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정원철 : 서울아트가이드 2012년 2월호 이달의 전시

critic & column | 2012/01/17 23:11


이재갑 : 상처 위로 핀 풀꽃, 1.11-2.10, 스페이스99
‘강제징용된 조선인의 흔적을 중심으로’라는 부제를 단 이 전시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갑이 후쿠오카와 오키나와 등 일본 열도를 다니며 담아낸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태평양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군부대 진지, 탄광, 광업소, 댐, 해저탄광, 지하 터널, 비행장, 통신시설 등의 풍경들을 통해서 잊혀져가는 과거의 역사를 되살려내는 지식인 예술가의 기억 투쟁이 돋보인다.

정원철 : ‘展示’展 혹은 ‘轉市’展 : 일곱 개의 삶, 1.20-2.2, 갤러리쿤스트독
소비자본주의사회에서 상품으로서의 예술의 효용가치와 소통방식을 근본적으로 되묻는 예술프로젝트. 정원철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통인시장의 꿈보다해몽공작소에서 ‘꿈을 예술로! 오늘은 내가 쏜다!‘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7회의 릴레이 개인전을 열었다. 시장상인들과의 협업을 진행한 그는 예술행위를 예술작품이라는 물질형식의 생산에 국한하지 않고 예술적 소통을 실천하는 비물질적인 행동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2012/01/17 23:11 2012/01/17 23:11

전지구를 다루는 미시적인 예술 : 최대진 리뷰

critic & column | 2011/12/24 16:55


전지구를 다루는 미시적인 예술 : 최대진 리뷰

최대진은 여러 매체를 구사한다. 입체와 설치, 드로잉과 페인팅, 그리고 영상과 벽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매체의 다양성 속에는 의제의 일관성이 들어있다. 자본과 권력의 문제이다.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이 문제를 다루곤 한다.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것이냐, 아니면 명확한 문제의식 아래 뚜렷한 메시지를 가지고 등장하느냐 하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정치-사회적인 의제를 다루는 예술이 하나의 트렌드인냥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이것은 대단히 심난한 문제이다. 기실 예술이 자본을 의제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예술가가 전지구적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황망한 일이다. 최대진은 그 부담과 황망함을 넘어 대립과 갈등, 폭력과 분쟁의 현장을 미시적 시각의 개인적인 언어로 들춰낸다.

벽에 직접 그린 그림들에서 정형화한 붓질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물감을 질질 흘리며 두루뭉술하게 이어진 선들과 부정확한 뎃생은 강렬한 표현 효과를 얻어낸다. 그의 그림들은 매우 간략한 최소한의 형상을 띄고 있지만, 흑백의 강한 대비효과, 이미지들의 크기와 간격조절 등의 장치가 있어 그 소통효과는 매우 강렬하다. 비행기의 두 날개를 잠식한 두 개의 콘크리트 덩어리는 오브제와 좌대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의미구조를 지탱하는 지지체 역할을 한다. 철망 안에 갇힌 수많은 교회 미니어처들 또한 그 작품이 최대진의 삶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에 관한 관심보다는 최대진이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최대진의 작품들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제들을 다룬다는 점들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예술이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과연 예술이 사회와 정치를 다룬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기나 하는 것인지에 관해 의구심을 드는 시대이다. 어쩌면 최대진도 그냥 ‘원오브뎀’일지 모른다. 우리가 최대진에 주목해볼 수 있는 것은 그가 다루는 의제라기보다는 그가 어떻게 그런 의제를 다루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는 미시적인 언어로 전지구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작업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지구인들에게 보편타당한 시각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특수성이 어떤 것인가에 관심의 초점을 모을 일이다.

판문점 미니어처를 두 종류의 탱크가 지탱하고 있는 작품은 한반도의 대립과 긴장을 압축한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빡빡하게 짜여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최대진은 왜 한반도 분단을 다루는가? 부산 출신의 불문학 전공자로서 20대에 프랑스로 건너가 미술을 전공한 후 미술가가 된 최대진이 자신의 이번 생과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분단의 문제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지구’라는 거대한 구조체를 탐색한다. 그에게 전지구화, 신자유주의, 분쟁 등의 전세계적인 의제는 자신의 삶으로부터 나왔다기보다는 자신의 예술가 정체성으로부터 나왔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최대진의 작품은 최대진 자신을 구축하는 상수이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고 작품은 예술가를 재구성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아트인컬쳐 2012년 1월호 기고문

2011/12/24 16:55 2011/12/24 16:55

최대진, 옥정호 : 서울아트가이드 2012년 1월호 이달의 전시 리뷰

critic & column | 2011/12/22 10:00


최대진, 루프
최대진은 입체와 설치, 드로잉과 페인팅, 그리고 영상과 벽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매체를 구사한다. 매체의 다양성 속에는 의제의 일관성이 들어있다. 자본과 권력의 문제이다. 기실 예술이 자본을 의제화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예술가가 전지구적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일견 황망한 일이다. 최대진은 그 부담과 황망함을 넘어 대립과 갈등, 폭력과 분쟁의 현장을 미시적 시각의 개인적인 언어로 들춰낸다.

옥정호, 풀
갯벌에서의 요가 퍼포먼스 사진에 등장하는 대형마트의 카트는 자연 속 인간의 존재를 은유한다. 자연과 도시의 어색한 공존, 꾸며진 하천과 거대한 빌딩들, 태극기가 휘날리는 공원, 거대한 인공폭포를 옆에 둔 축구장 등의 풍경들을 포착한 옥정호는 우리의 삶을 직조하는 일상의 허구들을 캐낸다. 야구장과 경마장, 놀이공원과 등산 등의 풍경은 도시인의 일상 속에 들어있는 익숙함을 낯설어 보이게 한다.

2011/12/22 10:00 2011/12/22 10:00

구본주 임영선 : 비판적 휴머니즘 Critical Humanism

critic & column | 2011/12/07 15:46


구본주 임영선 : 비판적 휴머니즘 Critical Humanism

구본주와 임영선은 1980년대 후반의 역동하는 시대를 대학생의 신분으로서 같은 공간에서 보냈다. 이들은 계급과 민족의 모순을 넘어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나가고자 했던 사회의 변혁 에너지에 몸을 싣고 캠퍼스와 거리를 종횡무진 했다. 졸업 이후 이들은 입체조형과 평면회화 분야의 뛰어난 예술가로 활동했다. 한 시대의 집합적인 에너지를 예술적 실천의 차원으로 끌어들인 이들의 세계는 예술가에게 비판적 성찰의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구본주는 계급이나 노동, 자본, 일상 등의 관점에서, 임영선은 민족이나 지역, 인종, 국가, 소수자 등의 차원에서 인간의 문제를 다뤘다. 이들은 거대담론 수준의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문제를 미시적인 수준의 예술 언어로 승화했다. 삶의 예술, 현실의 예술을 지향한 두 예술가의 예술세계에는 비판적 관점의 휴머니즘이 깃들어있다.

서른 일곱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구본주는 학생신분이었던 1980년대 후반부터 2003년까지 활동했다. 형상미술과 리얼리즘 정신을 근간으로 인간의 문제를 다룬 그는 학생미술운동 이래 현장미술 활동을 포함해 전업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일관되게 현실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성을 작업의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의 샐러리맨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국사회의 팍팍한 현실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주로 학생시절이나 졸업 직후인 20대에 만든 작품들이다. 대작을 위한 에스키스 소조나 목조각, 또는 금속을 두드려 만든 작업들을 통해서 그가 탄탄한 형상화 능력과 명쾌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간의 문제를 다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임영선은 변방의 아이들을 통해서 지구의 미래를 본다. 그는 몽골이나 캄보디아, 티벳 등과 같은 주변부 지역의 마을을 방문해서 어린이들과 벽화나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가지는 한편, 한 없이 맑고 깊은 미소를 지닌 어린이들을 현지의 풍경과 오버랩해서 담아내는 회화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주변부 소수자에 주목해서 그곳 어린이들을 담아내는 임영선의 시각은 동시대 인식의 지평을 확장한다. 그것은 전지구화의 이면에서 떠오르는 지역화로서의 동아시아담론이나 중화패권주의의 급부상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거대담론의 틀에 넘어서는 예술적 실천이다. 화려한 붓질과 빛나는 색채의 임영선 회화는 직관의 힘으로 우리시대를 성찰하게 한다. 그것은 지구의 미래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拈華微笑)이다.

김준기 (큐레이터)

* <2011 HoMA 큐레이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구본주 임영선 2인전의 서문.

2011/12/07 15:46 2011/12/07 15:46

오브제로 바라본 한국현대미술, 고승욱 :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2011년 12월호

critic & column | 2011/11/22 12:59



오브제로 바라본 한국현대미술,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 11.11-12.4
김해문화의전당과 한국큐레이터협회가 공동주최한 이 전시는 김종길, 김준기, 박정구, 박천남, 정준모 등 5인의 큐레이터가 추천한 작가들을 통해 한국의 오브제미술을 조망했다. 이승택, 하종현, 신학철, 김구림 박현기 등 1세대 작가들과 윤진섭, 이재효, 정재철 최병수 등 2세대 작가들, 그리고 배영환, 이윤엽, 김상돈 등과 같은 3세대 작가들이 함께했다. 예술적 의제로서의 오브제에서 사회적 실천의 도구로서의 오브제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고승욱, 말더듬 두 번째, 평화박물관, 11.11-12.10
고승욱은 대안공간 디렉터로서, 소셜퍼포먼스의 기획자이자 연출자로서, 또는 작업실의 아티스트로서 동두천 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고승욱이 지난 2008년 이래의 연작을 정리했다. 캔들 패널의 불빛은 나체의 전면을 비추는 동시에 벽면에 인물의 그림자를 만든다. 빛과 그림자의 공존이다. 일관성을 가지고 하나의 주제를 다루되 방법론을 다양화함으로써 소통의 순도와 심도를 높인 예술프로젝트이다.

*지난 달과 중복으로 게재 안함
안세권 : 서울, 침묵의 풍경 II, 10.14-11.27
2003년의 청계천 프로젝트 이래 거대도시 서울의 도시생태를 담아온 안세권이 근작들을 정리해서 돌아보는 전시를 가졌다. 그의 도시연작에는 나약하게 부서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소수자들과 거대자본의 힘으로 포크레인 삽질을 앞세우는 현대도시의 개발논리가 담겨있다. 도시의 소멸과 생성, 개발과 재개발에 따른 소외의 풍경이다. 놀라운 것은 분노를 촉발하는 그의 작품 안네 소수자의 소멸마저도 따뜻하게 그려내는 감성의 역설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2011/11/22 12:59 2011/11/22 12:59

실재와 상징으로서의 오브제 : 배영환, 이반, 정재철, 파견미술팀

critic & column | 2011/11/13 19:40


실재와 상징으로서의 오브제 : 배영환, 이반, 정재철, 파견미술팀

예술작품은 소통을 매개하는 물질형식이다. 이 가운데서도 실재의 장소와 상황, 사건 등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오브제를 사용하는 예술작품은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서사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대목에 주목하여 이 섹션 ‘실재와 상징으로서의 오브제’에서는 현장성과 지역성을 기반으로 민주주의와 분단극복, 자율, 생태 등의 이슈를 추구해면 작가들의 오브제 작품에 주목한다. 광주 금람로 거리에서 채취한 벽돌에 민중가요 새긴 배영환의 작품은 민주화운동의 현장의 대변하는 사물의 상징성에 채집한 오브제에 노래가사를 새기는 개념적인 작업이다. 이반이 DMZ 프로젝트에서 사용했던 오브제들과 정재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현수막 오브제 작품들은 오브제 그 자체로서 감성적인 아우라를 풍긴다기보다는 실재의 공간에서 벌어졌던 예술가의 퍼포먼스와의 연계 속에서 온전하게 의미망을 형성한다. 용산참사의 비극적인 현장에서 유가족과 방문객들에게 예술적 소통을 매개했던 파견미술팀의 용산포차 오브제들은 현장의 예술행동이 남긴 결과물들이다.

1. 배영환 : 민중가요 가사를 새긴 금남로 거리 벽돌
배영환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페인팅과 오브제 작업으로 유행가 연작을 해왔으며, 이후 새로운 공공미술 작업으로 노숙자 수첩, 도서관프로젝트 등을 해왔다. 그는 1980년대라는 한국현대사의 격변의 현장을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체험한 세대로서의 감성을 작품 속에, 또는 작업 태도 속에 담아내는 예술가이다. 또한 그는 1980년대의 리얼리즘 미술운동이 남긴 예술적 감성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에 대한 각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21세기 리얼리즘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오브제는 가장 효과적으로 현장의 상황을 증거하고 대변하는 물질이자 그 사물 속에 담긴 정서를 극대화하는 소통의 매개이다. 그는 작업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창백한 물질로서의 종이나 캔버스, 물감 등을 사용하기 보다는 시간성과 장소성, 사건의 흔적 등을 가진 사물들을 작업의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문제의식을 매우 확대재생산한다.
이 작품은 배영환이 1990년대 후반에 광주의 금남로 거리에서 채취한 벽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새긴 것이다. 그는 45개의 벽돌에 한 음절씩의 노래 가사를 적어서 그것을 전시장 바닥에 펼쳤다. 평면과 입체, 영상 등으로 노래 연작을 해온 그의 연작들 가운데서 이렇듯 실재공간에서 채집한 사물을 사용한 작품들은 노래에 담긴 시적 정서를 강렬하게 자극한다. 특히 이 작품은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주요 현장이었던 광주시 금남로 거리의 보도블록이라는 점에서 물질 그 자체로서 일종의 역사적 기록으로 작용한다. 아나가 그것은 시멘트 블록을 일일이 칼로 긁어서 가사를 새긴 작업 방식이나 태도로 인해서 한국현대사의 비극이자 저항의 역사성을 간직한 1980년 5월 광주를 정서적으로 환기하는 예술적 소통으로 작동한다.

2. 이반의 DMZ 프로젝트의 오브제들
이반은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명제를 그 한 몸으로 보여주는 예술가이다. 예술가 이반은 20세기 한반도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동시대 한반도 민중의 고통이 민족모순이라는 본질과 유관한 것이라면, 그 본질의 현현을 이반이라는 한 예술가의 실존으로부터 명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나아가 그는 '본질의 현현으로서의 존재'라는 사유의 틀을 넘어 본질을 재구조화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행위자 주체로서의 실존'을 위해 투쟁해왔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반, 특히 분단의 상황을 예술언어로 표현하는 행위자로서의 예술가 이반은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의 본질로부터 이탈하려는 실존의 몸부림을 보여주었다. 분단작가로 불리는 예술가 이반은 개인사적인 삶의 고통을 딛고 분단의 어두움을 넘어 통일과 생태의 예술행동을 펼쳐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반은 실존적이며, 이반의 예술은 이 질곡의 20세기 한반도를 살아온 실존의 몸부림이다. 그는 분단체제를 살아온 인간실존을 예술적 실천에 투영한 행동주의예술가이다.
문자/상징언어의 정치학은 시회적 의제를 감성적인 차원에서 매우 선정적으로 다루곤 한다. 이반은 사회적 의제들을 감성적 수사학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매우 체계적으로 일관되게 다루었다. 예술적 격정을 가지되 그것을 일관된 기조의 기획 속에서 연작으로 풀어냈다. <한라백두수토통합통혼제>(1990년)에서 그는 제례의식의 형식을 빌어서 남북의 상징인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과 물을 섞었다. 이것은 예술의 장 내에서 벌어진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오갔고, 비무장지대를 주제로 한 작업전을 한해씩 걸러 네 차례에 걸쳐 열었고 그 결과들을 묶어서 <<비무장지대의 과거·현재·미래>>를 편찬했다.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백두산과 한라산에서의 퍼포먼스에 쓰였던 오브제와 비무장지대의 호박을 캐스팅한 브론즈, 현장의 흔적을 담은 캔버스와 포스터 등 비무장지대예술운동을 전개하면서 현장에서 쓰였던 오브제들이다.

3. 정재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현수막 작품들
정재철의 플래카드아트(placard art)는 버려진 사물의 무용성을 전시품으로써의 유용성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정크아트로 불리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무진하는 소셜 퍼포먼스로 이어짐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예술적 소통을 매개한다. 그는 현수막이라는 오브제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작품들을 가지고 무용지물을 유용지물로 전환하는 일종의 개념미술을 수행했다. 그는 전세계 각국의 각각 다른 문화적 풍습과 상황, 장면, 사건들을 두루 꿰어내는 여행 과정에서 현수막으로 만든 작품들을 제시하거나 제공하고 그것을 실재 공간에서 쓰일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작가에게도 새로운 체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현지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도 새로운 체험이거나 유용성의 발견이었다.
정재철은 그 쓰임새를 다한 현수막들을 모아서 만든 재킷 등 의류 석 점을 출품한다. 의류 고유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현수막이라는 소재로 제작되었으므로 실재 사용할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유용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오브제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옷이기도 하고 옷이 아니기도 하다. 옷의 외형과 플래카드의 사물성을 동시에 갖춘 이 작품을 통해서 정재철은 ‘이것은 옷입니다’와 ‘이것은 옷이 아닙니다’라고 문장을 함께 제시하는 셈이다. 이 작품은 옷의 일루전과 플래카드의 오브제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정재철은 이 작품들을 통해서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하면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의 소통을 매개한 플래카드가 실재의 사물이자 동시에 일종의 일루전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4. 파견미술팀의 용산포차
파견미술팀은 용산현장 뿐만 아니라 한국의 첨예한 의제 현장을 찾아 예술행동을 펼쳐왔다. 파견미술이라는 이름은 부평 대우자동차의 비정규직 시위 현장에 참가해서 현장예술활동을 할 때, ‘비정규직들인 자신들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파견노동자들이다’라는 얘기를 듣고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파견미술가들로 정한 데서 유래했다. 나규환, 문정현, 송경동, 신유아, 윤성현, 이윤엽, 이윤정, 전미영, 전진경, 한상덕 등이 그 멤버들이다. 이들은 미술가들을 비롯해서 종교인, 시인, 한의사 등의 여러 직업군이 섞여있다. 현장미술활동을 위해서 미술가들과 함께 논의하고 실천하는 협업과 연대의 대상이 그룹활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만 하다. 이들은 용산참사 현장 뿐만 아니라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부평 대우자동차, 콜트콜텍, 사대강사업현장, 유성기업, 강정마을, 평택 쌍용자동차 등의 현장에 그들 스스로를 파견했다.
걸개그림, 현장설치미술, 판화, 각종 디자인 작업 등을 통해서 파견미술팀은 ‘현장에서 현장을 현장답게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가령 그곳이 농성현장이라면 파견미술가들은 그곳을 가장 농성현장답게 만드는 일했다. 이것은 역설적인 의미의 장식미술이다. 물론 이들이 장식미술의 단계에 머문 것은 아니다. 이들은 현장의 주민, 공동체 구성원들과 협업하고 연대함으로써 커뮤니티아트, 행동주의예술을 실천했다.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현장이 요규하는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그들은 예술이 실천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왔다. 이른바 ‘예술의 쓰임새’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일이 파견미술팀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 이들은 작업의 목표를 현장에서 잘 쓰이는 일로 설정했다. 이들의 예술행동으로 인해 현장의 투쟁이 물리적 대치에서 상징투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기륭전자의 포크레인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위력적인 상징투쟁의 오브제로 존재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파견미술팀의 출품작 <용산포차>는 2009년에 용산참사 현장에서 고인들이 실재 사용했던 포장마차의 실내의 물건들을 예술가들이 일종의 재활용미술품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용산참사 이후 그 포장마차는 유족들의 쉼터이자 방문자들에게는 전시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은 그 곳의 사물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다. 냉장고에 그림을 그린다거나 매뉴에 유족의 얼굴을 그려넣고, 포장마차에 판화를 붙여놓기도 했다. 시위현장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들, 일인시위할 때 섰던 표현물들을 포함해서 주변의 버려진 물건들로 만든 오브제 조각들과 창틀이나 밥그릇에 그림을 그려넣은 것도 있고, 그림을 그린 밥솥도 있다. 파견미술팀이 출품한 오브제들은 용산참사 현장의 사물 그 자체들이다. 예술가들은 그 사물들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조형작업들을 했는데, 그것은 사물 그 자체로서 서사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그리기와 만들기 작업으로 이중의 의미작업을 생성한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오브제로 바라본 한국현대미술, 김해문화의 전당 윤슬미술관, 섹션 서문

2011/11/13 19:40 2011/11/13 19:40

박은하, 임영선 : 서울아트가이드 2011년 11월호 이달의 전시

critic & column | 2011/10/19 07:14


박은하, 안과 밤, 자하문미술관, 9.21-10.30
인간은 자연이 제공한 밤의 공포를 극복하면서 문명사회를 만들었고, 그 문명사회는 인간에게 또다른 형태의 밤의 공포를 제공한다. 박은하는 사회의 시스템이 개인에게 내리꽂는 문명의 폭력을 밤에 비유한다. 그는 어두움의 실체를 직시하도록 하는가 하면 그 배후의 구조들을 은유적 언어로 풀어낸다. 박은하 특유의 플라나리아 스타일 페인팅이 사회구조 속에 포획된 개인의 면면을 성찰하는 박은하 내러티브와 만나 성숙한 예술언어로 진화하고 있다.

임영선, 가나아트부산, 10.12-11.13
임영선은 티벳과, 몽골, 캄보디아 등의 어린이들을 만난 후 그들의 모습과 그곳 삶의 정황을 그린다. 풍경과 장면을 인물초상 속에 오버래핑 하는 그의 그림에는 척박한 오지의 삶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담겨있다. 섬세하고 치밀한 붓질로 인간의 존엄을 그려내는 임영선의 예술에는 직관적 소통을 매개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동아시아 주변부의 소수자 어린이를 통해 지구의 미래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이다.

* 서울아트가이드 2011년 11월호 이달의 전시

2011/10/19 07:14 2011/10/19 07:14

작은 창가, 이승철

songs | 2011/10/16 15:47


http://blog.naver.com/myspecialyou?Redirect=Log&logNo=4070002

작은창가에 비추인 수염은
소리까지 내면서 울고
파도에 묻힌 하늘도 있고
그냥 불어지는 바람도 있고
비가올지도 모르는 하늘가엔
검게 그을려진 구름도 있고
조금만 건드려도 퍼지는
파란빛깔속에 거울도 있고

이젠 슬픈 기억들은 모두 잊어버려
그대여 눈을 감고 들어봐
작은 꿈을 가진 우리들의 얘기를
라리라리라 라라......
라리라리라 라라......

오늘은 우리 아무도 지나간
흔적없는 이곳엔 우리의
깊은 발자욱을 남기고 쓸쓸할땐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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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6 15:47 2011/10/16 15:47

판화의 시대, 판화의 재정립 : 프린트에서 멀티플로

critic & column | 2011/10/04 08:58


판화의 시대, 판화의 재정립 : 프린트에서 멀티플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시각이미지의 소유 방식을 바꿨다. 사유(私有)에서 전유(專有)로. G20정상회의 시기의 쥐벽서 사건과 같이 한낱 변방의 에피소드에 불과했던 문화적 저항을 정치적 사건으로 뻥튀기 했을 때, 대중들은 인터넷이나 SNS는 물론 아날로그 T셔츠의 프린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원본을 전유하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이미 대중문화는 물론 예술작품들까지도 그 이미지를 사적으로 소유하는 사유(私有)의 시대를 지나 원저작의 문맥을 뒤집어 버리고 재구성하는 미적 전유의 시대로 전환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세계 전 영역에 걸쳐 벌어지곤 하는 미적 전유는 오늘날 원본의 아우라를 보다 널리 공유할 수 있다는 문화적 공화주의의 이상에 흠집을 내고 있다.
 
반면 미술문화를 소비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예술작품의 사적 소유를 통해서 원본의 아우라를 전취하고자 한다. 기실 예술작품이라는 물질형식을 화폐로 교환하여 사적으로 소유하는 일이 20세기의 미술을 견인했다. 20세기의 시장체제의 미술은 20세기 미술 그 자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장의 힘은 견고하고 강인했다. 물론 그 힘의 원천은 원본의 아우라, 일품성 등이었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저변을 뒤흔든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판화이다. 1960년대 이후 서구예술사에 등장해 선풍을 일으킨 판화의 열풍은 미술시장은 물론 미술의 역사를 새로 쓰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앤디 워홀이 20세기의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전위예술가인 이유이기도 하다.


민중미술의 시대, 목판화의 성가
판화의 대안적 가능성이 한국미술계에서도 실행모드로 접어든 시기는 1980년대이다.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판화운동은 기존의 미술제도에 대한 대안운동으로부터 비롯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롯이 미술시장에 대한 대안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민중미술계열의 예술가들은 오히려 미술시장 바깥의 새로운 소통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이들이 판화 작업을 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판화의 복수성을 활용한 대중적 소통가능성의 확장에 있다. 오윤은 민중미술 목판화의 전형을 창출한 선구자이다. 그는 다수의 목판화 작업에서 간결한 선묘의 맛과 힘을 드러냈다. 특히 20세기 초반부터 꾸준히 존재했던 출판미술의 전통을 이어받아 다수의 출판물에 목판화 작업들을 남김으로써 미술의 대중적 소통에 크게 기여했다.

목판화는 현장미술에서도 복수성의 매체파워를 극대화했다. 홍성담은 80년 오월광주행쟁 연작을 통해서 판화의 매력과 위력을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시민미술학교 판화교실을 열어 대안적인 미술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두렁은 노동현장에서 판화나 걸개그림으로 작업으로 소통하는 현장미술운동을 했다. 두렁의 목판화 작업들은 전통회화를 차용한 걸개그림과 그 양식을 공유하면서 그 가능성을 확산했다. 최병수는 현장미술의 맥락에서 목판화의 대중적 소통가능성을 극대화한 1987년작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남겼다. 연세대 재학생이었던 이한열이 시위도중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목판화로 만들었고, 이어 대형 걸개그림으로 옮겨져 대중적 파장을 일으켰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목판화는 보다 대중적인 소통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민중미술의 전형성을 창출하는 목판화 작업들을 해온 이철수는 명상적인 문구와 간결한 선묘의 맛을 살린 작업들로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김준권은 자연과 농촌마을 풍경을 주제로한 다색목판화 작업으로 서정성을 얻어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수인목판, 소성목판 등의 형식실험으로 목판화의 장르적 확산에 힘을 기울였다. 류연복은 1980년대 중반의 벽화운동 이래 모필을 사용한 글과 그림을 목판화로 이어냈는데, 1990년대 이후에 진경산수 연작을 발표하면서 생태주의 목판화가로서 새로운 목판화의 시대를 열었다. 1997년의 IMF 이후 미술시장의 침체에 따른 전반적인 불황의 늪은 판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와중에도 공방체제에 의한 대량생산체제와는 달리 1인작업으로도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목판화 작가들은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장서표 작업으로 대중성을 얻은 남궁산의 작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억의 실경산수 작업은 그 수공성과 독창적인 스타일로 목판화 작업의 동시대성을 확인해주고 있다. 행동주의예술가로서 대추리나 용산, 한진중공업 등의 현장에 참여하기도 하는 이윤엽은 예술가의 체험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목판화 작업과 동시대의 첨예한 이슈를 다루는 예술행동을 병행함으로써 주목받고 있다. 배남경은 목판 작업을 판각에 의한 목판화로서만이 아니라 평판개념으로 전환해서 리도그래프처럼 활용하는 리도목판 작업을 통해서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영정을 안고 있는 전태일 열사를 담은 최병수의 최근작은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장례식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 발표된 이 작품은 목판화가 여전히 생생한 소통기제를 생성하는 장르임을 확인해주었다.

목판화야 말로 화각인(畵刻印)의 삼박자 매력 포인트를 가진 판화의 본령이다. 예술가의 수행성과 수공성의 매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목판화이다. 목판화는 판화 원판과 그것으로부터 찍어낸 복제판 사이의 물질적 교감이 가장 정직하게 드러난다. 1980년대 미중미술의 시대 이래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목판화 장르의 매체실험 또한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화각인 프로세스의 목판화는 디지털 시대의 복제이미지 생산이라는 문제틀에 있어서도 매우 유력한 매체이다. 회화와 마찬가지로 목판화 역시 작가의 손길을 가장 정직하게 받아내는 물질형식이다. 목판화를 기조매체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관심과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판화열풍의 시대와 그 이후

1990년대는 판화가 일대 증흥기를 맞이한 시대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대중적 소통을 위하여 목판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본격적인 판화의 시대가 열렸다. 그것은 제도교육체제와 공방체제의 확산과 같은 물리적 토대의 구축과 더불어 판화의 수요 급증에 따른 시장의 확산에 따른 것이었다. 1980년대 말 이후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판화는 대학의 학제를 중심으로 성가를 이뤘다. 해외에서 판화를 전공한 다수의 교육자들이 대학과 사설교육 체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에 성신여대 대학원이 판화전공을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홍익대 학부에 판화과가 생기면서 본격적인 토대확충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전국적으로 판화 관련 교육 수요가 급증하면서 판화계의 물적토대가 단단하게 구축되었다.
또한 1990년대는 1960년대 이후에 서구에서 일어난 판화 열풍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들, 판화의 교육체계를 직접 체험한 유학파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곽남신, 김용식, 김승연, 윤동천, 강승희 등과 같은 판화가/교육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1990년대 판화의 시대가 열렸다. 판화공방 시스템이 본격화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황용진이나 이종협 등의 작가들이 서울판화공방과 대전판화공방 등을 열며 판화작품 생산의 물적 토대를 이루기 시작했다. 연화랑이나 가나판화공방 등도 생산체계를 갖추는 것은 물론 판화작품 유통망을 확립해서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교육현장과 작업실체제, 그리고 유통망 확산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판화의 시대는 미술계와 대중들에게 미술의 소통가능성을 높여주었다.

판화시장은 이제 막 컬렉션을 시작하려는 초보 컬렉터들까지 흡인하면서 매력적인 시장품목으로 떠올랐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단위의 시장형성은 판화의 양적 팽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른바 오리지널 판화 캘린더나 아트상품 개념의 대량판화 생산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인쇄기술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판화의 매력이 대량생산 대량유통의 시대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 판화의 양적 팽창은 성장세를 멈췄다. 특히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대량생산체제가 중단되면서 판화의 유통채널이 끊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비롯해서 멀티플 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복제예술의 폭이 넓어지면서 복수성의 장점을 누려왔던 판화의 독점은 점차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판화개념 자체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큰 동인은 디지털기술의 진화였다. 동판이나 목판 등을 이용해서 찍어내는 판화에 대한 디지털 프린트의 수준상승이 가파르게 이어지면서 예술성 논란까지 생기기 시작했지만, 여하한 논란과 자구노력들도 판화의 생산과 유통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벽에 액자를 거는 시대에서 모니텅 그림을 띄우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에서 언제든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제2미디어시대의 멀티플 시대에 판화의 존립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IMF로 인한 미술시장의 붕괴 이후 2006년 무렵의 미술시장 활황에도 불구하고 판화의 성가가 다시 찾아오지 않은 것은 10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디지털시대의 판화라는 문제의식 내지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판화의 위기는 곧 판화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판화의 대중성이 여하한 이유로 분산된 것은 사실이지만, 수백수천년간의 세월동안 축적된 전통판화의 기술적 수준은 여전히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작품의 보존연한이나 물질형식적 매력 등 섬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장점들이 많다. 게다가 무한복제의 디지털 프린트에 비해 사람 손을 거치는 수공성의 매력 또한 아직도 건재한 차별화 요소이다. 오히려 역발상으로 디지털 문명으로 인해 잃어버린 작가의 수공성이라는 매력을 살리는 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원판 없는 판화’와 같은 판화개념이랄지 에디션없는 판화의 독창성을 통해서 얼마든지 예술적 표현 방법으로서의 판화개념을 재생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판화가 에디션의 매력만이 아니라 수공적인 예술작품으로서의 특성화에 무게중심을 둠으로써 디지털 프린트의 일반화에 비해 차별성을 확립한다면 양상은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판화의 재정립

그러나 여하한 논의의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디지털 문명은 아날로그 문명과의 양립으로 인해 생성/존립가능한 개념이라는 점이다. 유사 이래 지금까지 존재했던 판화개념은 원본과 복제본, 일품성과 복수성 등의 이분법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문명은 이러한 이분법을 무화하는 새로운 문명이다. 디지털 시대의 판화개념은 이 문명의 전환을 수용할 것이다. 판화의 최대 특성은 복수성에 있다. 판화의 복수성에 최대의 충격을 안겨 준 것은 다름 아닌 디지털 미디어의 일반화에 있다. 에디션의 매력이 디지털 시대의 무한복제 가능성 앞에 점점 희석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창작과 시장의 영역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디지털 판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느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는 디지털 프린트 기법의 작품에 대해서 원본/복제본 논란이 일어나서 작가와 주최 측이 심난하게 논의 중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디지털 문명에 대한 이해와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예술과 기술은 동행할 부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의 경우 이미 정통적인 필름작업과 암실작업을 넘어 디지털 카메라와 디지털 프린트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디지털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사진은 동시대 예술적 소통의 중심에 서있다. 물론 디지털 문명이 커버하지 안/못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의 판화개념이 쌓아온 장점을 강화하는 것이 오늘날 판화가 처한 위기의식을 벗어나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라는 논의가 분분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그야말로 일부분의 차별화 전략일 수는 있으나 문명의 대세를 읽어내고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수동적인 태도이다. 멀티플의 매력을 과거의 매체나 기법, 장르 개념으로 한정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 개인의 선택 여부에 따라 장인적 고집으로서 칭송받는 일일 수는 있지만, 시스템으로서의 판화를 재정립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프린트가 아니라 멀티플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판화의 개념과 제도가 재정립하는 시대이다.

김준기(시각예술평론가)


* 월간미술 2011년 10월호 기고문

2011/10/04 08:58 2011/10/04 08:58

체험이 예술이 될 때 - 강은구의 경우

critic & column | 2011/10/04 02:08


체험이 예술이 될 때 - 강은구의 경우

예술가의 체험과 창작의 관계는 불가분의 것이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입수하는 정보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기억장치는 고도로 숙련된 예술가의 직관적 인식의 토대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의 모든 창작행위가 그의 체험에 귀속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는 체험 너머의 것을 끄집어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는 추체험(追體驗)이라는 게 있어서 육화한 경험으로서의 직접적인 체험을 토대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한다. 특히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현상 이면의 과거와 미래를 통찰하는 예지를 가지고 예술적 소통을 모색하는 예술가라면 더욱 더 크고 넓게 체험 너머의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예술가의 창작이 체험 바깥으로 확장할 때, 그 작업의 근거와 목표를 상실한 채 물질형식으로서의 작품 그 자체만으로 겉돌고 마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는 데 있다. 어쩌면 예술가 주체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우리시대에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가의 진정성 운운하는 일은 순진하고 철없는 옛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무수히 쏟아지는 예술 관련 정보들 가운데 작품을 둘러싼 어떠한 요소들이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지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작품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얻어내는 요소가 반드시 작품이라는 물질형식 그 자체만이 아니라는 점, 나아가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 주체에 관한 이해가 작품 이해의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을 관찰하는 관람객은 어떤 기준과 근거로 그 작품 속의 기표들을 해석해야하는지를 놓고 몇가지 견해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예술가의 체험을 작품 해석의 근거로 제시하는 일은 매우 정통적인 예술사회학적 논법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예술가들은 ‘태도를 형태로 만드는’ 예술가 주체와 예술작품의 순연구조 또는 순환구조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미술계의 작가들은 예술작품 그 자체의 논리나 논법에 따라 활동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경험과 창작의 관계를 분리하는 경우이다. 예술가 주체의 죽음을 운운하는 시대의 예술은 체험에 의존하지 않은 자율성의 영역이나 문화산업의 영역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측면에서 현대미술은 현실 체험이나 인식과는 무관한 관념의 세계일 수도 있다. 특별히 예술가와 작품의 관계를 체험과 창작의 순연구조 속에서 파악하는 경우 우리는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조망하곤 한다.

그 체험이 직접적인 것인지 아니면 간접적인 것인지, 그것이 삶의 체험인지 아니면 예술가로서의 리서치 과정에서 얻어진 것인지의 여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체험과 현실의 문제는 리얼리즘 예술의 키워드임에 분명하다. 리얼리즘 관점의 예술은 예술가 주체의 삶과 그 삶을 토대로 한 창작행위의 결과로서의 예술작품이 상호 연관을 가진다는 명제를 이론과 실천의 영역에서 진지하게 고수해왔다. 가령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을 분기하는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는 예술작품과 실재의 관계 문제를 보더라도 실재의 영역이 예술작품과 완고하게 분절된 상황을 극복하고 상호 유기적인 관계맺음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리얼리스트 관점은 새로운 에너지를 가진 중요한 논점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삶과 예술, 체험과 작품 등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를 잣대로 보았을 때, 강은구는 리얼리즘의 관점을 가진 예술가이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창작의 기초로 삼고 있다. 그것은 기억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동시대 현실의 문제로 이어져 현실인식의 단초를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관한 성찰에 이르기까지 강은구라는 예술가의 작품세계에 있어 그의 유년기와 성장기의 체험은 매우 결정적인 근거를 형성한다. 나아가 그가 현실 속에서 획득한 체험을 추체험으로 연결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예술적 성찰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은구에게는 체험과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리얼리스트 예술가의 면모가 있다.

강은구는 을지로의 철재공장거리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통해서 철공소의 노동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금속판 절단 일을 하는 아버지를 돕는 과정에서 금속노동자들의 삶을 보았고 노동으로 세상을 만드는 산업생산의 현장을 보면서 자란 강은구는 늦깎이로 조소를 전공하고 예술가가 되었다. 그의 작업은 철판 작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는 사진과 드로잉을 기초해서 형태를 만들고 그것을 레이저 커팅 과정을 거쳐 여러 층위의 철판 부조 형태로 재구성하고 거기에 조명을 넣어서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철판을 매우 감성적인 차원에서 다룬다. 부식을 통해서 변화해나가는 물질적 특성을 이용하거나 두께의 차이에서 오는 효과, 절단과 용접을 통해 견고한 구조로 재탄생하는 금속패널의 물질성 등을 통해서 철판에 대한 매체 친화력을 감지할 수 있다.

강은구는 다수의 을지로 연작을 선보였다. 간판글씨까지도 담아내는 철공소 거리의 풍경과 거리를 오가는 인물들을 여러 개 레이어로 결합한 철판부조 작업들로 을지로의 거리를 담았다. 과거의 추억을 담은 것들뿐만이 아니라 도심재개발로 인해서 점점 사라져가는 을지로나 청계천의 현실을 담기도 했다. 2009년 말의 프로젝트 <청계천 마지막 크리스마스>는 사라져가는 을지로철재거리에 대한 오마주였다. 산업개발의 시대를 표상하는 포항제철소의 야경을 통해서 한국의 근대를 견인한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에 대한 명상을 담기도 했다. 최근의 작업들은 도시 연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층 구조의 철판 부조 작업으로 서울의 아파트 구조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와 대비되는 달동네의 밤을 만들기도 했다. 개발과 성장의 논리에 따라 공사장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거대도시의 현실을 실루엣으로 재현하기도 했다.

강은구가 리얼리스트 예술가로서 한걸음 더 진화하는 데 필요한 것은 자신의 체험과 창작을 예술적 실천의 관점에서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다. 지금까지 그의 체험이 창작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토대로 앞으로도 그의 체험이 좋은 창작, 좋은 예술적 실천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의 창작이 기존의 예술시스템이 편재한 바대로 작업실과 전시장이라는 단선적인 구도 안에 갇혀 체험과 창작, 추체험과 예술적 실천 등의 순환구조를 상실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체험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 강은구가 지금까지 창작해낸 좋은 작품들이 혹시라도 도돌이표 예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추체험과 더불어 새로운 체험이 필요하다.

강은구는 지속적으로 도시를 다룰 것이다. 가령 예술과 도시, 부자의 도시와 빈자의 도시 등의 개념으로 세분화해서 도시를 해체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도시의 외형을 형성하는 자본과 권력의 문제 또한 주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그것은 현실의 도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거나 멋진 신세계의 판타지를 실현하는 일이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도시와 삶의 문제인데, 인터뷰나 협업의 방식으로 도시의 심리지도를 만들거나 도큐먼트 차원에서 접근하는 커뮤니티아트, 공공미술의 형태로 도시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예술을 기대할 수도 있다. 여하한 주제나 방식을 선택하든 간에 강은구의 체험적인 자기고백이 삶을 나누는 따뜻한 예술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는 체험을 통찰력있는 실천으로 연결하려는 예술가로서의 관점과 신념의 문제에 달려있다. 삶을 배반하는 예술이 난무하는 정보(홍수)시대이므로 더욱 더!

김준기(시각예술평론가)

* 난지창작스튜디오 워크숍 발제문

2011/10/04 02:08 2011/10/04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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