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술관도 장사할 수 있다!!!???

artpd clip | 2005/02/11 18:50


이제 미술관도 장사할 수 있다!!!???

사설미술관/박물관들도 미술작품 거래알선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입니다. 미술관이 거래알선을 안/못하는 것이 과연 규제에 해당하는 내용인지 아닌지 기본 개념이 헛갈린 것!!!

세상이 참 어지럽게 돌아갑니다. 저로서도 얼른 판단해서 발언하기가 거시기해서 관련자 몇몇 분들과 상의를 해보았으나, 아무래도 이번 총리실의 판단은 미술관 제도에 관한 기본 상식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헐~

아래에 최열 샘이 무지 열받아가지고 써놓은 글들과 중앙일보 기사를 퍼옮깁니다.

이해 하기 어려운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한다고 난리법석이더니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문화관광부장관상 이 따위걸 만들고 앉아있네요.
어디 그 뿐입니까.
오늘은 사설미술관/박물관보고 장사도 하라네요.
상업행위와 무관한 것을 두고 '규제'라고 생각했는 모양입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앞으로
호암미술관도 기획전 하고 작품 팔고~
전통의 토탈미술관, 조각의 명가 모란미술관 모두 작품 중개행위를
하도록 장려해야겠습니다 그려.

제가 뭔가 시대의 흐름을 쫒아가지 못하는 건가요?
바르다고 믿었던 것들이 혹 틀린 건 아니었나
자꾸만 흔들리네요.

이제 사설미술관도 장사를 시작한다.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기획단은
사설 미술관/박물관에서 기획전 작품판매 행위를 하게끔 하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사립미술관/박물관이 장사를 하게 생겼네요.
학사님들께선
어찌 생각하시나요?
내 상식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데요~~
한 수 지도를 바랍니다.

기업이 500만원 이하짜리 살 땐 손비 처리 예술품 거래 규제 완화
게재일 : 2005년 02월 11일 [6면] 글자수 : 1226자
기고자 : 강갑생 기자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기업이 500만원 이하의 글씨나 그림·골동품을 사면 업무용 자산으로 인정돼 세금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마라토너' '내레이터 모델' 등 기존 방송광고에서 사용이 제한됐던 외래어·외국어도 쓸 수 있게 된다.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기획단은 10일 이 같은 내용의 '문화예술 관련 규제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박기종 규제개혁기획단장은 "통제 중심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문화시장 활성화 방안을 대거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예술품 거래 시장 활성화=기업이 서화나 골동품을 구입, 장식이나 환경미화용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업무용 자산으로 인정하던 것을 대폭 풀기로 했다.

100만원 이상 500만원 이하의 서화나 골동품을 살 경우 용도에 관계없이 업무용 자산으로 인정해준다. 기업의 손비(기업이 수익을 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로 처리돼 세금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500만원 정도면 유망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다"며 "미술시장 활성화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기업의 자산 운용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또 사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기획전시 등을 통해 미술품 등을 알선·중개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

이 같은 행위는 그동안 금지돼 왔다. 규제개혁기획단 장상진 과장은 "사설 미술관들은 작품을 구입해 전시만 할 뿐 이렇다할 수입이 없어 운영이 어렵다"며 "이익이 생겨도 미술관 운영에 사용되는 만큼 수입 창출 방안을 넓혀주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현실적 규제의 완화=그동안 방송광고에서 사용이 금지됐던 '마라토너''내레이터''안전벨트' 등 사용이 보편화된 외래어와 외국어는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또 영화·비디오물·통신물에 대한 중복 심의를 없애 한 번 심의를 받으면 같은 내용을 다른 매체물로 만들 경우 심의를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나 공공문화예술시설의 임대시 신인들에게 10∼30% 등 일정 비율을 배정하고 신인(발표 2회 이내, 활동 5년 이내) 전용 극장 및 전시장을 확충키로 했다. 전쟁영화 등에 사용되는 모의 총포류의 경우 경찰청이 허가하면 국내에서 제조와 임대가 가능토록 했다. 지금까지는 외국에서 빌려와야만 했다. 영화 '실미도'의 경우 1억5000만원을 들여 홍콩 등에서 빌려왔다.

강갑생 기자 kkskk@joongang.co.kr
2005/02/11 18:50 2005/02/11 18:50

"그 때 그 상 : 내가 죽도록 받고 싶은 대통령상" 작품 공모

artpd clip | 2005/02/11 16:55


그 때 그 상 : 내가 죽도록 받고 싶은 대통령상


설 연휴 잘들 보내셨는지요. 저는 이번 연휴 때 부산에서 서울까지 운전을 했습니다. 평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습니다만, 이번에는 형님한테서 얻은 백마를 끌고 올라오느라고...^^ 오랫만에 고속도로를 질주했습니다. 물론 막히는 구간에서는 처절하게 울면서 왔지만 말이죠. 서울에 왔습니다. 여기 서울은 다시 분주한 일상입니다. 오자 마자 이런 저런 일들...

이달 말에 열리는 전시 <그 때 그 상>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미술계에 아직도 구태와 악습을 반복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냥반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은데...

"이제 그만~"

아래의 전시 내용 보시는 분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전시추진의 동기 및 취지
최근 한국미술협회는 대한민국미술대전 개편안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개편안의 골자는 60~70년대 국전처럼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문화관광부장관상 등의 고위관직 시상제를 부활시켰다는 점입니다. 이유인즉슨, 최근 10여 년간 수상자 담합, 금전 뒷거래 등의 잇딴 비리로 위상이 땅에 떨어진 대전의 권위를 되찾는다는 명분입니다. 비구상과 구상, 공예, 서예, 문인화, 디자인 등 6개 부문별로 대상 1명과 우수상 4명, 특선자와 입선자를 뽑았던 방식을 옛 국전처럼 비구상(한국화·서양화·판화·조각), 서예, 문인화로 구성된 1부와 구상, 공예, 디자인 분야로 구성된 2부로 나눠 각각 대통령상 1명과 국무총리상 1명, 문화부장관상 2명, 문예진흥원장상 3명을 뽑겠다는 것입니다. 상금은 대상 1000만원, 우수상 300만원에서 대통령상 3000만원, 국무총리상 2000만원, 문화부 장관상 1000만원으로 올렸습니다. 또 지명공모제 형식의 평론가상을 도입해 별도로 최고상 1명과 우수상 3명을 시상하도록 하겠답니다. 문화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 14일 개편안 승인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우리는 부활한 대통령상을 '그 때 그 상'이라 칭하고 '내가 죽도록 받고 싶은 대통령상'이라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모두가 이 상을 얼마나 받고 싶어할까?" 라는 조소의 웃음을 마음에 품고 저들에게 익살의 화살을 던지는 전시를 꾸리고자 합니다.

전시작품
전시취지의 내용처럼 "조소의 웃음을 마음에 품고 저들에게 익살의 화살을 던지는"작품이면 어떤 작품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전시참여
위 내용과 취지에 공감하는 모든 미술인은 이 전시에 참여할 수 있으며, 출품작가 및 기획자, 관람객의 호응도에 따른 시상이 있을 예정입니다.

성명서 발표
시대를 역행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의 개편안에 대한 미술인의 행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전시기획
명예기획위원 - 이경성
기획위원 - 최태만, 최열, 최금수, 조은정, 라원식, 김종길, 김준기

전시공간 : 갤러리 세줄(평창동)
전시기간 : 2월28일(에서 10일)

연락처
김준기 : 011-9500-9000. artpd@freechal.com
김종길 : 010-9865-1255. mosesk@ggcf.or.kr

"권위 높인다” 총리·장관상 ‘감투’

분야 세분화 “출품료 장사” 눈총 비난의 화살은 81년 국전 폐지 뒤 민간단체 미협으로 이관된 미술대전에 옛 관전의 잔영을 다시 입혔다는 미협의 수구적 발상과 이를 묵인한 문화부, 문예진흥원쪽에도 쏠리고 있다. 미협쪽은 “600여 개의 민관 공모전이 대부분 미술대전과 같은 대상, 우수상 제도를 시행해 상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협회 사무국 관계자도 “어차피 문예진흥기금으로 상금 주는 반관반민적 성격인데, 관료직위를 빌린 시상제가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상당수 미술인들의 정서는 다르다. 김용태 민예총 부회장은 “고위관료직 시상제를 점차 폐지하는 정부 정책 방향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처사다. 문화부와 문예진흥원이 왜 이런 퇴행적 발상을 수용했는지 모르겠다”며 비판성명을 내겠다고 밝혔다. 다른 작가 ㅇ씨도 “프랑스 살롱전이나 일본 관전 등이 20세기 중반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왜 굳이 박정희 시대의 군사문화 망령을 꺼내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대통령과 미협의 권위 모두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혀를 찼다.
개편안의 모순은 또 있다. 미협은 구상, 비구상 2개 분야로 본상 시상범위를 줄이겠다는 방침과 달리 정작 6개 세부 분야별 특선, 입선작은 계속 따로 선정하고, 올해부터는 수채화 분야도 슬쩍 끼워넣었다. 결국 장르당 최대 2000건이 넘는 공모작들의 출품료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문예진흥원 미술대전평가위는 심층평가보고서를 통해 소수 정예 선발, 미협 적립금 10억원 재활용 등을 제안했으나 개편안에서는 자유공모·추천공모전 분리와 심사위원 일부의 외부인사 개방 등만 수용됐다. 문예진흥원쪽은 “대통령상 도입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미협쪽이 추진의사를 굽히지 않아 지명(추천)공모제를 도입하는 선에서 개편안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한편 미협쪽은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연합 창설 60돌 각국 대표작가 기념전을 앞두고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할 참여작가로 하 이사장을 외교부에 추천해 다시금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한겨레 신문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2005/02/11 16:55 2005/02/11 16:55

자본과 권력을 비껴가기 : 2002년

critic & column | 2005/02/07 00:50


2002년 봄 즈음에 월간미술에 기고했던 글이다. 네이버의 한 블로그에 올라있길래 여기 퍼옮긴다. 엮인 글로 올리려고 했더니, 네이버 로그인을 하라는데, 블로그라고 다 열려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자본과 권력을 비껴가기 - 김준기


가나아트갤러리에 출퇴근하는 사람한테 독립큐레이터 기획에 관해 한 꼭지를 쓰라고 연락한 이준희 기자는 지난해 여름 성곡미술관에서 열렸던 〈현장 2001:건너간다〉전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우선 그 얘기부터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386작가들이 1990년대를 가로질러 온 흔적을 보여 주겠다는 의도였는데, 여름 휴가를 몽땅 갖다 바친 그 여름의 전쟁을 마친 후, 두 가지 엇갈린 반응의 리뷰가 실렸다. 김모 큐레이터는 ‘퇴행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작품들은 좋으나 기획이 후지다’는 조로 은근슬쩍 현장전을 깠다. 철지난 유령들을 꺼내 놓은 기획자의 의도가 불순해 보인 모양이다. 박모 비평가는 사뭇 대견스럽다는 논조로 1980년대 현장미술의 기억을 현재형으로 번안하는 작업에 점수를 후하게 주면서, 9명의 참여작가 이외에 박재동, 전승일, 최정현, 노동자뉴스제작단, 김동원, 변영주, 박찬경 등의 이름을 보태 주었다. 좀더 포괄적인 개념 설정과 작가 선정이 가능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비판이었지만, 그저 그의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편견이라고 생각했다.

김모와 박모 두 필자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이모저모로 맞는 말들을 건네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늦깍이로 석사학위논문을 쓰면서였다. 1980년대 현장미술 이후 386작가들로 이어지는 한국의 리얼리즘 미술이 현장성과 공공성을 담아 낸 과정을 추적해 보고 싶었다. 이것저것 뒤져 보고 여러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이름을 새로 만났다. 서울 근교의 미술교사, 유력 일간지의 만평 화백, 출판동화계의 거장, 문화교육자, 화랑종사자, 귀농 미술가, 화실에 처박힌 전업 그림쟁이 등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그들을 만나면서 든 생각, 앎이 짧다는 것이었다. 지난 시절의 수많은 익명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소중한 역사의 대목 대목을 뭉뚱그려서 ‘80년대 민중미술’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곡절이 숨어있고, 그 이면에 숨겨진 상처가 너무 크다.

지난 시절의 회한과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면, 그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현재진행형으로 번안할 수만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을 해야겠는데, 문제는 재정과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는 월드컵을 맞아 깡패 글로벌리즘을 생각해 보는 현장전으로 〈로컬컵〉 기획서를 써서 문예진흥기금을 신청 했다가 떨어졌다. 사실 좀 막막하다. 미술관이든 갤러리든 어찌되었건 머슴살이하면서 돈 안 되는 전시, 기득권에 반하는 전시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타의 방법을 택해 보는 건데, 그마저 여의치 않다. 역시 자본과 권력의 시선을 비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일부 맞는 말이다. 지난 해 이맘때 즈음 《가나아트》 폐간 이후 가나아트갤러리 환경조형팀으로 자리를 옮긴 뒤 한 미술계 선배님이 안부를 물어오셨다. 환경조형팀으로 옮겼노라고 했더니, “문재가 썩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아, 문제요? 환경조형 바닥 문제 많긴 하죠.”, “아니, 그 문제 말고 문재(文才)…”, “아, 그거요? 아뇨, 전 그래도 많이 배우고 있는 걸요.”

기자질 하다가 건축물미술장식품 진행자로 자리를 바꾼 후배가 자칫 창의력 없거나, 투명성이 떨어져 보이는 바닥에서 일하는 게 안돼 보인 모양이다. 일 년이 지난 후 소속된 팀에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미술장식품이라는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을 두고 뻥튀기를 좀 한 셈이다. 이름이 뭐 중요한가. 중요한 건 창의력과 진정성, 뭐 이런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나름의 지향을 담을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한 일이다. 이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2000년 《가나아트》 봄호에 미술관과 화랑의 기획자를 구분해서 ‘갤러리스트’라는 말을 썼다가 심한 반박을 받은 적이 있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큰집 머슴들이, 화랑 큐레이터나 컨설턴트 또는 독립기획자들에 비해 비교적 큰소리치며 큐레이터라는 말을 자신의 직함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고 온당하기 짝이 없다. 이제는 ‘갤러리스트’, ‘컨설턴트’, ‘독립기획자’, ‘아트숍디렉터’, ‘아트매니저’, ‘아트마케터’ 등 작가를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 모두의 몫이 제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 다양한 분야의 일들이 제대로 미술계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가다 보면, 미술판 여러 일꾼들의 한층 더 창의적인 행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Gim Jun Gi

1968년 출생했다.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가나아트》 기자를 지냈으며〈동강별곡〉(가나아트센터, 1999), 〈현장2001:건너간다〉(성곡미술관, 2001)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현장2001:건너간다>전 전시광경 , 박경주(왼쪽)와 최평곤(오른쪽)의 작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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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saleszon.do
2005/02/07 00:50 2005/02/07 00:50

뮤지움토크 2 녹취록 : 김창겸, 박화영 + 고충환, 박동현

project/시각서사 0414 | 2005/02/06 22:53


작가 : 김창겸, 박화영
초청패널 : 미술평론가 고충환, 서울실험영화페스티벌 집행위원장 박동현
2005.1.22( 토) 오후3시, 사비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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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 전 시간에 이어 두 번째 뮤지움 토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먼저 김창겸 작가의 작품을 보고 박화영 작가의 작품을 보는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김창겸 : 안녕하세요. 김창겸입니다. 일단 설치작업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여기에 보시는 내러티브는 거울, 어항하고 꽃이고요, 이런 소품은 옛날다방에 항상 있는 그러한 소품이고요, 저기에 사람이 걸어와서 거울을 보게 되고 거울 앞에서 일련의 행위를 하다가 떠나가거든요. 근데 거기다 트릭을 만들었는데요. 거울에서 떠나면 그림자가 되요. 그림자가 돼서 나가죠. 그런 자체가 사실은 모순이 있어요. 우리가 거울을 떠난다고 해서 그림자가 되진 않거든요. 그렇지만 연속성으로 인해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요.
거울 안에서 보이는 공간은 옛날다방을 의미해요. 사실은 서울 변두리를 돌아다니면서 찍었던 실제 다방이고요. 이 공간자체가 과거 다방을 허물고 전시장을 만든 곳인데 그 공간의 이름 자체를 사루비아다방이라고 지었어요. 그리고 인테리어 자체도 완전히 바꾼 것이 아니에요.
거울 안에 보여 지는 이미지는 현재공간을 투사하지 못하고 과거이미지를 투사하고 있죠. 역시 그 이미지가 그림자에 의해 여러 번 바뀝니다. 물고기가 있다가 때에 따라서는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테이블보도 바뀌었다가하는데, 저기에서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어요.

김준기 : 지금 저 인물들은 찍을 때 거울을 보고 찍는 건가요? 아니면 카메라를 보고 찍는 건가요?

김창겸 : 카메라를 보고 찍은 거예요. 전체 제작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어요. 스튜디오에서 사람 인물들만 따로 찍고요. 또 거울만 따로 찍고요. 거울은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게 아니라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요. 그리고 꽃도 따로 찍고 어항도 따로 찍고 해서 전부다 합쳤어요. 그래서 총 40개의 레이어가 보여 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이에 그림자에 의해서 상황이 바뀌는 트릭을 볼 수 있어요.
사실은 이 작품은 <편지>보다 더 일찍 구상했어요. 그렇지만 기술적으로 해결하지 못해서 이 작품을 <편지> 다음에 만들게 되었어요. 사물들의 이미지가 바뀌고 고정된 이미지가 없는 것은 제가 현재 과거를 생각할 때 너무 많이 가치관이 바뀐 걸 의미해요. 고정되었던 사건이나 가치관들이 한 순간에 허물어지는 것에 대한 상징, 재현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엔 이렇게 석고이미지만 남게 됩니다.
다른 작품은 프로젝터가 천장에 설치된 작품이에요. 다방테이블이 있고, 주변에 소파가 4개가 있고요. 테이블위에 석고오브제도 있고 영상이 쏴지는 것입니다. 작품을 볼 땐 소파에 앉아서 볼 수 있고 주위에 서서 볼 수도 있고. 작품의 내용은 상투적인 겁니다. 옛날에는 다방에서 데이트를 했기 때문에 한 남자가 다방에서 기다리고 여자가 들어오고 커피를 마시고 좀 있다가 가고하는... 사실은 어떤 이미지들을 실제처럼 재현하는 거죠.
제가 사루비아다방이라는 작품의 구상을 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광화문에서 보냈는데 거기서 데자뷰를 경험했어요. 1980년대 이 자리에 있었는데 상황이 틀리다는 거죠. 현재는 월드컵을 응원하고 있는데 80년도에는 데모하다가 최루탄 때문에 쫓겨서 도망 다니던 기억들, 그리고 그런 다음에 제가 어디를 갔던가를 추적을 해보니 상징적인 다방이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광장에서 쫓겨났으니까 우리가 갈수 있었던 곳은 다방이었죠. 그때 제가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 때 갔던 곳은 학교가 아니라 다방이었다는 거죠. 다방에서 모든 걸 했어요. 거기서 공부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계획도 세우고.
이것도 역시 석고상을 놓고 그 앞에 다방 소파를 일렬로 두 줄 정도 놓고 소파에 앉아서 작품을 보게 되는데요. 저기에 보이는 그림자들은 한 사람의 이미지가 여러 그림자들로 된 것인데,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저게 내 옆 사람의 그림자인지 나의 그림자인지 착각하게 되는 효과가 있어요. 사실 이 권투이미지는 1977년 홍수환씨가 헥토르 카라스키야하고 권투를 해서 신화를 만들면서 이겼을 때의 그 필름이거든요. 옛날에는 다방에서 권투경기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오늘 날엔 축구응원을 위해 광장으로 나갔다는 것, 그러면서 사실상 너무 차이가 났고요. 그 의미가 틀려지는 거죠. 옛날 다방은 우리에게 광장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사루비아다방이라는 주제를 끌어들인 거예요. 설치작업은 보시는 바와 같이 이렇게 했고요.
이와 관련하여 다큐멘터리 작업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사람이 참여를 해 주셨는데요, 다방이라는 문화를 생각할 때 빠질 수 없었던 기억으로 홍수환씨가 카라스키야를 이겼던 부분이 나오고요. 1980년대 이야기도 나오고요. 여기까지입니다.

박화영 : 소위 지금은 저를 비디오작가라고 명명을 해 주시는데, 개인적으로는 비디오작가라고 생각을 하진 않고요. 비디오 작가라고 불리어도 별 상관은 없는 것 같아요. 초기작업의 경우는 몇 가지만 살짝 보여 드릴게요.
이 작업 같은 경우는 비디오작업은 아니고 어떻게 보면 하나의 Room Installation작업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육면체의 공간 안에 관객들이 그 공간에 들어와서 액터가 되는 거예요. 어떤 측면에서는 극적인 작업이에요, 씨어터적인 작업이고. 조각품이나 그림처럼 어떤 대상을 보러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요. 지금 바닥에는 화면이 안 좋아서 잘 안보이시겠지만, 비닐 겹겹 사이에 물컹물컹한 덩어리들이 들어있어요. 이 작품의 메인작업은 밟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연출을 할 때 이 육면체의 공간이 마치 내가 내 신체 내부에 들어와서 내 육체 안을 헤엄치고 다니는 듯한 명상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런 바닥에 물컹물컹한 환경이라는지, 사운드에선 의학박사가 심장병에 대해 강의하는 차가운 소리라든지, 어떤 신체내부의 액체나 심장소리가 들리죠. 여러 가지 소리가 섞여서 하나의 분위기로서의 환경을 만들었던 작업이에요. 중간 중간에 사람들의 인터뷰 나오는 것들은 그냥 보러갔던 관객들이에요, 배우는 아니고요. 그래서인지 이런 작업은 다큐멘트하기 힘들더라고요. 하나의 대상을 찍을 것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다큐멘트를 할 때 인터뷰에 응하고 싶은 경우 관객들이 이 공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었어요. 이 친구 같은 경우에는 병원에 일자리를 구하러 갔을 때 써늘했었던, 지하실에 갔을 때의 써늘한 느낌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던 것 같아요,
이것 역시 맛보기로 조금만 보여 드릴게요. 이것도 또 하나의 Room Installation개념의 작업으로 오래된 작업이고요. 갤러리 스페이스 안에서 모니터들이 사방의 벽들을 보고 있는 것이에요. 모니터가 깜빡이는 페이스가 하나의 맥박이 뛰는 것처럼 연출된 것이고 제목은 Pulse room입니다. 박동집이라는 작업이고, 이것 또한 <인큐베이터>만큼은 아니지만 관객이 하나의 씨어터적인 공간에 들어와서 체험할 수 있는 작업이고요.
이것은 <뜨거운 심장>이라는 설치작업인데요. 동판을 두드려 만든 실제크기의 심장조각이고요, 밑에 열판이 있어서 위에서 나오는 액체가 증발을 하는 소리에요. 그래서 어떤 저항의 연속 자체가 박동이 될 수 있도록 기획한 작품이고요.
다음은 <비상>이라는 영상설치작업이에요. 밑에 프로젝션 부분을 보여드리고 있는데 이것은 16mm필름 에니메이션 작업이에요. 촬영한 데이터가 아니라 실제로 투명한 16mm필름리더에다가 한 프레임에 깃털 하나씩 실제로 붙인 거예요. 그러니까 영화 같은 경우에 1초에 24개의 프레임이 지나가니까 1초당 실제 24개의 깃털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고요, 2대의 16mm프로젝터에 의해서 투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1cm도 안되는 작은 깃털들이 모여져서 ‘발악’을 하는 듯한 커다란 날갯짓이 될 수 있도록 필름부분을 작업한 것이고요. 바닥에는 닭털, 오리털 같은 깃털들이 떨어져 있는데, 이것 또한 관객들이 공간에 들어와서 명상을 하거나 걸어 다니거나 놀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리고 발목 높이에다가 붉은 색 레이더망을 처 놓았어요. 그냥 있으면 안 보이는데 사람들이 걸어 다니거나 깃털들을 가지고 놀거나 그러면 깃털들이 붉게 물들었다가 바닥에 떨어질 수 있도록 만든 작업입니다.
이 작업 같은 경우는 ‘Daily Kleenex Documentation’ 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 작업이 제작비가 가장 적게 든 작업이었어요. 여성분들 아시겠지만, 화장지울 때 얼굴에 콜드크림을 바르고 그것을 하루에 하나씩 크리넥스 티슈에 찍어낸 게 다에요. 말하자면 그것이 하나의 일기일 수도 있는 거고 하루에 대한 도큐멘테이션 일수도 있는 거죠. 굳이 말하자면 판화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얼굴이 판화 의 판, 화장품이 잉크, 콜드크림이 미디엄, 휴지가 판화지 인거죠. 그리고 손으로 누르는 게 프레스인 셈이고요.
일련의 지금까지 보여드렸던 설치작업들은 대체로 어떤 신체라든지 생명이라든지 그런 단서에서 시작된 작업들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대체로 사용하는 오브제나 대상들이 굉장히 하찮고 쓸모없고 어떤 대상으로도 안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97년도에 귀국하면서 금호미술관에서 귀국 보고전을 했었는데 그때의 설치 장면이에요. 대체로 그런 하찮은 것들을 매개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업들이 많아요. 다른 쪽 방에선 아까 보셨던 필름 작업이 보여 지고 있었고요.
이것은 Flush Opera 작업이고요. 이것은 P.S.1 Studio Program을 할 때 그냥 메인전시 말고 제가 자발적으로 재미삼아 한 프로젝트에요. 거기 있는 화장실이 남여 같이 쓰는 건데, 실제 사용 중인 화장실이고 볼일을 보러 오는 유저들이 오페라배우들인 거겠죠. 좌변기에 앉으면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게끔 되어 있고요. 사운드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있게 되니까 영어도 악센트가 되게 다양하잖아요. 한국사람 악센트 또 틀리고, 중국사람, 히스패닉, 러시안 또 틀리고요.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람들이 ‘물 내리다’할 때 FLUSH를 말하는 거예요, 각양각색의 목소리로 그 단어를 녹음을 하고 다녔어요. 그래서 FLUSH라는 음소들을 가지고 믹싱한 사운드가 이 공간에 테마음악처럼 나오고 있고요. 사람들이 여기서 볼일을 만드는 것이 작품이라면 작품이겠죠. 이게 파이프를 타고 가면서 사람들끼리 섞이는 그런 것들을 상상했었던 작업이에요.
다음은 비디오작업위주로 보여드릴게요. 처음 보실 작품은 한국제목으로 <소리>라는 작업이고요. 제가 귀국한 다음에 제 비디오작업 중에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봤었던 작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어떤 공중파에서 상영이 되기도 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봤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은 미술관의 상영관에서나 단편영화제 같은 곳에서도 상영되었던 작업이고요. 이 작업은 제가 귀국해서 마땅히 지낼 때가 없어서 부모님 집에 얹혀 살 동안 제작한 것입니다.
대체로 제가 작업하는 것들은 처음부터 어떤 아웃라인을 세워놓고 작업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실제로 저 집 없는 강아지로 작업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보이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안보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1년 동안 저 개를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그 때 제가 노트에 적었었던 단상들이라든지, 아니면 스냅사진, 일기에 적었던 자료들이 모아지니까 이거를 하나의 비디오 데이터로 세미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랴부랴 1년이 지난 다음에 그것을 엮어서 <소리>라는 작업을 만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떠돌이 개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냐고 많이 얘기하시지만 형식은 굉장히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리고 있고요, 사진 찍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사진들 같지만, 저건 동물의 왕국 찍기보다 더 어려워요. 동물의 왕국은 빵빵한 망원렌즈로 당겨서 찍으면 되지만, 저 자식은 얼마나 빠른지 아파트사이로 픽하고 가버리면 한 장 찍으면 ‘땡큐’인 거예요.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못 찍는 날도 굉장히 많았어요. 한 6개월 지난 다음부터는 이걸 작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데이터가 더 필요해서 길바닥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 보이는 날도 많고 그랬었으니까요. 요지는 집 없는 개에 대한 정통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결국에는 저 녀석에게 투영된 저 나름대로의 어떤 자화상들을 봤었기 때문에 어떤 유대감들이 생기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언어에 대한 프로젝트인 것 같아요. 저희가 한국어라는 공통어를 구사하지만 여러분들이 다 느끼다시피 같은 언어를 구사하지는 않잖아요. 제가 어떤 A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더라도 각자의 A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하지, 절정의 소통을 이룰 수는 없는 것에 대한 좌절이 아닌, 그것에 향하고자 하는 의지의 연속이 작품의 주제가 될 것 같아요. 이 작업만이 아니라 어쩌면 여기서 상영되고 있는 작업도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작업의 전체적인 것을 보면 극복할 수 없는 언어에 대한 의지의 연속들이 메인 스트림으로 계속 나타나는 것 같고요. 근데 그런 것들이 결국은 저희가 갖고 있는 신체가 개체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샴쌍둥이였으면 이만큼 소통에 대한 갈망들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 사람이 배가 아프다고 얘기한다면, 내 경험에 의해서 배가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 그 사람의 통증을 그대로 느낄 수 없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얼마나 소통이 어려운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 같아요. 여기선 ‘개’라는 엄연히 같은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개체와 또 ‘나’라는 개체의 교감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작업이 기니까 여기서 끊도록 하죠.
다음, 금강산여행 처음 개시되었을 때 일민미술관에서 몽유금강전이라는 전시 때문에 작가들을 데리고 금강산여행을 갔어요. 그때 유람선 태워준다고 해서 냉큼 갔었어요. 유람선이 별로 좋지는 않더라고요. 아무튼 그래서 그 짧은 여행에서 비롯된 세미다큐멘터리적인 작업이고요. 이것도 역시 다큐멘터리 같은 형식을 갖고 있지만 결국엔 다큐멘터리이기 보다도 분단된 나라와 분단된 자아와의 간극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보여줬던 작업이에요. 저기 마주보고 있는 둘 다 결국 저거든요. 제가 저랑 얘기 중 인거에요. 결국 혼잣말인데 마치 한 사람은 자기가 금강산간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얘기를 들으면서 둘이 싸우는 거예요. 그것이 어떤 분단에 대한 하나의 비유이기도 한 것이고요.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죠. 이번의 작업은 라는 비디오시리즈에서 나온 것 중에 한 토막이에요. 제가 2000년쯤에 싱가포르의 Theatreworks라는 실험극단과 같이 공동작업으로 작업을 했었어요. 궁극적으론 'Destimona'라는 멀티미디어공연의 비디오작가와 퍼포머로 참여를 했었는데요. 거기 한 부분으로서 Desti mona로, 사실 Destimona가 오델로 부인이름이잖아요. 'mona'라는 애칭을 가지고 나와서 현대여성의 스테레오타입에 의해 비틀어진 이야기를 짧은 에피소드로 대여섯 개쯤 만들었어요. 그것을 귀국 후에 신세계미술관에서 mona시리즈만 엮어서 멀티채널작업으로 보였었어요. 지금 이 '모나 이민국에 가다'같은 경우는 프로젝터 때문에 싱가포르에 한달정도 체류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아마 여러분도 다른 나라를 통과할 때 느끼셨겠지만, 공항통과하기가 아주 기분 더러운 경우가 많잖아요. 특히 여성 같은 경우 더 그렇거든요. 여성이 다른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고, 또 미혼여성이라 한다면, 마치 여기 와서 애를 놓고 눌러앉을 사람인 양 쳐다보는 듯 하는 거요.
저 같은 경우 사실은 싱가포르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로서 초대를 받아서 작가로 가 있었는데, 어느 날 직원이 오더니 여자가 싱가포르에서 한 달 이상 머무르려면 인터뷰를 하러 가야 한대요. 근데 제가 당시 공연준비 때문에 너무 바빠서 못 간다고 그랬더니 특별히 하나의 서류에 사인하라고 들고 왔었어요. 근데 그 서류가 뭐냐면, 실제로 내가 임신하지 않았음을 선언하는 각서를 써야했어요. 정말 살다 살다 별 각서를 다 봤죠. 임신하지 않았음을 서류로서 증명을 해야 하는지... 그 때 정말 바쁘지 않았으면 객기 어리게 무슨 해프닝을 벌였을 테지만 일단 너무 바빠서 사인을 하긴 했어요. 일단 그 에피소드에서 출발에서 방금 보셨던 에피소드가 ‘내가 임신하지 않았다, i'm not pregnant’ 라고 선언하는 것뿐 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것들, ‘나는 톡 쏘는 성격이 아닌 것을 선언합니다’라든지...그래서 pregnant와 운율적으로 비슷한 단어들을 이용해서 말도 안 되는 선언들을 계속한거죠. 아무튼 그것이 mona시리즈들이고요.
<크래커>라는 작업은 호암에서 처음 보였던 작업인 것 같아요. 원래는 투 채널 작업이고, 지금 보여드리는 것은 편의상 한 채널로 묶어놓은 거예요. 원래는 이런 프로젝터가 두개, 저런 식으로 싱크가 맞춰서 상영이 되고 있는 거예요. 이 작업 같은 경우는 ‘32’라는 숫자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 그에 대해 설명적으로 말을 하고 있진 않아요. 설명을 하자면 굉장히 어렸을 때 그냥 제가 벌렸었던 게임이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32살 되는 해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그게 뭐냐면, 어렸을 땐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많이 하잖아요. 논리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저 혼자 놀다가 32라는 숫자를 정했었어요. 그 때 32라는 것을 어떤 하나의 죽음의 숫자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건 하나의 놀이였었는데 32살 될 때 생각해보니 이제 그 때가 된 거에요. 근데 당시 그 약속을 했던 꼬마는 없잖아요. ‘걔를 만나서 담판을 짓던가, 아냐 사실 난 더 살겠다든지, 그만 살겠다든지 해야 될 텐데 걔를 다시 만날 수 없겠구나’ 하는 사소한 발상에서 시작되어 비롯되었었던 투 채널 비디오작업이에요. 거기서 시작했지만 궁극적인 주제는 그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여기에 깔려있는 내러티브는 저 꼬마애가 어른인 여자한테 미끼가 되는 노란 크래커를 놓고 다녀요. 그러면 큰애가 받아먹고 다녀요.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헨젤과 그레텔처럼 빵가루 놓고 다니는 상황을 설정한 거죠. 길을 안내하는 어떤 악마 같은 아이예요. 근데 어른은 맛있다고 넙죽넙죽 받아먹고 다니고, 근데 제가 32개 이상 크래커를 안줘요. 중독이 되어서 그것을 계속 먹어야지만 내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젠 없는 거죠. 그러한 숨겨진 내러티브 하나가 있고. 메인작업은 아직 시작은 안했는데 조금 있다가 보시면, 채널이 더 분리가 돼요.
오른쪽채널은 아까 처음에 얘가 셈을 할 때 나왔었던 floor plan에 의해서 32개의 기억의 방을 방문하고 다니는 구조로서, 한 채널은 나가고 왼쪽채널에선 서울의 건조한 풍경들이 계속 나와요. 이것은 전후 상영을 하는 동시상영과 달리 정말로 투 채널을 동시에 트는 동시상영인거죠. 그래서 오른쪽채널에서는 기억의 파편들에 의한 파편적인 에피소드들의 단서들이 나오고요, 왼쪽채널에서는 다 서울 시내를 담은 것이에요. 모두 랜드 마크에요. 근데 왼쪽에 보면 저기 숨겨져 있는 게 보이죠. 권투하는 사람이라든지, 저기 달걀이라든지. 못 보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고요.
말하자면 오른쪽 채널 같은 경우는 과거의 기억의 파편에 의한 어떤 개념적인 지도라면 왼쪽채널은 침묵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몰래 개인적인 랜드 마크를 심고 다니는 거예요. 랜드 마크라면 원래 남산타워, 명동성당이라든지 교보빌딩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랜드 마크로 작용을 한 거잖아요. 어떤 측면에서는 특히 지금 현대 자본주의사회에 살다보면, 개인보다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사회가 돌아가잖아요. 그러다보면 개인의 지표 같은 것이 굉장히 상실되는 것 같거든요.
궁극적으로 주제를 굳이 말하자면, 오늘날을 사는 자화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장 번화한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떤 면에서는 서늘할 정도로 침묵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이제는 꼬마애가 크래커로 저에게 지표를 제공해 주지도 않으니까 제가 스스로 저의 랜드 마크를 심어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고요. 그런 과정들을 어떤 함축적인 내러티브로서 보여주고 있는 작업이에요.
이건 여담인데, 작은 버선에서부터 큰 버선까지 신고 다니는 장면이 있는데, 어느 미술잡지에서 이 작업에 대해서 글을 썼던 게 기억이 나서요. 그 글 도입부에 쓰였던 일화인데, 제가 대전에서 전시하고 있을 때 어린학생들, 초등학교도 안 된 오누이가 와서 보고 있는데 여자동생이 오빠에게 묻더래요. ‘저 사람 아까는 자꾸 버선, 양말을 신더니 왜 이제 벗어?’ 그랬더니 오빠가 ‘아까는 너무 추워서 양말을 신은 거고 이제 더워져서 안 추워서 벗는 거야’ 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하더래요. 저는 그 상황에서 없었고, 글 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간접적으로 그 기사에 대해 들었던 것이지만, 저한테는 이 작업에 대해 말한 사람들 중에 그 꼬마애가 제일 나았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었던 것과 가장 흡사했었던 것 같고 어떤 사학자나 영화평론가나 그런 사람들보다 더요. 근데 조금 그 친구랑 틀렸던 것은 제가 어떤 측면에선 비유적으로 춥기 때문에 여러 겹을 신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아직 춥지만 그래도 이젠 벗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벗었던 것 같기도 하거든요. 비유적으로 얘길 하자면. 어떤 측면에서는 저의 어떤 내러티브가 있는 작업들이 기존의 친절한 기승전결식이라든지, 캐릭터가 서사의 전개를 이끌어 준다든지, 플롯이 익숙한 스토리 텔링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지만 그것을 어떤 파편들을 가지고 관객들이 이어나가면 주관적인 내러티브를 생성할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서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차피 미술이라는 영역에서 미술관에 오는 뷰어들은 한편의 작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특히 이런 작업들을 보았을 때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오히려 그 꼬마애가 했었던 비유가 저한테는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거죠.
이것은 전시중인 작품인데. 지금은 DVD상으로는 <별일 없지? Ⅰ, Ⅱ>가 분리되어 있거든요. 이 작업이 원래 여기서 나오는 거고, 조금 있다가 보실 <별일 없지? Ⅱ>가 반대편 모니터에서 나오는 작업이에요. 아까 크래커라는 작업이 좌우로 투 채널이 동시에 상영되게끔 되어있다면 이 <별일 없지?>라는 작업은 앞뒤로 상영이 되게끔 되어있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굉장히 보기가 어렵죠. 채널1을 보고 있을 땐 채널2를 볼 수 없고요, 채널2를 보고 있을 땐 채널1를 볼 수 없게끔 되어있는 작품이에요. 이것에 내러티브가 있다면 저 여자가 서울근교의 황량한 곳을 걸어 다니며 쓰레기들을 줍고 다녀요. 대체로 다 깨져서 쓸모없어진 것들이고요. 그런데 대체로 쓸모없어서 버려져 있는 것들은 날카로운 단서들을 가지고 있어요. 부드러웠던 유리잔이 깨지면 날카로움을 가진다던지. 그리고 저 여자가 저런 쓰레기를 줍고 다닐 때마다 신체의 일부가 없어져요. GIVE AND TAKE로 저 거울 조각을 하나 갖고 발하나가 없어져요. 그 날카로움을 하나씩 가지고 갈 때마다 사운드트랙이 하나씩 증가해요. 채널2에서는 저기서 버려졌던 것들의 온전했을 때의 모습들이 나타나요. 신체들이 절단되어 나가는 거니까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일부러 굉장히 그로테스크하지 않게 건조하게 자기신체가 절단되어 나가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연출했고요.
마지막 엔딩 신을 보면 대사가 나오는데 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나와요. 계기는 저희엄마의 안부 전화인데요. 대부분 부모님이 그렇듯이 꿈자리가 사나우면 전화하시잖아요. 그래서 엄마께서 전화 와서는 꿈자리가 안 좋아서 그런다고 별일 없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꿈에서 제 눈 한쪽이 빠졌데요. 저는 또 황당하게도 어느 쪽 눈이 빠졌냐고 그랬더니 왼쪽 눈이 빠졌데요. 그런 실제 황당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 찰나에서 출발이 됐었던 작업이에요. 여러분들도 부모님들이 안부전화를 하시면 별일 없다고 하지만, 사실 별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별일이 있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다는 게 아니라, 사는 게 별일이죠. 신체가 다 붙어있는 것처럼 살고 있지만, 부모님에게 말할 수 없고, 주변사람에게 티낼 수도 없고...어쩌면 온전해 보이지만 이미 지금도 절단이 되어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거든요. 비유적으로요. 저렇게 별일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절단된 어떤 개체나 쓸모없어져서 날카로움을 가지고 널브러져있는 오브제들을 하나의 동격체로 본 것이고요. 그래서 걔네들의 노래들이 나오는 거예요. 아까 주었던 오브제들의 사운드 이펙트를 가지고 저런 리듬들을 만든 거예요. 어쩌면 약간 애니메이션 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개념적으론 채널2보다 이게 저에게 더 현실적인 트랙이고요. 왜냐면 실제 느끼는 것들이고 채널2에선 버려졌던 오브제들의 꿈, 그들의 분노 같은 것들이 맞은편의 채널에서 보여 지고 있어요. 사운드트랙에 나왔었던 단절된 파편의 음소들이 잘려져 있었던 거였어요. 그러니까 이 음소들이 오브제들의 소리들과 같이 계속적으로 나왔었던 거죠. 두 트랙의 상영시간이 똑같고, 동시에 상영되어서 사운드들이 혼재해 같이 들리게끔 연출되어 있는 거고요. 예를 들어 지금 보시는 채널2의 장면이 아까 채널 1에서 주웠던 와인잔 인거죠. 이것도 거울조각에서 비롯된 거고요.

김준기 : 사운드도 대체로 스스로 만들어 쓰시나요?

박화영 : 네.

김준기 : 작업시간 무지 많이 걸리시겠네요.

박화영 : 요 작업 같은 경우는 짧은 편이죠. 이거는 아까 프레임들 지우는 것들 때문에 노가다가 많았던 작업이고요. 뭐 <크래커>나 <소리> 작업 같은 경우는 다 1년 넘게 걸렸고요. 이건 비교적 짧은 편이죠, 다른 작업들에 비해.
투 채널이 굉장히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이 보이면서도 유기적인 작품이에요.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었으니까 <드라이브>까지만 보죠. 재작년 말쯤에 일주아트하우스에서 했던 작품인데요, 밑에서 보면 드라이브에요. 많은 작업들이 그렇듯이 참 다큐멘트하기가 힘들어요. 일주에서 전시했을 때는 지금 제가 떠드는 흑백채널이 가운데채널이었고요, 왼쪽에 피아노 청소하는 거랑, 오른쪽 위에 드라이브하는 것들은 좌우채널로 나오고 있었어요. 오른쪽 밑에 핀 가지고 노는 아이는 소형모니터에서 말하는 애 반대쪽에서 상영이 되고 있었어요. 그걸 지금 보기 쉽게끔 ‘밭 전(田)’자 모양으로 편집해 놓은 작업이고요,
첫 번째 채널에서는 제가 가상의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버려진 피아노에 대한 그것을 어떻게 습득을 했고 그것에 대한 단상들을 마치 인터뷰어가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가상의 인터뷰를 하고 있고요. 두 번째 드라이브하는 채널은 저 버려진 피아노를 소형자동차 뒤에 싣고 다니는 거예요. 저 범퍼에 의해서 실제로 피아노가 연주가 되요. 망치가 왔다 갔다 하면서 그것을 튕겨요. 그래서 두 번째 채널에서는 이미 분해를 해서 차에 실었어요. 집에 와서 그것을 분해를 해보니까 운전하고 다니면서 달리던 피아노인거죠. 세 번째는 그것을 어렵게 집으로 들고 와서 먼지를 터는 장면이에요. 먼지를 털면서 연주를 하고 있는 거죠. 털면서 저게 연주가 되니까요. 저 피아노가 잠실의 재개발단지에서 사람들이 철거되면서 버리고 갔었던 피아노거든요. 그러니까 저게 30여년 된 피아노에요. 그래서 저 안에서 별게 다 나오는데, 70년대 10원짜리하며 저런 애들 종이인형, 두통약껍데기, 엄청난 먼지, 단추, 머리카락들이 저 피아노 안에 들어있었던 거죠. 30여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틈새에 들어갔었던 것들이죠. 발견되었던 것을 단서로 오른쪽 밑에 가상의 에피소드를 만든 거예요. 원래 전시장에선 오른쪽 밑에 작업 같은 경우 헤드폰으로 나레이션이 따로 있어요. 꼬마애가 어떻게 해서 그런 물건들을 피아노안에 넣게 되었는지 그런 경위를 가상의 시나리오를 써서 가장 영화적으로 오른쪽 귀퉁이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어떤 버려진 피아노를 매개로 굉장히 다른 네 작품의 동시상영인거죠. 특히 오른쪽 밑의 채널을 제외한 3개의 채널은 사운드 믹싱을 같이 해서 굉장히 입체적인 사운드가 되게끔 만들었어요. 말하자면 스테레오가 3개니까 6채널 작업인거거든요. 지금 상태에선 느낄 수 없지만, 공간적으로 저런 말소리라든지 피아노 소리가 입체적으로 하나의 공간을 사운드로서 연출할 수 있도록 만든 작업이에요. 전 개인적으로 많은 저의 작업들이 사운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작업 같은 경우엔 더욱 더 음악적인 작업이었어요.
이 작업 같은 경우, 주제적인 측면에서 아까 <크래커>라는 작업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측면에선 한 개인이 지금 서울에서 산다는 것, 말하자면 <별일 없지?>에서처럼 버려진 오브제들에 개체를 투입시켰던 것처럼 연주의 개념이 상실된 피아노를 저 나름대로 연주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 작업이에요. 결국 이 작업에선 미디어로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편집을 한 작업입니다. 여기까지 보겠습니다.

김준기 : 오늘 초청패널 두 분 계신데 평론가 고충환 선생님과 실험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인 박동현 선생님입니다. 일단 박수 부탁드립니다. 고충환 선생님 오늘 보신 것에 관해 총괄적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고충환 : 글쎄요. 김창겸씨 작업 같은 경우는 그 전부터 봐와서 약간 맥이 잡혀있는 그런 부분이 있는데 박화영씨 작품은 간헐적으로 봐가지고 오늘 오히려 결과적으로 공부가 된 것 같습니다. 김창겸씨 작업은 오브제를 이용한 작업과 다큐멘터리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오브제를 이용한 작업은 그야말로 사물의 있음과 없음, 실제와 영상의 이미지, 그래서 그것의 실체, 경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런 부분이 단순히 개별적으로 이미지의 존재방식에 대한 인식 구조가 개념적인 전개만으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그것을 어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라든지 서사와 믹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개인적인 서사를 이야기한 도구로서 그런 방법론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아마 광장이라는 인식, 일종의 사회적인 풍경을 다방이라는 개념으로 압축시켜 놓은 상직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화영씨 같은 경우는 제가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는 그런데, 굉장히 부분적인 이야기가 되겠죠. 그건 박화영씨가 말을 거는 방식이 아니라 박화영씨 작업을 보고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적으로 이렇게 어필되는 개념들이 다분히 신체성, 동물성, 육식성, 이런 개념들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내러티브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덴티티라고 그러죠. 그게 하나의 메인스트림으로 이루어진 걸, 토마스 쿤이 이야기합니다. 패러다임이 일관되게 연속되어 서로 분리가 불가능한 부분들이 있다고요. 사실, 어떤 굉장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서사라는 말은 상징적인 연결고리인, 상징을 위해서 제시하는 상황이나 오브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거죠. 바깥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객관화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구멍들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게 하나의 그럴듯한 말로는 암시성이 풍부하고요. 그게 일관된 서사로 연결되어 질 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에 노출되어 있는 거죠. 제가 박화영씨 작업을 일관적으로 꿰차고 있는 것이 약간은 약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답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준기 : 저도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거든요. 관람객입장에서 느끼는 부분을 다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전에 말씀하신 부분이, 그래서 김창겸의 서사와 박화영의 서사가 지닌 차이점도 좀 있다가 얘기될 수 있을 것 같고요. 아주 다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동현 선생님은 어떻게 보셨는지.

박동현 : 두 분 작품 재미있게 잘 봤고요. 일단 영화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두 분 다 극영화의 방식보다는 다큐멘터리방식을 사용하고 계시고요. 서사라고 얘기했을 때, 소설적 서사가 아닌 에세이적인 서사 식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전 뮤지움 토크에서의 김창겸씨 같은 경우는 조금 더 그렇고요. 모르겠어요, 이것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일수도 있다는 거죠. 개인적 경험을 조금 더 외부적 환경에 의해서 풀어내고 있어요. 그런데 박화영씨 같은 경우는 개인적 경험을 아주 개인적인 시선으로 내면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그런 모습들이 보였다는 생각이 들고요. 보다 보면 재미있는 게, 일상적으로 영화라는 것을 바라볼 때 항상 그 영화들은 겉에 보이는 것 이외에는 보기가 힘들어요. 그러나 영화와 조금 다른 미술관에서 보여 지는 영상작업은 그 작업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얘기되어지는 것이 많다고 생각되거든요. 만약에 아까 김창겸 선생님 같은 다방 다큐멘터리경우, 거의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영화에서 다큐멘터리의 방식을 채택하셨는데, 제가 아까 극장에서 상영하셨냐고 여쭈어 봤던 게, 만약 극장에서 상영했다면 그야말로 다큐멘터리였을 텐데 여기서 상영을 하게 되니까 다른 것과 같이 상영을 하니까 다큐멘터리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극장에서 본다면 더 긴 폼으로 보여 줬을 텐데 여기서 보니까 그 짧은 순간에 보더라도 굉장히 길다는 느낌도 어떤 면에서 들고요. 간단하게 그 정도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김준기 : 사실은 김창겸 작가가 서사를 도입한 것이 재작년 2003년 전시였고, 그전에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지 않았죠, 대체적으로는?

김창겸 : 이전에 편지작업에서부터 내러티브를 강조했죠.

김준기 : 그즈음부터. 서사를 쓰느냐 안 쓰느냐가. 영상작업을 하면서도 서사를 안 쓰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박화영 선생님 같은 경우에 내러티브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서사구조, 문학적 구조로 이해하면 어떻게 보면 답이 안나오는 것 같아요. 아까 암시성이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그 암시하고 있는 것들이 워낙 독특한 구조의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낯선 구조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특히 이 전시되고 있는 작품은 더욱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작가가 오면 꼭 한번 얘기를 해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짧게나마 대화를 나눠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영화적 시각에서 볼 때 박화영 작가의 서사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추가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박동현 : 글쎄, 사실 저도 전통적인 영화가 아니라 실험적인 영화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흔히 우리가 상징체계라고 얘기하는 것이 굉장히 문학적인 상징체계를 많이 하거든요. 문학적 상징체계라는 것은 우리가 소설이라는 데서 예를 들면 귤이라는 것이 먹으면 시다는 것이 문학적 상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비주얼적 상징으로 봤을 때는 오렌지색, 공으로 치환될 수 도 있고 그런 연관적인 상상력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사실은 실험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비주얼상징에 대한 접근이라고 보여 지거든요. 그리고 그런 상징성들을 차용을 해오는 거고요. 그런데 박화영 작가의 작품 같은 경우는 그런 쪽도 아닌 것 같고 굉장히 개인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소통을 하고 싶은 사람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저는 오히려 소통을 안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굳이 왜 소통을 하려고 생각을 할까. 자꾸 그런 마음을 갖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랑 더 멀어지려는 것이 아닐까. 물론 박작가님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일반적으로 뭔가 소통을 하려고 했을 때 자꾸 자기중심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소통에 의해 실제 중심에 가지고 있던 것을 까먹어버리거든요.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그 소설적인 내러티브구조가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서 박작가님 같은 경우 상당히 자기 안쪽을 파고들려고 하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었는데, 거기서 소통을 더 잘하고 싶어서 뭔가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신 것에 대해...

박화영 : 아니에요. 왜냐면은 역시 이게 언어의 괴리감이거든요.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기능적인 말들, 예로 ‘밥 먹었어?’, ‘응 먹었어.’, ‘안 먹었어.’, ‘주식이 얼마나 올랐어?’, ‘응 얼마 올랐데.’ 이런 것들은 다 소통이 되는 거죠. 여기서 제가 얘기했던 소통은 그런 기능적인 소통은 아닌 거 것 같고요. 결국은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언어의 한계에 대한 것을 더 얘기하고 있는 거겠죠. 그러니까 개를 선택했겠죠. 실제로 소통을 원했던 거면 사람을 했을 수도 있던 것 같거든요.

박동현 : 그런데 사실은 박화영 선생님작품을 제대로 사운드까지 들어가며 본 것은 여기 전시되고 있는 작품 이외에는 본적이 없어가지고요. 그 내용까지 다 전달받았으면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김준기 : 보통 한 작가를 보면 주제의식이랄지 작업방법, 매체라 할지 이런 것들을 일관성 있게 가져가는 편이잖아요. 그랬을 때 김창겸 선생님같은 경우에 실재와 비실재, 물질과 영상 그런 것들을 여러 가지 소재로 탐색을 해오다가 아까 2003년 편지작업부터 내러티브를 도입하신 거죠.

김창겸 : 98년도에 텍스트만 무척 강한 작업이 있었어요. 근데 항상 텍스트만 쓰고 나면 다시 보면 지루하잖아요. 재미있는 소설책도 몇 번 보면 지루하고, 영화도 그렇고요. 내러티브의 단점이 한번 그것을 다 읽혀지고 나면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없앴다가 다시 만들었다가 없앴다가, 끄집어냈다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제가 보니까요.

김준기 : 그 과정에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볼 수 있는데 좀 전에 말씀하신 것, 박작가님 같은 경우에 ‘내면을 흡입하거나 이런 식이다’라는 것 속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봐서 본인의 일관성이라 할지 이런 것을 우리가 읽어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박화영 : 컨텐츠내용적인 일관적 전개를 말씀하시나요?

김준기 : 서사의 방향, 지향들 이런 것 있잖아요.

박화영 : 그런데 그게 내용적으로 나타나지 형식적으론 잘 안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나마 요즘 어떤 비디오전시들이 기획되니까 미디어작업들 위주로 많이 알려진 거지. 혹시 여기서 보신 분들은 없을 것 같은데 작년 말 같은 경우는 정미소에서 멀티미디어공연을 했었거든요. 퍼포먼스도 하고요. 저는 하나의 토탈 작가라고 생각하지 비디오아티스트나 페인터라거나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거든요.

김준기 : 아니요. 그 방향은 아니고요. 예를 들면 본인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자기안의 풍경을 끄집어내는데 다른 작가들의 경우처럼 압축시켜서 ‘저 작가는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볼 수 있겠는지 그런 질문을 해본 것이거든요. 오히려 어쩌면 다른 분들이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충환 : 글쎄요. 제가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박화영씨 작업을 보면서 마치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과거 속으로 몰려 들어가는 계기가 마들레이드라는 과자잖아요. 그런 과자의 어떤 향기라든지 맛이라든지, 소리, 그런 굉장히 감각적인 굉장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그래서 서로 공유할 수 없는... 전 그렇게 보거든요. 마들레드 같은 과자의 맛이 대동소이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게 이렇게 공감할 수는 있어도 공유할 수는 없는 디테일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고 전 생각해요. 더욱이 그게 계기가 되어져서 과거로 소급이 되었다든지 할 땐 더욱이 그렇죠. 어떤 개인적인 개인사가 틀리기 때문에. 그래서 마치 의식의 흐름기법, 아니면 미미한 감각적 단서가 개인의 정체성을 다시 환기시키고 만들고 하는듯한 느낌들을 많이 받았어요.
박화영씨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획일적이고 일관된 서사에 대한 회의에 바탕에 두고 있지 않아서 오히려 일관적 서사를 강요해 오는 것은 폭력이라고까지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이면에서 굉장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서사까지 가게 된 계기가 굉장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강박적인 계기. 이런데서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계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아까 우스갯소리로 개도 이야기를 했지만요.

김준기 : 영상추상작업은 혹시 안 해보셨어요?

박화영 : 영상추상작업이요? 영상추상작업이 뭐예요?

김준기 : 있어요.

박화영 : 약간 옵티컬하고 키네틱한 그럼 작업?

김준기 : 영상자체만으로 작업을 해서 구체적인 영상이나 내러티브는 하나도 없는 거죠.

박화영 : 그래픽한 작품 말씀이신가요?

김준기 : 네. 계속 그것만 가지고 1시간 분량을 만들어서 브레인팩토리에서 전시를 하는 한 작가가 있더라고요. 만약에 영상작가들이 회화영역에서 하듯이 추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도전을 해 본다면 어떨까 해서요. 박작가가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박화영 : 그럴 생각은 없고요. 그러면 저도 회화과를 다니다가 페인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학교 다닐 때부터 거의 안했던 것 같거든요. 추상작업은 더더욱 없었던 것 같고요. 페인팅을 하더라도 함축적인 서사는 있었던 것 같아요, 아까 고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율배반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할 수 있는 것이면 말로 했을 텐데 말이죠. 근데 그게 어떤 그래픽한 추상성이랑은 구분되는 거죠. 그건 언어를 배제시키는 거고 이건 언어의 한계성을 안고 또 다른 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미련한 짓을 하는 게 제 작업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김준기 : 그렇다면 결국 이 전시제목이 가지고 있는 비주얼 내러티브라는 것이 문학적 내러티브로부터 발생한 것에 다 의존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거든요. 저는 비주얼 내러티브라는 것이 문학적인 내러티브와 다른 것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들을 찾아보고 싶었고요. 왜냐면 이 전시가 리뷰전시니까 작가들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말이죠.
결국 그런 것 같아요. 카메라를 드는 사람들은 붓을 드는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어떤 형상, 서사구조에 의지할 확률이 높거든요. 제가 좀 전에 얘를 든 어떤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찍어서 편집하는 과정에서 서사를 만들어내거든요. 대개 문학적 서사를 만들어내는 그런 과정인데, 그렇다면 ‘모든 단채널 영상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서사구조를 전제로 작업을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이 문학적 내러티브를 시각적으로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비주얼 내러티브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출발을 했거든요. 그래서 여쭤본 거였는데. 실험영화 장에서는 어떻게 극영화와 서사의 문제를 바라보시는지요.

박동현 : 문학적 내러티브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을까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그런 시도는 무척 많았어요. 근데 어쩔 수 없이 언어라는 것 자체가 문학하고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게 추상적인 음악들은 틀리겠죠.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을 때 시간은 이거 다음에 뭐가 나오고, 이거 다음에 뭐가 나온다는 연속성이 있는 거죠. 근데 그 전에 회화라든가 전통적인 영역에서 보았을 때, 그건 시간성을 완전 배제한 순간에 담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연속성의 속성을 생각했을 때, 어떤 식으로 연관을 지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 생겨나는 거죠. 그런 것들이 기존의 것들에서 차용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차용을 처음 해놓았다가 새로운 것들을 찾아보는데 잘 안 찾아지는 것이기도 하겠죠. 그래서 음악에서 시간성을, 아니면 무용에서 시간성을 차용해오고 이런 식의 작업들은 굉장히 많았었어요.
어쨌든 제가 생각했을 때는 두 분의 작품을 보면서 실험영화 쪽에서 생각하는 시각적 언어라는 것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기보다는 조금 더 문학적인 것에 베이스를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냐 하면 아까 말씀하신 귤이 공으로 치환될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이 실험영화 쪽에서 만들어내서 새로운 시각적 서사고, 그것들을 우리가 어떤 식으로 연관성을 가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판단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내러티브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조해 나간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두 분 같은 경우, 오브제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한 개념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이라든가 서사들을 중심에 두고, 그 다음에 나머지 것들을 펼쳐나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쨌든 두 분의 작업들 같은 경우 실험영화 쪽에서 많이 있어왔고. 특히 아까 <비상>이라는 작품 같은 경우 실험영화 쪽에서 많이 하는 작업들 몇 개 부분에 같이 부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 한 실험영화 작가가 있는데 그 사람이 최초로 오브젝트를 필름 위에 붙여서 만들었었어요. 근데 그런 작품들을 연상시켜서 재미있게 봤어요. 그게 루핑이죠.

박화영 : 네. 다신 안할 거예요. 그런 작업은요. 두께가 있으니까 오래 못 돌거든요. 거의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그 조그만 것을, 전시할 때 끊어지면 다시 만들고 다시 만들고, 절대 다신 안할 거예요.(웃음)

박동현 : 근데 보통은 그렇게 만들어놓고 그거를 옵티컬 프린팅 같은 걸로 프린트해서 하잖아요.

박화영 : 프린트를 하죠. 근데 갤러리라는 맥락에선 이게 하나의 오브제로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개념이 틀린 거죠. 그러니까 다신 하지 말아야죠.

김준기 : 여기서 언제든지 기탄없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어떠세요? 영화인이시면서 갤러리도 하시고? 이번 전시 두 분 작품들 어떠신지.

이장욱 : 개인적으론 아주 재미있게 봤고요. 개인적인 경험인데 저 같은 경우 독립영화, 실험영화 쪽으로 극장에서 흥행을 하면 끝나고 작가와의 대화 같은 프로그램을 할 때 반응이 매우 격렬하거든요. 이런 걸 왜 찍었냐 등등 해서요. 그런 어떤 거친 반응들이 많이 나오는데, 다르게 생각해서 그걸 갤러리에 틀어 놨을 때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하는 걸 생각할 때는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김준기 : 어떻게 달랐을 것 같아요?

이장욱 : 제가 생각할 때는 미술관에서는 부정적으로 얘기하자면 권위라는 것들이 전제되고 있는 것 같고요. 공간이 갖는 것 말이죠. 아까 작가분이 말씀하셨듯이 어린 친구의 반응을 굉장히 존경했다고 하셨잖아요. 어른들 같은 경우는 미술관에 가서 작품이 싫으면 나올 순 있는데 반응을 보이긴 쉽지 않거든요. 근데 극장문화라는 것은 굉장히 혼재되어 있는 문화이기 때문에 어떤 기대치를 갖고 오는 층이 다르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격렬한 반응들이 들어와서 혼재해 있는 재미있는 공간인데, 미술관 같은 경우는 전통적이라는 것 이전에 그 작품들에서 많은 것들을 확장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반응이라는 것이 아직도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드네요. 근데 이런 작품들 같은 경우에 보면 저 같은 경우도 왜 이걸 2채널로 해야 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박화영 : 예, 말씀하시죠.

이장욱 : 그런 소통이라는 것들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에 해답은 없는데, 그게 극장문화와 연결되면 좀더 아무 얘기라도 활발하게 나누게 되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준기 : 네,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중요한 지적인 거 같아요. 왜냐하면 다들 이 미술작품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상당히 꺼려하죠. 대체로 이제 미술 쪽에서 비평문화라고 하는 것이 그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영화계는 더 아무래도 산업이다 보니까 더 심하게 산업의 논리로 비평이 가는데요. 미술 쪽 같은 경우도 아직 비평의 입장, 특히나 관람객의 입장이 그 작품에서 자기가 소통이 단절되는 지점에서 그건 자기가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접근을 하는 것이죠. 아마 그런 지적을 해 주신 것 같은데요. 아마 이 미술문화가 전시를 본다는 문화가 층이 쌓이면 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런 자리가 그런 것을 준비하는 자리가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고충환 : 글쎄 저는 어떤 소통이 잘 안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것 있잖아요. 소통이 안 되는 그걸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을 것 아니에요. 그럼 제대로 소통이 아닌가, 그것도 소통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예를 들어서 잘 아시겠지만 낯설게 하기, 그것이 지금이야 노출이 되었고 심지어 오용이 되기도 하지만 예전엔 낯설게 하기,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결국 소통불능상태 이걸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이게 만약에 관객에게 어필되었다면 제대로 이야기 된 것 아닌가하는 것이고요.

김준기 : 예. 그런 경우도 있겠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고충환 : 그래서 오히려 문제는 소통이 된다, 안 된다는 것보다도 소통불능상태, 소통단절상태를 이것을 체험하게 해주는 방법이고,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거나 아니면 실존적이고 무거운, 가벼운 이런 것들이 나와질 수 있지 않느냐는 거죠. 지금 현대미술 현대예술에서 소통불능상태와 같이 그런 차이에 대한 인식은 의외로 많은 작가들이 자기 통첩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동현 : 소통불능도 소통불능이지만, 소통불능이라는 문화는 소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도 굉장히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능이라는 것은 하고 싶었는데 못하는 경우인 때가 많은데, 실제로 소통을 하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알아주는 사람만 알아주면 좋겠다는 식의 좀 다른 소통인 것 같거든요. 대중적 소통이냐 아니면 알아줘도 상관없고 안 알아줘도 좋다는 굉장히 소극적인 소통이냐는 거죠. 소극적인 소통은 어떤 면에서는 소통하기 싫어한다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고충환 : 그렇죠. 그런 것도 그게 하나의 물질적인 비주얼적인 형식을 얻었을 때 그런 것들이 다 수용이 되어야죠. 다 이야기가 되어야죠.

김준기 : 이미 만인이 대중들이 다 소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소위 예술로서의 기능이나 소임을 다한 것이겠죠. 작가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어떤 것들을 만들어내고 기존에 있던 것들도 다시 읽어주고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이 예술가들이니까요. 영화나 대중적 시각들과는 다른 어떤 것을 계속 찾아나가는 과정에 예술가들이 있는 거고 거기에서 소통의 가능성, 소통의 정도 이런 것을 계속 가늠하고 있는 것 같아요. 창동 스튜디오의 프로그래머이신 조주연 선생님이 오셨는데, 작가들이 새로 많이 바뀌었나요? 언제 바뀌는 타임이죠?

조주연 : 예, 지금 다 바뀌었어요.

김준기 : 영상작업하시는 작가도 계시나요?

조주연 : 예, 별로 많진 않아요. 김창겸 선생님은 작년 2기에 저희 스튜디오에 계셨었죠.
김준기 : 한꺼번에 여러 작가들을 매일매일 접하시잖아요. 영상 작업하는 작가들이요. 만들거나 그리거나 깎거나 하는 사름들하고는 어떠한 느낌이신지. 돌발질문하나 던지겠습니다.

조주연 : 그 질문에 대해선 제가 뭐라고 잘 말씀을 못 드리겠고요. 저는 일단 이 전시는 영화와 미술의 만남이 주제잖아요. 사실 관심이 많았어요. 꼭 영화와 미술뿐 아니라 학제 간에 그런 결합하는 것이 많은데, 실질적으로 어떻게 미술이라는 영역이 문화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궁금해요. 그런 가능성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 이런 전시가 다른 분야와 시리즈로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준기 : 안 그래도 미술과 수학 준비하고 있는데. 재미있잖아요. 그렇지요? 처음 미술과 영화 얘기가 나왔을 때 그게 영화적 요소를 소재 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비주얼 내러티브라는 주제의식으로 많이 틀려고 의도적으로 했었거든요. 영화를 차용한 그림들 그런 것들은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그랬고요. 물론 장단점이 있겠죠. 소재를 살리느냐 주제를 살리느냐. 어떠세요. 아까 저기 질문한 것에 별로 답이 없는데 소위 두 분 다 영상작업하시는 분들인데 시각 예술가들이 일반적인 전통적인 매체를 쓰는 사람들과 다른 작업양태라 할지 삶의 태도라 할지 그런 것들을, 작가라는 삶의 주체로 보았을 때 어떠실지.

박화영 : 창고가 필요 없어요.(웃음)

김준기 : 엄청나게 커요. 왜냐하면 덩어리 만드는 작가들은 그게 쌓여가지고 그것을 주체를 못해서 인간적인 존재론적 회의에까지 이르고 포기하거나, 그게 엄청나게 큰 문제거든요.

박화영 :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얘기했을 때, ‘창고가 없어서 편해요’라는 얘기도 되지만 창고를 유지를 못하고요. 경제적 논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런 어떤 주제와 맞닿아서 물성이 없는 것들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사운드라든지. 어떤 데이터로만 남아있고 만질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작업에서도 보여 지듯이 죽음에 대한 것들이라든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관심이 더 많아서 그럴 수도 있을 테고요. 일단은 제가 죽은 다음에 돌 같은 것에 새겨줘서 남겨져 있다는 것이 괴로워요. 제가 생각을 할 때는요. 그래서 큐레이터분이나 어떤 사람들이 작업실 방문하겠다고 그러면 굉장히 난감해요. 저의 작업실에 오시면 작업이 하나도 없거든요. 벽에 그림도 하나 없고요. 그냥 집이에요. 개 한 마리가 털을 날리면서 왔다 갔다 하고요. 왜냐하면 스튜디오베이스에 대한 기대치가 있잖아요. ‘작품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어떠한 식의 것들을 꺼내놓고 있거나 작업과정을 보여 준다든지요. 작업과정을 보여줄 것도 없고요. 근데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럴 거예요. 자기작품하고나면 시간 지나면 대게 괴롭잖아요. 그거 보면요. 그래서 어떤 데이터로서 갖고 있을 필요성은 있지만 지금도 발표하면서도 살을 뜯고 싶잖아요. 내가 왜 저 작업을 저렇게 했을까 하고요.

김준기 : 김 선생님은 어떠세요?

김창겸 : 저는 심리적으로 그런 변화는 없어요. 그런데 생활은 많이 변하더라고요. 전에 돌 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죽을 뻔했었어요. 15톤이 위에서 딱 떨어지는데, 트럭이 15미터 되는 컨테이너트럭인데 그 위로 돌이 떨어져서 트럭이 푹 파였어요. 그러니까 트럭이 바퀴가 들렸어요. 그 돌 위력이 대단한데, 영상에서는 현실적으로 나를 죽일 정도로 나를 압박하진 않지만 대신 눈이 나빠지더라고요. 컴퓨터를 많이 봐서요. 그러니까 직업병이 틀려진 거죠. 돌 할 때는 직업병이 허리 다치고, 다리 다치고, 부러지고 이런 건데 지금은 눈이 나빠지고 그런 거죠. 그리고 촬영 할 때도 있지만 편집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그래서 편집할 땐 거의 움직이진 않으니까 운동량 하루 몇 발자국. 직업병이 틀려졌어요. 그래서 살도 찌고 그래요.

김준기 : 우리가 비주얼 내러티브라는 심오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다보니 갑자기 지금의 대화로 인해 굉장히 밝아졌어요.(웃음)

김창겸 : 사실은 뭐 전통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과 박화영 선생님과 같이 완전히 디지털로 작업하는 사람의 중간형태를 취하죠. 조금은 틀린 것 같아요. 저는 작업실이 필요로 해요. 작업실 없이 집에서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작업실이 좀 필요한 입장이니까.

김준기 : 93년 이때면 대학 갓 졸업하자마자 영상작업을 했잖아요. 학교 다니면서도 그게 가능했나요, 그 때?

박화영 : 음, 아니요. 비디오수업 같은 건 학교에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요. 영상수업은 있었는데 비디오수업은 아니었고요. 애니메이션 같은 것, 필??
2005/02/06 22:53 2005/02/06 22:53

2005년 한국미술판 주요 전시들들들

artpd clip | 2005/02/06 14:09


2005년 한국미술판에서 눈에 띄는 전시들 꼽아놓은 리스트입니다. 쓱~ 둘러보니 특별하게 눈에 띄는 건 없군요. 그래도 어쨋거나 작가 한 사람 한 사람 다 최선을 다해서 뭔가 뽑아낼 것 아니겠습니다. 기획자들의 분주한 손길도 있을 거구요. 기대해 봅시다. 자~ 2005년 한국미술판으로 빠져 봅시다~

아트인컬쳐 조은비 인턴기자가 수고해줬다는 리스트입니다. 아트인컬쳐 호경윤기자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눈에 뜨길래 복사... ㅎㅎㅎ 아직은 복사해서 옮기는 수법을 쓰고 있는데... 어이~ 양아치선생님... 거시기 트랙백인가 뭔가 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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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일본현대디자인展 2. 3∼4. 10 성곡미술관
신소장품2004展 2. 8∼4. 10 국립현대미술관
김종영展 2. 24∼5. 15 덕수궁미술관
쟝 푸르베展 국제갤러리←뭔가 더 있을텐데
Red Blossom - 동북아 3국 현대목판화展 2. 18∼4. 3 일민미술관
호주현대비디오展 2. 25∼3. 17 쌈지스페이스
아뜰리에 사람들展 가나아트센터

3월

바이런 킴展 3. 11∼5. 8 로댕갤러리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인패션 展 3. 5∼5. 8 대림미술관
루이즈부르주아展 국제갤러리
도윤희展 카이스갤러리
영은2005 레지던시展 3. 17∼5. 8 영은미술관
오픈스튜디오展 3. 23∼29 쌈지스페이스
실험영화프로젝트(가칭) 김나영展 3. 23∼4. 22 사루비아다방
정혜련展 3. 11∼4. 10 성곡미술관
한일국제교류전(전시명 미정) 3. 25∼4. 7 대안공간루프

4월

성곡미술관 개관10주년 기념展 4. 20∼6. 5 성곡미술관
오지호 탄생100주년 기념-오지호와 그의 제자들展 4. 30∼7. 1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청년미술제 서울시립미술관
픽&픽展 4. 7∼5. 21 쌈지스페이스
문신10주기展 가나아트센터
Peter Halley展 카이스갤러리
이철수 판화展 인사동 가나아트센터
대영박물관 서울전시회-세계문명1만년전 4. 8∼7. 15 예술의전당←약할텐데..
2005 새로운작가 오용석展 4. 6∼26 대안공간풀
Nano in Young Artist展 4. 22 - 5. 13 대안공간루프

5월

이중섭:드로잉의 재발견展 5. 13∼8. 28 삼성미술관 리움
올해의 작가-이종구展 5. 12∼7. 14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 봄나들이展 서울시립미술관
보드리야르 사진展 5. 18∼7. 17 대림미술관
곽수영展 인사동 가나아트센터
조습展 5. 13∼31 대안공간풀
옥정호展 인사미술공간
미니멀리즘의 후예들-큐빅을 넘어서 5. 18∼7. 17 부산시립미술관←그게 뭘지 궁금
김준展 5. 4∼6. 18 사비나미술관

6월

나라 요시토모展 3. 11∼5. 8 로댕갤러리
아시아여성미술제 판타스틱 코리아展 6. 9∼7. 3 성곡미술관
새로운 세기, 새로운 미술관展 6. 10∼7. 21 국립현대미술관 ←정체가 뭘까요?
한일 패션교류展 서울시립미술관
최욱경展 국제갤러리
소품회화展 7. 21∼11. 27 영은미술관
한일교류展(서울전: Publicly SPEAKING) 6. 3∼7. 16 쌈지스페이스
감귤프로젝트(가칭) 임국展 사루비아다방
배영환展 6. 29∼7. 19 대안공간풀
세계명작전 바르비종회화展 6. 10∼8. 28 예술의전당
루프 공간이전기념전-한·중·일·인도 국제교류전 6. 24 - 7. 22 대안공간루프←교류에 힘쓸 모양입니다.

7월

세계어린이동화원작展 7. 13∼9. 4 성곡미술관
미술 속 마술展 7. 21∼9. 11 영은미술관
제5회 사진영상페스티벌 가나아트센터
여름방학기획전 10년후 전V. 3.0展 인사동 가나아트센터
한국현대미술전 미술과 놀이展 7. 22∼8. 21 예술의전당
프랑켄슈타인에서 아시모까지 로봇展 7. 22∼8. 21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마이크로&맥크로展 7. 8∼8. 28 대전시립미술관
온고지신展 대전시립미술관
이용백展 7. 29∼8. 26 대안공간루프

8월

광복60주년 기념-한국미술 100년(1부) 8. 5∼10. 23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서세옥展 8. 18∼10. 23 덕수궁미술관
한국미술100년 특별전-한낙연展 8. 6∼10. 16
팀 노블, 수 웹스터展 국제갤러리
정혜승&Jens Haaning展 대안공간 풀
한국예술종합학교-동경예술대학교 교류展 8. 26∼9. 4
한·일 미디어아티스트 4인4색展 8. 19∼10. 18 일주아트하우스
제1회 한독여성사진가교류전 8. 18∼31 세줄화랑

9월

김홍주展 9. 9∼10. 30 로댕갤러리←잘 어울릴것 같아요
한일 애니메이션展 9. 8∼10. 30 성곡미술관
The Face展 9. 22∼1. 27 영은미술관
영국현대작가그룹展 카이스갤러리
이머징展 쌈지스페이스
박대성 회고전 가나아트센터
김상길展 사루비아다방←좀..
형상미술대전 9. 1∼17 대전시립미술관
APEC기념전 탈지역성: 역사 속의 상황인식 9. 16∼11. 13 부산시립미술관
한글다다 2005-한글의 힘展 9. 30 ∼10. 28 대안공간루프←제목만 봐선 의외

10월

매튜바니展 10. 14∼1. 8 삼성미술관 리움←드디어
청계천복원기념전 움직이는 청계천展 서울시립미술관
전광영展 국제갤러리
문경원展 카이스갤러리
김세진展 인사미술공간
제11회 마니프 2005展 10. 6∼18 예술의전당
정복수展 10. 26∼12. 10 사비나미술관

11월
←재미있는 달이 되겠는데요..
프로망제展 11. 5∼1. 15 국립현대미술관
한·칠레 교류展 11. 11∼1. 30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 뉴질랜드展 11. 18∼2. 26 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큐비즘展 11. 2∼1. 22 덕수궁미술관
City-Net Asia展 서울시립미술관
김소라 김홍석展 카이스갤러리
박찬경展 쌈지스페이스
김범展 11. 30∼12. 20 대안공간 풀
배종헌: 변방으로의 욕망- 잡초프로젝트展 인사미술공간 ← 오랜만에, 기대
여성·생명·살림 김인순展 11. 25∼12. 4 예술의전당

12월

경기광주미협전 영은미술관
미술과 과학展 사비나미술관
조부수展 12. 7∼21 예술의전당
미술과 종교展 2005 12. 30∼2. 5 예술의전당
산하 그 맥展 대전시립미술관
잃어버린 풍경展 대전시립미술관
해외전 대리기억장치-도시일기展 부산시립미술관
이중근展 12. 9 ∼2006. 1. 6 대안공간루프


정리_조은비 인턴기자(art in culture 2월호)
2005/02/06 14:09 2005/02/06 14:09

생명의 솟대를 지키는 예술가 최병수

critic & column | 2005/02/04 11:56


생명의 솟대를 지키는 예술가 최병수

하늘과 땅, 이상향과 현실, 신령한 초월적 존재와 현세 인간을 이어주는 메신저가 있다. 나무기둥 위에 자유롭게 유영하는 새의 형상을 얹어두는 솟대가 그것이다. 최병수는 솟대를 만드는 설치미술가로 널리 알려졌는데, 그의 솟대 위에는 새 뿐만 아니라 게, 짱둥어, 갯지렁이 등 갯벌의 생명들이 가득하다. 정형화 된 그 무엇이 있어야할 자리에 다른 것들을 올려두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사회의 정령신앙을 생명가치로 치환한 최병수 식의 현대미술이다. 이것이 바로 고전을 현대로 이어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의 맥락으로 전환하는 예술적 힘이 아니겠는가. 해 떨어지는 서해의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바다 생명체들이 올망졸망 모여 잔치를 벌이는 솟대 작업. 이제 이 한 컷의 이미지는 갤러리뿐만 아니라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와 잡지 등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되면서 환경운동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엘리트 예술공간을 벗어나 삶의 현장으로
예술이 대중과 만나는 곳은 대부분 전시장이나 공연장 같은 엘리트 문화공간이다. 최병수는 엘리트 문화공간을 벗어난 “현장의 예술가”이다. 그는 어딜 가든 “현장미술가”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자타공인의 현장파이다. 현장미술은 전시장미술과의 다름을 확인하기 위해 생긴 말이다. 작업실에서 그리는 그림들을 갤러리로 옮겨서 일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식의 일반적인 예술가들의 활동방식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현장미술은 미술을 요청하는 장소와 시대의 부름에 따라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예술적 행위를 남기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그것은 현장에 대해 예술적으로 참여하고 문화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의 행동주의적 경향을 띈다. 직업적 예술가들은, 특히 모더니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할만한 근거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 왜소한 ‘예술 그 자체’의 맥락으로 빠져들어감으로써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비판과 반성의 연장선상에서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예술적 성취를 얻고자 했던 것이 현장미술이다.
최병수가 예술가로 성장한 것은 1980년대의 엄중한 시절에 벌어진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벽화를 그리는 화가 친구 옆에서 목수로서 도움을 주던 그는 자연스럽게 벽화의 일부를 그리는 일에도 동참했는데, 당시 통일을 주제로 한 벽화에 대한 당국의 대응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경한 것이었다. 최병수를 포함한 미술가들이 연행되었는데, 목수 최병수는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미술가의 신분을 확인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림 그리는 데 동참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가 그린 것은 진달래꽃 몇 개였다. 유명한 1986년의 정릉 벽화 <상생도>에 얽힌 얘기다. 이후 그는 1987년에 연세대학교에서 당시 시위도중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이한열 열사가 쓰러지는 장면을 판화에 새겨 현장미술가로서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며칠 후 그의 목판화는 대형 걸개그림으로 그려져 건물 벽을 휘감았다.
이후에 그는 수십미터 크기에 달하는 걸개그림 여러 점을 그렸는데, 대표적인 것이 백두산(1988), 노동해방도(1989) 쓰레기들(1990), 장산곶매(1991) 등이 있다. 걸개그림이란 1980년대에 만들어진 토종 그림이다. 주로 갤러리 벽에 걸리는 액자그림들에 비해서 거대한 규모의 천에 그림을 그려서 건물 외벽에 내다 거는 용도로 고안된 것을 말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건물 외벽이나 무대 뒤편에 커다란 그림을 걸 일이 많았기 때문에 당시의 많은 미술가들은 걸개그림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넬 수 있었다. 이러한 걸개그림은 판화의 강렬한 선들을 사용하거나 전통적인 회화의 기법을 도입해서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얻었으며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미술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아스라이 뒤로 이어지는 대각선 구도의 가파른 산맥의 흐름을 비껴서 날아오르는 한 마리 매를 목판화 기법으로 그려낸 걸개그림 <장산곶매>를 돌이켜보면 그것은 차라리 아스라이 낭만적 서정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목판화와 걸개그림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최병수는 굵직한 선을 그어두었다.

최병수의 걸개그림이 정치적 쟁점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은 당대의 여러 미술가들 가운데 그를 오랫동안 현장미술가로서의 생명력을 가지게 한 뚜렷한 이유이다.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걸개그림, 1997)는 거대한 고래가 창에 찔려 신음하는 모습에 고래등을 타고 운집하는 다양한 동물군들을 초현실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배경은 푸른 바다가 아니라 저 멀리 행성의 모습이 보이는 우주 공간이다. 우주를 유영하는 고래의 모습으로 지구를 상징하고 그 위에 생명의 활생을 그려낸 것이다. 치열하고 프로파간다(선동)에 매료되었던 저 80년대의 걸개그림에 비해 90년대 중반 이후의 정서에 맞는 새로운 유형을 찾아 낸 최병수는 확실히 움직이는 현장미술가이다. 그렇다고 그가 세게 나설 때 멈칫거렸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최근에 그는 전쟁이 벌어진 이라크 현지에서 걸개그림을 그릴 정도로 열렬한 평화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을 병행하면서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요청에 부응했다. 그는 얼음 조각 퍼포먼스로도 유명하다. 여러 환경관련 행사장에서 즉석 퍼포먼스로 얼음조각을 하는 것이다. 전기톱을 이용해 능숙한 솜씨로 얼음을 깎아서 펭귄을 만드는 것인데, 현장에서 녹아내리는 펭귄의 모습을 통해서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냉장고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예술이다. 1997년에 있은 일본 기후관련 국제회의 행사장 설치 얼음조각 퍼포먼스 <펭귄이 녹고 있다> 이후 커다란 소음방지용 귀마개를 끼고 얼음을 깎는 최병수의 퍼포먼스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지구 반지’는 오랜 동안 구상해온 그 만의 프로젝트이다. 지구가 달린 반지 형상을 대형 입체 작업으로 만들기도 하고 무대 배경 그림으로 쓰기도 하며, 때로는 아트상품 아이디어로 제시하기도 한다.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하는 미술가
최병수의 걸개그림 연작들 가운데서 유독 환경 관련 이미지들은 그 생명력이 훨씬 길어 보인다. 그는 일찍이 1990년대 초반부터 환경 이슈를 담은 걸개그림들과 퍼포먼스, 무대설치 작업에 관한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브라질 리우환경회의에서 선보인 <쓰레기들>(1992) 이후 그는 최근까지 수많은 국내외 환경관련 현장미술활동을 해왔다. 일본 교토 제3차 세계환경회의에서 선보인 <펭귄이 녹고 있다>(1997)를 비롯해서, 아르헨티나 브에노스 아이레스 COP4에서의 <지구반지, 문명의 끝>(1998), 전북 무주에 열린 어린이 환경캠프에서의 <꿩먹고 알먹으면 멸종이다>(1999), <바다로 간 장승>(새만금, 2000), <지구의 날 행사>(광화문, 2000), <어린이날 반딧불 솟대>(용산가족공원, 2000), <무주반딧불이 축제>(2000), 헤이그 COP6(헤이그 기후변화협약 6차 당사국총회에서의 <펭귄이 녹고 있다>(2000), 뉴질랜드에 마오리족과 함께 한 <생명솟대>(2001),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Rio+10’에서의 <남극이 녹고있다>(2002) 등 무수히 많은 국내외 환경 관련 모임에 현장미술가로 참여해왔다. 이 외에도 그는 ‘골프공화국, 곰 발바닥, 시화호와 정부, 위험한 쓰레기(대만 핵폐기물), 말풍선’ 등 이름만 들어도 환경 관련 주제인 것을 알 수 있는 환경 주제의 현장미술활동을 해왔다. 걸개그림을 비롯해서 입체 설치 작품과 환경운동 집회의 현장전시에 그 누구보다도 빈번하게 참여해온 것이다.
현장미술가 최병수에게 환경미술가로서의 지위를 가장 확고하게 다져준 것은 솟대 작업이다. 그가 새만금에 자리 잡고 갯벌 지킴이가 된 것은 2000년 봄에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는 장승제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70여개의 장승과 솟대를 세운 그 행사를 마친 후 그는 지역주민이 제공한 김공장 건물을 작업실로 사용하면서 부안에 둥지를 튼 환경지킴이로 살아온 것이다. 갯벌이 안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의 저 거대한 소우주를 그는 ‘현장미술가 최병수’의 터전으로 삼은 것이다. 2002년에는 서울 외곽을 휘돌아 북한산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에 반대해 공사장 입구에 망루 설치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 작품 <북한산을 그대로 둬라>(2002)는 ‘NO TUNNEL’이라고 쓴 플랙카드를 걸어둔 일종의 설치 작품이다. 그는 그곳에서도 북한산 지킴이 일을 하다가 용역 깡패들에게 기습적인 폭력을 당해 붕대를 칭칭 감고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최병수는 2003년의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에서 마련한 환경문화상을 받았다. 이 상의 심사위원단은 최병수에 대해 ‘환경을 외부적인 자연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와 인간 모두를 서로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문화예술이 지닌 미적 특성을 ‘삶’과 밀착시켜 예술을 더욱 고양된 단계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20년간 걸어온 이방인의 삶이 환경문화상 대상 수상자로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최병수라는 단단한 차돌맹이의 삶이 뒤늦게나마 우리 사회가 끌어안을 수 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가치임을 공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 해 전의 짤막한 에피소드는 지금까지도 현장미술가로서의 최병수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우연한 기회에 그와 잠시 광화문 쪽에 동행할 일이 있었다. 얼떨결에 그를 따라나선 나는 잠깐 동안이었지만 오랜만에 심난한 상황을 접했다. 광화문 앞 정부 종합청사 정문 앞에서 수경 스님이 새만금 살리기를 위한 일인 시위를 하는 현장에 그가 함께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짱뚱어 솟대를 수경스님 옆에 세워두었다. 잠시 후 출동한 제복입은 사람들은 유명인사 수경스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간섭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병수의 솟대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불허의 입장을 고수했다. 최병수와 그들의 짧지 않은 마찰이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명의 사람들에 둘러싸인 그는 거칠게 항의하며 솟대를 지켰다. 숨가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은 그는 끝내 일인시위를 진행하는 시간 동안 짱뚱어 솟대가 수경스님과 함께 서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현장미술가 최병수의 정체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어도 자기 삶에 대한 단단한 믿음을 바탕으로 10대 초반부터 삶의 현장을 몸으로 살아온 한 예술가의 거친 숨소리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그것은 풀과 꽃을 그리고, 숲과 강을 그리는 유행가 같은 환경미술이 아니라 생명의 문제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여 치열한 자기 고백을 토해내는 현장미술의 진한 체취를 담은 한 예술가의 살아 꿈틀거리는 숨소리였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부시 가면을 쓰고 오일 드럼통을 둘러맨 최병수를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노동, 환경, 생태, 생명 등의 문제들뿐만 아니라 평화, 민주 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핫이슈들을 그는 항상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그렇듯 치열한 현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 가을 위암 판정을 받고 큰 수술을 거쳐 경기도 가평에서 요양 중에 있다. 다행히도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하고 있어 머잖아 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홀몸으로 버텨온 40여년의 세월 한구석에 깊은 회한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를 돌보는 따뜻한 손길들이 많다. 새 삶의 희망을 찾아 차돌같이 굳센 삶을 지켜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시대의 질곡을 나약한 한 개인의 온몸으로 받아들여온 최병수 작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줄 때이다. 그의 공식 홈페이지www.jigubanji.com에 들러 게시판에라도 한 마디 안부를 전해야겠다.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2005/02/04 11:56 2005/02/04 11:56

기무사터에 현대미술관 세우기

artpd clip | 2005/02/03 19:03


기무사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세우자는 의견이 구체적인 실천단계에 돌입했다. 70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모처럼 미술계 전체가 뜻을 모아서 함께 한 목소리를 낼 일이 생긴 것.

너나 없이 "그 때 그 사람"들이 벌인 역사적 사건 이후 응급실로 사용되었던 기무사-국군병원 터를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으로 열어나가는 데 힘을 모을 때가 아니겠는가. 아래는 컬쳐뉴스의 기사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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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터 현대미술관 촉구 미술계 '단체행동'
[700명 미술가 참여 미술전 개최 예정]

서울 소격동 국군기무사사령부(이하 기무사)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위해 미술계가 단체행동에 나섰다.

미술계는 인사동과 사간동의 20개 화랑에서 2월 16일(수)부터 22일(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위한 미술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약 700명의 미술가가 참여할 계획인데, 작품 판매 값의 10%를 서울관 건립을 위한 각종 활동에 사용할 예정이다.

미술계는 지난해 12월 한국문화정책연구원(원장 이영욱) 등과 공동으로 ‘기무사 부지를 활용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한바 있다.

미술계가 이처럼 기무사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전시공간이 서울 도심이 아니라 과천에 떨어져 있어 미술인과 일반인은 물론 외국관광객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무사터에 현대미술의 중심이 되는 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데는 미술계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곳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들이 공존한다. 최근 유행하는 설치나 뉴미디어 미술 중심의 미술관으로 조성하자는 의견이 있는 반면, 회화나 조각 등의 전통적 방식의 미술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 일반인들에 대한 배려라는 견해도 있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현대미술은 자주 관람해야 이해도가 높아지므로 휴양지 개념에서 벗어난 친숙한 미술관이 필요하다”며 “도심에 현대미술관을 건설하는 것은 미술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숙원사업”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관장은 “서울관 설립이 결정되면 그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공청회를 거쳐 미술관의 입장을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5/02/03 19:03 2005/02/03 19:03

동아시아 헤게모니 이야기 : 서승 선생님과의 짧은 만남

artpd clip | 2005/02/01 14:41


지난주 토요일 오후 서승 선생님과의 짧은 얘기 시간을 가졌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앞으로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부드럽고 자상한 인품의 소유자로 보인다. 일본 강단에서 법대 교수로 계시는 분이지만 한국에 비교적 자주 오시는 편이고 특히 미술 쪽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 분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며칠전의 얘기는 동아시아 담론이 주제였다. 동아시아 담론.


나는 미술관 뮤지움토크 때문에 일찍 일어났는데,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한 최태만 선생님이 짧은 소감을 올리셨다. 상계학사 게시판에... 정준모 선생님의 답글도 있다.

최태만님의 글

때는 2005년 1월 29일 오후 두 시부터, 장소는 정동 세실레스토랑
서승 선생의 소집에 따라 몇몇 분들이 모여 서승 선생의 "동아시아 담론"을 경청하고, 난상토론식 토론을 가졌다.

서승 선생 말하기를, 일본은 자신의 입장이 불리할 때마다 '아시아'를 내세웠다.
결국 '아시아 담론'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 재편 프로그램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 담론은 헤게모니적이다.

그렇다.
언어로서 아시아는 이미 그리스시대부터 보스포러스 해협 너머 동쪽, 즉 터키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된 만큼 그 역사는 오래되지만
당시 그리스인들의 의식 속에 중국이나 한국, 일본 따위가 존재했을리 만무하다.
그런데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아시아란 말을 자주 사용해 왔고,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을 축으로 한 아시아주의의 정치적, 군사적 통합(엄밀하게 말해 일본의 동아시아지배와 동아시아 민중의 종속)의 표현이지 않았던가.

나는 문득 이런 의문을 갖는다.
아시아는 과연 실체인가, 이론 속에 존재하는 명목으로서의 대상인가?
토론을 마치고 돌아와서 내내 이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아시아의 연대, 그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에 맞선 아시아의 대응전략인가?
아시아연대는 유럽연합(EU)처럼 경제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는가?
일본이 '과거의 청산을 거부'하는 한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아시아의 연대에서 중국의 역할은?
설마 대동아공영권에 버금가는 중화주의로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하려 든다면...

기타 등등...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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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님의 답글

일본이 주창하는 아시아 담론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지난 날 내세웠던 대동아 공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약간의 수정만 있을 뿐이지.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경제력을 앞세워 또 경제가 어려울 때도 지속적으로 아시아 담론을 생산해 내었다는 생각입니다.
미술만 보아도 아시아 근대미술전이라든가 각종 행사들을 통해서 문화적으로 일본이 언제나 선진이었고 아시아를 영도 할 수 밖에 없다는 의식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아시아를 끌어 들이는 것은 일본이 신아시아 공영권을 어떤 형태로든 만들어 이를 무기로 중국과 대응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것은 아닐지.
일본친구들을 가끔 만나면서 세계화 국제화를 이야기하고 이런 일들에 무관심한 친구들을 보지만 간혹 아주 골수들을 만날때면 야 정신 바짝 차려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특히 자신들이 벌였던 전쟁과 살육과 약취의 시대의 이야기 접으면서 미국이 일본에 가한 원폭투하등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은 미 제국주의의 희생양임을 강조하는 태도 같은 것 말입니다.
따라서 미제국주의를 비판하다보면 일본의 신 대동아 공영권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왕왕 생기고.
아무튼 광주에 짓는 아시아 문화전당건도 문화수도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이에 우선해서 또는 이와 병행해서
우리의 아시아에 대한 연구와 인적네트워크 강화와 자료수집에도 눈을 돌려야 하구요.
일본의 변방이라할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아시아 미술연구를 위한 아시아 방방곡곡을 여행아닌 탐험한 이야기를 들으며 집만 짓는다고 아시아 문화센터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아시아 담론 이거 우리 입장에서는 뜨거운 감자이자 평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문제인듯 합니다. 조만간 한번 토론에 부쳐보지요.

퍼온 글은 상계학사 홈피에 있습니다.
http://www.forumcjc.com/board/zboard.php?id=freeboard&page=1&sn1=&divpage=1&sn=off&ss=
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63
2005/02/01 14:41 2005/02/01 14:41

살짝 공개 : 오아시스의 예술포차

lense & world | 2005/02/01 10:22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준비하고 있는 예술포장마차
엄동설한에 매주 수요일마다 문화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조장하고 있는 꽁치마담 부부.

이제는 길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할 계획이다. 요리와 음주와 아트가 함께 하는 거리의 문화예술음주공간임 셈이다.
쌈지 주차장 앞에 놓인 예술포차를 한 컷 찍었다. 빠르면 이번 주중에 시작할 예술포차의 전모를 살짝 공개한다. 가운데 원통형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분사하는 판낼들이 데이블 구실을 한다.
2005/02/01 10:22 2005/02/01 10:22

최평곤의 대나무 인간 연작

public art/art works | 2005/01/31 02:14


최평곤의 대나무 인간 연작

거대한 크기로 우뚝 선 대나무 인간. 최평곤 작가는 대나무를 엮어서 만드는 방법으로 다양한 인체 표현을 해왔다. 자연과 인공, 생태와 문명을 넘나드는 명상적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작품은 불굴의 주먹을 움켜쥐고 우뚝선 거인이었으며, 바다에서 걸어나오는 생명의 모태이자, 파랑새를 안은 따뜻한 인간이었다.
이제는 거대한 문인상과 무인상을 우리 앞에 우뚝 세워 놓았다. 이 두 작품은 지금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 서 있다.

<문인상> 2004

<무인상> 2004

<무인상> 2004 측면


<아가를 위하여> 2002년 부산비엔날레 때 해운대 해수욕장에 설치했던 작품이다.


<파랑새> 서울시립미술관에 설치했던 작품이다.
2005/01/31 02:14 2005/01/31 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