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비판할 것인가 : 진기종 개인전 리뷰

critic & column | 2010/09/27 20:49


무엇을 비판할 것인가 : 진기종 개인전 리뷰

진기종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태환경의 위기상황에 관한 비판적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는 축소재현물을 통해서 지구 전체가 처한 생태계 교란의 위기를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다. 작은 모형들은 심난한 사건과 정황들을 우스꽝스럽게 재현하고, 때로는 심난하게 표현한다. 그는 생태환경 문제의 근저에 국가와 자본의 탐욕이 얽혀 있다는 것을 노치지 않는다. 아마존 숲을 파괴하는 트랙터는 동시대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괴의 현장을 대변한다. 몰아치는 파도 속에 기름통들이 둥둥 떠있는 바닷가에는 낭만과 키치가 공존한다. 푸른 지중해 바다를 검게 물들인 파괴된 유조선이나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새들, 녹아내리는 빙산 위에서 표류하고 있는 북극곰, 방사능에 노출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얼굴, 기형의 금붕어 등 위기상황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이 박물관 진열장 속에 오롯이 박제되어 있다.

화석연료의 연대기를 목재와 석탄, 석유의 순서로 집약한 <기찻길 시리즈 1>는 익숙한 도상의 재현을 넘어서는 상징적 표현으로서 예술적 득의에 성공하고 있다. 일리야 레핀의 명작 <볼가강의 배끄는 인부들>을 패러디한 축소재현물 <걸프만의 노예>는 특히 걸프전의 주역들을 등장시켜 기름전쟁의 부조리를 조롱한다. 공들여 만든 작은 모형들은 유리상자 안에 갇혀있는 박제된 현실을 표상한다.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우리 눈에 매우 익숙해진 회화나 사진 등의 평면 이미지들을 입체로 번안하는 과정에 블랙 유머를 가미하는 것도 그의 장점이다. 진기종은 생태와 환경이라는 의제를 단순히 ‘득템’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로 발언하고 있다. 확실히 그는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서도 눈에 띄게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자질을 가진 예술가로서 주목 받을만하다.

문제는 그의 비판적 언설들이 처한 동시대 미술지형과 매체환경 속에서의 난맥상이다. 걸프전이 기름전쟁이었다는 세간의 논평은 이미 지나간 옛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난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 또한 첨예한 의제를 생성하지 못한다. 헐리우드 언덕이 섬으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경고해야할 정도로 심각한 지구온난화에 대한 저항도 자본과 권력의 손아귀에 머물러 있다. 이렇듯 비판과 저항마저도 제도화한 상황에서 진기종이라는 한 예술가의 비판은 어떤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는가? 물론 생태주의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과 예술가 진기종은 다르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실제의 사건이나 상황을 재현하거나 표현하고 있다기보다는 매스미디어라는 가상의 실재가 유포한 정보들을 재구성한다. 그의 지구 리포트는 생태환경에 관한 보고서이기보다는 생태환경을 다루는 매스미디어에 관한 보고서에 가깝다.

진기종의 성찰과 비판은 현실에 대한 참여와 개입이기보다는 매스미디어가 토해내는 부산물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재구성한 미디어 후행(後行) 리포트이다. 따라서 진기종의 이 순발력 떨어지고 진부할 수밖에 없는 메시지들은 실재의 상황을 관통하지 안/못하는 관념의 재구성이다. 그의 작업에 대해 이른바 ‘관조적 시선’이라는 논평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몇 액티비스트들의 사례를 제외하면, 특정한 의제나 장소를 다루는 예술가들의 발언은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다. 따라서 비판적 시각으로 특정 의제를 설정하고 예술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서사를 유포하는 예술가의 실천은 매우 굼뜨고 더딜 수밖에 없다. 첨단의 정보사회에서 예술적 소통을 통해서 동시대성을 확보하기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가령 한국의 서해안에서 벌어진 기름유출사건이나 4대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포크레인 삽질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가 자신의 서사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적어도 제도미술 속에서는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제도 예술계에서는 ‘지금 여기’의 문제보다는 ‘그때 거기’의 문제를 다루기가 훨씬 더 수월하다. 진기종 또한 이러한 현대미술의 난맥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걸프만과 아마존, 북극 등과 같은 글로벌한 이슈들과 서해안이나 4대강 같은 지금여기의 로컬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예술이 비판을 하고 있다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큼이나, 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비판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김준기(미술평론가)

* 월간미술 2010년 10월호 기고문

2010/09/27 20:49 2010/09/2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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