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링 15년_the realing 15 years

project/리얼링15년 0407 | 2005/01/31 01:26


리얼링 15년_the realing 15 years : 네오룩 메일진 버전

정연두_hero_컬러인화_156×124cm_1998

책임기획_김준기
전시기간_2004_0618 ▶ 2004_0806 / 월요일 휴관
공동주최_서울민족미술인협회_사비나미술관
후원_문화광광부_(사)민족미술인협회_(사)민족예술인총연합
사비나미술관_서울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02_736_4371

거리미술동호회_그림공장_노동미술위원회_두벌갈이_들판_미메시스_믹스라이스_반지하_에이지아이_엠조형_오아시스_공공미술개발센터 유알아트_입김_좋은세상만들기_평화유랑단_플라잉시티
고승욱_구본주_김기수_김준_김창겸_김천일_김태준_김태헌_남일_노순택_노재운_박건웅_박경주_박영균_박용석_박은영_박은태_박장근_방정아_배영환_백기영_설총식_성태훈_소윤경_신창운_양아치_유영호_이경복_이부록_이샛별_이원석_이윤엽_이중재_정연두_조습


작가와의 대화_사비나미술관
1. _현장미술+바깥미술 : 2004_0622_화요일_04:00
노동미술위원회_두벌갈이_에이지아이_그림공장_거리미술동호회
2. 과정으로서의 공공미술 : 2004_0625_금요일_04:00pm
엠조형_공공미술개발센터 유알아트_믹스라이스_반지하_들판_좋은세상만들기
3. 개념미술+행동주의 2004_0629_화요일_04:00pm
입김_미메시스_플라잉시티_평화유랑단_오아시스
4.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사진 : 2004_0702_금요일_04:00pm
김태준_박경주_정연두_박용석_노순택_김기수_백기영_고승욱_조습
5. 영상설치+디지털+온라인 : 2004_0706_화요일_04:00pm
김창겸_이중재_노재운_양아치_이부록
6. 평면회화와 판화 : 2004_0709_금요일_04:00pm
박은태_김천일_김태헌_박영균_성태훈_박은영_방정아_소윤경_이윤엽_박건웅_남일_이샛별
7. 입체+오브제+개념 : 2004_0713_화요일_04:00pm
구본주_이원석_유영호_김준_배영환_신창운_박장근_설총식_이경복
* 종합토론_2004_0720_화요일_02:00pm_민예총 강의실


리얼링 15년, 90년대를 건너온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을 회고함

이 전시 『리얼링 15년』展은 90년대 세대가 만들어낸 ‘태도로서의 리얼리즘’ 15년을 돌아보는 회고적 형식의 기획전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난 10여년간의 한국 현대미술을 반추해봄에 있어서 리얼리즘이라는 예술적 태도를 그 비평적 잣대로 삼겠다는 뜻인데, 전시 제목인 ‘리얼링(the realing)’이라는 말은 현실과 예술의 실천적 결합을 전제로 하는 리얼리즘 미술을 현재진행형의 것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이러한 시도는 리얼리즘 미술을 80년대 민중미술로 고착화하거나 양식적 사실주의 개념으로 치부하려는 시각의 한계를 극복하고, 삶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려는 리얼리즘적 태도를 지속가능한 예술 개념으로 복원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90년대의 회고를 통한 리얼리즘 개념의 복원이라는 전략적인 발상을 집약해 보자면, ‘민중미술의 시대 이후에 나타난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에 관한 반성적 회고와 비평적 성찰 ’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습_습이를 살려내라!_컬러인화_2002


배영환_유행가-5월_광목에 약솜, 본드, 옥도정기_117×91cm_1999


1.
80년대라는 거대한 역동의 장이 새로운 미술운동과 맞아떨어진 10여 년 간의 미술 흐름을 규정하는 개념이 민중미술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민중미술이란 정치적 진보를 열망하던 당대 한국사회의 집합의식을 예술영역으로 끌어들인 리얼리즘적 태도인 것이다. 이러한 민중미술을 총망라한 전시가 있었다. 199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15년』展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전시를 민중미술의 제도권 진입 혹은 진보미술의 장례식으로 평가해왔다. 이렇듯 하나의 전시를 두고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민중미술의 흐름을 ‘과거의 것으로 정리할 것인가 아니면 진행형의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견해가 어긋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앞선 세대들은 조직적인 미술운동 대신 각자 나름의 길을 개척해왔다. 그들의 선택은 대체로 ‘조직에서 개별로, 큰 이야기에서 작은 이야기로, 중심에서 변방으로, 집중에서 산개로’ 옮겨간 것이었다.

근 몇 년 사이에 이들의 활동이 예년보다 더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각고의 시간을 거치면서 창작에 몰두한 세월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으며, 지난 시대를 정당하게 평가하고자하는 미술계의 비평적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선배 세대의 왕성한 미술 현장 복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서 리얼리즘 미학은 여전히 비평적 관심에서 비껴나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민중미술을 지난 한 시대의 것으로 보려는 시각과 이것을 보편적인 리얼리즘 개념과 등치하려는 데서 오는 개념적 오류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민중미술=리얼리즘’이라는 도식이 ‘민중미술은 과거의 것’이며 따라서 ‘리얼리즘 또한 과거의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이 젊은 미술인들의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젊은 세대들의 80년대에 대한 부채의식이거나 심하게 말하면 시대적 콤플렉스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90년대 세대에게 있어서 민중미술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새 길을 열어나가는 데 있어서 훌륭한 전범인 동시에 정신적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구본주_혁명은 단호한 것이다_철, 나무_60×35×45cm_1990


이원석_오늘도 아무일 없었다_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_250×200×150cm_2003


이경복_기획창작 공간 산방 프로젝트 작업_2004


이 전시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러한 정신적 장애를 걷어내는 데 있다. 80년대를 경험한 후에 90년대 들어 예술가로 성장한 세대들에게 있어서 ‘과연 리얼리즘은 과거의 것인가’ 하는 물음은 따라서 역사인식의 문제로 소급된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커다란 영향을 행사한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우리의 가까운 과거가 현재의 창작과 비평 영역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돌아보는 것은 앞길을 열어나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 첫걸음이 30대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90년대 세대의 지형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 가운데서도 리얼리즘적 태도를 가지고 꾸준히 자기의 길을 걸어온 창작그룹과 작가들을 일별해 보는 일은 앞 세대의 태도와 견주어 그 같음과 다름을 가늠해 봄으로써 단절과 연속의 양면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지속가능한 현재진행형의 리얼리즘을 유추해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리얼리즘이라는 예술적 태도를 ‘민중미술표 리얼리즘’이라는 개념 안에 갇힌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그것으로 파악해 보기 위해, 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을 밑거름으로 성장해온 90년대의 리얼리즘을 되돌아봄으로써 과거를 근간으로 새로움을 열어낸 궤적들에 대해 비평적 검증을 모색해 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

박은태_창원공단에서_장지에 아크릴 채색_150×190cm_1994


박영균_86학번 김대리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62×130cm_1996


김천일_류(流)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96×260cm_1997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90년대의 리얼리즘을 돌아보는 일은 한국현대미술의 당대와 미래를 열어나갈 새로운 대안 생산의 씨앗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전시가 목적하는 바, ‘90년대의 회고를 통한 리얼리즘 개념의 복원’이라는 전략을 위해서, 과거를 정리하고, 현실을 점검하며, 이를 통해 대안적 담론 생산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전술적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는 90년대의 리얼리즘 미술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딤으로써 체계적인 연구를 위한 초석을 다진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이 전시를 계기로 앞으로 동시대 리얼리즘 미술 관련 자료를 집대성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여 온오프라인에서 진보적 미술운동의 데이타베이스 역할을 수행하는 ‘리얼리즘 미술 아카이브’ 구축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둘째는 90년대 리얼리스트들의 ‘태도로서의 리얼리즘 15년’을 돌아봄으로써 80년대를 잇거나 혹은 새 길을 열어나간 동시대 리얼리즘 미술의 수위를 가늠하는 일이다. 이것은 서로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서로 다른 장르와 지역에서 활동해온 동시대 리얼리스트들이 공통분모를 찾아 네트워킹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기 위함이다. 과거처럼 강렬한 정신적 구심이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시대를 선도하는 조직이 네트워킹을 주선하는 시대도 아니다. 따라서 창의적인 개별 작가들이 자율성을 근거로 교류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는 점, 한 두 사람의 갈망에 그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셋째는 태도로서의 리얼리즘 개념을 근거로 우리시대의 사회적 집합의식에 부합하는 새로운 리얼리즘 담론을 촉발하기 위한 시론적(始論的)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앞선 시대에 대한 평가의 긍정 혹은 부정의 여부와 상관없이 지난 시대의 미술 흐름이 남긴 커다란 족적은 현재에 있어서도 여전히 한국 현대미술계를 지배하는 진영테제로 잔존하고 있다. 이른바 모더니즘 계열과 리얼리즘 계열 간의 간극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서로 다른 그 무엇으로 존재할뿐더러, 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라는 개념틀로 변질되어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앞선 세대의 낡은 이념적, 정치적 대립을 깨치고 투명한 눈으로 당대를 직시하는 대안적 담론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아카이브, 네트워킹, 대안담론의 세 가지 과제는 단기간의 노력으로 열매를 얻기 어려운 일일 테지만, ‘착수가 곧 성공이라, 맥진할 따름이다’.

소윤경_시골 멋쟁이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1995


김준_지옥도_혼합재료 문신기법_110×110cm_1997


2.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9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예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젊은 작가들의 작업경향 속에 나타나는 리얼리즘적 태도를 찾아내기 위해서 15년간 축적된 구작(舊作)들로 한정했는데, 총16개의 창작소그룹과 35인의 개인 작가들이 각자의 대표작을 엄선해서 출품했다. 칭작소그룹 작가들은 자료전 형식으로 그동안의 활동을 집약해서 선보인다. 대부분이 전시장뿐만이 아니라 현장 참여 작업이나 바깥미술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활동의 성과를 소개하는 자료전 형식으로 관람객들을 만나게 되었다. 창작소그룹에 비해서 활동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개인 작가들의 경우에도 뚜렷한 미학적 관점을 일관성 있게 지속해온 작가들이 많다. 90년대 리얼리스들에게 있어서 탈중심화 한 다원성의 포스터모던한 맥락은 생태, 여성, 소수자, 인권, 복지, 반전, 평화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세분화된 주제의식을 끌어나가는데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 주었다.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작가들의 경우 개인전이나 단체전을 통해서 이미 발표했던 구작들 가운데 대표작 한두 점을 골라 출품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특정 개념의 기획이나 단체전의 성향에 맞추어 작품을 생산해내기도 하지만(사실은 그러한 것들조차도 그 작가의 성향을 규정하는 성과로 쌓이기 마련이다), 꾸준히 작가적 소신을 가지고 선택해온 일관된 주제나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변모를 꾀하는 연속과 단절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출품작 한두 점으로 한 작가의 지난 10여년을 가늠하는 데 다소간 무리가 있겠으나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을 구현한 대표작을 통해서 각자의 길을 돌아보고 우리 미술계의 흐름을 읽어본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시대 선배 세대들의 리얼리즘을 짤막하게나마 회고하는 미니 다큐멘터리도 선보인다. 아직 변변한 데이터베이스나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엄정한 비평적 평가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밖에 없겠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지난 시대와 당대의 리얼리즘에 관한 차별성과 동질성에 대해 모종의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기를 희망했지만, 그러한 일들은 단기간 내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님을 새삼 확인했다. 따라서 이 전시는 앞으로 리얼리즘 미술에 관한 새로운 접근을 끌어내기 위해 보다 왕성한 세대간 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우리의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고 평가하며 긍정적인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담다.

남일_festival_종이에 혼합재료_244×610cm_2003_부분


평화유랑단 '평화바람'_반전평화 유랑차_2003 / peacewind.net


이 전시에 참여한 창작단체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창작소그룹에서 2004년 올해에 생긴 신생 그룹까지를 망라한 16개 팀이다. 이들의 지향은 동인들 간의 명확한 실천적 합의를 통해서 현장성과 공공성을 발현하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크게 보아 세 가지 유형으로 묶을 수 있겠는데, 80년대 현장미술의 연장선상에서 서 있는 ‘프로파간다와 바깥미술’, (주민)참여형 교육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과정으로서의 공공미술’, 개념적인 미술 행위와 결합한 ‘행동주의적 경향’이 그것이다.

이상의 세 부류 가운데 80년대식 현장미술과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첫 번째 부류의 그룹들이다. 특히 「노동미술위원회」는 과거 「민미협」의 산하 조직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영향관계에 있는데, 이들의 활동은 90년대 중후반을 정점으로 현재는 소강상태에 있다. 「그림공장」은 90년대 후반에 출발한 젊은 세대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장미술의 생생한 실천력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에이지아이」는 ‘agitation(선동)’의 앞 글자를 딴 그룹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스터, 전시, 출판 활동을 통해 현장성을 이어나갔다. 「거리미술동호회」은 인터넷 동호회 형식의 네트워킹 시스템을 갖추고 각종 벽화 작업을 펼치고 있는 바깥미술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두벌갈이」는 개별적인 회화작업 중심의 그룹이면서도 전시 형태에 현장성을 부여하기 위해 전시장을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해왔다.

두 번째 부류는 (주민)참여형 교육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과정으로서의 공공미술’을 지향하는 그룹들인데, 주민참여나 지역성, 과정으로서의 미술 등의 문제들은 오늘날 새로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엠조형」은 90년대 초반 이래 벽화와 환경조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공공미술을 열어나간 선구적인 단체이다. 「공공미술개발센터 유알아트」는 시민참여형 프로젝트를 통해 거리미술동호회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믹스라이스」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영상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창작으로까지 이어내고 있다. 「반지하」는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주민참여형 프로젝트를 만드는 등 지역성과 공공성을 함께 모색하는 그룹이다. 「들판」과 「좋은세상만들기」는 외딴 시골학교나 농촌지역 등에서 판화와 벽화를 통해 열린 미술을 지향하는 참신한 그룹이다.

세 번째는 개념미술과 행동주의가 결합한 유형이다. 이들은 창작의 결과를 오브제로 한정하지 않고 특정 이슈를 부각하기 위한 퍼포먼스, 축제, 전시, 유랑활동 등을 하고 있다. 개념적 미술행위와 행동주의적 경향이 결합한 이들의 방식은 도시와 농촌 어디이든 삶의 영역을 찾아서 현장실천을 벌이면서 기성의 물질적 생산의 예술 창작이 아니라, 새로운 합의 도출을 시도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적 생산을 위해 사회적 퍼포먼스, 시각예술(문화) 교육, 온오프라인상의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스트 그룹 「입김」은 페미니즘과 생태주의 등의 이슈를 펼쳐나가고 있고, 「플라잉시티」는 도시주의(urbanism)를 모토로 도시공간의 생태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평화유랑단」은 평화의 바람을 몰고 다니는 행동주의 퍼포먼서들이다. 「오아시스」는 한국사회에서 점거아뜰리에(squat)를 시도하고자 결성된 그룹이다. 「미메시스」는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을 강조하는 한편 ‘이미지 액트’와 같은 행동주의 미학을 추구하는 그룹이다.

박건웅_만화『꽃』의 일부_2002


미메시스_하늘나무_컴퓨터 2D 애니메이션_00:16:25:00_2003 / mimesistv.co.kr


이중재_건너간다_480×720pixel/ntsc_00:03:40_2001


개인 참여 작가들의 경우는 미학적 합의를 통해 스스로 강령을 세워 줄기차게 한 방향으로만 밀고 나가는 것이라, 각자의 여건에 따라 시기별로 계속 변모하는 작업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에 특정 주제나 경향으로 묶기 보다는 편의상 매체별로 분류해서 ‘퍼포먼스와 사진, 뉴미디어 아트, 평면 작업, 입체와 오브제’ 등 4부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작가군은 ‘퍼포먼스와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하는 이들이다. 김태준, 박경주, 정연두, 박용석, 노순택, 김기수, 백기영, 고승욱, 조습 등을 통해 공통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요소는 사회비판적인 다큐멘터리를 포함해서 보다 전향적인 의미의 퍼모먼스를 통해서 리얼리즘적 태도를 풀어내는 사진작업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경우는 대부분 같은 다큐멘터리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시각에 입각해서 발화자로서의 작가의 지위와 예술가의 수행성을 강조하는 비판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는 ‘영상설치+디지털+온라인’을 망라한 뉴미디어 아트 작가들이다. 김창겸, 이중재, 노재운, 양아치, 이부록 등은 전통적인 회화와 조소예술의 장르개념을 넘어서서 매체다양성의 시대에 부합하는 리얼리스트들이다. 영상과 설치작업을 비롯해 오늘날 날로 가속화하는 디지털과 온라인 기반의 정보혁신은 시각예술의 생산과 향유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는데, 이 작가들은 이러한 사이버, 온라인 환경에서도 리얼리즘적 태도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사이버 리얼리즘 등의 방법들이 훨씬 더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셋째는 ‘평면회화와 판화작업’으로 리얼리즘을 견지하는 작가들이다. 박은태, 김천일, 김태헌, 박영균, 성태훈, 박은영, 방정아, 소윤경, 이윤엽, 박건웅, 남일, 이샛별 등 다수의 화가들이 있다. 유채물감이나 아크릴을 사용하는 작가들과, 먹그림을 그리는 작가들, 그리고 목판화 작업이나 그 분위기를 살려 만화와 동영상 작업을 하는 이들은 여전히 ‘그린다’는 점을 기본으로 예술적 진정성과 리얼리즘적 토대를 지켜내는 경우이다. 이들은 재현회화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넘어서 다층적인 회화적 방법들을 찾아내고 있는데, 형상회화의 흐름과 평면 안에서의 매체적 변용을 통해 예술과 현실 영역의 힘겨운 공존을 찾고 있는 경우들이다.

넷째는 ‘입체+오브제+개념’의 작가들인데, 구본주, 이원석, 유영호, 김준, 배영환, 신창운, 박장근, 설총식, 이경복 등은 전통적인 리얼리즘 기법의 소조와 조각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입체작업을 선보이는가 하면, 회화를 전공하고도 오브제를 이용해 작업을 하거나 개념적인 입체조형과 설치작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이들은 공공장소에서의 입체 조형을 비롯해서 조경과 가로계획 등 공공영역에서의 시각예술 생산을 접목함으로써 사회와의 접점을 만드는 예술을 지향하기도 한다.

플라잉시티_이야기 천막_DV6mm 영상_00:10:00_2003 / flyingcity.org


믹스라이스_외국인노동자의 집_2003 / mixrice.org


3.
앞서 말했듯이 오늘날 시각예술의 지형을 파악하고 대안적인 담론을 열어나가는 데 있어서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의 유효성은 예술을 형식적 결과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는 정신적 활동의 과정으로 파악한다는 데 있다. 이 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틀이 있는데, 그것은 리얼리즘을 둘러싼 다양한 개념들과의 다층적인 연관성이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형상미술, 민중미술, 민족미술, 현장미술, 공공미술, 진보미술, 행동주의 등 너무나도 많은 미학적, 실천적 개념들이 동시대 미술현장에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이다.

첫째 문제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관계 설정이다. 이미 수많은 비평적 문헌들이 이 부분을 정리해 두었지만, 우리 미술계는 아직도 이 대목에 관한 투명한 합의와 개념적 공유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한국의 당대 시각예술을 읽어내는 여러 시각들 가운데 리얼리즘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다양한 방법을 찾는 일은 중심의 가벼움을 강조하는 탈근대적 맥락에서 보면 일견 고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개념적 혼돈에서 기인한 것이다. 태도로서의 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자율성 논리를 극복하는 대안적 모색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표(sign)와 기의(significance)와 실재(reality)의 삼각관계 속에서, 모더니즘은 삼자의 분화(分化, differentiation) 과정을 통해서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형식주의 실험으로 빠져들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삼자의 분화를 극복하려는 탈분화(脫分化, de-differentiation)의 과정을 통해서 예술영역과 생활영역, 작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티의 연관은 양자가 추구하는 삶과 현실 속에 예술의 근거를 두고자하는 태도에 있어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중요한 미학적 이념 가운데 하나가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이라는 점은(한국사회 현실미술판의 낡은 진영테제와는 전혀 무관하게) 동의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는 민중미술과 리얼리즘의 관계이다. 이 전시에 참여한 많은 수의 작가들이 적지 않게 또는 전적으로 80년대 민중미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민중미술계열의 작가들과 오늘날의 90년대 리얼리스트들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오류의 가능성이 너무 크다. 만약 후배세대 리얼리스트들을 포스트민중미술(post minjung art) 작가로 분류한다면 이는 포스트(post)라는 말의 ‘탈’ 혹은 ‘후기’ 개념과 얽혀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포스트’의 관점이 아닌, 당대의 관점으로 리얼리즘 미학을 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아시스_카페 시월 점거 프로젝트_2004 / squartist.org


특히 민중미술이 80년대라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미술 작가들의 시대별 변화과정들을 두고서야 얼마든지 포스트 논의의 가능성이 있겠지만)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에 있어서는 포스트 논의라는 게 가당치도 않은 것 아니겠는가. 민중미술이 특정 시대와 상황에 입각한 개념이라면, 리얼리즘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보편개념이라는 점에서 양자의 범주적 구분은 더욱 명확해진다. 민중미술은 실천적으로 여러 갈래의 분파를 이루면서도 내용적 핵심을 요약하자면 시대정신과 호흡하는 리얼리즘적 ‘태도의 문제’로 볼 수 있다. 90년대 리얼리스트들 또한 형식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펼쳐져 있으므로 공통분모를 모색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앞선 세대와 마찬가지로 그 핵심을 ‘태도의 문제’로 읽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중미술과 리얼리즘을 동시에 언급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가 아니겠는가.

입김_아방궁-종묘점거 프로젝트_2000


셋째는 ‘90년대의 태도로서의 리얼리즘(Realism as an attitude)’에 대한 해명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전시는 리얼리즘 미술이라는 큰 틀 안에서 90년대 이후의 미술을 고찰함으로써, 한국현대미술의 변모과정 속에서 민중미술 시기 이후, 그러니까 포스트 민중미술 시기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민중미술의 시대 이후인 ‘90년대에 접어들어서 리얼리즘 미술이 어떻게 흘러 왔는가’에 대한 계보학적 관점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진화론적 입장에서 본 한국의 90년대 이후의 리얼리즘미술의 계보학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80년대를 기원의 중심에 놓고 90년대를 후기적 양상으로 파악하는 발생론(evolution theory)의 관점이 아니라, 90년대 자체의 흐름을 꼼꼼히 따져보는 계보학(genealogy)의 관점으로 면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야말로 90년대 작가들을 ‘포스트(post)’ 민중미술 논의를 넘어서서, 민중미술 ’너머(beyond)’를 지향한 진정한 리얼리스트로 읽어내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80년대이건 90년대이건 시대의 차이에 관계없이 ‘당대성을 전취하는 태도로서의 리얼리즘’과 그것의 현재진행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양아치_電子政府_넷아트_2003 / egovernment.co.kr


4.
『리얼링 15년』展은 달리 말해서 '『민중미술15년』展 10년후'展이며, 민중미술을 넘어서 ‘리얼링(real+ing)’하고 있는 90년대 세대들의 궤적을 돌아보는 일이다. 90년대 리얼리스트들은 개념적으로 리얼리즘 미술의 외연을 확대하는 한편, 예술 행위와 생산의 방식에 있어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이전 세대들의 리얼리스트들이 정치적 진보주의의 열풍에 휩싸여 감내해야만 했던 이데올로그로서의 역할로부터의 자유로움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예술적 자율성과 공공성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좋은 조건인 동시에 리얼리즘 미술의 터전의 삶의 현장의 역동성이 덜한 악조건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역동하는 유기체이며, 예술은 변함없이 현실로부터 ‘현장성과 공공성에 입각한 예술행동’을 요청한다. 이것이야말로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을 규정하는 최소공약수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최소공약수를 세 가지로 풀어서 ‘현장성과 공공성, 그리고 행동주의’로 설명하는 것으로 말을 맺고자 한다.

이부록_W.C.(wartime city)_다채널 비디오 영상_00:07:00_2004


첫째, 예술개념에 있어서의 현장성이란 생활영역과 예술영역의 절합(articulation)을 시도하는 일련의 비판적 예술 태도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나아가 삶의 현장에 대한 개입(intervention)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예술적 개입을 요청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상황주의적(situationist) 예술 태도 또한 예술적 현장성을 규명하는 기본 요소이다. 이렇듯 특정상황과 장소에 대한 예술적 개입은 통해 얻어지는 현장성은 리얼리즘적인 태도의 근본을 이룬다.

둘째는 탈근대적 예술개념을 가장 탁월하게 집약할 수 있는 개념인 공공성의 문제이다. 공공성은 우리 미술계의 내용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20세기를 지배해온 모더니즘 미술의 대안으로서 사적인 취미의 영역에 머물렀던 예술을 공공의 영역에서 공공적인 방식으로 옮겨놓는 것이야말로 리얼리즘 미술을 모더니즘 미학의 한계와 구분 짓게 하는 확연한 차이점이다.

셋째는 행동주의(activism) 미학이다. 예술적 행동주의는 1960년대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개념주의 미술에서 그 싹을 발견할 수 있는 틀이다. 이것은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으로 예술과 삶의 영역 분할을 부정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는 아방가르드 미학과 예술적 방식으로 변혁을 꿈꾸는 실천 영역 사이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으로, 오늘날 90년대 리얼리스트들이 탈근대적 예술지형 속에서 가장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는 예술운동의 방법이기도 하다.

에이지아이_총선시민연대 포스터_2000 / e-agi.co.kr


이상에서 간략히 언급한 현장성, 공공성, 행동주의 미학 등의 개념들은 사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미술계의 외형적인 성장에 비해 내용적인 대안 생산이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리얼리스트들에 의해 끊임없이 실천의 영역으로 자리잡아온 것들이다. 그렇다면 대안적 예술개념은 이론이 아닌 실천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는 셈인데, 이점은 ‘미술운동의 대안적 담론 생산이 절실하다’고 누누이 열변을 토해왔던 많은 이들에게 곰곰이 생각해보아야할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대안적 담론 생산 없이도 실천적인 창작이 존재해왔다는 것은 곧 실천으로부터 대안적인 담론을 모색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는 것의 반증이다. 결국 ‘이론은 실천으로부터’ 나오듯이 ‘대안적 담론은 실천적인 창작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김준기
2005/01/31 01:26 2005/01/31 01:26

現場 2001 : 건·너·간·다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1 00:42


現場 2001 : 건·너·간·다 - 네오룩닷컴 메일진 버전
책임기획_김준기
전시기간_2001_0817 ▶ 2001_0831
초대일시_2001_0817_금요일_05:00pm
참어작가_구본주_김태헌_박경주_박은태_방정아_배영환_이중재_최병수_최평곤
전시장소_성곡미술관 별관 /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 Tel. 02_737_7650

구본주_갑오농민전쟁_나무·철_35×60×25cm_1991


현장을 안고 시대의 강을 건너간다

이행(移行)의 시대다. 지난 한 시절 우리는 변혁의 시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지금 처절하게 개별화, 파편화, 일상화 된 주체의 시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이행을 지켜보고 있다. 선택의 문제만이 남은 것인가? 일생 가운데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20대 이후 현장과 미술을 한 눈에 담아 온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의 화두를 벗삼아 이행의 시대, 새로운 선택을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가보자.

배영환_젊은 미소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91×116.8cm_1996


최병수_반전반핵도_천에 아크릴 채색_610×880cm_1988


새로운 선택의 시대80년대 보혁구도의 성과들이 90년대를 지내오면서,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가에 관해 모두들 침묵하고 있다. 이른바 대안 부재의 시대다. 한국 사회는 지난 세기말, 최소한 극단적인 파시즘의 직접적인 폭력을 극복해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형 식민지를 선도하는 글로벌리즘이 전 세계를 무섭게 옥죄어 오는 이 때에 탈정치화와 탈이데올로기라는 주류 담론에 걸맞게 모두들 참담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당대 현장의 문제에 눈감고 귀 막은 발랄하고, 명랑하며, 화려하고, 엽기적이며, 스펙터클한 천박 퍼레이드가 이어지는 사이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역에서 수구와 반개혁 세력이 전면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시대역행의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아무도 깃발 꽂고 산자여 따르라고 말하지 못하는 좌표 부재의 시대를 틈타, 대중이라는 우매한 양떼를 몰고 다니는 어설픈 목자들의 양치기 이벤트가 창궐하고 있다.

매우 구체적이고 선명한 목표를 가지고 미술이 현장과 결합하여 무언가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싹틔운 80년대라는 시대가 노스텔지어로 남아있다. 이후 10년의 세월을 두고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저 환멸의 90년대가 남긴 것은 텅 빈 거리에서 다시 팔을 걷어붙여야 하는 힘겨움이다. 21세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 90년대의 미망 아래 놓여있다. 모두들 생존의 길로 접어들었다. 개별화, 파편화, 일상화의 기류는 젊은 날의 힘있던 미술가들을 혼란과 절망과 좌절로 밀어 넣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 나간 '옛날의 젊은이들'과 그들을 비껴나가는 또 다른 담론들이 주류를 이룬 시대, 90년대를 넘어 아직도 초심을 버리지 않은 열정적인 삶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조차 이른바 386세대 담론의 상업화에 찌들고 있다. 어줍잖은 '상업주의 386세대 역할론'이 한참 전부터 가동되고 있다는 점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방정아_바다 끝에 선 여인들_캔버스에 유채_162.1×130.3cm_1993


박은태_창원공단에서 2_장지에 아크릴 채색_153×196cm_1994


다시 현장으로
현장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갖 'beyond와 'trans-와 'post-가 무게를 잡는 지금, 다시 현장성을 담보하는 시각이미지의 생산에 주목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민중미술 이후 선명한 이슈 없이 진공상태를 이어온 한국 미술계가 '현장성이라는 모토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단선적이며 계몽적인 도식을 꿈꾸는 로맨티스트의 자위 따위는 접어두자.

90년대 초에 전 세계를 강타한 정치적 빅뱅은 한국의 젊은 미술인들을 옥죄는 또 하나의 차별적 구도를 양산해왔다. 이른바 모더니즘 계열과 민중미술 계열이라는 다분히 작위적이며 범주오류를 띄고 있는 대립구도가 90년대를 지나면서 모호한 진영테제로 잔존해왔기 때문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진영 개념을 해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잔치 이면에는 젊은 리얼리스트들의 고뇌가 서려있다. 이제 막 작가로서의 성장을 모색하던 시점에 잔치가 끝났다는 소문에 어리둥절하던 젊은 리얼리스트들은 제도권 미술공간의 높은 벽을 넘나들어야 했고, 미소설화의 다양성에 포박되어 하위문화, 환경미술, 해학의 미학, 신세대, 가족주의, 휴머니즘 등의 탈정치적인 피난처를 구하거나, 뉴미디어, 설치, 영상, 웹 등의 기능주의적인 개념으로 읽혀졌다. 그도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사회부적응자로 남아 생존과 창작을 분리한 채 고군분투하며 지내왔다. 이들에게 현장성이라는 직설법은 은유법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어법으로 받아들이기조차 버거운 현실의 벽으로 다가오기도 했을 것이다.

90년대 중후반 이후 미술계는 현장미술을 더 이상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화두를 잃어버린 시대, 지난 시대를 망각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저주받은 시대를 건너오면서도 여전히 작가로서의 정치적 생명을 '현장 기반의 시각이미지 생산'에 두어온 작가들이 있다. 이 전시가 주목하는 현장성이란 작가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주의적 감각으로 현장에 대해 발언하고 개입해 들어가는 상황과 그 결과물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현장 2001 : 건.너.간.다』는 이러한 작업들이 대형미술축제나, 미술관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제도화된 미술계의 흐름에 있어 독특한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전시는 작가 재발굴 작업에 그 의미의 한 축을 두고 있기도 하다. 연령이 적고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신예작가들만이 발굴의 대상이 아니다. 앞서 말한 다양한 층위의 탈정치적이고 기능주의적인 개념들과 더불어 현장성이라는 정황에 주목해 다시 봄으로써, 해석의 여지를 넓히자는 것이다. 물론 이 전시의 참여 작가들도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해온 작가들이며, 현장성을 전제로 하는 미술이 제도권 미술의 상징인 미술관에 들어간다는 점은 일종의 아이러니일 수도 있다.

박경주_잠(Sleep)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7:00_1994/재편집 2001


이중재_메이드 인 캐피탈_동영상 설치_1996


이 전시는 또한 작가가 생활인으로서의 생존의 현장과 작가로서의 정치적 현장을 일치시키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능한가라는 것을 묻고 있다. 사회적 재화와 용역의 직접적인 생산을 면제 받은 존재로서의 작가의 삶은 이중적인 구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경우 이러한 이중적인 구조를 떠 안으면서 일정부분 생활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까지도 유보하곤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생활과 예술의 갈등은 작가로서의 정치적 생명을 키워나가는 데 커다란 변수로 작용한다. 현장전 참여 작가들이 걸어온 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 전시가 이야기하는 현장은 참여 작가들의 정치적 생명의 처소로서의 현장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밝혀둔다.

여기서 파생하는 또 다른 역설 하나, 현장미술가와 미술계 현장 양자의 부적절한 관계를 상기할 수밖에 없다. 현장을 떠난 현장미술이 그 힘을 잃는다는 것은 기획자나 작가 모두 일정 정도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미술관이란 곳은 시각이미지의 여러 편린들을 열어 보이는 '미술의 집'인 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화석화된 물건을 다루던 큰집이 이제는 현재형의 담론을 시각화해서 이들의 상징과 은유가 치유와 예언의 기능으로 전화하는가 하면, 직접적인 텍스트로 치환되기도 하는 적극적인 담론 쟁투의 장으로 읽혀지고 있다. 현장성의 개념적 외연을 좁게 가져가지 않는 것을 전제로, 미술집을 찾은 미술고객과 미술인들에게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이 걸어온 길을, 현장이 아닌 미술관으로 끌어들여 선보이는 이유이다.

최평곤_충남 당진 왜목에서의 설치 장면_1999


80년대 말 이후의 현장미술

『현장 2001 : 건.너.간.다』의 참여 작가들 대부분이 격정적인 80년대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 전시는 현장성 있는 미술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80년대 말 이후의 10여년을 돌아보며 현장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이들을 다시 읽어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9인의 작가들의 다양한 현장성을 보여주기 위해 옴니버스형 모듬전(展) 형식을 택했다.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은 자신들의 현장성을 그대로 고수하고, 기획자는 그 양상을 선택하며 제시한다. 80년대 말 이후 90년대를 지내오면서 각 작가들의 변모를 간추려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건너가는 정황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10년 안 밖의 짧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출품 작가들의 신작과 구작은 선명성이나 밀도의 차이가 눈에 띈다. 출품작 가운데 일부는 앞서 말한 미술제도의 틀과 공존을 모색한 흔적이 역력한 것도 있다. 또한 엘리트 미술가들의 저 짱짱한 미학적 진보주의나 호사가들의 탈색된 미사여구를 넘어설 만큼 전략적인 큰 그림과 전술적인 타겟 설정을 뚜렷이 하고 있기도 하다. 현장과의 결합 방식이라는 틀을 근거로 다음의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는 현실적인 미술제도 속에서 적극적인 공존의 방법론을 터득한 경우다. 화이트컬러의 파편화된 일상이나 여성과 가족제도에 대한 해학적인 접근으로 읽혀온 구본주와 방정아는 초기의 명확한 계급과 젠더에 대한 문제의식에 근거한 역동성을 한 꺼풀 윤색해 보여주는 경우이다. 이들의 행보는 제도권과의 행복하고도 유의미한 공존에 속하는 경우다.

둘째는 직간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다. 노동자-노숙자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내거나, 노숙자 수첩을 제작 배포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거나, 독일과 한국에서 체험한 이주노동자의 정체성에 대해 문화적-정치적 문제를 제기하는 박은태, 배영환, 박경주가 그들이다. 이들은 계급과 인종의 차별이 커져만 가는 시대에, 신자유주의 정책과 글로벌리즘의 세례 속에서 탈계급, 초국가 단위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노출된 인류의 운명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경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거나 목적의식적으로 현장에 뛰어드는 방식으로 현장성을 담보하고 있다.

셋째는 현안에 대한 순발력 있는 접근으로 현장성을 담보하는 경우다. 자본, 계급, 국가, 성, 환경 등의 이슈에 대해 일기 혹은 시대미술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김태헌, 이중재는 다양한 시각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일상 속에 편재한 권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미술계의 현안에 대한 실천적인 접근이나, 매체다변화에 대한 창의적으로 해석과 접근으로 '민(民)'자 돌림 미술(계)의 방법과 결과를 넓혀주고 있다.

넷째는 구체적인 사이트 개념의 현장성을 담보하는 경우다. 인류의 미래를 생태적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는 최병수, 최평곤은 현장미술의 구체적인 상을 놓치지 않는 작가들이다. 특히 갯벌에서 펼치는 이들의 설치 작업들은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옮기기에는 버거울 정도의 역동성을 가진 것들이다.

김태헌_잘 키운 딸 열 아들 안 부럽다_혼합재료_290×290cm_1992


이들 현장미술가들이 헤쳐 나온 90년대라는 험악한 지형은 아직도 현재형으로 남아있다. 개별화, 파편화, 일상화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다함께 손을 내밀어 커다란 그물을 만드는 일 또한 당대 사람들 모두의 몫으로 남아있다. 21세기 남한 사회라는 만만찮은 조건 아래서, 현장과의 유기적인 호흡을 놓치지 않고 시대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긴 여운으로 남는 것은, 이들이 향후에 새로운 씨앗을 뿌릴 현장(주의)미술가들로 남아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장 2001』전의 「건.너.간.다」라는 부제는 정태춘의 노래 제목을 따온 것이다. 해질 무렵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 상황에 빗대어 90년대라는 환멸의 시대를 넘어가는 비감한 서정을 담고 있는 노랫말이 어쿠스틱 기타와 굵직한 선율의 첼로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정태춘님의 「건너간다」 노랫말 전문을 인용한다.

강물 위로 노을만 / 잿빛 연무 너머로 번지고 / 노을 속으로 시내버스가 / 그 긴 긴 다리 위 / 아, 흐르지 않는 강을 건너 / 아, 지루하게 불안하게 / 여인들과 노인과 말 없는 사내들 / 그들을 모두 태우고 건넌다 // 아무도 서로 쳐다보지 않고 / 그저 창 밖만 바라볼 뿐 / 흔들리는 대로 눈감고 / 라디오 소리에도 귀 막고 / 아, 검은 물결 강을 건너 / 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 / 깊은 잠에 빠진 제복의 아이들 / 그들도 태우고 건넌다 // 다음 정거장은 어디오 / 이 버스는 지금 어디로 가오 / 저 무너지는 교각들 하나 둘 건너 / 천박한 한 시대를 지나간다 / 명랑한 노랫소리 귀에 아직 가물거리오 / 컬러 신문지들이 눈에 아직 어른거리오 / 국산 자동차들이 앞뒤로 꼬리를 물고 / 아, 노쇠한 한강을 건너간다 / 휘청거리는 사람들 가득 태우고 / 아, 고단한 세기를 지나간다
2005/01/31 00:42 2005/01/31 00:42

현장을 안고 시대의 강을 건너간다 : 서문 0108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0 18:46


현장을 안고 시대의 강을 건너간다

김준기|전시기획자

이행(移行)의 시대다. 지난 한 시절 우리는 변혁의 시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지금 처절하게 개별화, 파편화, 일상화 된 주체의 시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이행을 지켜보고 있다. 선택의 문제만이 남은 것인가? 일생 가운데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20대 이후 현장과 미술을 한 눈에 담아 온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의 화두를 벗삼아 이행의 시대, 새로운 선택을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가보자.


새로운 선택의 시대
80년대 보혁구도의 성과들이 90년대를 지내오면서,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가에 관해 모두들 침묵하고 있다. 이른바 대안 부재의 시대다. 한국 사회는 지난 세기말, 최소한 극단적인 파시즘의 직접적인 폭력을 극복해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형 식민지를 선도하는 글로벌리즘이 전 세계를 무섭게 옥죄어 오는 이 때에 탈정치화와 탈이데올로기라는 주류 담론에 걸맞게 모두들 참담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당대 현장의 문제에 눈감고 귀 막은 발랄하고, 명랑하며, 화려하고, 엽기적이며, 스펙터클한 천박 퍼레이드가 이어지는 사이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역에서 수구와 반개혁 세력이 전면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시대역행의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아무도 깃발 꽂고 산자여 따르라고 말하지 못하는 좌표 부재의 시대를 틈타, 대중이라는 우매한 양떼를 몰고 다니는 어설픈 목자들의 양치기 이벤트가 창궐하고 있다.
매우 구체적이고 선명한 목표를 가지고 미술이 현장과 결합하여 무언가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싹틔운 80년대라는 시대가 노스텔지어로 남아있다. 이후 10년의 세월을 두고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저 환멸의 90년대가 남긴 것은 텅 빈 거리에서 다시 팔을 걷어붙여야 하는 힘겨움이다. 21세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 90년대의 미망 아래 놓여있다. 모두들 생존의 길로 접어들었다. 개별화, 파편화, 일상화의 기류는 젊은 날의 힘있던 미술가들을 혼란과 절망과 좌절로 밀어 넣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 나간 '옛날의 젊은이들'과 그들을 비껴나가는 또 다른 담론들이 주류를 이룬 시대, 90년대를 넘어 아직도 초심을 버리지 않은 열정적인 삶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조차 이른바 386세대 담론의 상업화에 찌들고 있다. 어줍잖은 '상업주의 386세대 역할론'이 한참 전부터 가동되고 있다는 점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현장으로
현장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갖 'beyond와 'trans-와 'post-가 무게를 잡는 지금, 다시 현장성을 담보하는 시각이미지의 생산에 주목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민중미술 이후 선명한 이슈 없이 진공상태를 이어온 한국 미술계가 '현장성이라는 모토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단선적이며 계몽적인 도식을 꿈꾸는 로맨티스트의 자위 따위는 접어두자.
90년대 초에 전 세계를 강타한 정치적 빅뱅은 한국의 젊은 미술인들을 옥죄는 또 하나의 차별적 구도를 양산해왔다. 이른바 모더니즘 계열과 민중미술 계열이라는 다분히 작위적이며 범주오류를 띄고 있는 대립구도가 90년대를 지나면서 모호한 진영테제로 잔존해왔기 때문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진영 개념을 해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잔치 이면에는 젊은 리얼리스트들의 고뇌가 서려있다. 이제 막 작가로서의 성장을 모색하던 시점에 잔치가 끝났다는 소문에 어리둥절하던 젊은 리얼리스트들은 제도권 미술공간의 높은 벽을 넘나들어야 했고, 미소설화의 다양성에 포박되어 하위문화, 환경미술, 해학의 미학, 신세대, 가족주의, 휴머니즘 등의 탈정치적인 피난처를 구하거나, 뉴미디어, 설치, 영상, 웹 등의 기능주의적인 개념으로 읽혀졌다. 그도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사회부적응자로 남아 생존과 창작을 분리한 채 고군분투하며 지내왔다. 이들에게 현장성이라는 직설법은 은유법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어법으로 받아들이기조차 버거운 현실의 벽으로 다가오기도 했을 것이다.
90년대 중후반 이후 미술계는 현장미술을 더 이상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화두를 잃어버린 시대, 지난 시대를 망각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저주받은 시대를 건너오면서도 여전히 작가로서의 정치적 생명을 '현장 기반의 시각이미지 생산'에 두어온 작가들이 있다. 이 전시가 주목하는 현장성이란 작가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주의적 감각으로 현장에 대해 발언하고 개입해 들어가는 상황과 그 결과물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현장 2001 : 건.너.간.다〉는 이러한 작업들이 대형미술축제나, 미술관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제도화된 미술계의 흐름에 있어 독특한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전시는 작가 재발굴 작업에 그 의미의 한 축을 두고 있기도 하다. 연령이 적고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신예작가들만이 발굴의 대상이 아니다. 앞서 말한 다양한 층위의 탈정치적이고 기능주의적인 개념들과 더불어 현장성이라는 정황에 주목해 다시 봄으로써, 해석의 여지를 넓히자는 것이다. 물론 이 전시의 참여 작가들도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해온 작가들이며, 현장성을 전제로 하는 미술이 제도권 미술의 상징인 미술관에 들어간다는 점은 일종의 아이러니일 수도 있다.
이 전시는 또한 작가가 생활인으로서의 생존의 현장과 작가로서의 정치적 현장을 일치시키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능한가라는 것을 묻고 있다. 사회적 재화와 용역의 직접적인 생산을 면제 받은 존재로서의 작가의 삶은 이중적인 구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경우 이러한 이중적인 구조를 떠 안으면서 일정부분 생활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까지도 유보하곤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생활과 예술의 갈등은 작가로서의 정치적 생명을 키워나가는 데 커다란 변수로 작용한다. 현장전 참여 작가들이 걸어온 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 전시가 이야기하는 현장은 참여 작가들의 정치적 생명의 처소로서의 현장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밝혀둔다.
여기서 파생하는 또 다른 역설 하나, 현장미술가와 미술계 현장 양자의 부적절한 관계를 상기할 수밖에 없다. 현장을 떠난 현장미술이 그 힘을 잃는다는 것은 기획자나 작가 모두 일정 정도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미술관이란 곳은 시각이미지의 여러 편린들을 열어 보이는 '미술의 집'인 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화석화된 물건을 다루던 큰집이 이제는 현재형의 담론을 시각화해서 이들의 상징과 은유가 치유와 예언의 기능으로 전화하는가 하면, 직접적인 텍스트로 치환되기도 하는 적극적인 담론 쟁투의 장으로 읽혀지고 있다. 현장성의 개념적 외연을 좁게 가져가지 않는 것을 전제로, 미술집을 찾은 미술고객과 미술인들에게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이 걸어온 길을, 현장이 아닌 미술관으로 끌어들여 선보이는 이유이다.


80년대 말 이후의 현장미술
〈현장 2001 : 건.너.간.다〉의 참여 작가들 대부분이 격정적인 80년대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 전시는 현장성 있는 미술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80년대 말 이후의 10여년을 돌아보며 현장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이들을 다시 읽어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9인의 작가들의 다양한 현장성을 보여주기 위해 옴니버스형 모듬전(展) 형식을 택했다.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은 자신들의 현장성을 그대로 고수하고, 기획자는 그 양상을 선택하며 제시한다. 80년대 말 이후 90년대를 지내오면서 각 작가들의 변모를 간추려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건너가는 정황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10년 안 밖의 짧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출품 작가들의 신작과 구작은 선명성이나 밀도의 차이가 눈에 띈다. 출품작 가운데 일부는 앞서 말한 미술제도의 틀과 공존을 모색한 흔적이 역력한 것도 있다. 또한 엘리트 미술가들의 저 짱짱한 미학적 진보주의나 호사가들의 탈색된 미사여구를 넘어설 만큼 전략적인 큰 그림과 전술적인 타겟 설정을 뚜렷이 하고 있기도 하다. 현장과의 결합 방식이라는 틀을 근거로 다음의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는 현실적인 미술제도 속에서 적극적인 공존의 방법론을 터득한 경우다. 화이트컬러의 파편화된 일상이나 여성과 가족제도에 대한 해학적인 접근으로 읽혀온 구본주와 방정아는 초기의 명확한 계급과 젠더에 대한 문제의식에 근거한 역동성을 한 꺼풀 윤색해 보여주는 경우이다. 이들의 행보는 제도권과의 행복하고도 유의미한 공존에 속하는 경우다. 둘째는 직간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다. 노동자-노숙자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내거나, 노숙자 수첩을 제작 배포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거나, 독일과 한국에서 체험한 이주노동자의 정체성에 대해 문화적-정치적 문제를 제기하는 박은태, 배영환, 박경주가 그들이다. 이들은 계급과 인종의 차별이 커져만 가는 시대에, 신자유주의 정책과 글로벌리즘의 세례 속에서 탈계급, 초국가 단위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노출된 인류의 운명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경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거나 목적의식적으로 현장에 뛰어드는 방식으로 현장성을 담보하고 있다. 셋째는 현안에 대한 순발력 있는 접근으로 현장성을 담보하는 경우다. 자본, 계급, 국가, 성, 환경 등의 이슈에 대해 일기 혹은 시대미술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김태헌, 이중재는 다양한 시각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일상 속에 편재한 권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미술계의 현안에 대한 실천적인 접근이나, 매체다변화에 대한 창의적으로 해석과 접근으로 '민(民)'자 돌림 미술(계)의 방법과 결과를 넓혀주고 있다. 넷째는 구체적인 사이트 개념의 현장성을 담보하는 경우다. 인류의 미래를 생태적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는 최병수, 최평곤은 현장미술의 구체적인 상을 놓치지 않는 작가들이다. 특히 갯벌에서 펼치는 이들의 설치 작업들은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옮기기에는 버거울 정도의 역동성을 가진 것들이다.
이들 현장미술가들이 헤쳐 나온 90년대라는 험악한 지형은 아직도 현재형으로 남아있다. 개별화, 파편화, 일상화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다함께 손을 내밀어 커다란 그물을 만드는 일 또한 당대 사람들 모두의 몫으로 남아있다. 21세기 남한 사회라는 만만찮은 조건 아래서, 현장과의 유기적인 호흡을 놓치지 않고 시대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긴 여운으로 남는 것은, 이들이 향후에 새로운 씨앗을 뿌릴 현장(주의)미술가들로 남아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장 2001전'의 '건.너.간.다'라는 부제는 정태춘의 노래 제목을 따온 것이다. 해질 무렵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 상황에 빗대어 90년대라는 환멸의 시대를 넘어가는 비감한 서정을 담고 있는 노랫말이 어쿠스틱 기타와 굵직한 선율의 첼로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정태춘님의 <건너간다> 노랫말 전문을 인용한다.

건너간다

강물 위로 노을만|잿빛 연무 너머로 번지고|노을 속으로 시내버스가|그 긴 긴 다리 위|아, 흐르지 않는 강을 건너|아, 지루하게 불안하게|여인들과 노인과 말 없는 사내들|그들을 모두 태우고 건넌다

아무도 서로 쳐다보지 않고|그저 창 밖만 바라볼 뿐|흔들리는 대로 눈감고 |라디오 소리에도 귀 막고|아, 검은 물결 강을 건너|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깊은 잠에 빠진 제복의 아이들|그들도 태우고 건넌다

다음 정거장은 어디오|이 버스는 지금 어디로 가오|저 무너지는 교각들 하나 둘 건너|천박한 한 시대를 지나간다|명랑한 노랫소리 귀에 아직 가물거리오|컬러 신문지들이 눈에 아직 어른거리오|국산 자동차들이 앞뒤로 꼬리를 물고|아, 노쇠한 한강을 건너간다|휘청거리는 사람들 가득 태우고|아, 고단한 세기를 지나간다
2005/01/30 18:46 2005/01/30 18:46

건너간다 기획서 010629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0 18:34


현장전 기획서 2001-06-29 오전 9:42:39

The Field(가칭) 전시기획안
제목 : 기획안
작성자 : 김준기
작성일 : 2001.5.

1. 개요
▶ 전시명 : The Field(가칭)
▶ 주최 : 성곡미술관
▶ 주관 : Art Forum 十月
▶ 장소 : 성곡미술관 별관
▶ 기간 : 200.8.16-31
▶ 기획 : 김준기
▶ 진행 : 전혜정
▶ 참여작가 : 구본주 김태헌 박경주 박은태 방정아 배영환 M조형연구소 연영석 이중재 최병수 최평곤

2. 기획 의도
1) 미술에 있어서의 현장
시각이미지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탐구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근대적 미술의 가장 큰 가치이다. 이 가치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영역이 있다. 이 시대 현실과 함께 호흡하는 일이다. 미술의 현장성 담보를 전제로 하는 리얼리즘 미술의 현재 상황과 맥락을 짚어본다.

2) 21세기 한국 미술과 현장
80년대 이후 10년의 세월을 두고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그 좌절의 90년대가 남긴 것은 텅빈 거리에서 다시 팔을 걷어붙여야 하는 힘겨움이다. 하지만 2001년 이후 한국 사회와 한국 미술계는 여전히 현장성을 담보하는 시각이미지의 생산을 이어갈 것이다. 민중미술 이후 명확한 대립지점 없이 진공상태를 이어온 한국 미술계가 현장과의 만남을 통해 돌파구를 열어나 갈 수 있을 것인가. 그 가능성을 전망해본다.

3) 80년대를 거쳐온 미술계 30대와 현장
여전히 현장과 미술의 팽팽한 긴장과 조우를 갈망하는 젊은 작가들이 있다. 그들이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며 다시 희망의 작은 불씨를 열어보아야 한다. 그 작은 만남의 장이 이번 현장전의 핵심이 될 것이다.

4) 모듬전
이 전시는 기본적으로 옴니버스형 모듬전이다.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현장성을 밀고 나가되, 기획자는 그 현장성의 양상을 sellecting 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다. 모든전은 그 한계 만큼의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는 전시 형식이다.

5) 그 외의 단상들
작가가 생활인으로서의 현장과 작가로서의 현장을 일치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사회적 제화와 용역의 직접적인 생산을 면제받은 존재로서의 작가의 삶은 이중적인 구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경우 이러한 이중적인 구조를 떠안으면서도 작가로서의 입신을 위해 일정부분 생활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까지도 유보하곤 하지만, 어쨋든 작가는 작가로서의 정치적 생명을 구축하고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나름의 전략적 지점들을 설정하고 있다. 이렇듯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삶의 현장을 작업 현장에 맞추거나, 아니면 삶의 현장을 작업 현장으로 적절하게 전환하면서 지속적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다 삶 속에 베어있는 진정성을 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감동을 전제하고 있다.
이 전시가 주목하고자 하는 현장성이란 작가의 삶과 밀접하게 연과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주의적 감각으로 현장에 대해 발언하고 개입해들어가는 작업을 염두에 둔 것이다. 다수의 작가가 여러 가지 미술 제도를 중심으로 삶의 형태를 조절하는 것과는 일정정도 차별을 이루는 지점이다. 이러한 작업들이 미술관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제도화된 오늘날의 미술계의 흐름에 있어 독특한 방식의 하나로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에 (가칭)현전전의 큰 의의를 두고자 한다.
이 전시는 작가 재발굴 작업에 그 의미의 한 축을 두고 있기도 하다. 연령이 적고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들만이 작가발굴의 대상이 아니라 잊혀진 작가 혹은 현장에 파묻혀 지내는 작가들을 다시 한번 찾아본다는 점에서 참신성을 견지할 수 있다. 미술계에서 한 때 지명도를 형성했단 작가들이며 과정의 작업들이 현재형으로 접목되는 방식에 관한 관심도가 있으므로 그들의 작업이 우리 미술계 저변의 밑그림 가운데 일부를 읽어내게 할 것이다.
현장성을 전제로 하는 현장미술이 제도권 미술의 상징인 미술관에 들어간다는 점, 일종의 넌센스임에 틀림이 없다. 현장을 떠난 현장미술이라니... 하지만, 미술관이란 괴물처럼 시각이미지의 여러 편린들을 열어보이는 미술 집이니, 그곳을 찾는 관객들과 현장미술이 어떻게 만날 것인지, 결코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게 작가들과 관객들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3. 전시구성
1) 출품작가
▶ 구본주 : 샐러리맨의 일상
▶ 김태헌 :
▶ 박경주 : 이주노동자
▶ 박은태 : 노동자
▶ 방정아 : 여성과 여성성
▶ 배영환 : 노숙자프로젝트
▶ M조형연구소 : 공공미술과 현장
▶ 연영석 노동현장과 현장예술가
▶ 이중재 : 매체 다변화와 현장성
▶ 최병수 : 환경운동과 현장미술
▶ 최평곤 : 미래적 인간의 삶의 현장

2) 출품작
출품작가들의 구작 가운데 현장성을 잘 살린 대표작 1-2점.
출품작가들의 최근작

3) 작품설치
▶ 작품의 매체 및 주제별로 분리 결합
▶ 개별작품의 특성 살리는 옴니버스형 배치

4) 전시장 재원
천장높이 : 2600mm / 현관높이 : 2050mm / 전시실입구높이 : 2650mm / 계단높이 : 2650mm / 기둥면 : 570mm / 1, 2, 3층 전시실 공통

4. 진행계획
1) 인쇄물 제작
▶ 전단
분량 : 10여쪽 / 도판 : 작품사진 10여컷, 간단한 작가 약력, 부수 : 2000부
엽서 : 2000부
포스터 : 500부

2) 홍보계획
일간지, 미술전문지 등 기사 섭외 / 홍보 포스터 : 시내 주요장소 부착

3) 부대행사
▶ 개막식 및 뒷풀이 : 개막 기념 공연(추후 상세 계획)
▶ 심포지움 : (추후 상세 계획)
▶ 작가와의 대화 : 전시 기간 중 순번으로 진행

5. 일정계획
5.14-20 기획서 완성
5.21-27 참여작가 섭외
5.28-6.3
6.4-10
6.11-17 전시 참여작가 간담회
6.18-24
6.18-24
6.25-7.1
7.2-8
7.9-15 작품 사진 접수
7.16-22 인쇄물 디자인 작업
7.30-8.5 인쇄물 디자인 및 제작
8.6-12 인쇄물 제작 완료(8.7) 및 기자 간담회
8.13 작품 설치 및 홍보
8.14
8.15
8.16 개막
8.31 철수

6. 기타
참여작가 프로필
▶ 구본주 : 홍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MBC구상조각전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포천에서 작업하고 있다. 도시인의 일상과 가족 등을 주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김태헌 : 경원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성남지역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 박경주 : 홍대 판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000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올해 귀국, 현재 삼성작가스튜디오에 있으며, 이주노동자를 주제로 비디오,사진 작업 중.
▶ 박은태 : 홍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지역에서 현장미술활동을 했으며, 현재 수원에서 작업하고 있다.
▶ 방정아 : 홍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가정과 여성의 삶 등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 배영환 : 홍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유행가 연작 작업 등으로 작업하고 있으며 2001년 노숙자수첩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 M조형연구소 : 박찬국, 이경복, 공공미술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온 그룹이다.
▶ 연영석 : 홍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문화생산자연합 등의 활동을 했으며, 현재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 이중재 : 중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시각이미지생산자그룹 푸른사람들 활동을 했으며, 설치와 영상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 최병수 : 걸개그림 작업으로 출발한 그는 환경운동연합에서 걸개-설치 작업을 하다가 요즘은 전북 부안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 최평곤 :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당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대나무를 엮어서 거대한 인체 조형작업을 했다.
2005/01/30 18:34 2005/01/30 18:34

최병수의 경우를 통해본 90년대와 이후에 대한 생각 010704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0 18:32


최병수의 경우를 통해본 90년대와 이후에 대한 생각 / 김준기 / 2001-07-04 오전 10:55:45

월간 코리아아트라는 미술전문지에 청탁원고 보낸 것인데,
현장전 참여작가인 최병수씨의 전시 리뷰입니다.

90년대를 넘어선 현장미술가와 인사동이라는 미술계의 현장
최병수전 2001.6.27-7.3 관훈갤러리

김준기 아트디렉터

지난 봄 어느날, 서울에 올라온 최병수와 환경운동연합에서 성곡미술관까지 짧게 동행할 일이 있었다. 그는 잠시 어디에 들러갈 곳이 있다고 했다. 환경운동연합 일꾼들 몇몇과 동승한 차량은 정부종합청사 앞에 멈춰섰다. 앞좌석에 앉아있던 수경스님이 "새만금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시작했다. 최병수는 담담하게 익숙한 수순대로 트렁크에서 쇠철판 좌대와 긴 나무와 나무로 깎은 짱뚱어를 꺼내 조립해서는 수경수님 옆에 세웠다. 새만금의 생명성을 상징하는 짱뚱어솟대였다. 순식간에 전경1개소대가 주위를 애워쌌다. 경찰의 반응은 의외로 강경했다. 1인시위는 몰라도 짱뚱어솟대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몸싸움을 벌이며 핏대를 세우는데, 그 살벌한 기세 때문인지 전경들도 1시간이라는 단서를 붙인 뒤 현장에서 철수했다. 짧은 순간의 이 일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현장미술가라는 최병수의 정체성을 한눈에 간단하게 확인한 셈이었다.

최병수는 몇해전부터 전북 부안에 자리잡으며 지속해온 솟대작업을 위해 얼마전 뉴질랜드에 다녀왔다. 북반구에서 남반구까지 1만 킬로미터를 날아다니며 환경 지표 역할을 하는 도요새를 모티브로 마오리족과 공동 전시를 한 것이다. 마오리족의 나무작업과 현지에서의 설치 장면을 보여준 이번 전시는 스펙타클한 규모와 군집의 미학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선 현장이 아닌 인사동이라는 공간이 그렇고, 없는 예산에 바쁜 일정까지 겹쳐 있었다. 하지만 근간에 그 어느 공간에서의 전시가 시각적 충격을 제공한 적이 있었던가.

대부분의 80년대 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난 후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최병수의 '활동보고 사진전'은 그 소략함 때문에 현장미술가의 외피를 얼핏 짐작하는 것에 그쳐야 했다. 그러나 10년을 현장 중심으로 활동해온 최병수가 펼친 인사동에서의 개인전은 적지 않은 (미술계)사람들에게 소소한 쑥스러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인사동은 이번 전시에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태주었다. 먹물과 목수의 절묘한 대비관계가 그것이다. 관훈갤러리 옆집 인사아트센터에서는 김진송의 목수김씨전이 최병수와 같은 기간에 열렸다. 먹물에서 목수로의 변신 과정에서 김진송의 소박함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세 번째 전시에서 선보인 목수김씨의 나무가구와 일상도구를 이용한 소품들은 차라리 아트퍼니쳐와 오브제조각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최병수의 경우, 목수가 미술가로 변신한 경우다. 87년 이후 <한열이를 살려내라>, <노동해방도> 등의 걸개그림을 비롯해 숫한 현장미술을 누볐던 그가, 최근에는 나무를 만지기 시작했다. 새를 깎아 올리는 것이 솟대의 전통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미래와 과거, 삶과 죽음을 매개하는 영원성의 상징인 솟대에 꽃개, 짱뚱어, 갯지렁이 등의 갯벌생물들을 얹어 새만금 갯벌과 집회나 시위 현장에 설치해온 것이다.

관훈갤러리 장경호기획실장의 추천으로 이번 전시가 열리기 전까지는, 최병수는 개인전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를 연 것이 1992년의 단 한번의 일이었다. 백기완, 최열 등의 축사와 장사익, 꽃다지의 즉석 공연까지 이어진 조촐하고도 화기애애한 오프닝으로 시작한 이번 전시는 현장미술가와 인사동이라는 미술계 현장 양자의 부적절한 관계를 상기시켰다. 90년대 미술계는 현장미술을 더 이상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두를 잃어버린 시대, 지난 시대를 망각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저주받은 시대를 건너온 최병수는 여전히 굳은 심지를 지키고 있는데 말이다.

모두들 생존의 길로 접어들었다. 파편화, 일상화의 기류는 젊은 날의 힘있던 미술가들을 혼란과 절망과 좌절로 밀어넣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 나간 옛날의 젊은이들과 그들을 변호하는 담론들이 창궐한 시대, 최병수의 존재를 고마워 하는 것은 90년대를 넘어 아직도 초심을 버리지 않은 열정적인 삶에 대한 간접적인 경의이다. 최병수에게서 아카데미즘의 세례를 받은 엘리트미술가들의 저 짱짱한 미학적 진보주의나 호사가들의 탈색된 미사여구를 넘어서는 인간미와 진정성을 느끼는 건 아직 젊은 날의 열정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미술계와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하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을 덜 읽었기 때문일 테지만 말이다.
2005/01/30 18:32 2005/01/30 18:32

참여작가 약력 및 출품작 안내 텍스트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0 18:22


출품작가 및 출품작

구 본 주|Gu, Bon Ju (1967 - )
경기도 포천 출생으로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3년 MBC구상조각대전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포천에서 도시인, 특히 샐러리맨의 일상과 가족 등을 주제로 한 힘있는 구상조각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학생 시절인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대표작 가운데, 나무깎기, 쇠두드리기(단조기법) 등의 방법으로 만든 <6월>, <갑오농민전쟁> 등 잘 알려진 작품과 더불어, 근년에 뜸했던 나무 작업 신작을 선보인다.
출품예정작 : 갑오농민전쟁 | 나무·철 | 60 25 35cm | 1991
출품예정작 : 위기의식 | 캔버스에 유채 | 600 200 180cm | 1999

김 태 헌|Kim, Tae Heon (1965 - )
경원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성남지역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6회의 개인전과'민중미술 15년전'(1994년 국립현대미술관),'도시와 영상/의식주전'(1998년 서울시립미술관)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가했다. 최근 개인전의 화두였던 <화난중일기> 연작의 신작과 더불어 대표작들을 출품한다. 보관의 어려움으로 방치되어 파손된 작품들을 그대로 전시하여 제시함으로써, 시간의 경과와 그에 따른 상황의 괴리를 전시한다.
출품예정작 : 잘 키운 딸 열 아들 안 부럽다 | 혼합재료 | 290 290cm | 1992
출품예정작 : 회갑여행 | 캔버스에 유채 | 16 22cm | 2000

박 경 주|Park, Kyong Ju (1968 - )
홍익대 판화과 졸업 후 독일 브라운슈바익 예술대학교(석사과정)와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유학한 뒤 올해 귀국,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주제로 사진과 영상 등의 매체로 작업 중이다. 'Connected'(1999년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미술관), '젊은 모색 2000 - 새로운 세기를 향하여'(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기획전과 함께 최근 개인전 'Working Holiday'(2001년 문예진흥원 인사미술공간)를 가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 한국, 독일과 한국의 이주노동자 사진 작업과 함께 전화기를 이용해 고국의 가족과 통화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음성을 들려주는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출품예정작 : 잠(Sleep) | 비디오스틸 | 7분 | 1994(2001년 재편집)
출품예정작 : 이주노동자(Migrant Workers) | 시바크롬인화 | 40 50cm | 1999

박 은 태|Park, Eun Tae (1961 - )
전남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지역에서 <노동미술위원회>를 꾸리며 걸개그림 등의 현장미술활동을 했다. 2000년 서울역 문화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해방 50주년 기념 역사미술전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1995년 예술의 전당), '동북아와 제3세계 미술전'(1999년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1996년 이후 노동자, 노숙자, 배달원 등 소외 받는 계층을 주제로 페인팅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출품예정작 : 창원공단에서 2 | 장지 위에 아크릴릭 |196 153cm | 1994
출품예정작 : 엄마 기다리는 아이 | 장지 위에 아크릴릭 | 60 150cm | 2001

방 정 아|Bang, Jeong A (1968 - )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부산에 정착해서 가정과 여성의 삶과 일상을 작가의 현장으로 작업하고 있다. 3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민중미술 15년전'(1994년 국립현대미술관),'가족전'(2001년 서울시립미술관)등의 기획전에 참가했다. 1990년대 초반의 페인팅 작품과 함께 최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지점토 위에 채색한 입체 설치작업 등을 선보인다.
출품예정작 : 바다 끝에 선 여인들 | 캔버스에 유채 | 130.3 162.1cm | 1993
출품예정작 : 동심초 | 지점토에 채색 | 높이 30cm(부분) | 2001

배 영 환|Bae, Young Hwan (1967 - )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유행가 연작 작업 등의 작업을 하고 있으며 2001년 노숙자 수첩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유행가 연작 중 철조 용접으로 가사를 새긴 작품과 더불어 노숙자수첩을 자료보고전 형식으로 제시하며, 광주 금남로 거리의 보도 블럭을 채취해 민중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새긴 설치 작업을 서울에서 처음으로 전시할 예정이다.
출품예정작 : 젊은 미소 | 캔버스에 아크릴릭 | 116.8 91cm | 1996
출품예정작 : 노숙자 수첩 | 부분 이미지 편집 | 2000

이 중 재|Rhie, Joong Jae (1966 - )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시각이미지생산자그룹 '푸른 사람들'을 결성해 활동해 왔다. '98 젊은 모색 전'(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후쿠오카 트리엔날레'(1999년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가했으며, 자신의 현장성을 '시대미술'이란 주제로 설명하며 웹 아트와 더불어 설치와 영상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로 사용된 정태춘의 노래 <건너간다>를 뮤직 비디오로 제작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의 작업을 비디오 영상으로 제시한다.
출품예정작 : 메이드 인 캐피탈| 동영상 설치 | 1996
출품예정작 : 보이지 않는 위험 | 에피소드 #58 | 동영상과 행위 | 1999

최 병 수|Choi, Byung Soo (1960 - )
1980년대 대형 걸개그림 작업으로 출발한 최병수는 환경운동연합에서 걸개-설치 작업으로 환경운동과 현장성을 매개하며 전북 부안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쓰레기들'전시(1992년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 '펭귄이 녹고 있다'(1997년 일본 교토 제3차 세계환경회의) 등 현장미술가로서 항상 이슈가 되는 현장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 1980년대 이후의 대표적인 판화 작품과 근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보고전 형식의 사진들을 제시한다. 또한 성곡미술관 별관 옥상 공간에 갯벌관련 솟대들을 설치한다. 개막일에는 얼음조각 퍼포먼스인 <펭귄이 녹고있다>를 연출한다.
출품예정작 : 반전반핵도 | 천에 아크릴릭 | 880 610cm |1988
출품예정작 : 하늘마음 자연마음 | 새만금 갯벌에 솟대 설치 | 2000

최 평 곤|Choi, Pyoung Gon (1957 - )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당진에서 작업하고 있다. 당진참여연대 회장으로서 조직적인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지역에서 뿌리깊은 진보운동을 펼치는 있는 그는 미래적 인간의 삶에 관한 구도적인 메시지를 담은 거대한 인체 조형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나무로 엮은 8미터의 거인 입체 작업과 실내 공간에 맞는 인체 설치조각을 출품한다.
출품예정작 : 충남 당진 왜목에서의 설치 장면 | 1999
출품예정작 : <월인천강지곡>(2000)의 일환으로 국립극장에 설치한 대나무 인간
2005/01/30 18:22 2005/01/30 18:22

아웃사이더를 둘러싼 이야기들 : 초기 단상 010630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0 18:22


아웃사이더... 처음엔 이런 고민을 했었습니다.
김준기 / 2001-06-30 오후 4:41:05

작년에 성곡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기로 결정하고 난 후, 이런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아웃사이더...

아웃사이더를 둘러싼 이야기들
1) 아웃사이더를 둘러싼 세 가지 틀

▶ 미술대학과 아웃사이더
아웃사이더는 인사이더의 상대개념이다. 우리 미술계를 형성하고 있는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 중 가장 유력한 금긋기의 기준은 학벌이다. 미술 행위를 하는 것의 전제 조건이 미술대학 졸업장에 있다는 것은 거의 불문율에 가깝다.

▶ 지역과 아웃사이더
아웃사이더의 개념은 서울과 서울 이외의 지역이라는 구도로 형성되어 이른바 중앙과 지방이라는 차별적 구도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의 정보력과 권력친화적인 인맥형성은 상대적으로 문화적 인프라가 약한 서울이외의 지역을 근거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차별하고 소외시키고 있다.

▶ 진영테제와 아웃사이더
이데올로기적 차별 또한 미술계를 옥죄는 또하나의 차별적 구도를 양산해왔다. 이른바 모더니즘 계열과 민중미술 계열이라는 다분히 자의적이며 범주오류에 기반한 대립구도는 90년대를 지나면서 모호한 진영테제로 잔존해왔다. 용도폐기된 진영 개념이 해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잔치 이면에는 아웃사이더들이 존재한다.

2) 학연과 지연, 그리고 진영을 넘어서

▶ 교육과 지역 그리고 진영에 의한 차별적 구도를 넘어서
이 전시의 주제는 아웃사이더의 제도교육과 지역성과 진영으로 인한 차별과 소외 가운데서도 자기중심을 바로 세우고 자기 작업에 매진해온 작가 3인을 통해 학력과 지역차별의 허구를 드러내고 제도교육과 지역차별에 의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데로 모아진다.

▶ 3인의 아웃사이더 옴니버스
아웃사이더로 지목된 이들은 미술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청년시절부터 일관되게 미술의 길을 걸어왔다. 서울이라는 권력지향적인 공간을 버리고 자연친화적인 작업 공간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진영의 해소 이후 나름대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의 근작을 중심으로 한 옴니버스식 기획전은 제도교육과 지역과 진영에 의해 조장된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될 것이다.
2005/01/30 18:22 2005/01/30 18:22

건너간다 (정태춘) 가사 전문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0 18:20


건너간다

강물 위로 노을만 잿빛 연무 너머로 번지고
노을 속으로 시내버스가 그 긴 긴 다리 위
아, 흐르지 않는 강을 건너 아, 지루하게 불안하게
여인들과 노인과 말 없는 사내들
그들을 모두 태우고 건넌다

아무도 서로 쳐다보지 않고, 그저 창 밖만 바라볼 뿐
흔들리는 대로 눈 감고 라디오 소리에도 귀 막고
아, 검은 물결 강을 건너 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
깊은 잠에 빠진 제복의 아이들 그들도 태우고 건넌다

다음 정거장은 어디오 이 버스는 지금 어디로 가오
저 무너지는 교각들 하나 둘 건너 천박한 한 시대를 지나간다
명랑한 노랫소리 귀에 아직 가물거리오
컬러 신문지들이 눈에 아직 어른거리오
국산 자동차들이 앞뒤로 꼬리를 물고
아, 노쇠한 한강을 건너간다

휘청거리는 사람들 가득 태우고
아 고단한 세기를 지나간다
2005/01/30 18:20 2005/01/30 18:20

보도의뢰서 및 언론보도 현황 010718/ 010827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0 18:19


■ 건너간다 보도자료 7.18 버전 / 김준기 / 2001-07-18 오후 2:02:55
건·너·간·다

발 신 : 김준기(011-9500-9000/artpd@ganaart.com)
수 신 : 미술담당 기자님
제 목 : <현장 2001 : 건너간다>展 보도의뢰
* 안녕하십니까? 김준기입니다. 올여름 성곡미술관에서 외부기획전으로 <현장 2001 : 건너간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1. 개요
주 최 : 성곡미술관
주 관 : Art Forum 十月
기 획 : 김준기
진 행 : 전혜정
전시 명칭 : 현장 2001; 건너간다
전시 분야 : 평면, 입체, 영상
전시 기간 : 2001.08.17(금) ~ 08.31(금)
전시 장소 : 성곡미술관 별관
참여 작가 : 구본주, 김태헌, 박경주, 박은태, 방정아, 배영환, 이중재, 최병수, 최평곤

1. 기획 의도
이행(移行)의 시대다. 지난 한 시절 우리는 변혁의 시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지금 처절하게 개별화된 주체로 거스를 수 없어 보이는 이행을 지켜보아야 하는 시대이다. 선택의 문제만이 남은 것인가?
▶ 편집에서 분열로 : 대안 부재의 시대
80년대 보혁구도의 성과가 90년대를 지내오면서, 어떻게 파편화 개별화 되었는가에 관해 모두들 침묵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지난 세기 70-80-90년대의 각기 다른 흐름 속에서 최소한 극단적인 파시즘을 일정정도 극복해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온통 분열의 세상이다. 편집증에서 정신분열로의 전환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계에서도 당대 현장의 문제에 눈감고 귀멀어 지내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지내왔던 70년대 전근대적 상황이 조금씩 재현되고 있다. 탈정치화,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의 주류 담론에 맞게 너도나도 유행처럼 유목하고 있다. 그 유목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의 양치기 마인드는 민중 또는 을 양떼로 인식하고 있는지, 그들을 몰고 어디로 떠날 것인지에 관해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글로벌리즘이 전세계를 무섭게 옥죄어 오는 이 시대에 말이다.
▶ 다시 현장에서
현장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장(Field)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80년대 민중미술 이후 명확한 대립지점 없이 진공상태를 이어왔지만 90년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현장성을 견지하며 시각이미지의 생산을 이어가는 작가들이 있다. 이 전시는 한국 미술계가 현장과의 만남을 통해 구심점 없는 현 상황의 돌파구를 열어 나갈 단초를 찾고 그 가능성을 전망해보는 자리이다.
▶ 현장과 작가의 삶
<현장 2001; 건너간다>는 1980년대라는 시대를 거쳐오며 여전히 현장과 미술의 팽팽한 긴장과 조우를 갈망하는 젊은 작가들의 지난 길들을 돌아보며 앞을 바라보는, 그 만남의 장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 전시는 작가가 생활인으로서의 현장과 작가로서의 현장을 일치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것을 묻고 있다. 사회적 재화와 용역의 직접적인 생산을 면제 받은 존재로서의 작가의 삶은 이중적인 구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경우 이러한 이중적인 구조를 떠 안으면서 일정부분 생활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까지도 유보하곤 하지만, 작가는 작가로서의 정치적 생명을 구축하고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나름의 전략적 지점들을 설정하고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도 삶의 현장을 작업 현장에 맞추거나, 아니면 삶의 현장을 작업 현장으로 적절하게 전환하면서 지속적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다 삶 속에 배어있는 진정성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
▶ 제도권 미술과 현장미술
이 전시가 주목하고자 하는 현장성이란 작가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주의적 감각으로 현장에 대해 발언하고 개입해 들어가는 작업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것은 대다수의 작가가 여러 가지 미술 제도를 중심으로 삶의 형태를 조절하는 것과는 일정정도 차별을 이룬다. 이러한 작업들이 미술관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제도화된 오늘날의 미술계의 흐름에 있어 독특한 방식의 하나로 평가 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에 <현장 2001; 건너간다>의 전시에 큰 의의를 두고자 한다.
현장성을 전제로 하는 현장미술이 제도권 미술의 상징인 미술관에 들어간다는 점은 일종의 아이러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각이미지의 여러 편린들을 열어보이는 미술관에서 그곳을 찾는 관람객들과 현장미술의 새로운 조우를 제시하며, 동시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전시의 바람이다.
▶ 작가 재발굴 또는 작가 제몫 찾아주기
이 전시는 작가 재발굴 작업에 그 의미의 한 축을 두고 있기도 하다. 연령이 적고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작가들만이 작가발굴의 대상이 아니다. 현장에 파묻혀 지내는 작가들의 현장성에 주목해 다시 본다는 점에서 재발굴이라는 개념을 붙인다. 물론 이 전시의 참여작가들도 미술관과 갤러리를 기웃거리며 전시를 해온 작가들이다. 하지만 제도권 공간은 이들에게 재현이니, 하위문화니, 환경미술이니 하는 애매한 개념과 분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들을 현장미술가로 제몫을 찾아줄 필요가 있다.
▶ 전시 이름에 덧붙이는 말
첫 번째 현장展을 내년 이후에도 지속해 나갈 계획이므로 2001이라는 연도 표기를 넣어 <현장2001>이라 불렀음. "건너간다"라는 부제는 정태춘의 노래 제목을 따온 것임. 해질 무렵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 상황의 서정을 배경으로 90년대라는 환멸의 시대를 건너간다는 내용의 이 노래는 작가 이중재가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전시할 예정이기도 하다.
2. 전시 구성
▶ 모듬전
이 전시는 기본적으로 옴니버스형 모듬展이다.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은 자신들의 현장성을 그대로 고수하고, 기획자는 그 현장성의 양상을 선택하며 제시한다.
▶ 돌아보는 10여년
8-90년대 현장성 있는 구작과 근작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10여년 이라는 짧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참여작가들의 작품세계는 극 선명성이나 밀도가 많이 달라져 있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그리고 향후 미래로 건너가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이다.
▶ 전시장 구성
1층 : 구본주 배영환 이중재
2층 : 김태헌 박은태 방정아
3층 : 박경주 최병수 최평곤
정원 및 옥상 : 최병수 최평곤 대형 설치 작업
3. 출품작가 및 출품작
▶ 구본주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MBC구상조각전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포천에서 도시인, 특히 샐러리맨의 일상과 가족 등을 주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구본주의 학생시절인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대표작 가운데, 나무깍기, 쇠두드리기(단조기법) 등의 방법으로 만든 <6월>,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 등의 잘 알려진 작품과 더불어, 근년에 뜸했던 나무 작업 신작을 선보인다.
▶ 김태헌
경원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성남지역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개인전의 화두였던 <화난중일기> 연작의 신작과 더불어 구작을 출품하는데, 젊은 작가들의 일반적인 어려움 가운데 하나인 작품 파손의 상황을 그대로 전시한다. 보관의 어려움으로 방치되어 파손되는 작품을 제시함으로써, 짧지 않은 시간의 경과와 그에 따른 상황의 괴리를 드러낼 예정이다.
▶ 박경주
홍익대 판화과 졸업 후 독일 브라운슈바익 예술대학교(석사과정)와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유학한 뒤 올해 귀국, 현재 삼성작가 스튜디오에 있으며, 이주노동자를 주제로 다양한 매체로 작업 중이다. 전화기를 이용한 설치 작업을 준비중이며, 독일과 한국의 이주노동자 사진 및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 박은태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지역에서 <노동미술위원회>를 꾸리며 걸개그림 등의 현장미술활동을 했으며, 96년 이후 노동자, 노숙자 등을 주제로 페인팅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 방정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부산에 정착해서 가정과 여성의 삶 등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90년대 초반의 페인팅과 더불어 최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종이부조 입체작업을 설치 개념으로 선보인다.
▶ 배영환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유행가 연작 작업 등으로 작업하고 있으며 2001년 노숙자 수첩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유행가 연작 중 철조 용접으로 가사를 새긴 작품과 더불어 노숙자수첩을 자료보고전 형식으로 제시하며, 광주 금람로 거리의 보도블럭을 채취해 <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새긴 설치 작업을 서울에서 처음으로 전시할 예정이다.
▶ 이중재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시각이미지생산자그룹 푸른 사람들 활동을 했으며, 시대미술이란 주제로 설치와 영상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정태춘의 노래 <건너간다>를 뮤직 비디오로 만들 예정이며, 90년대 이후 작업을 비디오 영상으로 제시한다.
▶ 최병수
걸개그림 작업으로 출발한 그는 환경운동연합에서 걸개-설치 작업을 하다가 환경운동과 현장성을 매개하며 전북 부안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80년대 이후의 대표적인 판화 작품과 근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보고전 형식의 사진들을 제시한다. 또한 성곡미술관 별관 옥상 공간 가득히 근년에 작업했던 갯벌관련 솟대들을 설치할 예정이다.
▶ 최평곤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당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당진참여연대 회장으로 일할 정도로 지역에서 뿌리깊은 진보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그는 미래적 인간의 삶에 관한 구도적인 메시지를 담아 대나무를 엮어 거대한 인체 조형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8미터의 거인 입체 작업과 실내 공간에 맞는 인체 설치조각을 출품할 예정이다.

4. 부대행사
▶ 개막 공연
출연 : 정태춘, 장사익, 연영석, 천지인 가운데 2개팀 이상 섭외 예정.
장소 : 성곡미술관 별관 전시장
▶ 개막 뒷풀이
제목 : 30대 파티
장소 : 홍대앞 클럽 <왕파리>
일시 : 8.17.금 저녁 9시-
▶ 심포지엄
제목 : 현장미술과 한국 리얼리즘 미술(가제)
장소 : 성곡미술관 세미나실
일시 : 8.23.목(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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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현황

8월 27일 현재 상황

오프닝 전후로 해서 나간 신문의 기사 보도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경제 2001년 8월 13일 월요일
일간 스포츠 2001년 8월 14일 화요일
경향신문 2001년 8월 14일 화요일
대한매일 2001년 8월 14일 화요일
세계일보 2001년 8월 14일 화요일
한국일보 2001년 8월 16일 목요일
조선일보 2001년 8월 16일 목요일
한겨레 2001년 8월 16일 목요일
서울경제 2001년 8월 16일 목요일
문화일보 2001년 8월 17일 금요일
내외경제 2001년 8월 17일 금요일
중앙일보 2001년 8월 21일 화요일
스포츠 서울 2001년 8월 18일 토요일
국민일보 2001년 8월 17일 금요일
동아일보 2001년 8월 22일 수요일

TV 방송으로는 KBS(8/23), MBC(8/23)의 아침뉴스와
EBS(8/22)의 저녁뉴스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라디오 방송으로는 KBS 제1라디오 이장호의 문화읽기(8/23)에 소개되었습니다.
2005/01/30 18:19 2005/01/30 18:19

전복을 꿈꾸는 자들의 저항을 생각한다 : 미술세계 기고문 010923

project/건너간다 0108 | 2005/01/30 18:10


기획자가 말하는 전시 : 건너간다전복을 꿈꾸는 자들의 저항을 생각한다

김준기 / 가나아트컨설팅 공공미술기획자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현장2001:건너간다>의 기획의도와 글쓰기 방식에 관해 비판하는 글이 있었다. 게시판에 퍼옮겨진 전시서문 <현장을 안고 시대의 강을 건너간다> 밑에 붙은 리플이었다. '답답해서'라는 이름의 익명의 필자는 현장성이라는 개념, 90년대에 대한 시각, 전시기획자의 글쓰기 등 몇 가지 사안에 대해 나름의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요즘 기획자들이 뜬구름잡는 소리만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명쾌하고 직설적으로 자기얘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약간 칭찬하면서도 괄호를 열어서 '그렇다고 논리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비꼬아대는 얄미운 글이었다. 바쁜 일정에 미쳐 답글을 올리지 못한 채 며칠이 흐른 후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글은 삭제되어 있었다.

그 '답답한 사람'은 80년대에 대해 체험적인 이해가 있는 사람인 듯했다. 현장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사용한 '활가(활동가의 준말)'라는 단어가 대표적으로 그의 문투와 정서를 짐작하게 했다. 그가 생각하는 현장은 80년대 냉엄한 현실에서의 현장이었다. 물론 각 계열의 부문운동이 자생성을 키워낸 지금은 현장활동의 이유와 방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90년대 초까지는 주변의 선후배들이 학교를 버리고 노동현장으로 투신하는 일이 있었다. 그들에게 현장은 활동가의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투신하는 특정 공간이었다.
현장이라는 말을 전시 제목으로 확정할 즈음, 참여작가들과의 댓거리 자리에서도 현장에 대한 각각의 시각들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 새삼 확인됐다. 무거운 제목에 눌려 부담을 느끼는 작가도 있었고, 포괄적인 의미에서 현장을 해석하자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결국 현장미술이라는 개념으로 작가 9인의 90년대 작품들을 모아서 전시를 열고 나니, 남는 문제는 현장미술이 무엇이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전시이름으로 쓰고 있는 현장은 보다 일반적인 삶의 현장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사상의식과 생활정서가 분리되지 않는 '작가의 자아 공간'을 포함해서, 그 반대의 경우를 전제로 하는 '의식적이며 정치적인 작품 세계'까지를 포괄하려는 의도였다. 현장미술이라는 개념은 80년대 민중미술의 여러 존재양식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에 대한 각성을 표출하는 방식 혹은 장소성의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얘기하는 현장미술은 최병수의 '새만금'에서 방정아의 '가정'까지 그 영역을 열어놓고 있다. 억지로 말을 만들지면, '자신이 발딛고 사는 단위, 지역, 영역, 지형 등 유형-무형의 장을 작업의 소재나 주제로 삼는 작품이나 경향' 정도일 것이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현장미술은 예상했던 바대로 현장에서 만날 때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각자 다른 매체와 방법을 구사하고 있어 일부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다. 몇몇 분들이 지적한 디스플레이의 산만함이 기획자의 오점으로 남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미술이 특정 이슈와 특정 장소(site specific)가 적확하게 만나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 이외에도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나름의 쓰임새가 있다는 생각을 확인했다. 현장미술이 미술행위와 결과가 이루어지는 장소의 범주로 국한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성을 획득한 시각이미지의 유통 방식의 하나로 미술관을 선택했을 뿐이다. 어짜피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전시를 통해 시민을 교육시킨다는 기능 외에 담론의 생산과 실현의 장이기도 하지 않은가. 나는 내심 '이런 작가들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다'고 미술계 선배들에게, 20대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30대 역할론과 386문화예술운동에 관해 간략히 첨언한다. 한국 현대사에서의 80년대는 전복을 염두에 둔 저항이 이성과 감성 지수의 절정에서 스파크를 일으켰던 시대다. 20대의 열정으로 그 시대를 함께 했던 386세대의 문화는 삶의 현장에 뿌리내린 잠재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가능태로 바꾸고 현재 진행형으로 번안하는 일이 30대 역할론의 핵심이다. 물론 문화예술운동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30대들이 80년대 시대정신을 당대의 화두로 새롭게 읽어내는 일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계 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영화 등의 전 영역에서 전복을 꿈꾸는 저항이라는 큰 들의 얼개를 만들어낼 시점이다. 세상이 뒤바뀔 수 있다는 꿈을 온몸으로 밀어붙혀 봤던 30대, 당대에 자신들의 희망을 조금씩이라도 가시적인 성과로 실현시켜 온 대안 세대, 전복을 꿈꾸는 자들의 아름다운 저항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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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현장미술은 '현장'이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그 힘을 더욱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장미술을 갤러리(미술관)에 전시함으로서 전시 본연의 의도인 현장성이 오히려 상실되었다고 보여진다. 공간에 대한 다른 대안은 없었나?

현장미술이 미술관에 들어오면 갑갑해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 실제로 최평곤과 최병수 등의 일부 작품들이 생동감을 잃어버린 경우도 눈에 띄었다. 이 점을 알면서도 전시를 기획한 건, 각자의 현장에서 따로따로 현장성을 지켜온 작가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고, 그들의 존재를 90년대 이후의 현장미술로 재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개별 작가들의 현장성을 한곳으로 모으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가진 미술의 집이었으므로 나름대로 유용한 공간이었다. 앞으로 장소로서의 현장성까지도 담아내는 현장미술 기획을 계속할 생각이다.

Q. 작가선정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다. 참여작가 9인의 선정기준은 무엇이었나?

특정 주제나 매체를 잣대로 한 전시가 아니라 다양한 작업방식과 고민들을 현장미술이라는 틀로 범주화하는 전시였기 때문에 작가선정이 만만치 않았다. 80년대말과 9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현장성을 담보해온 작가들 가운데, 90년대를 가로질러 온 80년대 학번의 30대 작가들을 선정기준으로 삼았다. 저변에는 진보와 연대라는 큰 흐름 아래 당대 현실의 문제를 다루어온 이들이 21세기 한국리얼리즘미술을 보다 풍부하게 열어나갈 작가들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특정 학교 출신의 선수급 현장미술가가 없다는 점 때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학교 안배 차원에서 작가 선정을 시도하는 구태의연한 고민을 오래하지는 않았다.

Q. 서문에서 ‘30대 역할론’을 제기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이미 386이라는 세대 담론이 바람을 일으켜왔다. 최영미, 공지영, 모레시계, 조선일보의 386기획연재, 젊은 피 수열론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하지만 386담론은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문화적 기호로 혹은 정치 세력화와는 거리가 먼 일부 명망가들의 호사로 끝날 얘깃거리는 아니다. 향후 수십년간 한국 사회를 이끌어나갈 힘의 원천은 386세대에게 있다. 파편화-개별화된 이들이 아름다운 저항이라는 화두로 세대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에 문화예술계 386일꾼들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Q. 미술전시에서 대중가요의 주제 혹은 제목을 따오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전시제목 <건너간다>에 대해 설명해달라.

<건너간다>는 첼로와 기타와 정태춘의 낮은음이 매력적인 노래 제목이다. 버스를 타고 노을지는 한강을 건너는 상황에 빗대어 통해 환멸스러운 90년대를 건너가는 세기말의 처절한 비감을 담은 수작이다. '현장2001'의 부제로 '건너간다'를 차용한 것은 90년대에 대한 정황인식과 그 시대를 건너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온 작업 양태들을 부각하기 위함이었다.

* 미술세계 2001년 9월호 기고문과 서면 인터뷰 텍스트입니다.
2005/01/30 18:10 2005/01/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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