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컵 전시를 제안하는 글 020703

project/로컬컵 0208 | 2005/02/16 22:59


로컬컵 전시 제안하는 글
작성자 김준기 (artpd) 홈피 메일 쪽지 문자 선물 추가
번호 119 조회수 59 소스 크게
작성일 2002-07-03 오후 6:33:54

올여름 전시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로컬컵이라고......

지난해말에 문예진흥기금 신청했다가 떨어진 기획안인데,

월드컵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나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말씀들을 좀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말 : 광풍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광장공간에서의 새로운 놀이문화를 개발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광기만이 우리를 지배했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월드컵이 남긴 후유증을 차분하게 돌아보고 문화적 코드를 다시 읽어내야겠습니다. 세상 사는 것은 축구공 하나 가지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몰고 다니며 괜히 사람들 흥분시키는 게임과는 다른 엄중한 것이니까요. 근데... 게임이 현실을 지배하는 이 엄청난 힘을 어떻게 읽어야할까요?

한국의 첫번째 게임이 열리던 날, 개고기 월드컵이라는 파티로 문화월드컵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흥행실배...^^ 4강 진출 이전, 나는 국가 권력과 언론에 의해 조장된 애국심을 떠올렸다. 그런데... 정작 내가 광화문 거리에 섰을 때, 나는 그 거대한 축제의 한마당에 서서 숭고에 가까운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PIPA 2002 : LOCAL CUP

1. 개요
전시명 : PIPA 2002 : LOCAL CUP
Project in Public Anti 2002 : LOCAL CUP (공공연한 딴지 걸기 2002 : 로컬 컵)
전시장소 : 쌈지스페이스
일시 : 2002. 8.6-8.18

2. 기획의 의의 및 목적
1) 기획의 의의
전세계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글로벌리제이션의 발동 기구인 월드컵을 통해
전지구화가 문화적으로 함의하는 바를 미술의 시각에서 풀어내는 낸다.
2) 문제 제기
- 월드컵축구경기가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
- 광고 속에 나타난 스포츠 이미지와 현대적 주체 구성의 전략.
- 스포츠신문의 생존 전략과 대중 주체 구성의 전략.
- 스포츠 중계, 스포츠 뉴스의 담론 정치.
- 전지구적 다국적 스포츠자본주의 비판.
- 월드컵과 남성중심주의의 연관.
- 월드컵과 다문화주의 혹은 패권주의의 관계
- 월드컵 기간에 우리가 놓친 것들 : 지방자체 선거, 미군탱크 여중생 살인사건,
서해교전, 노동계의 현안들, 인권운동사랑방의 논평이 제기한 반인권적 문제 등등등
3) 전시의 주제
- 글로벌리즘에 관한 대안 문화
- 매스 미디어에 포섭된 대중의 실체를 읽어냄
- 전세계는 단일하게 묶일 수 있는가?
- 글로벌리즘에 관한 로컬의 문화적 대응
- 탈식민주의 문화적 실천
- 문화적 로컬리즘의 발현
- 글로컬리즘의 가능성 탐구 : 글로벌 + 로컬 = 글로컬의 전략 모색
- 한일 월드컵이 양국에 남긴 것
- 월드컵과 붉은악마 현상과 광장문화
- 획일화된 국가주의 애국심과 붉은 색의 정치학
4) 전시의 성격
- 가볍고 발랄하게, 월드컵 정국의 진지함을 넘기기
- 미술이 현실에 개입하는 방식 탐구 : '경험-보고-분석-행동'의 단계
- 다매체 시대 미술언어의 효력 검증 : 자본과 권력에 편성된 매체 전복

3. 추진 일정
7월 6일 작품 내용 확정 및 전시연출 계획 확정
8월 초순 홍보물 인쇄 및 보도자료 준비
8월 2일 기자간담회
8월 6일 오픈
8월 10일 작가와의 대화 또는 공연 또는 파티
8월 18일 전시 철수
8월 중 웹싸이트 제작 또는 출판물 제작을 통해 사후 정리작업 진행


4. 참여작가 (섭외 진행 중)
입체-설치 : .......

평면회화 : .......

영상-설치 : .......

사진 : .......

만화-애니메이션 : .......

기타 : 그래픽디자이너, 방송국PD 등등등......
2005/02/16 22:59 2005/02/16 22:59

열심히 작업하는 당신, 떠나라 : 0209 미술세계 기고문

public art | 2005/02/16 22:54


<개인전>을 주제로 한 <미술세계> 9월호 기획 꼭지 중의 하나로 실린 기고문입니다. 요즘 방송가 토크쇼에서는 모든 연예인들이 한 두 가지 쯤, "개인기"라는 이름의 재치들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의 본업 자체를 널리 알리는 데, 장애가 될 정도라는데......

미술판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인전'이라는 제도틀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지요. 가수들의 콘서트가 파워플하게 대중들을 사로잡는 기구라면, 도대체 미술판의 개인전은 무엇일까요. 수많은 개인전들이 명명해 가지만, 인사동 대관 전시장들과, 저 푸짐한 인쇄물들, 언론과 상업화랑, 작가, 큐레이터들 등과 얽힌 이 먹이사슬의 정교함 앞에서, 개인전이라는 관문을 끊임 없이 반복하는 우리 미술판은 과연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짧은 글로 다 해명할 수 없었지만, 그냥 저의 단상 한 조각이라도 보태보았습니다.

열심히 작업하는 당신, 떠나라

김준기 가나아트컨설팅 공공미술팀장 artpd@freechal.com

개인전이라고 하는 제도틀에 관하여 짦은 언급을 하려니, 우선 답답해진다. 한국미술계에서 적어도 지난 20여년 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이 민중미술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공공미술 등의 이름으로 전시장이라는 공간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왔건만, 아직도 대다수의 개인전은 모더니즘 예술의 체계적 분화 시스템 아래 놓여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예술의지에 가득찬 작가가 작업실에 앉아 고독한 예술혼을 불사르고 한 일년이 지나 그 결과물을 백색의 사각 공간에 들고 나와 동료미술인들과 언론과 컬렉터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은 후 유유히 구중심처 작업실로 사라진다는 그- 개인전 말이지?"

"그렇-습니다!"

전시를 한다는 행위는 자신의 예술행위를 대사회적인 발표의 장에 내어놓음으로써, 자신을 알리고 관람-해석-비평의 대상이 되게 함은 물론 모종의 거래를 위한 기본틀이기도 하다. 개인전은 예술가 1인이 자신의 의지와 감성에 따라 창작하고 그 결과물을 공개하는 사회적 행위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만인 "개인적인 전시"가 아니라는 뜻인데, 여기에는 전시의 사회적인 기능과 역할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라는 범주에까지 이르는 포괄적인 함의와 전시라는 행사에 대한 효과 검증의 필요성도 전제되어 있다. 적어도 '예술을 통해 공동체의 공익에 기여'한다는 공동선의 의지를 바닥에 깔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개인전의 방식은 다분히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전시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해답은 쉽게 나온다. 거기에 따라 전략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개인전은 작가 자신이 뜻한 바대로 고도의 시각이미지 게임을 펼치면서 관객과의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적-시간적 장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타겟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중요하다. 작가들은 나이가 들면서 전시의 목적을 어느 한 곳에 집중할 것이다. 판매목적의 상업화랑 개인전인가, 아니면 이미지 업그레이드용 개인전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대부분 전자를 선택하면서 점점 그 참신성을 잃어가는 게 수순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대목에서 진정으로 권면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전시를 하려거든 먼저 개념을 확실히 설정한 후 그 개념을 풀어나갈 시각예술적 방법과 규모와 장소를 선정하는데 있어 제1의 원칙을 관람자로 두라는 점이다. 개인전의 전략적인 대상으로 관람자를 배려해야 하다는 점은 너무나 지당해서 하나마나한 얘기겠지만, 의외로 대부분의 개인전들은 아는 사람만 아는, 혹은 작가 자신만 아는 코드로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대부분 재미있으라고 만든 것도 아닌데, "작품, 재미있네요..."라는 접대용 멘트를 난무하게 만든다. 특히 몇몇 동료 미술인들, 언론과 화랑이나 미술관의 관계자들이 모여드는 개막 당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작가와 전시공간 관계자들이 전문화된 미술역역의 종사자 이외의 관람자들과 호흡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그 짱짱한 아방가르드의 실험들이 미술영역의 확산과 개념적 확장에 매진해왔으며, 헌신과 저항으로 시대를 역행했던 현장미술의 실천들이 문화적 개입과 현실인식을 통해 현장참여를 이루어왔고, 어떤 통큰 미술가들은 행위와 과정으로써의 미술을 강조함으로써 미술가의 활동반경을 넓혀왔고, 다수의 미술인들이 출판, 인쇄, 생활미술, 방송, 영상 등은 물론 사회 각계에서 시각이미지생산자로서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여전히 전시장미술을 개인전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얼마전 모 대학의 대학원의 석사학위청구전 얘기를 들었다. 웹상에서의 사이버 전시는 개인전으로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학위청구를 위한 전시실적과는 거리가 있다는 관행 때문에 어쩔수 없이 전시장에서 물건덩어리의 전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 제도틀은 이렇듯 완고하다. 그러나 창의력이란 제도틀을 부수고 새로이 만드는 데 쓰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80년대 현장미술은 이미 그러한 틀을 넘기 위한 숱한 전례들을 남겼다. 전시장 안팎의 여건을 살리는 장소특수성(site specific)의 발현이나 회화와 조각은 물론 설치 퍼포먼스 개념미술 뉴미디어아트 웹아트 등 모든 시각예술의 영역을 동원하여 삶의 영역의 주요 이슈들과 접합된 예술행위를 지향한다는 뉴장르퍼블릭아트의 캐치프레이즈 또한 전시장미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들이다. 이제 전시장이라고 하는 제도 공간을 고집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열심히 작업하는 당신, 제발 떠나라!"

"세상은 넓고 전시할 곳은 많다!"
2005/02/16 22:54 2005/02/16 22:54

오뉴월 세대의 꿈 : 열광 속에서 냉소를 안고 사는 세대들의 정체성 020828

critic & column | 2005/02/16 22:52


<문화연대신문> 9월호에 기고한 수필입니다.

오뉴월세대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음...... 오뉴월이라...... 함 읽어보세요...... 동감하실지 거부감을 가지실지 모르겠군요. 허심탄회한 코멘트를 붙여주셔도 좋습니다.

<나의 삶 나의 예술>
오뉴월 세대의 꿈 : 열광 속에서 냉소를 안고 사는 세대들의 정체성

김준기, 가나아트컨설팅 공공미술팀장 artpd@freechal.com

나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지난 6월 22일에 내놓은 논평의 덕을 좀 봤다. 지난 연말에 문예진흥원에 기획전 후원기금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현장2002 : 로컬컵> 전시기획안을 6월들어 다시 만지작 거리고 있었는데, 이 논평을 계기로 보다 구체적으로 일을 꾸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붉은 악마'를 부추기자 말라>는 제하의 이 글은 "월드컵 열기에 나라가 온통 미쳐 돌아가고 있다"로 시작해서 "더 이상 부추기지 말라, 우리게 진정 필요한 것은 '필승'이 아니라 '인권'이다"라는 문구로 끝을 맺은 짧은 글이었다. 네티즌들은 순발력 있게 반박하기 시작했고, 며칠 후 인권운동사랑방은 논평에 대한 부언의 글을 통해 "우리의 비판의 대상은 시민들이 아니라 국가주의 망령을 주목하자는 것이며, 자본·권력·언론의 삼위일체가 붉은 악마 현상을 기획하고 있고 지식인들이 여기에 부화뇌동하고 있다"는 논지의 비교적 상세한 글을 올렸다.

이 논쟁을 지켜보면서, 당시 몸으로는 열광하면서도 머리로는 냉소하고 있던 내 착잡한 심정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한국의 첫 경기가 열리던 날만 해도 나는 문화월드컵(?)을 지향하며 홍대 앞 대안(없는) 공간 <十月>에서 <개고기 월드컵>이라는 파티를 기획했었다. 어느 유명한 보신탕 집에서 개고기를 배달 받아서 먹으며 월드컵을 지켜보는 행사였다. 글로벌한 월드컵이 로컬한 문화(그 대표적인 이슈가 된 개고기 문화)에 대해 가하는 폭력을 경계의 끈을 놓지 않고 보자는 취지였다. 15명 정도가 모여서 한국의 첫 경기를 관람하며 조촐하게 파티를 진행했는데, 어쨌거나 집에서 캔맥주 놓고 보고 앉아 있기에는 시작부터 심상찮은 유월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로컬한 문화월드컵 기획은 '대∼한민국'의 '필승' 구호 아래 여지없이 무너졌다. 포르투갈전 때부터 나는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 앉아서 20대의 빨간 악마들과 축구 구경과 사람 구경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세 게임 네 게임이 지나면서, 점점 착잡하게 초라해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코리아팀의 한 골 앞에 얼싸안고 기뻐하며 소리지르는 것은 몰라도, 이후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도 경찰의 노란 경계선에 순종하는 군중들,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로 정리되는 축제의 단순함, 언론과 자본의 기민한 월드컵 마케팅을 접하면서, 조금씩 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나를 더욱 더 초라하게 만든 것은 그 즈음 10여년 전의 박종철을 묘사해낸 텔레비전 드라마였다. 텔레비전이 만들어내는 여느 회고담들에 비해 매우 탄탄한 그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난 후, 나는 빨간 색과 태극기의 물결을 회의하기 시작했다. 월드컵 정국에 처참하게 일그러진 투표 행태를 보인 지자체 선거, 미군 장갑차에 압살당한 꽃다운 두 여중생, 서해교전을 통해 드러난 엄연한 냉전의 논리들, 국운융성 프로젝트 앞에 외면당한 민생과 생존권투쟁 등...

이 모든 것들이 제도가 만들어낸 글로벌 이벤트 앞에 열광하며 순응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 나에게 어찌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했던 것이다. 쇼비니즘에 기댄 거대한 욕망 배설의 현장에서 망둥이 따라 꼴뚜기 뛰듯 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렇듯 열광 속에서도 냉소를 안고 사는 분열적 상황의 나는 지난 10여년을 '80년대의 사생아'로 지내왔다. 80년대의 후폭풍을 맞은 세대로서, 어줍잖은 386세대의 한 사람으로서의 세대 정체성은 파편화된 일상의 고리 속에서 제도의 품속으로 안겨들고 있었다. 깃발 꽂고 나를 따르라 외치던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지나갔다고들 하니, 당연지사 새로운 담론 생성이 지지부진해졌고, 열린 공간의 장이 줄어 들어갔으며, 강고한 대오의 네트워킹이 사라져간 시대를 살면서 어정쩡하게 제도공간 속에 자리를 잡으며 그 지리멸렬한 90년대를 건너왔다.

나는 386세대의 이러한 파편과 분열의 정신적 공황 상태에 대한 해답의 일말을 <로컬컵>전 참여작가들에게서 읽어낼 수 있었다. 86학번 김대리가 시청광장 옆 옥상에서 붉은 물결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페인팅과 87년의 시청 앞과 2002년의 시청 앞을 교차시킨 동영상 작업을 선보인 박영균의 작업.

이부록은 탐구생활부록 연작에서 거리응원, 광장문화, 월드컵이라는 컵 등에 관한 에피소드를 재치있게 풀어냈다. 또 매체에 의해 증폭된 월드컵의 실체를 엮어낸 김창겸의 비디오 작업과 한국사회의 레드 컴플렉스와 보수언론의 기민함을 부각한 사사의 사진작업은 방송과 신문의 증폭역할을 부각시켜냈다.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에 이르는 이들은 월드컵 현상을 단순히 축제로만 읽지 않은, 혹은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열광과 순응의 2002년 유월을 헌신과 저항의 80년대 코드와 접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가 70년대에 태어난 20대이건, 50년대에 태어난 40대이건 간에 순응과 저항의 대립 선상에서 유연하면서도 강고한 저항의 코드를 엮어낼 줄 아는 이른바 '범386세대'들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80년대 세대'라는 느슨한 그물망을 생각해보다 나는 이들을 '오뉴월세대'라고 부르기로 했다. 오월광주와 유월항쟁이 남긴 저항코드를 현재진행형으로 풀어내는 사람들, 그들은 서릿발같은 오뉴월세대다.

농반진반으로 오뉴월세대라는 말을 지어내면서, 사생아의 악몽을 조금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박불똥과 박영균과 조습을 함께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뉴월세대의 꿈이다. 이들이 말을 만들고 마당을 열고 그물을 엮어나가는, 오뉴월세대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뱀발 : 고마운 월드컵은 나에게 '운전면허취소'의 취소라는 쑥스러운 부록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꿈★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교훈도 남겨주었다. 하여 나는 얼마전 <로컬컵> 오픈 뒷풀이 자리에서, 80년대 후반기 학생미술운동을 주도했던 한 선배를 만난 김에, '이제 80년대의 중심세대인 당신이 움직일 시점이 되었다'고 말해 버리고 말았다.
2005/02/16 22:52 2005/02/16 22:52

현장미술은 여전히 가능한가 : 030528

public art | 2005/02/16 22:44


현장미술은 여전히 가능한가

열풍처럼 반전이슈가 지나갔다. 저 추악한 기름전쟁이 몇 달에 걸쳐 각본대로 수순을 밟더니 마침내 비디오게임같은 불꽃이 CNN의 앵글을 타고 안방에 찾아들었 때, 우리는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상처투성이의 이라크를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회의에 젖어들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인류보편의 가치 앞에서 미술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전혀 준비된 바 없이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몇 달이 흐른 후 이제 한 숨 돌리고 돌아보니, 어디선가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있었다. 2003년 봄을 거치면서 우리미술계에 남겨진 파편들을 어떤 맥락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

현장미술과 전시장미술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사안을 만났을 때,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대목에서 다시금 현장미술과 전시장미술의 역동을 돌아본다. 80년대 전반기, 현발, 임술년 등과 같이 비판적 리얼리즘을 미학적 잣대로 삼았던 일군의 미술가들과 더불어 '공동체적 신명을 회복하여 현실 속에서의 일상성과 현장성을 구현'하고자했던 광자협과 두렁이 있었다. 이들 두 가지의 지향을 놓고 전시장미술과 현장미술로 갈래지었던 시기가 있었다. 양자는 10여년에 걸쳐 노선의 다름과 같음을 확인하면서 한 시대를 일구었다.

전자는 담론의 생산과 실현의 장으로 기능하여 일상 속에 편재한 권력의 함의를 파헤치고 계급계층의 정체성을 들춰내는 데 주력했다면, 후자는 구체적인 상황으로서의 현실에 대해 문화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현장성을 획득하려 했으며,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현장과 그곳에서의 이슈에 대해 전향적인 참여미술의 형태로 현장미술을 지향했다. 전시장미술의 가치 지향은 대체로 미술시스템이 요청하는 바대로 우여곡절 끝에 몇몇 민중미술 스타를 배출하는 것으로 귀결되었으며, 일부 현장미술마저도 1994년에 과천에서 장례식을 치른 바 있다. 지난 봄 반전열기 속에서 많은 수의 미술문화 생산자들이 숨죽여 자신의 정체를 돌아보아야만 했을 때, 현장미술에 투신해 열정을 불살랐던 그 많은 익명의 다수 (옛)미술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나의 패션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닌 바에야 특정 이슈를 만났을 때, 현장미술을 지향한 미술가들의 가치를 재고하는 일은 필수불가결의 일일 것이다.

80년대 후반기에 현장미술의 전성시대를 열어나갔던 가는패, 엉겅퀴, 활화산, 둥지, 작화공방, 여성미술연구회, 노동미술위원회, 노문연, 흙손공장, 우리그림, 수문연, 광미공과 같은 크고작은 현장미술가들의 모임, 그리고 민미련으로 크게 묶였던 지금우리는, 열린패, 색올림, 낙동강, 일그림터, 부산미술연구소, 겨레공방, 시매연 등의 창작소그룹과 청미공에서 학미련으로 이어진 학생미술운동 등의 전설같은 이름들을 기억해본다. 거리에서, 공장에서, 농촌에서, 대학가에서, 그리고 전시장에서 현실비판과 현장참여를 일구어냈던 이들이다. 목판화, 걸개그림, 벽화, 만화, 사진, 출판미술, 생활미술에 이르는 매체활용의 다변화 속에서 프로파간다의 전성기를 열었던 그들이다.

월드컵이라는 전지구적 규모의 스포츠마케팅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자발적인 광장참여형 대중으로 조직화해내고 있을 때 미술 또는 문화 영역에서 제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던가. 여중생의 희생에 뒤이은 촛불시위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시각이미지 생산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던가. 이라크전쟁이 터져 온통 반전과 파병반대의 여론이 번져나갈 때, 미술가들은 생활인들로부터 일부 위임/부여받은 인류 정신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의 책임을 토대로 인류의 평화와 인권에 대해 그 어떠한 비젼을 제시할 수 있었던가.

여러 가지 미술과 공공미술 혹은 바깥미술
한 시대의 절정 이후, 모두들 흩어졌다. 그 자리에 '여러 가지 미술'이 종다양성을 구가해왔다. 이것이 90년대 미술이 남긴 미덕이다. 새로운 감수성에 기반을 둔 여러 가지 미술들은 타라, 난지도 메타복스 이래 황금사과에 이르는 소수자 창작소그룹들의 지난한 창작실험들이 남긴 성과의 한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거대담론과 중앙집중적인 미술가 조직의 큰 물결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개별과 파편의 시대를 견뎌낸 386세대 미술가들의 치열한 몸부림의 소산이기도 하다.

기성 미술시스템의 후기적 양상으로 출현했던 나이브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소박함에서 비판과 저항의 태도를 견지한 탈현대적 전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미술로 집약되는 이 시대의 흐름은 감성과 소비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코드를 개발해왔다. 그 가운데 근래에 들어 더욱 유력해지고 있는 것이 이른바 공공미술 혹은 바깥미술이다.

'Public Art'라는 이름으로 수입된 이 흐름은 장소지정형 미술흐름, 현실개입으로서의 공공적인 미술행위,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발생하는 참여미술의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예술을 통한 공동체의 건설이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적절한 표현, 나아가 공공의 의제를 설정하는 미술가의 지위에 대한 접근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설치, 퍼포먼스, 개념미술, 혼합매체미술 등의 새장르아트들을 끌어들여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고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미술을 강조하기도 한다. '새장르공공미술'로 불리우는 일련의 흐름들이 여러 가지 미술의 종다양성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 있다.

공공미술(논의)의 함의는 새로운 패션의 미술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기 보다는 미술(가)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한 가지 발상의 전환을 모색해야할 지점이 있다.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가까운 과거에 존재했던 현장미술에 대한 재평가와 현재적 맥락화 작업이 그것이다. 과연 오늘날 우리가 (새로운)공공미술이라고 부르는 것과 지난 시기의 현장미술 양자는 서로 다른 맥락의 별개인가. 올봄 우리는 반전평화 미술흐름을 지켜보면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잇는 몇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새로운 현장미술 흐름
이라크 전쟁을 전후로 고조되었던 반전평화 흐름과 함께 한 미술 프로젝트들은 리얼리즘, 현장미술, 포스트모더니즘, (새로운)공공미술 등의 잣대들 가운데 어느 하나로 규명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바그다드 현지에서 걸개그림을 그리고 퍼포먼스를 한 최병수, 촛불시위 현장에 캐릭터인형들을 들고 나선 박건웅, 놀이터에서 시민들과 함께 피스마크를 새긴 김영현 같은 현장미술 프로젝트를 비롯해, 여러 대안공간 갤러리에서 불특정 다수의 엽서를 수집한 <반전엽서전>, 참여진행형 프로젝트로 반전아트를 모아낸 , 온라인을 활용해 미술가들과 시민들의 그림들을 모아서 출판으로까지 연결한 <아트무브닷컴> 등의 온오프라인 상의 전시프로젝트 등 다양한 방식의 미술실천들이 문화적 생산과 수용의 진폭을 워낙 폭넓게 교란해 놓았기 때문이다.

1987년 <이한열 열사도> 이래 지속된 현장미술가 최병수의 미덕은 삶자체를 내맡긴 실천가로서의 면모였다. 십수년간 민주화, 환경, 반전 등을 주제로 현장미술 활동을 지속해온 최병수는 반전평화팀에 합류해 바그다드에 다녀오기도 했으며, <오일깡패> 퍼포먼스, 걸개 <야만의 둥지>, <너의 몸이 꽃이 되어>와 같은 작업을 진행했다. 떠오르는 샛별 미술가 박건웅의 반전인형 프로젝트는 그 발상과 실천의 방식이 가히 미술동네의 뭇 허장성세를 잠재울 만했다. 목판화 형식의 그림들로 이루어진 장편극화 <꽃>을 출간한 만화가 박건웅은 유관순, 부시, 노무현, 전투경찰 등의 인형을 제작해 촛불시위에 참여하면서, 반전시위에 참여한 대중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그는 오는 6월13일의 시위현장에 대규모의 퍼포먼스와 인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미공 활동경력이 있는 386세대 미술가 김영현은 피스마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공문화개발센터 URART를 이끌며 거리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그는 홍대앞 놀이터에서 피스마크 만들기를 진행했다. 이라크 사막을 상징하는 모래를 뿌리고 그 위에 선인장을 심은 후 조약돌에 반전의 이미지들을 그려 피스마크를 새기고 촛불을 밝혔다.

문화연대 문화행동센터를 중심으로 진행된 <반전엽서전>은 대안공간과 갤러리들을 중심으로 엽서를 배포한 후, 시민대중들의 그림과 글이 담긴 엽서를 전시의 형태로 펼쳐보였다. '부시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주제로한 이 기획에 많은 수의 예술인들이 참여했으며, 시민들과 어린이들의 반전 열기를 담은 재미있는 작품들 다수가 출품되었다.

A4에 담는 반전아트(Art for No War)를 기치로 조직적인 미술참여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 미술인들의 순발력과 재치를 끄집어낸 은 <까페시월>과 에서 온-오프라인 상의 참여-진행형 프로젝트로 열렸다. 반전관련 현장미술들이 사진자료로 소개되었으며, A4용지 드로잉 뿐만 아니라, 컴퓨터그래픽, 페인팅, 드로잉, 입체, 만화, 영상, 퍼포먼스 등 서울-인천-광주-LA-파리에서 보내온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아트무브(www.artmov.com)는 전쟁이 터지기 훨씬 전에 반전프로젝트를 진행할 정도로 일상적인 '온라인상에서의 미술행동'을 지속해온 사이트이다. 옛 민미련 성원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웹은 21세기형 걸개'라는 점을 십분활용하는 그룹으로 잘 알려져있다.

조직적인 미술운동을 펼치며 한 시대와 맞장뜨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렇다고 분출하는 에너지를 담아 답답한 문명의 시스템에 야성의 절규를 끌어내는 열정의 시대도 아니다. 그저 평온하기만 한 미술동네가 아니었던가. 미술시스템이 허용하는 시각의 장에서 이미지권력 게임에 몰두해 있었던 것이다. 올 봄, 우리 미술계에 찾아든 반전평화의 열풍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현재의 좌표와 역량을 점검해보는 바로미터같은 역할을 했다. 미리 준비하고 점검해보아야 한다. 현재의 시각이미지 환경 속에서 "현장미술은 여전히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식의 열풍들은 멀지않은 미래에 우리 앞에 생생한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민족의 생존과 아메리카의 패권주의, 생태와 인권, 신자유주의와 전지구화의 문제 등 시각예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탐문해 들어올 저 섬득한 의제들이 목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지 않은가.
2005/02/16 22:44 2005/02/16 22:44

두벌갈이 10주년 전시 서문 : 십여년을 돌아보고 세벌갈이를 이끌어낼 데에 대하여 030806

critic & column | 2005/02/16 22:38


십여년을 돌아보고 세벌갈이를 이끌어낼 데에 대하여
김준기(예술학,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

아메리카. 우리사회는 그동안 이 네 음절의 단어에 대해 깊이 말할 수 없었다. 미문화원을 점거하고 나선 사람들의 처절한 저항을 접할 때만해도 우리는 군부독재와 아메리카를 세트로 묶어놓는 것에 그쳤다. 저 흉악한 윤금이 사건을 비롯해서 수십년동안 매향리에 떨어지고 있는 폭탄세례 등 점령군(U.S Army)의 폭거들도 분단상황의 어쩔 수 없는 고충으로 이해하고 넘겨야했다.
아메리카에 대한 이러한 반쪽짜리 인식은 뜻밖에도 감성코드에 의해 온전한 것으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놓고 한 차레 소동이 생기면서 이제는 반미도 하나의 패션이 되었다. 대중(mass)에게 파고드는 미디어의 파급력은 실로 위대했다. 감성코드에 호소하는 형태의 대중집회인 촛불시위는 반미를 운동권의 전유물에서 시민의 것으로 전화시켰다. 정치적인 의식을 통해 보아왔던 아메리카의 모습을 스포츠나 촛불시위 같은 일종의 대중환각의 미디어를 통해서도 감성적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됨으로써, 반미가 대중적 기호로 각인된 것이다.
두벌갈이가 '아메리카 제국주의'라는 주제를 내건 것은, 이런 점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논의는 올 봄 이라크 전쟁을 통해 논의된 반전평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반미 없는 반전 없다'는 명제를 의제로 선택한 것이다. 아메리카의 문제를 '한반도의 상황만이 아닌 전세계의 차원으로 이해'하고, '맥도널드나 코카콜라 같은 다국적 자본, 아메리칸 인디언, 보수기독교' 등에 얽힌 세부 상징체계를 드러낸다는 이들의 회의록을 보면, 이들의 이번 전시는 아메리카에 관한 21세기 초반의 시대적 기록이나 증언으로서의 가치를 전제하고 있다.
두벌갈이의 이번 전시 의 주된 관심사는 주제의식의 선명함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식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작가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직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훨씬 어려운 주제를 잡은 것이다. 기실 민중미술 이래 아메리카의 시각적 상징체계가 반미의 기치아래 광범위하게 위해를 당해왔으며, 그 작품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80년대의 도상들이 아니던가.
작품들을 통해 두벌갈이의 십여년 연륜을 확인하는 일은 비워두고 넘어간다. 보여주는 이들과 보는 이들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은 이 전시가 열리고 나서의 나중 얘기이다. 대신에 두벌갈이의 짧은 역사를 지켜본 사람으로써, "십여년을 돌아보고 세벌갈이를 이끌어낼 데에 대하여" 그 머리말 정도를 꺼내놓고자 한다.
두벌갈이는 올해로 창립11주년을 맞이해 아홉 번째 정기전을 여는 '젊은 80년대세대 미술가 모임'이다. 90년대 초반에 사회로 나온 이들은 '80년대 민족민중미술의 지평 위에 새로운 결실을 맺기 위해 갈아 놓은 땅을 다시 한번 갈아엎어야 한다'는 계승의 관점을 견지했다. "민중미술, 계승이냐 전환이냐"라는 유명한 토론회가 열릴 즈음, 이들은 계승을 선택하며 계승의 주체를 자임하고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의 취지문을 압축해서 짧은 문장으로 풀면 이렇다.
"첫째, 개인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동체의식 속에서 개인창의력의 발전을 추동하고, 둘째, 삶의 모습에서 출발하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을 지향하며, 셋째, 삶의 체험과 관찰을 통해 파악된 현실의 변화를 적극 반영하고, 넷째, 사회 모순과 문화의 흐름을 파악하여 다양한 조형어법을 모색하며, 다섯째, 민족민중미술인들과 연대하면서 미술의 소통방식과 다양한 실천을 모색한다."
이들은 1993년 정기전 서문에서, 80년대 리얼리즘미술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의 상황들은 자신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스스로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민족민중미술의 다음 세대가 아닌가한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이듬해의 전시서문에서도 심광현은 '빈곤과 폐쇄성에 갇히기 쉬운 미술의 지평을 '두번갈아' 풍부하고 개방된 실험의 지평으로 전화시키는 작업'을 강조하고 있다. 2000년의 정기전 <가리봉역에서 청량리역까지>에서는, 내용적인 면에서 개별작업의 모듬전이 아니라,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창작을 모으는 '주제기획전'으로 되돌리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작게는 재료의 다양화에서부터 대중들과 친근한 매체를 활용하자'는 논의를 피력하고 있다.
2003년 정기전을 여는 두벌갈이는, 재료와 매체에 얽힌 최근의 기류에 관해서 그들 스스로 확인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곁에서 보기에도 숙명적인 자기 갱생의 기로에 서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많은 것이 변화했지만 80년대 유산을 받아든 두벌갈이에게 있어 변화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변하지 않은 두벌갈이의 위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형상회화를 하는 젊은 미술가들의 모임'이라는 점이다.
현재의 구성원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미혜, 김윤환, 김재석, 김재화, 김천일, 박영균, 박은태, 방정아, 심규섭, 이주희, 이해직, 임영선 등을 비롯하여, 김시영, 이병창, 김현숙, 노재영, 양철민, 이상권, 장호, 차성건, 홍준기 등 20여명의 작가들이 있다. 그동안 전시에 참여했던 김윤경, 김재환, 박건웅, 유기호, 이경복, 이경신, 최은하, 최호철, 한용권 허창훈 등의 작가들을 생각해보면 그 면모가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들 작가들이 대부분 20대 초반부터 학생미술운동과 노미위 등의 현실참여적인 지향을 실천해왔으며, 지금껏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각성을 거듭해왔다는 점 잘 알고 있다. 또한 형상회화의 가치에 대해서 설치미술이나 사진영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의 높낮이를 가질 어떠한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필칭 '형상회화'라고 하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10여년을 버텨낸 이들의 행보에 대해서는 절반의 찬사와 절반의 아쉬움을 함께 보낸다.
형상회화그룹이라는 규정이 두벌갈이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은 애초에 민중미술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나섰던 시점의 취지에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두벌갈이는 형상회화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속해나갈 모임이 아니다. 민중미술의 계승자로 자임하고 나섰다는 것은 80년대 미술이 이루어낸 매체와 영역의 확장이라는 열매를 이어받아 더욱 폭넓게 예술의 종다양성을 구가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초심을 명확히 짚어내는 것이 두벌갈이에 대한 일각의 편협한 규정을 일소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광자협과 두렁과 현실과 발언, 서미공 등이 70년대식의 한 가지 미술에 반기를 들고 나서서, 여러 가지 미술의 가능성을 열어낸 것. 이것이 80년대 민중미술의 핵심이 아니었던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80년대의 유산은 하나가 아닌 여럿을 지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두벌갈이의 암중모색은 민중미술의 계승자를 자임하고 나섰던 90년대의 초반 상황이 오늘날에까지 지속되고 있는 데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낙맥상일 수도 있지만, 그들 자체의 변화의 몸짓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바로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두벌갈이를 넘어 세벌갈이, 네벌갈이, 여러벌갈이를 이끌어낼 때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 나타나는 매체의 확장과 도상의 폭넓음은 두벌갈이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세벌갈이의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다. 계승이냐 전환이냐를 논하던 것도 어느덧 10여년 전의 얘기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테제가 있다. 바로 소모임의 중요성이다. 두벌갈이의 존재 자체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바로 그것, 소모임의 자생성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또래들이 활발하게 토론하고, 교류하며, 스스로들 열린 마당을 만들어나가는 데서, 새로운 출발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끌어올 수 있다.
21세기 초반의 두벌갈이가 80년대 선배 미술가들과 어떠한 차별성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젊은 80년대세대 미술가들'이 이 시대의 감성과 의제를 따라잡는 길은 다시금 소모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이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고, 작가들의 작업실을 돌면서 오프라인 모임을 열고 있다. 이미 자신의 새로운 출발을 절반 이상 이루어놓고 있는 것이다. 10년 묵은 소모임 두벌갈이를 다시금 주목하는 이유. 그들 자신이 갈아놓은 땅을 다시 한 번 갈아 엎는 세벌갈이를 이끌어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벌갈이 홈피의 본문 주소 http://dubeolgali.jinbo.net/2003/2003gallery-main.htm
2005/02/16 22:38 2005/02/16 22:38

프랑스 디종에서 서울 창동으로 온 화가 김성수

artpd clip | 2005/02/16 20:17


화가는 어떤 이유로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가.
오늘 프랑스 디종에서 서울 창동으로 온 화가 김성수를 만났습니다.
거대한 건물 벽면과 의뭉한 현대인을 그리는 화가 김성수.

디종에서 온 화가 김성수. 그를 만난 것이 거의 20년 만의 일입니다. 20년 가까이 서로 연락도 못하고 지내다가 문득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아련히 멀어져있던 10대 후반의 옛사람을 만나고 보니 이런 걸 두고 격세지감이라고 하지요.

저와 그는 부산에서 같은 교등학교를 한 해 차이로 졸업한 고등학교 동문입니다. 부산의 그 유명한 명문... "경남고등학교!!!"... 맞은 편에 있는 "동아고등학교!!!"... (동아고등학교는 말이죠, 안창홍, 이종빈 등을 배출한 유명한 학교인 거죠~) ... 김성수 작가와 저는 바로 그 유명한 "동아고등학교" ... 옆에 있는 "대동고등학교"를 졸업했지요. ... 미술부 선후배 사이로 열여덟 어린 시절에 만났던 김성수. 그는 유난히도 재주와 감각이 좋았습니다.

김성수 작가는 지금 프랑스 디종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 동안은 창동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한국에 와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화가 김성수를 여러분께 제대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작품에 대한 이해와 맞닿아있다는 생각... 김성수라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접근과 어떻게 맞아 떨어질지 저로서도 사뭇 궁금하니까요.
2005/02/16 20:17 2005/02/16 20:17

너에게 새겨주마 : 김준의 "소셜 타투"

artpd clip | 2005/02/15 11:52


"너에게 새겨주마, Tattoo tou!!!"

문신쟁이 김준이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들고 나오는 올봄의 신작들은 "소셜 타투" 연작이다. 여기 그의 작업실에 갔다가 찍어온 작업중인 소셜타투 몇 컷을 미리 공개한다. 더불어 올봄의 개인전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기대하시라, 김준의 소셜타투...

김준 개인전 Tattoo You
장소 : 사비나미술관 전관, 기간 : 2005. 5. 4(수) - 6. 18(토)
출품작 : 3D 컴퓨터 그래픽 출력물과 동영상, 타투 퍼포먼스 및 현장 오브제, 사진, 영상

인체에 시각 이미지를 각인하는 문신의 사회화된 형태를 사회적 문신으로 규정함으로써 세대, 계층, 직업, 성 등의 기준에 의해 구분되는 기호와 취향의 차이를 보여주며 그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성을 통해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는 복합적인 개념의 작업들을 선보인다. 김준은 올봄 개인전에서 3인 이상으로 구성된 인간 그룹의 하반신을 보여주는데, 이때 화면의 구성 요소는 패션, 스포츠, 영화 등의 대중문화에서 따온 색의 요소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전시 구성의 기본은 어린이, 청년, 장년 세대로 구분하여 전형적인 이미지들을 창출하며 이 속의 요소들이 서로 뒤섞이기도 한다.


Social Tattoo
문신 작업의 확대 재생산으로서의 소셜 타투 작업은 각기 다른 세대의 소비문화를 변용해서 적용하고 혼성함으로써 여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문화적 체험과 새로운 생산에 주목하는 구성을 이룬다.

Painting - one source multi use
컴퓨터 마우스로 형상을 만들고 색채를 입히는 마우스 페인팅 작업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브러쉬 페인팅을 대체하는 기법 실험의 성과를 제시한다. 하나의 소스를 실사출력, 인화지출력, 프로젝션, 모니터 등의 여러 출력물로 보여준다

타투 페스티벌
전시장은 각각의 공간에 따라 “young, old, child”로 구분하여 구성하며, 지하 전시장은 타투 페스티벌을 열어 여러 타투이스트들의 다양한 작업들을 선보이는 퍼포먼스를 열고 그 흔적을 전시한다.
2005/02/15 11:52 2005/02/15 11:52

[한국 초대석] 사비나 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준기

gim story | 2005/02/13 16:38


주간한국의 [한국초대석]에 실린 적이 있다. 두 장의 사진이 "미끄러~지도록" 실린 이 기사는 한동안 지인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갤러리김 분위기에 이은 문제의 김마리오 논란의 시작이었다.

[한국 초대석] 사비나 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준기

"리얼리즘은 살아있다"

지속 가능한 예술 개념으로서 리얼리즘 가능성 모색
전시회 '리얼링'에선 '포스트 민중미술'적 요소 넘실

테크놀러지와 후기자본주의의 공고한 결합으로 등장한 사이버 문명이 시대를 장악한 것 같은 지금,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라는 헤겔의 대명제는 시효 만료됐을 지도 모른다. 요컨대 우리는 ‘헛 것’이 지배하는 시대를 관통해 가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인간의 뜨거운 체온을 가감 없이 전하려는 기획전 ‘리얼링’에 더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바로 그런 반(反)시대적 아우라 때문 아닐까. 40점의 개인 작가 작품과 16건의 그룹 작가 작품이 서울 사비나미술관(02-736-4371)에 가득하다.

“전시회 제목은 ‘리얼’이라는 단어에 현재 진행형을 뜻하는 ‘ing’를 붙여 만든 말이죠. 6월 30일에는 참여 작가와 일반 관객의 대화 시간도 가졌어요. 저녁 식사 후 한잔들 했죠.”어떻게 생각하면 잔손질이 무척 들었던 이 전시회를 총괄한 학예연구실장 김준기(37)씨가 전시작을 둘러 보며 말했다. 올초부터 자신이 주체가 돼 온(이 메일) – 오프(전화 등) 라인을 동원해 모은 작품들이다.

리얼리즘 하면 1980년대에 대한 부채의식, 나아가 시대적 콤플렉스라는 테두리에 한정시키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 층 가득 들어찬 갖가지 양식의 작품에서 리얼리즘의 무한한 가능성을 체감한다. 유행하는 말투를 빌면 ‘지속 가능한’ 예술 개념으로서의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리다. 리얼리즘은 우리 시대에도 유효한 형식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 그러나 지난 시절 숱하게 들어 오던 민중미술과는 기법과 의미망이 천변만화의 경지다.

“리얼리즘 하면 얼른 떠올리는 민중ㆍ민족미술은 물론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형상미술, 현장미술, 공공(公共)미술, 진보미술, 행동미술 등을 포괄하는 ‘포스트 민중미술’이랄까요.” 전시작들은 우리의 데면데면한 일상을 일거에 뒤엎어 버리기 족하다. 조각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는 낫과 도끼를 든 팔뚝이 말없는 선언처럼 버티고 섰고, ‘오월의 노래’ 가사를 명주실과 솜으로 한 자씩 떠낸 ‘유행가 – 오월의 노래’에는 그날의 함성이 뚝뚝 배어 있다. 사진 ‘Hero’는 철가방을 오토바이 뒤에 싣고 도시의 횡단보도를 막 질주하는 중국집 점원을 속도감 있게 포착했다. 이밖에 미선-효순, 이한열 등을 패러디한 작품 등 전시작들은 우리 사회의 어떤 사람들에겐 불편함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리얼리즘적 태도라는 일반 명사의 지속가능성을 탐색해 보자는 거예요.”

작가들이 여전히 공유하는 가치

“1980년대식의 ‘끈끈한 유대감’이 사라지고 개별화ㆍ파편화됐지만, 작가들에게서 여전히 발견되는 가치들을 묶어 내려는 첫 시도”라고 그는 말했다. 그 문제를 두고 평론가 등과 이야기 해 나가면서 그는 그것이 누구든 고민하고 있던 문제라는 사실과 맞닥뜨렸다. 그래서 그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또 다른 평균률을 지상의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 시대와 불화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징조는 벌써부터 확인됐던 바다. 2001년 혼자의 힘으로 개설한 예술 도메인(www.artoctober.com)이 출발의 신호였다. 주소명을 중복 확인해 본 결과 다행히 중복되지는 않았으나 워낙 찾는 사람이 없어 프리챌 커뮤니티에 링크해 놓은 상태니, 많이들 와서 보시라고 당부한다. 그 이름 ‘10월’은 홍대 앞에 마련한 자신의 카페 간판에도 쓰였다. 자신의 전세 작업실을 개조, 지난 4월까지 2년 동안 홍익대 앞 거리 주차장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처소로 기능해 온 장소다.
현재 내부수리 등으로 업그레이드중인 이 카페는 그 동안 독특한 색깔의 전시회로 주목을 받아 왔다. 2003년 봄의 ‘A4 반전’은 그의 기획력이 크게 돋보인 자리였다. A4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Art For’란 어떤 말의 이니셜인 동시에, 실제상의 A4 용지를 뜻한다. 즉, ‘Art For No War(반전을 위한 예술)’과 요즘 종이 크기의 대명사가 된 A4를 합쳐, 중의적(重義的)으로 표현한 전시회 제목이다. 대중성, 기동성, 공격성 등을 절묘하게 아우른 김씨의 감각이 돋보인다. A4 크기 화면의 비디오에 작품까지 선보였던 자리였다. 모 신문사 부장이 왔고, 신문들은 중간 톱으로 대응했으며, 평단은 그에게 ‘ 시사기획자’라는 문패를 달아 주었다.

일상성의 미시담론은 ‘적’

그의 카페에서는 별난 전시회도 자주 열렸다. 현재 미국 대통령 부시를 비꼰 ‘I Vote For Bush’나 칼이 꽂힌 성조기 그림 등(전미영 작)도 열렸다. 그 밖에 국내 정치 상황을 빗댄 게릴라성 전시회나, 서울에 소개될 기회가 적은 지방 작가들의 전시회 등 그는 항상 주류와 불화해 왔다. 그것들을 뭉뚱그려 그는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몸짓”이라 한다. 그는 “삶의 총체성을 부정하고 일상성 속으로만 파고 드는 갖가지 미시 담론은 리얼리즘의 적”이라며 “90년대 이후 쩨쩨하게 지내 온 예술가들의 몸짓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얼링’처럼. 그는 “누군가가 멍석 말기만을 바래왔다”며 이 자리의 의미를 짚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그는 우리 시대 예술가들 간의 대화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실감했다 한다. “막연히 어디선가 (작업을) 하고 있겠지라는 정도의 생각만 하며 지내다 보니 형편없이 개별화ㆍ파편화돼 있더군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번 전시회를 두고 그는 “대중의 관심을 추수하기보단 미술사적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는 전시회를 계속 이어나갈 첫 단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매듭은 미술 동인 두렁의 ‘두렁전’에서 지워질 것이다. 지금 사비나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져 있는 대형 걸개 그림이 이를테면 ‘기대하시라 개봉박두’편인 셈이다. “생활한복 창작 그룹 ‘질경이’, 아동 일러스트레이터 이억배, 만화가 장진책 등 분산 활동을 펼치고 있던 미술 동인 두렁을 통해 새로운 미술사적 의미를 도출해 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그래서 어쩌잔 말인가? “삶의 영역에서 미술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이는 거죠.” 그렇다면 지금의 이른바 예술적 양상들은 삶의 영역 밖에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렇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예술의 자율성만을 강조, 스스로 현실과 괴리돼 가고 있는 포스트 모던적 태도가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야무진 계기가 이렇게 생기고 있다. 오는 가을이면 다시 문을 열 카페 ‘10월’은 여전히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소임을 다할 계획이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한국일보 홈페이지에 실린 글 주소 : http://weekly.hankooki.com/lpage/people/200407/wk2004070713191537470.htm
2005/02/13 16:38 2005/02/13 16:38

서사의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구원 : 이병희

project/시각서사 0414 | 2005/02/12 11:52


* 이병희님이 쓴 월간미술 2월호 전시리뷰 원고임.

서사의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구원

이병희

1. 서사의 해체 - 이 때 해체된 서사는, 모더니즘적 거대서사이다.
사비나 미술관의 <시각서사>는 미술에서의 서사의 재구성, 혹은 서사의 해체와 구원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물론 이 전시는 현대미술과 영화의 관련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그렇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선 미술 자체 내에 있던 서사에 관한 논의들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미술에서의 서사의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에 있었던 반성들을 새로운 전망으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영화의 경우, 문학에서의 영향으로 서사성을 강조하고 내러티브의 완결성을 강조했던 것은 아마도 표준적 스튜디오 시스템에 기반한 고전적 헐리우드 영화의 시기인 1930-1950년대일 것이다. 그렇지만 헐리우드 이외의 지역과 최소한 1960년대 이후 헐리우드에서도 서사에 있어서 갖가지 실험과 새로운 관람형태가 창출되는 등 계속해서 새로운 맥락들을 형성해오고 있는지 오래이다.
한국미술에서만 해도 1990년대의 경우 모더니즘 미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이행과정에서 재현에 있어서 이미지와 시각성에 관한 지난한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와 서사성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깊이 있는 논의들이 미처 채 이루어지기 전에, 급하게 이미지와 실험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도 사실이다.
서사의 해체를 뚜렷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문학 분야에서일 것이다. 여기서 서사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은 일종의 모더니즘적 거대 서사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거대 서사의 해체는 이후, 그 밖의 서사, 마이너 서사들을 다시 써가는 움직임으로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반성중의 하나는 서사의 주체와 재현의 주체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흐름들 속에서 사비나 미술관의 <시각서사>에서 이야기하는 서사는 좀 다른 것을 제안해야만 했다. 관습적으로 이야기하듯이 기승전결이 있다, 구조가 있다 등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서사라면, 그 서사는 해체된 모더니즘적 거대 서사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는 한국에서만 해도 10여 년 전에 이미 해체된 서사이기 때문에, 분명하게 지금의 서사는 다른 관점에서 조망되어야한다. 서사 해체 속에서 우리는 이미 서사의 기술 방법과 읽는 방법 모두 다각화되면서 텍스트성 자체가 해체되고, 재현의 문제 또한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도마에 올랐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서사의 회복은 바로 이러한 철지난 서사를 다시 이끌어내는 식으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새로운 서사를 써나가는 방식, 그리고 읽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미술을 포함하여 문학, 영화 등 각종 예술과 문화의 장르들 속에서 서사를 적극적으로 써나가는 주체는 생산자라기보다는 작품과 마주하여 자신의 판타지를 끌어들여, 새로운 서사를 써나가는 관람주체라는 사실이다.

2. 서사의 재구성 - 포스트모더니즘 서사 전략을 리뷰하다.
사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가들의 경향을 일견해보더라도, 1990년대 중반에서부터 최근까지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짐작할 만하다. 우선 출품작 중에서 시간적으로 가장 멀리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작품은 강홍구의 (1996)이다. 강홍구는 상업영화나 광고의 대표적인 광고이미지들을 차용하여, 주인공의 자리에 작가 자신의 얼굴을 삽입하여 편집하였다. 편집된 디지털 이미지는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개인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상업영화포스터나 광고이미지들의 전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러나 관객은 작가의 얼굴이 삽입된 광고를 보면서 오히려 자신의 욕망의 실체가 부질없음에 마주치게 된다. 그렇지만 작품이 갖는 초현실적 특성 때문에, 관객은 대중문화로부터 받는 허망함을 버리고, 다른 자신의 욕망의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것은 전형적인 팝아트의 방식과 일치하며 대중문화 비판과 동시에 그것을 역이용하고, 재맥락화시키는 교묘한 지점에 위치한다.
모더니즘적 거대서사를 해체하는 방식 중에서, 키치와 패러디 등은 매우 중요한 전략 중 하나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중재의 <엉클샘>(1999), 박혜성<샘>(2001)과 같은 작품은 이런 전략을 잘 보여준다. 이중재의 작품은 대중문화로서의 상업 헐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를 대립적 구도로 보고 제작한 작품이다. 작품 제작의 목적이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목적을 전달하는 방식 또한 매우 간명하고, 대중적인 방식을 취한다. 이것은 오히려 거대서사의 전달방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면에서 패러디와 키치의 면모를 띤다.
박혜성의 <샘>의 경우, 앵그르의 샘이라는 작품을 동영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여기서 앵그르의 회화로서의 미적 가치를 발휘하는 샘의 물줄기가 정말로 화면 가득 메워지면서, 앵그르라는 미술사 내에서의 거장의 지위는 매우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다. 작품의 소재는 유럽의 희고 매끈한 여인의 몸이 아닌 동양인의 작고 아담한 몸이며, 이 여인이 들고 있는 물동이로부터 물줄기가 정말로 쏟아져 내려 결국 그 여인을 잠수시킨다는 점에서 박혜성의 패러디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게 된다.
사실 서사에서 부딪치는 재현의 문제를 미디어의 언어로 풀어내면서, 재현의 과정을 폭로하고 오히려 시뮬라크르로서의 현실을 긍정하도록 이끌어내는 가운데 서사의 해체는 더욱 복합적으로 진행되었다. 김창겸의 <편지>(2000)에서 관람객은 편지를 써내려가는 시간에 맞추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화자와 동일시된다. 하지만 편지가 다 쓰여지고 나면, “당신은 정말 존재했었습니까?”, “나는 존재했었습니까?”라는 마지막 편지의 문구처럼, 아무것도 없는 흰색의 석고덩어리들을 마주하여 당혹스런 재현장치의 배신감을 맛보게 된다. 이 배신감은 은폐된 것들의 폭로에서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김범수 과 이광호의 <태몽>이다. 이들은 매체사용의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그 속에서 오히려 매체 조작으로 인해서 은폐된 이야기와 감성들을 드러내려고 한다.
김범수의 의 경우, 다 쓰고 버린 필름을 다시 모아서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디자인적으로 재구성해내려 하며, 그 속에서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들을 들추어내고자 한다. 또한 이광호의 <태몽>은 회화, 사진, 영상이라는 매체들을 단지 이야기전달의 매체로 이용한다. 그리고 각 매체에 따라서 재현되는 같은 내용이 조금씩 다른 효과들과 그 차이들에 주목한다.
매체가 이야기 전달매체로서, 그리고 기록매체로서 충실한 기능을 하는 동시에 보다 도발적으로 관람객에게 그 기록과 소통에 참여하도록 하는 역할에 주목한 것은 박경주와 박태규이다. 박태규의 <광주천의 숨소리>(2004)의 경우 일종의 홍보효과에 주목하여 영상과 이미지들을 사용한다. 여기서 영화간판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영화간판의 상징성과 현장성을 포함한 이미지 효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박경주의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2004)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미디어로 재현한 셈이다. 이는 미디어의 기능 중 환상을 조작하고자 하는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며, 현실과 미디어 사이의 아이러니를 노출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현실사회구조에 대한 강한 비판을 보여준다.

3. 서사의 구원 -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관람주체의 구원이다.
해체된 거대 서사는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되며, 또한 무엇에 의해 구원될 것인가? 구원이란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지점에서 박화영의 (2002-2003)를 참조할 수 있다. 박화영의 작품에서 관람객은 체험을 통해서 내러티브를 써낼 수 있다. 박화영의 미디어 설치는, 관람객에게 공감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관객은 화면의 장면들과 소리들을 체험하는 가운데 연상되는 강한 감각에 자극받는다. 사실 박화영의 작품에서의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재구성하려하면서 작품을 체험하는 관람객의 입장에서 그 이야기는 매우 엽기적인 이야기로 재구성되기도 하고, 꿈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모두 관람객이 자신의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욕망의 바다>(2002)에서 김세진은 매체사용에 있어서 이미지의 중요성을 매우 강하게 노출시킨다. 전형적인 TV 삼류 드라마를 연출하는 장면을 찍었지만, 그것을 보는 우리는 매우 어색하고 너무 상투적인 대사와 색깔들, 그리고 매우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배경 세트를 보면서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 작품은 김세진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매체 전달의 패러디적 요소가 강하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 예컨대 필름작업이나 싱글채널비디오 작품과 비교해본다면 김세진이 이 작품에서 강조한 것은 오히려 서사를 써나가는 데 있어, 이미지의 역할을 강조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김세진의 작품들에서는 일종의 일상의 무의식에 관한 폭로와 적극성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작품 내에 존재하는 내러티브의 틈을 보여줄 뿐 만 아니라 그 틈 속에서 이미지 효과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 이미지로부터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해당 내러티브를 재구성하고, 과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서사 구원의 방법을 알게 된다. 그것은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작품에 개입하여, 작품의 내러티브를 다시 써가는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가능해진다.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정지된 하나의 이미지이건, 동영상이건 간에 우리는 이미지와 만난다. 우리가 이미지와 만난다는 것은 이미지를 읽어내거나, 분석하거나, 거기에서 어떤 느낌을 받건 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소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작품에서 지극히 오싹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행복한 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가끔은 매우 소극적으로 보기만 했는데도 무의식적인 어떤 부분을 들킨 것처럼 수치스럽기도 하다. 바로 그런 순간들이 우리가 이미지와 만나서 소통하고, 작품들로부터 새로운 서사를 써나가는 시점이다. 이 시점은 우리가 작품과 단 1초를 대면하더라도 우리의 무의식 속 욕망과 작품의 욕망이 불현듯, 혹은 우연히 공명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과거에 이미지가 재현을 위한 지표로서 기능하였다면, 이제 우리는 시뮬라크르의 시대의 지표 없는 새로운 서사를 써나가고 있다. 더 이상 재현이 불가능한 이 시대에, 관람 주체는 판타지 속의 시각과 상상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내러티브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된다. 해체된 서사 속에서는 모든 것이 일종의 시뮬라크르임을 알게 되어, 그것을 부정하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뮬라크르는 단지 허구라거나, 버려야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뮬라크르라는 실재의 징후는 우리가 서사를 재구성하게 되는 출발점이자 단서이다. 우리는 이 단서로부터 출발하여 우연적인 환상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새로운 우리의 현실을 재구성하는 적극적인 주체가 될 필요가 있다. 관람주체, 즉 우리가 서사를 다시 써나가는 것은 우리의 무의식의 가장 깊은 심연, 더 정확히 말해 무의식에조차 씌여지지 않는 무의식 내의 공백에 다가감으로써만 가능하다.
환상이 현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증대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매체들이 어떠한 우열을 가릴 수도 없이 제각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그렇지만 현실의 재구성을 촉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때 서사의 구원이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서사를 써나가는, 즉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서사를 쓰는 관람주체의 역할 회복이다.
2005/02/12 11:52 2005/02/12 11:52

‘사비나 재개봉관’의 현재 상영작 안내 : 반이정

project/시각서사 0414 | 2005/02/12 02:22


포커스 : '사비나 재개봉관'의 현재상영작 안내

* art in culture 2월호 포커스에 들어갈 글이다. 사비나의 <미술과 영화 - 시각서사>에 대해 썼다.

‘사비나 재개봉관’의 현재 상영작 안내

리뷰를 할 때, 전시 내용물(출품작과 작품 배치)과 기획안(주제) 사이의 빈약한 연관성을 볼모로 삼는 비판은 가장 보편적인 미술 비평의 한 방식이지만, 필자 입장에서는 그것이 언제나 썩 내키거나 통쾌하지는 못하다. 그건 객관보다는 주관에 호소하는 개별 작품(물성)과 주관보다는 객관에 근거해야 하는 주제(비물성) 사이에서 빗어질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설정인 탓이다. 언제나 작품과 주제 사이의 느슨한 유대에 간신히 빌붙어 기획되는 오만가지 전시를 “이게 전시 주제와 뭔 상관이래요?!”라며 볼멘 소리하는 것도 한 두 번이면 질린다. 어쨌건 선명한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기획전일수록 논리의 십자포화에 노출될 위험성이 그만큼 고조된다. 분명한 사실관계를 지나치게 밝히는 나 같은 종류의 인간은 그래서 잔치를 기획하는 주인공보다는, 초대받은 잔칫집에서 문제꺼리만 찾아내 트집 잡는 악역이 딱 어울리는 게다~. 전시 기획이 안고가야 하는 피치 못할 애로사항을 감안하더라도 사비나의 신년대작은 그 호감 가는 주제를 안일하게 취급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예술을 세분하는 장르로서, 미술을 그것의 한참 후배격인 영화에 견주어 관조하려는 시도야 그동안도 있어왔고 여전히 고무적인 연구 과제이다. 영화의 지위가 이 바닥에서 최강자로 급부상한 현실을 감안하면 그런 비교 분석은 더욱 소중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제시한 ‘미술과 영화 - 시각서사(視覺敍事)’라는 무게 잡은 타이틀은 눈에 걸린다. 모두에서 투정했듯, 이 야심찬 주제가 타이틀로만 붙박아 놓았을 뿐 어떤 모양새로 구체화된 건지는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비나가 내놓은 기획안은 대충 이런 것 같다.

① 미술과 영화는 각각 시각과 서사에 큰 비중을 뒀다.

② 하지만 현대미술은 시각은 물론 서사에도 적지 않은 배려를 하는 것 같다.

③ 그 결과 작금의 미술은 ‘편집’, ‘시각’, ‘서사’라는 영화미학의 키워드와 공유한다.

④ 자! 그럼 그 미술 속의 영화적 실체를 보여주겠다. 전시 시~작!

나는 우선 이 같은 기획의 전제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비구상을 포함한 모든 미술품이 충분히 서사적이고, 영화 역시 과도한 시각성을 담보로 존립한다는 논박은 차라리 구차하다. 오히려 ‘시각과 서사’가 고려되지 않은 예술장르에 무엇이 있는지부터 따질 문제다. ‘거의 없거나 아주 없다’가 답일 게다. 한편 또 다른 영화적 키워드로 언급된 ‘편집’ 또한 지나치게 포괄적인 접근이다. 설령 백번 양보해서 ‘미술과 영화가 기존에 각각 시각과 서사에 비중을 뒀고’, ‘요즘 들어 미술이 서사를 배려하는 것에 주목하여’, ‘편집, 시각, 서사라는 영화미학의 키워드가 미술계에서 관찰된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그 전제 속에 해당되는 미디어 작가가 어디 이번 출품작가 뿐이겠는가? 기획자의 머리 속에 들어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만 나의 추측을 간명히 적어볼까 한다. 사비나의 이번 전시는 기획 취지에서 밝힌 것처럼 미술과 영화 사이의 창작 문법에서 관찰되는 모종의 접점에 착안했기 보다는, 다분히 겨울방학용 시즌물의 성격을 고려하여 ‘딜레탕트 적 견지에서’ 미술과 영화 사이에서 주먹구구식으로 포획될 만한 공통점-관객들도 쾌히 승낙할 수준의-에 입각한 기획물이다. 하여 미술 속에서 ‘영화적 자취’나 ‘익숙한 영화코드’만 노출시키면 쉽게 먹고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쉬운 예를 이번 출품작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명백하게’ 영화적 요소의 차용(영화 스틸에서 그대로 가져온 강홍구, 쓰다 남은 필름쪼가리를 재활용한 김범수가 이 경우), 이야기의 구조를 갖춘 6mm 기반 동영상(드라마를 패러디한 김세진, 개별 영화 클립을 몽타쥬 한 이중재),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기획안의 관철에 힘이 부쳤을 것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미술관 전면과 장내에 듬성듬성 비치된 ‘영화 간판(박태규)’이다. 이제 관객 입장에서 전시와 주제(‘미술과 영화’)사이의 관계를 부인하기 곤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건 페어 플레이가 아니다. ‘시각서사’라는 다분히 아카데믹한 전시 타이틀은 그래서 도에 지나치다 못해 부담스러운 감이 있다.

* 메모
1. 이제 할 얘기는 기획자의 몫이어서, 평론가의 훈수가 어울릴지 모르겠다. 비판 후에 “그럼 잘난 니가 한번 해봐!” 하는 소리 이따금 듣는 터여서 주제 넘게 한마디 해볼까 한다. 차라리 이렇게 갔으면 어땠을까. 영상 과잉 시대에 영상기술을 수용하면서 미술의 본령과 독창성을 확보한 케이스에 한정적으로 주목하는 것이다. 출품작 중에 꼽으라면 이광호와 김창겸을 들 수 있다. (내가 전시와 학회를 헷갈려 하는 걸까? 이건 단지 겨울방학 시즌물일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아임 쏘리.)

2. 미술관 전면을 장식하여 화제가 된 영화간판 조형물은 영화간판장이의 수제(手製)가 빚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번 전시에서 하나의 볼거리 이상의 역할을 못한다. 역설적으로 더 이상 수제 간판이 선호되지 못하는 영화계 현실을 감안하면, 이 작품은 영화계의 속도감과 파괴력을 엉뚱한 방식으로 인식하려 드는 미술계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폭로한다.

3. 일간지 전시 보도를 검색해보니, 하나 같이 사비나가 제공한 보도자료를 열심히들 동어반복 하고 있다. “미술, 영화와 만나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쓴 거냐들?

반이정 | 미술평론가 | dogstylist.com
2005/02/12 02:22 2005/02/12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