그림이 생기고요, 각각 혼자 있게 되는 공간 아무것도 없게 되는 공간, 뭐 이런 단절에 관한 이야기죠. 사진처럼 보여주기를 원했던 비디오작업이고요.
이거는 ‘10 to 10'이라는 첫 번째 필름영화로 20분 정도의 길이에요. 소통에 관한 것을 그린 작품이고, 보여드려야 하는데 시간관계상 스틸 이미지로 대신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했던 게 ’기념사진‘이라는 작품이고요. 이 작업은 광주에서 처음으로 했던 작품이고요. 동영상작업을 계속하면서 정지영상, 사진처럼 보이게 한 작업이에요. 정지와 움직임 둘 사이의 긴장에 대해서 물어봤던 작업이고 좀 있다 보실 거고요.
최근에 하고 있는 작품은 이 작업으로, 필름 작업이에요. 아직 완성은 못했어요. 1년 전에 시작한 작업인데 돈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요즘에 하는 작업은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순간적인 초현실적인 느낌을 기록해서 제가 연출하는 작업이에요. 아직 작업 중이고 제목은 ‘골드 모멘트’입니다.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데 상상 화된 이미지를 현실화시키는 시각작업이에요. 이것도 같은 시리즈고요. 이건 종이가 날리고 있는 장면이고요. 진행 중인 작업이에요. 그럼, 스틸 이미지 설명을 마치고 일단 ‘REVERSE-되돌려진 시간’을 보시겠습니다.(비디오 상영)

김준기 : 한 90년대 후반부터 지금 아까말씀하신 것처럼 스캐너로 작업하시다가 디카까지 해 오신 것을 살펴봤습니다. 두분 다 영상작업과 사진작업 즉, 시각서사라는 내용으로 꾸준하게 작업을 해 오신 분들이죠. 관련해서 오늘 초청패널 두 분께 말씀을 해 주시죠.

성완경 : 사실은 시각서사에서 서사라는 얘기를 하자면, 각각의 작가의 작품 속에 서사가 있거나 혹은 서사에 대한 관심이 작업으로 표현된 경우가 있습니다. 전시 전체의 기획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떤 미술적인 화두의 그런 의미에의 서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리얼리즘 전시 때, 그와 꼭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리얼링’전 때는 작가들의 범위가 넓었지만, 이번에 하신 전시는 큐레이터 아이디어에 의해 선별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긴장하고 흥미가 있고 짜임새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번 쌈지에서 프레젠테이션 할 때 김세진씨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관객중의 한 사람이 영화에서의 서사와 소위 비디오 작업할 때의 서사는 좀 구별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서사문제에서 미술 특유의 서사에 형식이 있는 것처럼 모호한 얘기를 하셨는데 그런 얘기도 재미있는 주제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일단은 두 분 작품은 여러모로 흥미롭게 한 자리에서 다 볼 수 있었습니다. 대조가 되는 점을 느꼈는데 이를테면 강홍구씨의 작품은 외재적이고 시니컬한 것이라면 김세진씨 작업은 내재적이고 심리적이라는 것이죠. 김세진씨의 서사는 가끔은 연속극이나 상업적인 기존 대중문화를 이용하면서도 그것을 뒤집는다는 의미에서는 한편으로 강홍구씨과 같은 범주의 외재성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방식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존에 본 것 중에 재미있게 본 작품에서는 심리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오늘 보여주신 작품들에선 빠졌네요.
아까 강홍구 선생님이 아버지로 나와서 딸을 때리는 ‘이너뷰’라는 작품은 아버지와 딸을 다루고 있죠. 그거 같은 경우도 상당히 심리적이면서도 사회관계라는 외재적인 문제가 있죠. 그것 말고도 ‘욕망의 바다’ 같은 것, ‘꿈속에서’라는 작품도 매우 심리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느꼈거든요. 만약에 이야기가 나와서 무의식에 대해 얘기해본다면 강홍구 선생님의 작품도 상당히 초현실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외재적이고 비판적인 또, 그 외재성이 파노라믹한 뷰와 그 속에 이어붙인 듯한 흔적들의 균열, 의도적인 개입이 합성에서 말이죠. 재난적인 장면들, 스텔스기, 63빌딩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느낌 같은 것이 드러난 작품들을 보았습니다. 재난적인 측면이랄까,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꼬집으면서 유쾌하게 비튼다고 할까. 그 속에서 발현되는 초현실적이고 무의식적인 면모가 김세진씨와 닿은 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강홍구 : 저 같은 경우는, 저도 오늘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있는데 제가 유도한 것이 아니거든요. 경우에 따라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오히려 사진이라든가 영화이미지라든가 카메라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초현실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거든요.

성완경 : 예, 그 점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강홍구 : 어찌 보면 굉장히 객관적이고 종속적으로 카메라가 기록하는 것 같은데 실제 기록한 결과물을 보면 앗제의 사진에서부터도 이미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완경 : 여기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오세리 풍경에 표기된 글, 굉장히 잘 쓴 글이던데, 거기 파노라믹한 뷰에 관한 얘기, 사진의 재현성에 관한 얘기가 나와 있고. 그러나 바로 그런 측면하고 지금 말씀하신 초현실성, 파워풀하게 드러내는 다른 방식인 그런 것하고 대조적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근데 저는 오늘 본 것 중에 두 분 사진에서 그것이 어떤 방식, 그것을 뒤집고 비평하고 해도 공통된 부분에서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심리적이고 초현실적인 힘, 그런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강홍구 : 제가 김세진씨의 작품은 지우개싸움을 하는 작품인 ‘상실’에서부터 봐왔어요. 김세진씨가 심리적 게임, 당기기와 같은 긴장감을 굉장히 강하면서도 동시에 외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교묘하게 감추며 전개하는 방식이 굉장히 흥미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성완경 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제 작품이랑 비슷한 점이 있는데, 이것이 어떤 성향이 있다든지 아니면 기본적으로 사진이라든가 이미지가 갖고 있는 힘들을 그런 방향으로 모아놓은 건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성완경 : 상대적으로 오세리 사진들이나 오세리 사진에 대한 작가가 쓴 글보다 컷으로 보여줬던 합성사진들에서 그런 측면을 더 많이 느꼈어요.

김준기 : 이것으로 첫 말씀에 여러 가지 문제를 던져주셨는데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죠. 지금 두 사진작업, 비디오작업 등 시각 예술가들의 서사를 죽 보셨는데 시각미술에서의 서사와 영화에서의 서사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영화적 서사와 문학적 서사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고자 오늘 영화 쪽 패널을 모셔보았습니다.

김계중 : 저는 지금 서울실험영화페스티벌의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고, 제가 말을 할 때 특별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저는 특별히 미술이론을 공부했다기보다는 학부하고 대학원과정에서 영화제작을 공부하고 영화를 만들다가 영화를 좀 아방가르드적인 접근방법에서 해보자해서 실험영화제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미술에 관심이 있었지만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거나 작업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외람된 말을 해야 할 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감안을 해주시고요. 전시전체에 대한 컨셉이나 그런 것들은 나중에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고요. 나름대로 김세진씨와 강홍구씨의 작업을 비교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단 다른 점은 강홍구 작가의 경우에는 로우 테크(low tech)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사용하신 기술자체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해서 이미지에 대한 변형을 시도하셨고요. 김세진 작가의 경우는 반대로 고가의 장비라든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업적인 이미지, 상업적인 광고, 영화에서 쓰이는 디자인 등 세련된 이미지에서 출발하셨기 때문에 오히려 하이테크(hign tech)에서 접근하지 않았나하고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분 작가들의 공통된 부분 중의 하나는 우리한테 익숙한 과정자체에 변형을 가하면서 새롭게 보자는, 관람태도에 대해 변화를 준 점입니다. 또 다른 점은 강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대중문화를 이용하여 문학적인 심상을 느낄 수 있는 메타포전달에 치중되어 있다면, 그 반대로 김세진 작가의 경우 철저하게 비디오를 이용해서 우리가 상업적인 이미지에 익숙해 있을 때, 과학적인 기술들을 이용해서 약간의 변형을 가해진다면 우리가 익숙해져있는 이미지들에 있어서 과학적인 부분을 이용한 프로세스가 어떤 식으로 우리한테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게끔 작용하는가에 대한 고찰을 필요로 했다고 생각하고요.
또 좋게 느낀 점은 보는 사람들이 그 이미지에 대해서 굳이 기술적인 부분에 많은 것을 몰라도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 같이 고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을 하신 점입니다. 약간 뭉뚱그려 말씀드리면 여기 시각서사라고 해서 비주얼 내러티브라 하셨는데 제목에 이의를 내는 건 아니고요. 영화가 기술적인 측면이나 내용적 문화적 측면 아니면, 영화의 사실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새롭게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포맷이라든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서 제시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생각을 해본다면 영화가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현실의 모사에 있어서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에 사람들이 그렇게 몰두를 하기 시작했다고 보고요. 그 다음에 그러한 재현을 통해 사실성을 우리에게 제시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너무나 익숙하게 영화와 함께 커왔고 봐왔고, 우리가 느끼는 현실감 사실성 같은 것들이 너무나 우리에게 익숙해져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사실감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가장 사실적이고, 그 사실적인 것을 어떻게 하면 초현실적으로 사실적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데서 대중문화의 이미지가 역할을 해 왔다고 봅니다. 강홍구 작가님과 김세진 작가님의 작품에,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물론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어떤 크리틱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게끔 하게 하지만, 그 안에서 사실주의를 건드리고 계속 그것과 씨름하는 측면이 있어서 작가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영화가 왜 현재 미술작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는가를 보여주는 케이스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김준기 : 요점에 들어가기 전에 패널의 말씀 들으면서 혹시 덧붙이실 말은 없으신지요?

성완경 : 아까 하던 얘기였는데 96, 97년도 합성한 스틸사진에서 받는 느낌하고 오세리 연작사진하고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합성사진에선 합성의 장면성 자체에서 드라마틱한 것, 심리적 측면과 비평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있고, 오세리 작업의 경우, 그것이 파노라믹하게 보였는데 거기에 소셜 멘트가 있는지, 아니면 그것과 다른 풍경을 관조하는 태도인지 다른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십시오.

강홍구 : 아까 말씀하신 균열에 관한 것 입니다. 균열과 무력감. 실제로 오세리란 김포공항에 있는 도시입니다. 비행소음으로 항의가 있었고 87년부터 이주대책이 세워지고 이주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땅을 팔고 이주하였으나 세입자들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가보면 동네전체가 기묘한 색상의 폐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그 근처에 살면서도 너무나 이상했어요. 그래서 이걸 한번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처음에 시작했습니다. 처음이 2000년 쯤 되요. 그러다가 오세리를 보면서 느끼는 우리나라의 압축된 고속성장. 그것이 가져온 변화가 국가의 돌연적 변화, 파괴인데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굉장한 갈등이 있어요. 근데 제 입장에서 보면 항상 구경꾼이에요. 무력하고. 그래서 양자사이의 문제 결국 그것이 사회적인 결과물이고 사회적인 것을 비판하고 싶은 욕망들이 있는데 내가 전적으로 투입하지를 못한다는 갈등과 그 다음에 외부에서 보면 그곳은 특이하게도 풍경으로 보입니다. 이런 양자사이의 갈등을 풍경으로 파노라마식으로 펼쳐 놓고 싶었어요.

성완경 : 지금 말씀하신대로 풍경의 밖에 작가가 있는 것 같은 개입을 못하는 것 같은 무력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김세진씨에게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키드’의 장면들, 15분 예정 중 1분 보여준 작품 말이죠. 정확한 시나리오 있는지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흥미롭고, 사진과 연관된 부분이 있지 않나봅니다. 우리가 보는 재현된 어린아이는 심리적이고 불안합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장면은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그곳은 엄청난 감춰진 비극, 범죄의 장소일 수 있죠. 사진 역시 잠재적으로 촉발시키는 것이 있지 않나싶어요. 내가 너무 과밀하게 본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까 본 것은 굉장히 끔찍하거나 무서운 이야기일 것 같은데, 그 작품에서 작업 중이지만, 거기서 다루려고 하는 이야기. 설명을 좀더 들을 수 있는지 듣고 싶네요.

김세진 : 김계중씨의 말처럼 하이 테크한 상황에서 작업을 진행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미지 적이거나 형식적인 실험을 하다가 이번에 ‘키드’라는 작업은 굉장히 영화적인 상황에서 시작을 하게 됐어요. 제가 항상 미술에서 생각했던 은유라던가 그런 것들에서 보면, 두 아이는 선과 악의 상징이면서 악이 선을 누른다는 명확한 명제에서 시작하지만, 중간 중간의 이미지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거든요. 보는 이에게 이것은 관람의 방해적인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저에게는 그렇지 않거든요. 사실 영화는 굉장히 돈이 많이 들죠. 실험만 하기에는요. 그래서 영화는 반응 같은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미술도 마찬가지이지만. 미술 했던 분이 영화를 할 땐 낯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성완경 : ‘키드’ 같은 작품들이 완성되었을 때 갤러리 같은 데 보다 단편영화, 실험영화 등 영화관에서 보여 지게 되겠죠? 영화죠, 영화.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이런 미술관에 초대받게 되겠죠. 그런데 전시를 본다는 것과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김준기 : 영화는 앉아서 보는 것이고. 전시는 직접 돌아다니면서 몸으로 돌아다니는 것 체험하는 것이죠. 영화는 여러 컷의 사진이 이어진 것인데 멀리서 보면 그렇지만 사진을 본다는 것은 응축된 서사를 한 화면 안에서 고정된 것들, 특히 빛이 아니라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죠. 인화지에 화학약품이든 캔버스에 물감이든 어떤 물질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이고. 영화는 가변적인 것을 본다는 것으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미술과 영화라고 할 때, 이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김세진씨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세진 : 정확하게 다르다는 점이에요. 미술, 영화의 경계는 분명히 있고 그게 겹치거나 혼합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술과 영화가 만났을 때 시너지 효과만 일어난다고 보진 않아요.
판이 다르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다르다는 거죠. 작가가 혼자 작업하는 것과 여럿이 작업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언어가 존재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김계중씨께 여쭤보고 싶은데, 사실 비디오 아트 같은 경우는 뚝 떨어진 존재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요. 실험영화라는 부분은 맥이 희미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결국에는 상업영화 쪽으로 흐르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데뷔를 하는 거죠. 작업을 하시는 바탕이 되어있지 않으니까. 비디오 아트는 이렇게 껴도 되고 저렇게 껴도 되고, 실험영화와 비디오 아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준기 : 실험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거죠. 그리고 비디오 아트는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보고요.

성완경 : 근데 너무 그렇게 단정 짓는 것에 대해 이의가 있습니다. 실험영화는 미술작품으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술전의 부대프로그램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번에 쌈지에서 관객이 질문했을 때, 비디오 작업이라도 뮤지움에서의 작업과 상업영화에서의 작업은 구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시간이 없어서 얘기를 못했는데, 이는 토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구별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고. 거꾸로 내가 뮤지움 안에서 본 영화인데 원초적인 다름이 있지 않느냐고 이야기 하지만 구별이 안 됩니다. 크리스 마커가 만든 영화로, 이것은 유고 전에 참전했던 프랑스군인 이야기를 다룬 15분짜리 영화인데 카메라를 가지고 전장에 간 것을 담은 것이죠. 이런 짧은 영화를 미술이라고 봐야하는 건 아닐까요. 아마 다른 점이라면 사회적인 장치겠죠. 영화는 영화관이 있고 영화제작진의 방식, 흥행차트, 배급방식 즉, 시스템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것은 독단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준기 : 시스템의 차이일 뿐더러, 시각적인 체험이라는 것을 습득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겠냐는 것이죠. 1시간 이내의 작품일지라도, 그것을 극장이라는 곳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미술관에서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있지 않을까요. 체험자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 만약 극장에 가면 세팅된 화면을 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아니라 이 감독이 하는 얘기를 들으러 왔다는 자세가 생기거든요. 그러나 미술관에서는 비주얼 이미지를 본다는 것인지 하는 근본적으로 그런 차이를 가지고 출발하는 것 같아요.

성완경 : 미술의 체험은 시각적, 조형적인 것이고 극장에서의 영화는 서사라는 것은 객관적 관찰에선 맞는 이야기이지만, 일상적으로 미술관이라 해서 서사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역사적인 이야기라 함은 19세기 말 기술영상 영화가 등장한 시기에 미술은 굉장히 순수한 모더니즘적인 진화를 시작한 시기입니다. 그 시기에 사회 전반에는 기술의 도움으로 완벽한 재현의 형태가 나오기 시작한건데, 이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것이죠. 20세기에 영화가 발전하면서 재현적 서사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대중문화일 뿐 아니라 광고문화의 핵심이 되었죠. 그러나 이걸 너무 분리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미술대학에서 서사를 너무 추방해 버린 건 아닌지... 요즘 서사는 많이 회복되고 있죠. 뮤지움 문화의 과도기 현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뮤지움이 영화적인 서사를 직접체험하지 못하고 절충한 상태라는 거죠. 영상작품도 빔으로 확대해서 물질적, 조형적, 조각적 상황을 즐기고 있고요. 우리나라도 다큐멘터리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봤으면 좋겠어요. 좋은 동영상 작품을 보길 원한다는 거죠. 뮤지움에서 보는 동영상이라 해서 또 다른 상황이 요구된다는 것이 너무 과대해져서 오히려 차단하는 부작용을 낳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준기 : 신체적 체험이라는 것이 극장과 미술관의 가장 큰 차이가 될 것 같아요. 극장에서는 신체적 체험이 약화된다고 하면 전시장에선 극대화된다는 거죠.

강홍구 : 워홀의 영화작업의 경우. 사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는 자기 동일시의 효과가 일어나는데 같은 동영상 체험할 때는 집중하지 않는다는 거죠. 미술관의 동영상이 집중 안 되는 이유는 보는 관습의 문제가 아닐까요. 5분이상이도 집중이 힘들죠. 경우에 따라서는 싱글 채널비디오의 경우 아주 짧은 시간에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관객의 체험방식을 고려해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계중 : 이전의 질문에서 보아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면 미술과 영화의 관람형태 등의 근본적인 차이는 있거든요. 영화의 시스템이 영화에 얽히기 시작하면 작품의 맥락이나 내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죠.
앤디 워홀은 새로운 영화 관람형태를 추구한 것이지만 미술관에서 상영될 수는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을 한 미술관에서 비디오로 제작하여, 구석에 설치하여 상영하는 경우 몇 분씩 밖에 앉아서 볼 수 없었어요. 갤러리에서 영화의 관람을 새로운 방식으로 추구하려는 것은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구분되는 존재이긴 하니까요. 전형적인 영화 관람의 형태를 요구하는 영상작품을 갤러리로 새로운 관람형태를 통해서 했다 뿐이지. 갤러리 공간의 속성은 전통적인 공간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갤러리 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꾸려나가는 것이 추세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미술과 영화의 구분은 여전히 필요하고, 이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영화적인 작품이라 해도 2시간이 넘는 영화는 영화제에서도 내기가 어렵거든요. 갤러리가 혁신적으로 그것을 계속 바꿔 나가는 거죠. 갤러리가 변하는 거지. 가장 열려진 공간이 어찌 보면 갤러리라는 생각이 들고요.
실험영화의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영어로 experimental film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상에서 필름과 비디오로 나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로 하는 아트라는 것이고 필름 아트는 이미 실험영화라고 이름 붙여졌죠. 전통적인 실험영화를 한 사람들은 다 미술계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아방가르드의 자세로 어떤 매체를 가지고 하느냐가 실험영화와 비디오 아트를 구분하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실험영화감독들이 일반영화감독으로 넘어가는 케이스를 말하셨는데 실험영화하면 영화 쪽으로 가서 하라는 선입견이 존재하거든요. 하나의 매체를 보고 영화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하는 방법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필름이라는 매체로 만들어진 것들이 대개 내러티브적인 요소로 취중 되어 있었고, 그 외의 일탈적인 것들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필름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그러나 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관심이 있지만 영화의 내러티브적인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봤을 때는 정형화된 내러티브의 방식이 아니라 개인의 작가적인 입장, 자유로운 예술가의 입장으로 풀어내는 것이 실험영화로 제작된 것이 많았어요. 결국 그 분들의 작업이 작가적인 착상의 연장에서 영화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들의 경우를 보는 게 그런 케이스이고요. 실험영화라는 단어에 새로운 선입관을 가지고 새로운 장을 만들고, 맥락화를 마련하는 것이 서울실험페스티벌입니다.

박동현 : 해외에선 영화를 모션픽쳐, 시네마, 필름, 무비 등 다양하게 칭합니다. 모션픽쳐는 촬영이나 기술적으로 세부적으로 가는 것이고, 시네마라는 것은 아트하우스위주의 것이고, 필름이란 매체적인 실험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영화라는 한 단어로 모든 것을 통칭하고 있어서 용어에서 오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완경씨는 굉장히 필름 적으로 접근하셨고. 김계중씨는 무비나 시네마적으로 접근하셔서 갖고 있는 입장은 다른 것인데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하려니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성완경 : 실험영화제 중에서 내적 카테고리 선정을 어떻게 합니까?

박동현 : 첫 해했을 때는 국내에서 어떤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잘 몰랐어요. 분명히 여러 군데서 하고 잇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베이스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을 했고요. 일단은 기본적으로 일단은 경쟁부문, 초청부문, 해외초정부문으로 나뉘고, 경쟁부문은 형식적인 부분으로 분리됩니다.

김계중 : 경쟁본선부문에 올라온 작품은 내러티브에 대한 실험보다는 장르에 대한 실험, 그래픽적인 이미지에 대한 실험이 있어서 시각적인 형식, 자유적 형식, 시적 형식, 다큐적 형식으로 크게 나누었어요. 시적 형식은 여전히 실험영화이기 하지만 드라마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시적인 심상이 있는 작품들이고, 선이랑 도형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만들어진 작품은 시각적 형식, 새로운 사실주의를 보여주기 위한 다큐적형식, 다큐의 포맷으로 새로운 영화형식을 경험하게 하는 자유형식 모두 4부문으로 나눠집니다. 국내초청부문에 있어서는 과거에 있었던 실험영화 연구소단체 등이 있고 필름이나 비디오로 새로운 실험을 하는 매체실험부문, 실험적인 영상이기 하지만 사회적인 비판적 메시지가 있는 사회적 실험영화부문이 있습니다. 해외초청부문은 영국의 60,70년대 실험영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완경 : 도움이 됩니다. 감사하고요. 또 다른 질문은, 내러티브라는 자체는 기계적으로 배제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상업적 포맷의 일반적 내러티브만 배제했다는 것인가요?

박동현 : 필름도 마찬가지고 시네마도 그렇고 대부분이 내러티브를 가지고 영화를 풀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성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많은 장르와 접목하고 있는데 무용, 음악 등등, 그러나 소설이랑 접목된 것이 극대화되면서 사람들과 소통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연결된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그것을 배제하고 또 다른 것들로 영화라는 매체가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 배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준기 : 내러티브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야기하다’라는 것인데요.

김계중 : 내러티브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드라마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김준기 : 사진과 영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각변화에서 미술에는 20세기에서 내러티브를 배제하였고 20세기후반에야 서사를 회복하자는 과정에서 사진작업으로 또는 동영상 작업으로 서사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전시가 열릴 수 있는 것도 비쥬얼리티가 내러티브를 배제한 어떠한 것이어야 한다는 외골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고, 이를 증명하는 전시가 아닌가 합니다. 마크 로도코의 거대한 추상을 보고도 거기에 내러티브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저것은 심미적 재현이다' 라고 말이죠. 재현을 넓게 보는 것이긴 하지만 좁혀서 보더라고 시각예술에 있어 서사라는 문제는 영화적 서사라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 같아요. 그 다른 게 뭐냐를 얘기하다 보니까 제 본분을 잊어버리고 비주얼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김창겸 : 제가 만약에 영화를 제작할 수 있거든요. 근데 또 작가적으로 이미지를 요구하는데. 이때는 이미지를 분석하고 거기서 내러티브를 변형하려고 하거든요. 근데 영화를 제가 제작하려면 문학적 구조에서 주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결과적으로 비슷할 수 있어도 처음 시작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편지’ 같은 작업에서 편지를 먼저 쓰고 영상을 만들었지만 이는 오브제가 있어서 영화가 될 수 없어요. 그러나 영화라는 것은 기승전결을 다 보지만 도중에 보게 되는 경우, 기승전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없죠. 그래서 작가는 이를 감안해서 중간부서 보더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요. 어떤 경우에는 다른 장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관객이 들어가면 문을 잠근다든지요.(웃음) 그런 경우가 있어요. 사람들을 제한을 해요. 한두 명을 출입시키고 시간이 끝나면 다시 출입문을 열고, 그런 경우가 있었거든요. 유명작가경우에요. 또 다른 경우도 있어요. 작년 초의 일본에서 전시에서 소파를 만들어서 누워서 보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혹시 졸까봐 약간 불편하게 만들었더라고요. 정말 성공적으로 누워서 오랫동안 보게 만들더라고요. 새로운 장치죠. 그러한 기본 조건 속에서 작업해야하기 때문에 내가 비디오작업을 할 경우가 만약 영화를 할 경우에 근본적으로 접근방식이 틀리다는 거지, 사실 작품이라고 했을 때는 실험영화에서도 문학적인 내러티브를 배제하자는 지정하고... 사실 미술작가는 스토리 텔링을 못해서 안하는 거죠. 이미지분석을 더 잘하기 때문에 이미지부터 시작을 하는 그런 지점에서 목적점은 어느 정도 유지할 것 같아요.

김세진 : 저는 오히려 김창겸씨 작업 보면서 편지 같은 경우,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어요. 99년도에 ‘크로스’라는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모든 매체장르의 작가 분들한테 동영상을 만들어달라고 얘기를 했어요. 모두 묶어서 극장에서 상영한 적이 있어요. 재미있었던 게 개별적으로 갤러리에서 봤으면 모두 안 봤을 텐데 수직적으로 모두 보여주니까 다 보더라고요. 김창겸씨 작업은 오히려 굉장히 열려져 있는 구조 안에서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 같고, 영화 같은 경우는 권력적으로 우리가 봐야하는 시스템인 것 같아요. 김계중씨에게 여쭤본 것은 이렇게 해도 훌륭한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관점과 영화라는 것 실험영화라는 것 그런 것에 대한 전달방식이나 형식, 그런 것들을 여쭤본 것 같아요. 전에도 한 번 저런 작업들은 과연 어떻게 상영할 수 있을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김준기 : 상영은 할 수 없죠.

김세진 : 그런데, 상영은 할 수 없지만 그것조차도 상영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 있지 않을까요?

김준기 : 네,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논의되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두 분 작가들의 섬세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창겸 : 그전에 저는 하나 큰 질문을 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과연 서사의 회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미술에 들어오려 했는지 외국의 사례와 우리의 사례를 듣고 싶습니다.

김준기 : 그럼, 여기서 잠시 성완경 선생님의 미술사 특강이 있겠습니다.

성완경 : 글쎄요. 그 강홍구 선생님이 다 잘 설명하실 텐데요. 확실히 서양에서 실험영화가 1910년대 후반, 1920년대 초 그 무렵에 미술가 쪽에 레제 같은 사람들이 만들고 자유롭게 한 것은 사실이죠. 그 시기에 서사를 회복했냐는 것 말고 미래파 작가들이 토탈 시어터 같은 장소에서 공중에 광선을 쏘고 하늘에선 비행물체가 날고, 그게 결국 비디오 아트의 원형체였죠. 비디오 아트의 전시 같은 것, 그리고 또 움직임이라는 것의 작업 같은 것이 대단히 있었죠. 대개 2000년 이후의 작업이 순수하고 조형적이고 정관적이고 뮤지움 피스같은 느낌이 듭니다. 거기엔 미국의 헤게모니가 많이 관계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고요. 그리고 오히려 그것을 깨트린 작고도 자유롭고 정치적인 입장의 플럭서스 같은 것이 있었고 소위 미국에서 팝아트 같은 것이 대중문화 끌어들여서 뮤지움 피스로도 볼만한 것을 많이 냈었죠. 그 시절에 프랑스 쪽의 팝 내지 네오다다적인 것이 흥미로운 게 우리나라에 작품 많이 팔아먹은 세잔이니 뭐 그런 것 말고, 60년대 후반의 내러티브가 있는 서사가 80년대 초에 서울에 처음 선보였어요. 당시 기획되었던 주제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상의 신화, 경찰과 미술. 말하자면 미약하지만 정치적으로 굉장히 진보적이었고 착한 우량아 같은 미국미술과 다른 좌파적인 내러티브적인 미술, 그리고 뒤샹에게 린치를 가하는 것을 나눠서 여러 가지로 그림 같은 것. 이런 것들이 미술의 내러티브가 센지 한 것이죠. 이게 아주 답답해서. 이것을 제가 깨뜨리려고 의도적으로 제가 쓴 적이 있었습니다. 80년대엔 우리미술의 백색 모노크롬을 깨뜨린 게 다행히 80년대 민중 미술적이고 사회미술적인 그런 속에서 할 얘기가 많아요.
요즘엔 와선 다른 작가들의 다양한 제안 속에서 다양한 서사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국내외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게 전반적으로 신체, 계급, 성, 정치 등 여러 가지에 맞는 서사를 찾아낸 색이고 굉장히 적극적이지 않습니까. 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뮤지움 제도 속에서 서사가 폭넓게 인정되고 있고 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지루할 것 같아서 짧게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웃음)

강홍구 : 전 김세진씨께 질문이 있는데요, 제가 김세진씨의 작품을 보면 이상하게도 영화사 쪽으로 계통 발생적인 탄도로 의도적인 것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는데요. ‘되돌려진 시간’을 보면 피를 거꾸로 돌리면서 흥미 있게 만들었던, 그 다음에 스틸사진과 동영상 사이에 긴장감, 그런 것들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어요. 어떠세요? 그런 것들을 의식하면서 만드셨나요?

김세진 : 반반인 것 같아요. 초창기에 시작할 땐 내러티브나 그런 개념적인 것 보다는 이 장비를 어떻게 가지고 놀까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공부하면서 이런 것도 재미있겠구나 생각하면서 형식적으로 반은 감으로 그런 식으로 접근 했던 것 같아요. 저는 강홍구 선생님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요.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시는 것 같아요. 특히 옛날 것, 선생님 세대의 많은 폭력적인 미국영화들이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것 말이죠. 지금은 어떤 영화에서 영감을 얻으시는지 궁금해서요. 작품이 변하신 것 같아서요.

강홍구 : 네, 작품이 변하는데, 그 작품이 변하는 건 사실은 영화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 보다는 영화를 보는 장비가 바꿨어요. 굳이 스캔을 하지 않아도 이미지사진을 만들 수 있거든요. 현실을 찍었는데 현실이 아닌 것 같이 보이거든요. 이렇게 중성적이고 기계적이고 제한적인데 왜 이렇게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가. 물론 지금까지 사진사에서 계속 질문되고 있지만요. 그게 아직도 궁금하고요. 그리고 영화를 다룰 만큼 다루었으니까 이제 좀 쉬었다 나중에 하자는 생각이 드는 거고.

김창겸 : 작품을 보면 흑백으로 주로 하시는데 그 이유가 있나요?

강홍구 : 흑백을 주로 하는 이유는 칼라로 하면 모니터 색상이니 인쇄소에 프린트한 색상을 너무 맞추기 힘들어서 흑백으로 하잖아요. 최근에 본 영화는, 지금도 정신없이 보지만, 뭘 봤더라... 최근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봤어요. 얼마 전 ‘귀여워’를 봤는데 소문보단 실망스러웠습니다.(웃음)

김계중 : 간단한 질문 하나 드릴게요. 강홍구 선생님 사진 작업 중에 본인이 직접 등장하는 것은 최근 작업인가요?

강홍구 : 아니요, 그건 옛날 작품이에요. 95년에 큰맘 먹고 맥을 구입하고 장비가 바뀌니까 96년도에 작업했어요.

김계중 : 제 질문은 또 왜 본인을 등장시켰나 하는 건데요.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강홍구 : 본인이 돼 등장했냐하면, 영화라는 것은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고 대체시켜주고 자기투사효과가 크다고 생각해서 그와 같은 장면을 모아서 영화스틸 이미지를 모아서 작업해보자 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주인공 대신 등장시켜야 하는데 제 사진이 가장 많고 작업하기 편하고 개인적인 욕망이죠.

김준기 : 또 한 가지는 작가들이 자기 자신을 가지고 많이 작업을 하거든요. 그건 자기를 알리는데 유리하고.(웃음)

강홍구 :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옛날 사진이니까 비현실적으로 보이잖아요. 그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김준기 : 선생님은 미디어 아티스트인가요?

강홍구 : 그런 건 생각 안 해 봤는데요. 관심이 없어요.

김준기 : 왜 그러냐면 제가 어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에 다녀왔거든요. 이름이 인터내셔널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고. 미디어아트라는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궁금해요. 요즘식의 미디어아트는 센서를 이용하거나 기계적 장치를 이용하는 아트, 웹베이스아트, 디지털, 이 3가지를 보는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규정할 수 있는가, 묶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토크랑 주제가 다르겠지만 서로 논의해 보고 싶습니다.

강홍구 : 저는 미디어아트라는 용어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에 뉴미디어라든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은 크게 문제 아닐 것 같고 문제는 아트가 매체중심으로 규정되고, 비엔날레라는 것이 문제 같아요. 또 다른 작가들의 약점이 매체접속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거죠. 새로운 매체에 쉽사리 굴복하는 것 같아요. 그게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김준기 : 네, 스캐너를 쓸 때나 디카를 쓸 때나 강홍구라는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여담으로 어제 비엔날레에서 간판작가의 작품이 하늘을 계속 찍는데 새가 계속 날아다녀요. 핑퐁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처럼 말이죠. 이게 미디어 아트 게임이라는 것과 어떻게 연결이 될까 생각해봤어요. 그런 점에서 렌즈베이스아트라고 칭한 적이 있었죠. 예전에 수억의 예산을 들어서 사진비엔날레를 열자는 기획이 있었는데, 비록 성사되진 않았지만, 당시 회의 때 이름을 사진비엔날레, 사진영상비엔날레 등 여러 이름이 거론되었습니다. 이렇게 매체규정이 어설프게 갈 거면 렌즈라는 매체로 정확하게 규정짓고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렌즈아트, 렌즈베이스아트라고 우긴 에피소드가 있어요. 이런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사진작업이나 영상, 영화작업하시는 분들께서 똑같이 렌즈를 투사한 이미지인데 사진이나 동영상의 시각적인 측면이라 할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해서입니다.

강홍구 : 그렇게 현실을 기록한 것이 비현실적이 되고 초현실적이 되는 것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요? 렌즈에 있나 아니면 인지나 심리적 이유에 있나요? 그런 것들이 궁금해요. 영화 쪽에서는 어떻게 보나요?

김계중 : 저도 사실 영화 쪽에선 아웃사이더이길 원하고 어찌 보면 편입하고 싶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긴 합니다. 글쎄요. 어떻게 보면 이런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렌즈를 통해서 보는 이미지나 우리의 눈을 통해 보는 렌즈의 이미지들에서. 극장에서 보는 것은 카메라를 통해 찍혀진 이미지를 우리가 직접 보고 있다는 환상에서 영화의 자기 동일시가 일어나는 것이거든요. 근데 그러한 렌즈를 통해 찍혀진 이미지를 변형하는, 김세진 작가가 이미 실험한 것이지만,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일종의 환각제를 경험했을 때의 착각현상, 난 착각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것은 현실이라는 믿음의 시스템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김창겸 : 어떻게 보면 저는 반대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렌즈를 안 쓰는 미술이 어디 있는냐는 거죠. 렌즈를 쓰는 미술, 아니면 렌즈를 쓰는 매체를 가진 작품들은 공통점이 전부 디지털화 된다는 것 같아요. 렌즈를 안 쓰면 디지털화 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디지털이라고 하면 또 다른 의미가 되잖아요.

박동현 : 제가 볼 땐 그런 의미보다는 저는 디자인인데 글 쓰는 것과 드로잉, 그러니까 옛날 문학 분야에서 라이팅(writing)은 쓰는 것이고, 요즘은 드로잉(drawing), 그 다음은 사진은 찍는 거죠. 근데 요즘은 작가가 이야기를 하려니까 글 쓰는 사람, 즉 라이팅은 텍스트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드로잉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할 순 없는 거죠.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영상을 새로 잡았을 때 어떤 사람은 구상이 안 되어서 추상이 되거나 그런 것처럼 동영상안에서 소리나 대사 여러 요소들이 이미지가 겹치면서 오페라에 같은 총체적 예술과 같은 거죠. 오늘 느낀 점은 오늘 말씀하신 작가들이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럴 경우 메시지가 있는 것이거든요. 근데 렌즈 이런 문제보다는 드로잉을 하던 사람이 카메라를 찍는다는 거죠.

김준기 : 잠깐 비켜가는 이야기이지만 제 옆에 있는 작품을 설명하자면 이광호라는 작가의 태몽입니다. 엄마가 태몽을 꿨는데 아버지가 호박을 따는 꿈을 그림으로 그리고, 이를 동영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 동영상이라는 것이 바로 정지화면에 동영상을 어떻게 옮기냐나는 기술적 이야기는 없고 그림 앞에 그냥 선풍기를 놓고 찍은 것이에요. 거기서 나오는 속임수 같은 것들이 묘하게 동영상이라는 거죠. 아까 근데 김세진 작가들이 말하신 것처럼 안 움직이는 것 같은데 저게 동영상인가하는 착각들을 이광호 작가도 줄려고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동영상이라는 것 사진이라는 것을 벽면에 응축하는 회화라는 것의 상관관계 같은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고요.
그 옆의 박경주 작가는 카메라를 잡은 사람과 찍히는 대상과의 차이가 거의 없는 퍼포먼스 같은 거죠. 자기가 기획해서 외국인노동자를 선거 유세시키고 그런 점에서 카메라를 잡는 주체가 피사체와 어떻게 결합되고 개입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김계중 : 특히 3D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하면은 그래픽을 가지고 카메라를 찍혔다는 사실감을 줄려고 하고 많고, 또 많은 그래픽작업들이 카메라가 찍은 작업들을 가지고 그것이 마치 그래픽인 것처럼 하는 것도 있거든요. 그리고 비디오 아트라고 불렸던 것이 미디어아트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현상 자체가 워낙 컴퓨터를 바탕으로 하고 디지털이라는 매체를 이용한 것들이기 때문이죠. 또 디지털이라는 것들이 멀티미디어라는 어떤 텍스트, 그래픽, 동영상 그런 것들이 자유자재로 서로 경계를 넘나드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요. 그러한 렌즈를 통해 찍겠다는 것은 실재성이 내포가 되는데 그런 실재성 마치 영화에서 실재 연출을 했냐는 것이니까 그런 면에서 비디오아트가 자연스럽게 미디어아트라고 명칭 되는 것 같아요.

김준기 : 제가 96년도에 대학원 학술제의 제목이 ‘디지털 인터넷 그리고 영상’이었어요. 디지털과 인터넷의 결합이 그때 당시 새로 시작할 때라고요. 거기 하나 덧붙인 영상이라는 것은 그야 말로 생뚱맞죠. 그렇지만 그것을 쓸 만큼 당시 영상이라는 것이 디지털 인터넷과 동일한 크기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되는데요. 그것이 미디어아트라는 것으로 조합, 정리, 재편된다 그런 생각을 정리해주셨습니다.

김계중 : 영상이라는 개념자체가 이제는 단지 그래픽이건 사진이건 시간에 따라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어가면 영상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요.

김준기 : 사실은 동영상인데, 영상은 그냥 이미지거든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서서히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아요. 이병희 선생님은 오늘 대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이병희 : 우선 오늘 이야기 재미있었고요. 저는 두 분 작업에서 우선 이 전시에서 반가운 점은 서사의 회복에 관한 점이였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의 관습 때문에 서사의 회복하는 매체를 동영상이라든지 영화적인 그 안에서 아직 보고 있다는 점이 아쉽게 생각되고 또 이러한 서사의 회복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은 예전에 있었던 것으로 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고 왜 지금 등장하느냐 하는 거죠. 거기서 중요한 저는 관람주체라고 생각해요. 관객을 아직도 수동적인 대상으로 아직까지도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 극복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강홍구 작가님의 경우 대중매체를 이용해서 그것을 재 맥락화해서 굉장히 팝 적인 방식이 가능했고 그 안에서 오히려 관람객이 가질 수 있는 느낌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말씀해주셨고, 이렇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점에서 좋았고요. 김세진 선생님 작업의 경우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무의식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느낌이 심리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게 오히려 강홍구 선생님보다도 더 오래 나의 무의식에 남을 수 있는 것 때문에 적극적으로 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재구성을 관람객이 해 나가게 되는 곳이 미술관이냐 영화관이냐 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부분은 한번 강조를 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완경 : 끝나기 전에 한마디 드리고 싶은데. 방금 얘기하신 것에서 두 가지 동의하는데 우리가 얘기하다 보니까 시각적 서사, 미디어아트라는 말도 나았고 그러다 보니까 여기 출품된 작가가 아티스트라는 것이고 미술관이라는 공간이다 보니까 우리가 확장해야 할 것이 있는데, 아트와 미디어 영상문화 이런 관계를 보면 그런 것은 표현의 문제뿐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주제적이고 세계관적인 얘기에서 큰 맥락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시대미술의 큰 특징이죠. 그러니까 그런 것은 불가피하게 사람과 사람사이의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사회조직, 또 문화의 개념이 변동한 것이고 그 중에 또 관객과 예술과의 관계 이런 모든 것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아티스트나 필름메이커의 작품주제로도 흥미 있을 수 있고 토론주제로도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미디어와 미술을 얘기할 때 단지 표현의 확장뿐 아니라 그것들이 만들어낸 실제 변화된 사회모습, 그것의 새로운 삶의 관계, 그런 부분이 대단히 흥미롭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시각서사에서 보더라도 지금이 달라진 세계이기 때문에 아티스트가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고 그런 것들을 주목해야 마땅하고 그것조차도 전시기획 속에 들어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아까 말씀하신 것들과 병행하면서 추가하고 싶습니다.

김준기 : 들으신 것 들 중에 소감이나 질문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관람객 : 강홍구 선생님의 오세리 작업 굉장히 좋게 봤고요, 세트장의 폭력들이 오세리의 가장 일상적이지만 가장 낯선 모습으로 보아지는 것 같아서 상당히 좋았고요. 김세진 선생님께서 초기에 굉장히 형식에 기여를 많이 하신 것 같아요. 나름대로 그런 형식을 통해서 작업을 하시는 것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가졌던 나름대로의 결론이 있으신지 궁금하거든요.

김세진 : 일단은 제가 강홍구 선생님의 경우 년도를 생각하게 되고, 제 작업의 경우도 당시 미디어가 보편화된 시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점에서 제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 형식, 매체를 다루는 것은 떨어질 수 없는 것 같고요.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스캔을 받다가 카메라가 나와서 찍고 인화하는 것처럼 특별한 계기는 없고요. 항상 같이 이렇게 나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내가 작업을 하다가 동영상작업을 하다보니까 이야기가 생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영화를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영화에서 본 이미지를 사용하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똑같은 것 아닐까요. 지금 작업하시는 디자인하고. 모든 게 다 흡수되기도 하고 튕겨나가기도 하고.

김준기 : 네, 오늘 김계중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다음시간에도 참여해 주시면 좋겠고. 오늘 자리 정리하실 말씀 해 주세요.

김계중 : 아까 잠시 언급을 했지만 제가 미술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에서 감사하고 있는 것이 갤러리를 통해서 자기혁신을 통해서 끊임없이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에요. 고정적인 것을 원하지 않는 어떤 미술적인 속성이랄까요, 특히 부산비엔날레에서 봤을 때도 극영화작가의 작품도 많이 보였는데, 그런 면에서 미술이 영화라는 한정된 것을 규정짓는 것은 시스템 때문에 규정을 벗어나는데 한계가 많지만 미술에선 한계가 없이 무궁무진해서 다양한 얘기들이 나올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김준기 : 시간이 워낙 많이 지나서 제가 좀 초조하네요. 늘 이렇게 시간이 모자랍니다. 오늘 이 시간을 기획이나 연구의 자료가 될 수 있도록 후속자료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좀 전에 김계중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영화가 산업의 영역으로 본다면 미술 또는 시각예술은 그야말로 예술의 영역에서 끊임없는 자기의 표현을 하려는 것 같고 이번에 여기 출품 작가들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2005/01/27 16:31 2005/01/27 16:31

미술대전 대통령상

artpd clip | 2005/01/26 10:41


미술대전 대통령상 부활 등의 시나리오가 알려지면서, 여러 미술문화인들이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고 있다. 아래의 성명서는 민예총, 문화연대, 민미협, 미술인회의가 함께 만든 성명서다.

미술대전이 권위를 잃어간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이제 와서 다시 대통령상 부활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미협의 결단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미협과 같이 덩치 큰 단체에 정말 그렇게도 브레인이 없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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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문화부는 미술대전에 대한 기금지원을 중단하라!

대한민국미술대전이 다시 문제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한국미술협회는 미술대전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운영방식에 변화를 도입, 비구상(한국화·서양화·판화·조각), 서예, 문인화로 구성된 1부와 구상, 공예, 디자인 분야로 구성된 2부로 나눠 진행하고 평론가상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문화관광부는 행정자치부와 상의해 상반기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의 시상을 승인한 상태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문화예술인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미술대전의 권위는 그 스스로가 추락시켜 왔다. 학연으로 얼룩진 심의, 금품수수 등 온갖 비리는 끊이지 않는 추문을 넘어 수 차례의 법적 처벌마저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협은 이에 대해 매번 심사위원 개인들만의 문제로 치부하며 책임을 회피한 채 계속 문제들을 반복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여왔다. 또, 그 폐쇄적인 운영과 자의적인 평가방식은 미술의 사회적 기능 확대를 가로막고 미술가와 비미술가를 분리시켜 미술을 미술 내에만 갇힌 자폐아로 만들어 버렸다. 미술대전은 미술문화의 토양을 일구기보다 그 열매를 따먹는데 급급해 그 토양 자체를 황폐화시킨 장본인인 것이다. 제아무리 대통령의 이름을 빌어 한국최고의 권위를 내세운대도 그것이 먹힐 리 만무하다.
미술대전은 이미 “참신한 신인발굴 육성과 미술계의 건전한 창작풍토를 고취하고 나아가 국민들에게 수준 높은 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함”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부끄러운 수사가 되어버린, 낡디 낡은 과거의 유물에 가깝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몇몇 운영상의 변화를 주고 대통령상이나 국무총리상 등 고위관료의 이름을 걸고 행사의 권위를 부활시키려는 행위는 도리어 안쓰럽고 무기력해 보인다. 미협 관계자들이 군사독재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건지, 아니면 정말 대통령상 부활로 ‘옛날의 영광’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심히 궁금해질 따름이다.

문제는 이 행사가 문예진흥기금의 지정공모사업으로 지정되어 있어 해마다 버젓이 공공기금을 지원받아 진행된다는 데 있다.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시대에 역행을 반복하는 미술대전에 더 이상 문예진흥기금이 쓰여서는 안된다.

이미 문예진흥원의 위촉으로 미술대전평가위원회가 2003년말 제출한 심층평가보고서는 ‘현 공모전 형식과 미협 구조로는 도저히 긍정적인 작가발굴을 하기 어렵다’며 미술대전에 대해 공공기금을 지원할 필요가 없음을 밝혔다. 문예진흥원이 자체평가결과를 외면하고 구시대적인 결정에 손을 들어준 꼴은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는 문화부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부와 문예진흥원은 당장 미술대전에 대한 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이번 기회에 그 시효성이 소멸된 미술대전을 폐지할 것을 미협에 제안한다. 600여개에 달하는 지역의 공모전들이 미술대전과 비슷한 양상의 문제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더 이상 이 사업을 유지할 어떠한 이유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갖은 비난을 무릅쓰며 행사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 미협 관계자들이 미술대전의 폐지가 마치 미술인의 권익을 포기하는 것이나 미협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술인의 권익이나 미협의 위상은 일개 행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미술문화 발전을 위한 폭넓은 활동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한줌의 권력에 대한 유아적인 집착으로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협은 이 사안이 단지 한 단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술계에 대한 사회적 불신으로, 더 나아가 문화예술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술대전은 이미 그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일 뿐 아니라 미술문화를 피폐하게 만든 장본인이며 각종 부패의 온상이 된 사라져야 할 행사다. 우리는 문화부와 문예진흥원이 이 행사에 대한 지원을 전면재검토 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2005년 1월 25일
문화연대, 민족미술인협회, 미술인회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2005/01/26 10:41 2005/01/26 10:41

눈먼 돈 눈뜨게 해주세요

critic & column | 2005/01/25 16:21


눈먼 돈 눈뜨게 해주세요

김준기(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로 바뀐다. 말 그대로 ‘문예진흥원의 모든 권리와 의무와 재산을 위원회가 승계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아 그 틀이 그 틀 아닌가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많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보다도 민간이 주도하는 ‘위원회’라는 점이다.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진흥하기 위한 ‘민간의 합의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별도의 지방문화예술위원회 설치 근거 규정을 두었으며 재단법인 설립 근거를 마련해서 지역협의체까지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위원회 산하에 공무원 파견 조항을 넣지 않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 그대로 민간이 운영하는 단체인 것이다.

민간합의체,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
참여정부 출범이후 지난 해 봄 국무회의를 거쳐 가을에 문광위에 상정되고 연말 본회의 의결 절차를 거치기까지 수많은 논의를 거친 문진원의 민간위원회 전환이 드디어 올 여름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이 민간합의체라는 것이 말처럼 그리 간단하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각 분야별로 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문광부장관이 위원을 위촉하며, 위원회 산하에는 소위원회를 두어 실제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고 보니 각 분야별 1인의 위원이 해당 분야에 차지하는 위상은 한마디로 막강파워 그 자체다. 3년 임기의 위원을 누가 어떻게 맡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전통예술 등 문화예술 각 분야 인사를 균형감 있게 안배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장르별로 1인씩의 위원 자리가 할당되어 있는 셈이다.
문화예술진흥원원회를 놓고 파당을 생각해본다.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두어 개 정도의 단체가 떠오른다. 문학, 미술, 음악, 전통예술 등 적어도 열개 정도는 족히 채울만한 이른바 장르별 안배에 의해 11인의 위원이 위촉될 것이다. 민간합의체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위원회는 “기금운용계획안, 평가, 중요정책 수립” 등 명실공히 제반 업무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했다. 이렇듯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된다는 위원회에서 각 분야별로 1인씩의 위원을 정점에 두고 움직인다는 게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다. 1인의 위원이 한 장르의 정점으로 소위원회를 꾸려 일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일방통행을 제어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임기를 만료한다고 해도 사람은 가고 조직은 남는다. 어떤 사람이 오느냐에 따라서 틀거리가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인사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 마련이 있어야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이건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 일을 한다. 아무리 시스템이 훌륭해도 그 시스템을 굴리는 사람의 마음이 곧지 않으면 일이 잘 될 턱이 없다. 그런데 사람 마음의 곧음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사람 속은 정말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해서 거꾸로 사람의 곧은 마음을 얽어놓은 것이 시스템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제각각인 생각들을 몇 개의 덩어리로 나누어 당파를 형성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인간사의 편린이라고들 말한다. 상당부분 이 당파의 차이를 통해서 제각각인 생각의 차이에 대해 서로 이해를 구하고 차이를 조절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합의정신의 모태라고 믿고 있다. 세상의 이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좁히는 일인 바에야, 문화예술계 민간 주체들의 깔끔한 합의를 기대한다. 다만 바라는 바는 모종의 이분법적인 구도에 의해 나눠먹기식으로 양분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가동하는 사람의 문제다. 사람을 배치하는 문제다. 이 대목에 대해 어떻게 합의했는지 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꼼꼼히 헤아려볼 것이다.

눈먼 돈 눈뜨게 하는 위원회
위원회의 가장 큰 일은 기금 사업이다. 문예진흥기금을 분배하는 일말이다. 해마다 기금 분배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이 대목에 대해 몇 가지 보탤 말이 있다. 얼마 전 미술계의 한 열정적인 작가와 문예진흥기금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올해도 문예진흥기금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명망있는 학교의 미술대학을 나오지 못했지만, 큐레이터로서 내가 아는 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지난해에 만해도 40여회의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가장 열심히 다른 작가들의 전시를 꼼꼼이 살펴보는 작가다. 그런 그가 번번이 기금 신청에서 낙방을 한다. 반면에 일년에 기획전 몇 번 할까 말까 한 작가는 버젓이 기금을 받아서 폼 나게 개인전을 치른다. 그것도 필요비용 이상으로 기금을 얻어 쓰는 경우도 많다. 어떤 작가는 이런 행태에 항의라도 하듯이 단돈 200만원만 신청했다가 문예진흥원 담당자에게 숫자를 잘못 쓴 것 아니냐는 전화를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자신은 그 돈만 있으면 충분히 개인전을 할 수 있다고 답했고, 결국 비슷한 선에서 지원기금을 받았다.
개인전 지원기금에 관한 뒷얘기들이 이 정도이고 보면 여타의 항목들은 오죽하겠는가. 해마다 여기저기 엄한데 들어가는 돈이 뭉텅이로 눈에 띈다. 미술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어떤 선수가 어떻게 작업하고 있고,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빤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기금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중구난방이다. 이것도 사람의 생각차이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현장에서 발로 뛰는 작가, 기획자, 비평가들은 문예진흥기금의 심사 결과가 이것저것 가려서 가장 무난한 결과를 도출하다 보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저 그런 결과를 낳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한 마디로 눈먼 돈이라는 것. ‘재수 좋게 얻어 걸리는 놈이 재주 좋은 놈’이라는 속설이 통하는 판이다. 미술관 현장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로서 나는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눈먼 돈 눈뜨게 하는” 위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문제의 선결 과제는 심의체계를 가다듬는 일이다. 현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내용을 심의에 반영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그 중에 구체적인 것 하나만 말하자면 이렇다. 심사위원 구성의 문제다. 현장에 밀착해 있는 작가와 기획자, 비평가의 현장의 매서운 눈매를 통해서 실사구시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교수 일색으로 채워서는 현장의 돌아가는 판을 읽을 수 없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문화예술의 현장에서 유리된 채 작품을 보지도 않고 작품을 평가하는 관행을 줄여야 한다. 돌아가는 판을 알지도 못하면서 평가한다는 것, 정말 심각한 문제 아니겠는가.
두 번째는 분권과 자치라는 기조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는 중앙집중식 기금 분배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작가들의 창작활동 지원을 작가들의 주소지별로 시군구 단위의 지방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지역분산의 묘미를 발휘해야 한다. 이 때 정말 유념할 사항이 있다. 서울을 하나로 묶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이 하나라는 상상을 버려야 한다. 서울은 정말 다르다. 강남이 다르고 강북이 다르다. 노원구와 성북동이 다르고, 마포구와 종로구가 다르다. 이 다름을 철저하게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술문화를 보자면, 어떻게 서울의 미술문화를 인사동과 사간동이라는 종로구에만 집결하고도 문화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철저한 중앙집중식 문화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서울의 문화 중심을 해체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서울의 각 구에는 구민이 살고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모두들 문화예술을 향유하며 새로운 창작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각 지역마다 적지 않은 규모의 문화인프라가 이미 대부분 구축되어 있다. 이 토양을 살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은 영원히 특구 아닌 특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셋째는 지원 방식에 있어서 선택집중과 소액다건의 정책적인 역할분담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 들어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정책적인 지원 방향을 선택하고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선호하는 상업주의 문화전략이 침투하여 황폐화할 위기에 놓인 분야, 장기적인 안목에서 꼭 지켜내거나 키워야하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미술은행제도에서도 기존의 상업화랑 시스템이 선호하는 장식성 위주의 컬렉션 가능성이 대두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공공성이란 이럴 때 발휘되는 것이다. 자본이 명령하지 않는 예술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 말이다. 당장의 자잘한 먹거리를 나눠주기에 급급해서는 곤란하겠지만, 돈 안 되는 예술이라도 우리 사회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예술을 지켜주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정말 필요한 것이 선택과 집중이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 이리저리 갈라 쓰는 것보다 선택하고 집중해서 성과 있는 사업을 육성해야 한다. 그렇다고 앞서 예를 든 작가의 경우처럼 다만 몇백만원이라도 지원받으면 큰 힘이 되는 가난한 예술가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소액다건의 묘미를 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럴 때 지역별로 안배해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창작에 매진하는 작가들을 지원하는 균형 감각을 도입한다면 문화민주주의적인 관점에서 문화향수권 확대와 작가지원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이상에서 말한 심의체제 개선, 자치와 분권 기조 확립, 선택집중과 소액다건의 역할분담 등 몇 가지 작은 얘기들은 사실은 위원회 전환이라는 큰 틀의 환경 변화와 무관하게 지금의 시스템 속에서도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되짚어본다. 어떤 시스템이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스템이 지향하는 바가 진정 본연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얘기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문제는 어떻게 합의 하느냐로 소급한다. 깔끔한 민간의 합의를 기대한다.

* <문화예술>지 2005년 2월호 기고문입니다.
2005/01/25 16:21 2005/01/25 16:21

시각서사전 관련 언론 기사 모음

project/시각서사 0414 | 2005/01/25 10:16


'미술관 입구에 웬 영화간판?…강홍구·김범수 등 출품 <시각서사> 전'- 국민일보 2005. 1. 9 이광형 기자
미술관 입구에 영화 간판이 붙었다. 세계환경영화제 출품 예정작이라는 로고가 새겨진 ‘광주천의 숨소리’. 고목을 배경으로 하는 ‘바람나무’ 포스터도 보인다. 무슨 영화제라도 열리고 있다는 얘기인가. 호기심을 안고 들어가보니 미술과 영화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색 전시회가 진행중이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2월26일까지 열리는 ‘시각서사’전이다.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시각적 요소와 ‘보는 이야기’라는 서사적 요소를 갖고 있는 영화는 갈수록 미술을 동경한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미술도 영상매체의 확산 속에서 움직임을 시각화하거나 몽타주 기법을 활용하는 등 영화에서 끊임없이 자양분을 공급받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을 실험중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영화와 미술의 관계를 조명해보는 전시다.
출품작가는 강홍구 김범수 김세진 김창겸 박경주 박태규 박혜성 박화영 이광호 이중재 등 10명. 강홍구의 ‘Who am I’는 대중영화 스틸사진 속에 작가의 젊은 시절 모습을 합성한 작품으로 영화에 투사된 욕망의 문제를 표현했다. 김범수의 ‘Hidden Emotion’은 각종 필름들을 모아 재조립한 설치 작품으로 영화 내면에 숨겨진 이미지를 드러내 보인다. 김세진의 비디오 작품 ‘욕망의 바다’는 TV 드라마나 영화의 뻔한 소재와 진부한 줄거리 등을 꼬집고 있다.
김창겸의 ‘편지’는 과거라는 시점에 대해 편지를 쓰는 행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스크린에서만 상영될 수 있는 영화와 달리 스크린 밖의 오브제와 영상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경주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담은 비디오를 출품했으며 이중재는 ‘엉클샘’으로 할리우드의 시장개방 압력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2층 전시관에는 앵그르의 명화 ‘샘’을 패러디한 박혜성의 영상작품이 눈길을 끈다. 누드 여성이 항아리를 들고 주변공간이 넘칠때까지 물을 붓는 장면의 영상으로 영화와 미술의 기승전결 구조를 강조한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살린 박화영의 ‘Everything okay?’,회화를 영상으로 감상하는 이광호의 ‘태몽’ 등 영화와 미술이 만나는 작품들이 재미있다(02-736-4371).

'영화에서 영감을 얻다' - 한국일보 2005. 1. 9
새해 들어 건물 바깥에 ‘광주천의 숨소리’라는 제목의 영화간판을 내건 사비나미술관. 미술관이 무슨 꿍꿍이로 이럴까? 사실 영화간판은 작가 박태규의 동명 다큐영상을 홍보하는 작품이다. 미술관 안에서는 박태규와 강홍구 김범수 김세진 김창겸 박경주 박혜성 박화영 이광호 이중재(총 10명)가 ‘시각서사’를 타이틀로 영화에서 영감을 얻거나 영상 편집적 요소가 강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김범수는 버려진 필름을 재활용한 ‘히든 이모션(Hidden Emotion)’을, 박혜성은 앵그르의 명화 ‘샘’을 패러디한 영상작품을 선보인다. 스크린 앞에 세운 오브제와 여기에 비친 영상이 겹치면서 한 남자가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는 장면을 완성하는 비디오설치 ‘편지’와 평범한 한 남자의 초상에 영상을 쪼이면 마오쩌둥의 초상으로 변화하는 ‘중아적 자아’를 내놓은 김창겸은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할리우드영화 등장인물이 총을 쏘면 한국영화의 인물이 맞고 쓰러지는 영상을 보여주는 이중재의 ‘엉클샘’은 스크린쿼터 폐지반대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미술의 범위가 회화 조각 건축에서 설치 미디어아트 등으로 날로 확장하는 요즘, ‘움직이는 사진(모션 픽쳐)’인 영화와 미술이 서로 뚜렷이 경계를 지을 수 있는지에 의문을 갖는 이도 꽤 있을 것 같다. 전시는 2월26일까지. (02)736-4371

'미술이 영화와 접목되면' - 문화일보 2005. 1. 10 신세미 기자
(::사비나미술관 '시각서사展'::) 극장의 영화간판은 주요장면과 등장인물을 통해 영화의 줄거리를 부각시켜, 관객을 불러모으는 홍보수단이다. 간판자체가 영화 또는 미술은 아니지만, 미술과 영화가 만나는 접점의 구실을 해 왔다.
광주의 극장에서 영화간판을 그렸던 박태규씨는 미술관 전시용으 로 영화 ‘만추’ ‘와이키키브라더즈’등을 4.8m크기의 대형간 판 및 입간판으로 그리는 한편, 광주천 생태를 다룬 13분 길이의 다큐멘타리 영상 ‘광주천의 숨소리’를 만들었다. 한편 김범수 씨는 영화필름을 자르고 붙이는 재편집작업을 거쳐, 필름자체의 색과 무늬를 활용해 색다른 평면회화와 설치작품을 시도했다.
서울 사비나미술관의 ‘미술과 영화-시각서사 전’(2월26일까지) 은 미술에 끼친 영화의 영향에 주목한 기획이다. 박태규씨의 영 화간판그림이 안팎에 걸려있는 전시장에는 박씨를 비롯해 국내 미술작가 10명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작가들은 “미술은 한동 안 무언가 보여지는 것에 중점을 두어왔지만, 20세기 후반들어 미술은 무언가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처럼 무언가 이야기하는 비중 이 높아졌다”고 작품을 통해 발언한다.
이광호씨는 거실 소파에 앉은 어머니사진을 캔버스에 꼼꼼하게 재현한 극사실화를 비디오로 찍는 등 세 벽면에 전시중인 사진 회화 영상를 연결하는 스토리를 연출한다. 김창겸씨는 자화상 위로 중국 마오쩌둥의 얼굴을 투사해 관람객의 동선과 시선에 따라 액자 위로 화가와 마오쩌둥의 얼굴이 교차한다. 강홍구씨는 영 화 스틸사진에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을 합성해 영화주인공처럼 묘사했고, 박경주씨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4개의 비디오에 담았다.
이밖에 박혜성씨는 실제 모델작업을 통해 앵그르의 ‘샘’처럼 여인의 어깨위 항아리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3분 길이의 영상으로 제작했다. 또 이중재씨는 각종 국내외영화의 장면을 편 집해 스크린쿼터폐지 반대메시지를 담았다.

'미술과 영화가 만났다' - 서울신문 2005. 1. 10 김종면 기자
현대는 영상의 시대다. 어느 예술장르도 영상의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미술도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영상으로부터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쪽이 미술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미술은 영상매체의 확산 속에 움직임을 시각화하거나 몽타주 기법을 활용하는 등 영화로부터 끊임없이 자양분을 공급받고 있다. 영화 또한 갈수록 미술을 동경한다.‘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시각적 요소와 ‘보는 이야기’라는 서사적 요소를 갖춘 영화의 경우 미술적인 요소들은 점점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과 영화 시각서사(視覺敍事)’전은 영화와 미술이 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다는 점에 주목한 흥미로운 전시다.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이면서도 서사적인 특성이 영화의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강홍구 김범수 김세진 김창겸 박경주 박태규 박혜성 박화영 이광호 이중재 등 10명이 작품을 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김창겸의 비디오 설치작품 ‘편지’. 영화적인 서사구조를 강조한 ‘편지’는 ‘과거’라는 시점에 대해 편지를 쓰는 행위를 묘사한 것으로, 스크린 밖의 오브제와 영상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시각예술 작품이 탄생했다. 속삭이는 듯한 방백이 문학적인 내러티브를 방불케 한다. 박혜성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앵그르의 명화 ‘샘’을 소재로 한 영상작품을 내놓았다. 작가는 시간에 따라 수위가 변하는 것에 일종의 서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물이 밑으로 쏟아지면서 점점 차올라 흘러넘치는 영상에는 나름대로의 기승전결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이 영화와 미술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중재의 ‘엉클샘’은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라는 메시지가 담긴, 조금 다른 차원의 ‘목적예술’이다. 미국 영화 속의 인물이 쏘는 총에 한국 배우가 맞고 쓰러지는 영상을 통해 할리우드의 시장개방압력을 고발한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영화 입간판들이 설치돼 있어 미술과 영화 장르를 넘나드는 독특한 시각 체험을 제공한다. 전시는 2월26일까지.(02)736-4371
2005/01/25 10:16 2005/01/25 10:16

시각서사 전시 안내

project/시각서사 0414 | 2005/01/25 09:53


미술과 영화의 만남 : 시각서사 Art & Film : Visual Narrative
2004. 12. 31(금) - 2005. 2. 26(토) / 사비나미술관 전관
강홍구, 김범, 김세진, 김창겸, 박경주, 박태규, 박혜성, 박화영, 이광호, 이중재
* 초대 : 2005. 1. 12(수) 5시

미술인과 영화인의 만남 뮤지엄 토크 2005. 1. 15 - 2. 12 매주 토요일 3시
1. 15(토) : 강홍구(작가) 김세진(작가) & 김계중(서울실험영화페스티벌 프로그래머)
1. 22(토) : 김창겸(작가) 박화영(작가) & 박동현(서울실험영화페스티벌 집행위원장)
1. 29(토) : 김범수(작가) 이광호(작가) & 장윤현(영화감독)
2. 5(토) : 박경주(작가) 박태규(작가) & 문성준(다큐인 영화감독)
2. 12(토) : 박혜성(작가) 이중재(작가) & 전성권(SENEF영화제 프로그래머)

보여주는 이야기, 시각서사
<시각서사>는 현대 시각예술에 있어서 가장 첨예한 쟁점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서사성의 문제를 영화예술의 관점에 견주어 살펴보는 장이다. 20세기 초중반의 시각예술이 무언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는 무언가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20세기 후반 이후의 시각예술은 무언가 보여주는 동시에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애쓰고 있다. 요컨대 시각성 일변도에서 시각성과 서사성을 함께 가져가려는 쪽으로 시각예술의 의미와 범주를 넓혀온 것이다. 영화는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시각적 요소와 ‘보는 이야기’라는 서사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종합예술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움직이는 그림들의 연속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술인 것이다.
시각예술과 영화는 ‘시각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것과 ‘서사적 이야기 구조를 배치하고, 배열한다’는 점에서 시각성과 서사성을 각자의 본령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현대 시각예술이 시각성에다가 서사성을 입히는 쪽으로 변모해온 바, 이 전시가 주목하고 있는 시각과 서사의 문제는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질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사성을 강조하는 시각예술 작품들이 서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야말로 광범위하게 종합적인 예술장르를 끌어들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서사적 구조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는 예술장르이다.
그런 점에서 시각예술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무언가 보여주는 것을 동시에 구사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서사적인 시각이미지를 그 결과물로 남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사성을 강조하는 시각예술은 ‘그림을 움직여서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10인의 출품 작가들은 설치, 영상, 회화, 입체 등 시각예술의 각 영역에서 영화예술과 접점을 형상할 수 있는 서사와 시각의 문제를 가지고 작업을 해왔다. 이들의 작품은 편집의 미학, 서사의 접점, 시각의 공유라는 세 가지 요소에 걸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편집의 미학_영화와 시각예술의 상호 관련성을 직접적으로 대변해 주는 것이 편집의 미학이다. 제작과정의 규모를 놓고 생각해보면, 영화는 감독, 배우, 연출자, 촬영감독에 이르기까지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만들어 내는 프레임들을 모아 하나의 필름으로 만들어낸다. 반면에 시각예술은 철저한 개인의 자신에 대한 고뇌와 사투,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이어나는 크고 작은 담론 내지 이야기들을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 낸다. 양자 모두 의미 전달을 위해 ‘편집’이라는 특정한 절차를 거친다. 영화에 있어서 ‘편집’은 서사성을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이며, 동시에 작품의 내용을 좌우하는 요소이다. 영화의 편집자가 펼치는 편집의 묘미를 시각예술이라는 영역으로 바꿔 생각해 보면, 작품 속 이미지들에 관계성을 부여하는 작가들의 손길이다. 그것이 평면회화이든, 영상작품이든 간에 영화의 편집자와 예술가는 우리들이 일상에서 쉽게 놓쳐버릴 수 있는 모습들을 자르고, 붙이고, 재구성하여 의미를 강조하거나 때론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서사의 접점_영화가 내러티브 구조에서 출발하고, 시각예술이 시각효과를 강조한다는 이분법적 견해를 넘어서 두 장르의 예술은 서사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감각적인 영상’이라는 말처럼 시각적 표현이 중시되고, 시각예술에서는 작품의 이미지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만들어내는 ‘상황들’이 하나의 내러티브를 구성함으로서 감상자가 작품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양자 모두는 내용과 표현 형태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 서사의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각예술은 영화의 서사구조를 강조하거나 무너뜨리면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때로는 영화처럼 사전에 구성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화면을 구성하면서도 영화의 서사성과는 다른 차원의 감성적인 코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시각의 공유_시각예술이 영화매체의 발달에 힘입어 움직임을 시각화하거나 몽타주 기법을 활용하는 등 일련의 자양분을 공급받았듯이, 감각적인 영상작품이 시도하는 일련의 실험들은 영화에 기법적인 다양성과 풍부한 감수성을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영역이 서로간의 미래상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지를 다시 생각해 봄으로써 시각의 공유를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시각서사>는 시각예술과 영화매체가 인간의 인지능력을 확장시키는 새로운 매체의 출현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의 결과이며,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해 열린 공통점을 가진 예술이라는 점을 확인시킨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005/01/25 09:53 2005/01/25 09:53

문명의 맥락에서 사유하는 도마뱀 : 신현중 리뷰

critic & column | 2005/01/24 19:46


문명의 맥락에서 사유하는 도마뱀
신현중 : 공화국 수비대, 2004.12.15-12.25, 스페이스셀

연일 혹독한 추위가 이어지는 한겨울이다. 지율 스님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신현중은 아프리카로 갔다. 천성산 고속철 터널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청와대 부근에서 87일간 초인적인 단식을 진행하던 지율 스님이 지난 1월 21일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내 몸을 내려놓을 곳을 찾아야겠다.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세인들의 염려는 그의 목숨을 걱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세상이 이렇다. 자본과 권력의 욕망이 끊임없이 생명과 개체를 억압할 때 이에 맞서는 한 종교인의 목숨을 건 단식은 맨몸의 가냘픈 저항인 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신현중의 아프리카 여행 소식을 전해 들었다. 유라시아 대륙에 이어 아프리카까지 그의 문명과 원시를 넘나드는 그의 여정은 이번 겨울에도 빠지지 않고 이어졌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인 지난 해 12월에 열린 개인전 <공화국 수비대>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20여 년 간 다녔던 오지문명권과 나를 반겨주었던 도마뱀, 정치인들과 돈세탁, 정수일 교수와 국적세탁, 9.11과 이라크(IRAQ)의 공화국 수비대, 지율스님과 천성산 도롱뇽, 이 모든 것들의 아우름과 함께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한 종교인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단식을 지켜보는 우리는 그의 맑은 영혼에 대해 감히 무어라 한 마디 말을 보태기조차 힘겹다. 이렇듯 생명을 어루만지고 아우르는 종교의 깊이에 비해 예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란 백남준의 저 유명한 말처럼 ‘고도의 사기’를 유포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신현중의 작업은 예술은 사기 그 이상의 그 무엇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브론즈, 대나무 자, 자개 등의 매체로 만든 도마뱀은 신현중 특유의 문명사적 맥락을 가진 것이며, 동시에 당대의 맥락 속에 놓은 현실의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신현중이라는 대형 작가가 스페이스 셀이라는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냈는가 하는 점도 이 전시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해법은 조각난 현실 인식의 지평을 구석구석 숨겨두는 일이었다. 전시장 안팎에 놓여있는 도마뱀들은 각각의 매체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두어 덩어리의 볼트너트 조임 구조로 이어진 도마뱀의 꼬리 형상은 스스로 몸의 일부를 잘라내고는 냅다 줄행랑을 치는 도마뱀의 모습을 적절하게 은유하고 있을뿐더러 도막난 현실인식의 단절 상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무궁화 (세탁)비누를 깔고 그 위에 (평화표) 탁구공으로 내부를 매운 (문명을 상징하는) 대나무 자를 엮어 만든 도마뱀을 설치했다. 세탁과 평화를 엎고 문명의 맥락에서 역사를 배반하는 어이없는 현실 앞에 사유하는 도마뱀을 얹어둔 것이다.
그의 조소작품은 대부분 지난한 노동이 베어있는 거대한 크기의 인공조형물이다. 그것은 물질 덩어리들과의 격렬한 투쟁을 통해 건져 올린 장인의 노동과 전시장과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노련하게도 그 공간을 장악해내는 숙련된 작가의 기술이 만들어낸 예술 장의 산물이다. 그동안 신현중의 작업은 문명과 자연, 역사와 현실의 시공간을 오가는 광대한 스펙트럼의 막연한 그 무엇으로 읽혀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신현중은 당대의 풍경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것은 문명의 시원을 탐구하는 우제류 조각이나 생명의 근원을 향한 곰팡이 작업을 잇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깐수교수, 9.11, 이라크전쟁, 천성산 터널' 등 한국사회와 세계의 현실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얽어내는 작업인 것이다. 문명의 시원과 원시적 생명의 근원을 찾아서 순례를 다니던 신현중의 시선이 어느새 21세기 당대의 현실 깊숙이 들어와 있다. -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월간미술> 2005년 2월호 전시리뷰 기고문입니다.
2005/01/24 19:46 2005/01/2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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