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서사의 교차 혹은 공유, 시각서사

project/시각서사 0414 | 2005/03/25 08:45


시각과 서사의 교차 혹은 공유, 시각서사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영화와 미술을 소재로 한 이번 전시 <시각서사>는 현대 시각예술에 있어서 가장 첨예한 쟁점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서사성의 문제를 영화예술의 관점에 견주어 살펴보는 미술작품 전시이다. 20세기 초중반의 시각예술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는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20세기 후반 이후의 시각예술은 무언가 보여주는 동시에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고 있다. 요컨대 시각성 일변도에서 시각성과 서사성을 함께 가져가려는 쪽으로 시각예술의 의미와 범주를 넓혀온 것이다. 영화는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시각적 요소와 ‘보는 이야기’라는 서사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종합예술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움직이는 그림들의 연속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술인 것이다.
미술과 영화는 ‘시각 이미지를 보여 준다’는 것과 ‘서사적 이야기 구조를 배치하고, 배열한다’는 점에서 시각성과 서사성을 각자의 본령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림을 듣고 이야기를 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양자의 관계는 적극적인 교차 혹은 공유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탈현대의 시각예술이 시각성에다가 서사성을 입히는 쪽으로 변모해온 바, 이 전시가 주목하고 있는 시각과 서사의 문제는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질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사성을 강조하는 시각예술 작품들이 서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야말로 광범위하게 종합적인 예술장르를 끌어들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서사적 구조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는 예술장르이다.
그런 점에서 시각예술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무언가 보여주는 것을 동시에 구사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서사적인 시각이미지를 그 결과물로 남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사성을 강조하는 시각예술은 (그림을 움직여서) ‘이야기를 보여 준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10인의 출품 작가들은 설치, 영상, 회화, 입체 등 시각예술의 각 영역에서 영화예술과 접점을 형상할 수 있는 서사와 시각의 문제를 가지고 작업을 해왔다. 이들의 작품은 편집의 미학, 서사의 접점, 시각의 공유라는 세 가지 요소에 따라 각각의 시사점을 보여주고 있다.

잘라 붙인 그림들 : 편집의 미학
영화와 시각예술의 상호 관련성을 직접적으로 대변해 주는 것이 편집의 미학이다. 제작과정의 규모를 놓고 생각해보면, 영화는 감독, 배우, 연출자, 촬영감독에 이르기까지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만들어 내는 프레임들을 모아 하나의 필름으로 만들어낸다. 반면에 시각예술은 철저한 개인의 자신에 대한 고뇌와 사투,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이어나는 크고 작은 담론들을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 낸다. 양자 모두 의미 전달을 위해 ‘편집’이라는 특정한 절차를 거친다. 영화에 있어서 ‘편집’은 서사성을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이며, 동시에 작품의 내용을 좌우하는 요소이다. 영화의 편집자가 펼치는 편집의 묘미를 시각예술이라는 영역으로 바꿔 생각해 보면, 작품 속 이미지들에 관계성을 부여하는 작가들의 손길이다. 그것이 평면회화이든, 영상작품이든 간에 영화의 편집자와 예술가는 우리들이 일상에서 쉽게 놓쳐버릴 수 있는 모습들을 자르고, 붙이고, 재구성하여 의미를 강조하거나 때론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김범수의 작품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한 컷 한 컷의 그림이 이어져있는 서사의 담지체로서의 극장 상영용 영화필름을 시각적인 효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색이나 면의 요소로 환원해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김범수의 관심사는 서사를 시각으로 환원하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영화가 고정된 화면으로서의 한 컷의 장면을 이어 붙여서 동영상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영화필름의 근본적인 물질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시각과 서사가 편집의 미학에 의해 상화 교차할 수도 있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이러한 필름 작업은 앞으로 서사를 시각으로 환원한 것에서 다시 영화필름이라는 물질이 담고 있는 서사의 담지체로서의 특성을 살려서 그 물질의 서사성을 드러내는 쪽으로도 변모할 것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가능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강홍구의 작업은 대중문화로서의 영화를 끌어들인 이미지 조작 작업의 90년대 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작업은 이후 영화 세트장을 담은 사진 작업으로도 이어지는데, 워낙 영화 자체에 관해 방대한 정보를 가진 작가라는 점, 나아가 허구와 실재 사이에서 서있는 예술가의 지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맥락을 관통하는 측면이 있다. 그의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1996년이라는 제작년도를 잊지 말고 기억하면서 읽어내야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명장면을 스틸 컷으로 끄집어내서 거기에 주인공의 얼굴을 작가의 얼굴로 바꿔치기한 후 출력해낸 작업이다. 당시에는 이러한 패러디 작업이 예술가의 몫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많은 대중들이 인터넷상에서 유포하는 패러디 작업의 원조인 셈이다.
이중재의 편집 작업은 또 다른 차원의 영상제작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 영상, 설치, 웹미디어 등 뉴미디어 아트의 다양한 방법들을 갈파해온 작가로서 그의 실험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 뿐만 아니라 이렇듯 기성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에서도 기발한 상상력을 드러내고 있다. 기성의 고정된 이미지를 재편집함으로써 다른 문맥을 만들어내는 편집 작업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수많은 영화들의 장면을 따다가 재편집함으로써 전혀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와 한국영화의 명장면들을 소기의 목적에 부합하는 내러티브에 맞도록 재구성했다. 이중재의 영상은 스크린 쿼터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 장소에서 상영했던 프로파간다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작업이다.

그림을 듣다 : 시각 혹은 시각성
시각예술이 다루고자 하는 보여준다는 것의 의미를 영화예술 또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온 것이 실험영화의 역사이다. 초기의 실험영화들이 시각예술 분야의 작가들에 의해 많이 제작되었던 점에서 그렇다. 오늘날은 영화의 이미지들을 현대미술의 소재나 주제로 끌어 쓰는 경우도 많아졌다는 점에서 시각예술과 영화예술의 시각성 공유 개념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두 영역이 서로간의 미래상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지를 다시 생각해 봄으로써 양자의 교차점을 확인해보는 작업이었다. 나아가 미술과 영화의 역사는 새로운 매체의 출현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의 결과이며,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해 열린 ‘시각’ 예술로서의 공통점을 가진 예술이라는 점을 확인해보는 자리라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박태규는 극장영화의 간판을 전시장으로 끌고 들어오는 작가이다. 그 자신이 극장간판을 그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을 뿐더러 자신의 작업 자체를 극장간판의 요소들로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전형적인 표정이나 동세들을 포착해서 영화의 내러티브 전체를 끌어내는 하나의 고정된 화면으로서의 그림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는 기성 영화의 서사를 간판 그림에 압축해서 전달하는 작업을 서서히 스스로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회화작업과 서로 주고 받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광주천의 생태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그 영상을 선전하는 간판 그림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광호의 사진, 그림, 영상 버전을 동시에 보여주는 태몽 장면 혹은 사건은 회화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그는 태몽을 꾸는 어머니를 연출사진으로 뽑아내고 이것을 토대로 정교한 회화작품을 만들어낸 후 그림 앞에 선풍기를 놓고 카메라를 돌려서 동영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손으로 그려낸 고정된 화면으로서의 회화작품과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실체를 재현하는 사진과 동영상의 차이를 드러내는 정교한 게임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연출은 회화의 특성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동원된 것인데, 확연하게 다른 매체적 특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현대 예술이 채택하고 있는 매체구분의 파괴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어서 차분하게 읽을 거리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박화영은 꿈에서 나타난 뒤죽박죽의 이야기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영상작품을 통해서 서사의 시각화가 작가 주체의 의도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각예술가가 만들어내는 내러티브가 문학이나 영화의 일반적인 내러티브와 차별성을 확보해나가는 방법이랄지, 전일적인 구성체로 존재하는 듯한 대상들이 파편화하고 분열하는 장면을 통해서 시각 혹은 시각성이 가지는 조작과 은폐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영상 실험들은 긴 시간의 작업과 꼼꼼하게 앞뒤를 가려야 하는 구성능력을 바탕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영상 작업의 밀도를 따져보기는 데 있어 매우 모범적인 작업으로 보인다.

이야기를 보다 : 서사 혹은 서사성
영화가 내러티브 구조에서 출발하고, 시각예술이 시각효과를 강조한다는 이분법적 견해를 넘어서 두 장르의 예술은 서사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영화와 미술은 각각 시각성과 서사성을 향해 새로운 실험을 이어왔다. 특히 현대미술에 있어서 서사의 회복이라는 부분은 포스트모던한 미술지형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 미술이 시각성으로의 환원적 태도를 보여왔다면, 그 이후의 미술은 서서성으로의 확산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것이다. 따사서 현대미술 속에서 서사의 요소를 읽어내는 것은 작품을 읽어내는 것과 거의 등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와 미술 양자 모두는 내용과 표현 형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 서사의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각예술은 영화의 서사구조를 강조하거나 무너뜨리면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때로는 영화처럼 사전에 구성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화면을 구성하면서도 영화의 서사성과는 다른 차원의 감성적인 코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김창겸은 회화와 입체와 영상 작업을 통해서 실재하는 물질로 존재하는 재현적 시각이미지와 비물질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시각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린 자화상 위에 빛의 요소인 슬라이트 프로젝션 이미지의 마오쩌뚱을 투사해 물질과 빛의 두 가지 이미지를 비교해서 보여주거나 석고로 만든 이미지 위에 동영상을 투사해서 물질과 비 물질, 공간을 점유한 오브제와 시간성에 의해 구현되는 동영상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김창겸에게 있어 물질과 비물질, 실재와 비실재의 문제는 내부에서 외부로 확장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작들에 보여준 미술의 본질이나 내부를 지향했던 서사구조에서 사회와 역사,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서사구조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박경주는 외국인 노동자가 지자체 선거 후보로 등장하는 가상의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하고 그것을 다큐멘터리 동영상으로 담아 전시장에서 상영/전시함으로써 예술가의 내러티브가 시각성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서 미디어의 특성을 활용하는 매체미학의 독특한 지형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말해서 매체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기법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논점을 형성하지만, 그것을 어디에 사용하는가, 나아가서 그 매체 활용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따라서도 매우 큰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경주의 매체활용은 아티스트(artist)와 액티비스트(activist)의 지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독창적인 것이다.
박혜성은 앵그르의 명품회화 <샘>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보여준다. 고정된 화면 위에 존재하는 회화적 내러티브를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동영상의 영화적 내러티브로 전환함으로써 시각예술에 있어서 서사 혹은 서사구조의 존재방식을 탐색하고 있다. 그가 회화의 내러티브를 동영상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다른 비디오 클립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때 작가의 이야기 구성 능력뿐만 아니라 스스로 세트와 소품을 다루고 이미지 조작을 가할 수 있는 미술가로서의 능력은 그의 영상작업을 회화 작업이나 영화 예술과는 다른 독창적인 시각예술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김세진은 90년대 후반의 초기작 이래로 영상작가로서의 실험을 지속해왔는데, 최근에는 본격적인 영화수업을 통해서 미술가로서의 영역을 보다 넓게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뚜렷한 차별성은 서사적인 요소를 보다 강조하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번 전시의 출품작에서는 드라마의 장면들이 조악한 세트에 의해 조작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드라마 세트 촬영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한 장의 세트 사진으로 장소를 설정하고 그 앞에서 인물들이 연출된 대사와 동작들을 보여줌으로써 극적인 사건의 전개를 이끌어나가는 드라마의 통속적인 이야기전달 방식을 멀찍이 물러선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영화와 미술의 교차를 통해서 시각과 서사의 관계를 탐색하고자 하는 이 전시 <시각서사>는 10인 작가의 여러 매체 작품들을 통해서 현대미술이 담고 있는 서사의 회복 현상을 간접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20세기 시각예술이 모더니티 기재의 발현과정에 편승해서 서사구조를 배제하려는 일련의 시각성의 본질 탐색으로 내달음질 했던 것에 비해 탈근대적 시각의 미술이 이야기구조를 끌어들이는 과정을 영화라는 종합예술 영역과 비교 검토해본 것이었다. 여기 10인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미술 작가들과 미술 분야 평론가 그리고 영화 관련 종사자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눈 결과물들을 통해서 탈근대적 시각예술 지형을 탐색하는 데 있어서 자그마한 실마리 하나를 잡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05/03/25 08:45 2005/03/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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