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적 문화정치로서의 도심속 작업실 정책 050322
critic & column | 2005/03/22 18:14
미시적 문화정치로서의 도심 속 작업실 정책
김준기 (예술학,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예술 생태계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사실 이 문제에 관한 탐색은 기초교육에서 대학교육에 이르는 ‘교육 시스템’, 미술관, 화랑, 비영리갤러리,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과 같은 ‘향유 및 유통 구조’, 비평이나 미술언론과 같은 ‘담론의 영역’에서만 다루어져왔다. 하지만 정작 예술 생태를 논하면서도 예술 생산의 전초기지로서의 작업실, 나아가 예술생산의 매카니즘에 관해서는 매우 무관심했다. 예술가들의 존재 환경을 규정하는 작업실이라는 공간은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나 매몰차게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다. 최근에 들어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 생산에 기여하는 작업실이라는 공간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의미의 담론 생산과 예술적인 실천과 정책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하나는 2004년 이후 한국의 예술계에 작업실의 문제를 본격화한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목동예술인회관 점거 프로젝트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 짓는 건물에 작업실을 마련하는 임대 아파트 작업실 논의이다.
도시 재활 프로그램으로서의 목동예술인회관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목동예술인회관 점거 프로젝트는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점유해서 사용하는 유럽의 스쾃(squat) 전통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서 일종의 사회적 퍼포먼스 형태로 쟁점화한 사안이다. 이것은 한 나절 동안 점거현장에 머물렀던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퍼포먼스를 둘러싼 전후의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특성상 유럽의 점거아뜰리에 전통을 그대로 이식하려하지 않고 현실에 맞게 다른 방법으로 사안을 부각한 점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수년동안 사회문제로 남아있던 목동예술인회관이라는 난제를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문화부로부터 국고보조금 일부 환수조치라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안 자체는 아직 구체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점거 퍼포먼스를 이끈 사람들은 법정에 서야 할 판이고, 문화부 정문 앞에서의 1인 시위는 석달째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범예술계와 시민사회에 이 사안을 함께 논의하자는 제안을 던져놓았다. 그 제안의 항목들 가운데 하나가 이들이 내놓은 목동예술인회관 운영계획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목동예술인회관 운영계획초안>(작성 : 김윤환, 김강)에 따르면, 이 공간은 ‘자유로운 예술실험과 예술공동체를 지향하는 예술자율지대’를 기치로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비디오, 단편영화, 문학, 설치, 퍼포먼스 등 전 장르의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일상적 교류와 장르를 뛰어넘는 실험의 장을 만들며, ‘지역사회와의 소통으로 예술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열린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레지던스 공간, 작업공간, 전시공간, 공연공간, 복합공간, 바, 어린이작업실, 사무공간’ 등이 들어설 수 있다.
몇 가지만 간략히 살펴보면, 레지던스 공간은 국내외 작가들 모두에게 열려있는 장단기 체류 방식으로 해외나 지방의 작가들이 거쳐 가는 장소로 쓰이는 열린 공간이다. 이들의 계획안에 따르면, 작가들의 개인 작업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장비를 이용할 수 있는 공동 작업실, 음악 및 공연 예술을 위한 연습실, 만화, 애니메이션, 사진 및 영화 분야의 작업실 등 열린 시스템의 작업실들은 개인 단위로 흩어진 작업실들과는 다른 차원의 문화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예술 생산의 전초기지로서의 기능을 십분 발휘할 것이다. 여기에 묘미를 더해주는 것이 일상의 최전선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교육을 실현하는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의 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 또한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재정에 관한 대책 또한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는데, 문화 관련 매장이나 휴게시설 운영 수익과 전시-공연 입장 수익 등을 통해서 최소한의 운영비를 마련하되, 비영리 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어기지 않는다는 방침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점을 전제로 최소한의 시설 장비 및 운영경비는 정부지원가 지원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공간 운용 개념을 보충하기 위해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제안한 공간 배치 계획을 인용한다. “지하 5층-3층 : 주차장 / 지하 2층 : 대규모 전시장, 지하 1층 : 음악공연장 및 음악 연습실 / 지상 1층 : 전시장, 바, 레스토랑, 어린이 아뜰리에, 입체조형 작업실, 예술서점 / 지상 2층 : 시민예술도서관, 복합공간 / 지상 3층 -5층 : 사무공간, 조형예술가의 공동작업실, 공연예술가 연습실 / 지상 6층-10층 : 멀티미디어 작업실, 개인 작업실, 만화작업실 / 지상 11층-15층 : 단기 예술가들의 개인 작업실 및 개인 연습실, 전시장 / 지상16층-18층 :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업실, 예술가 유스호스텔 / 지상 19층-20층 : 독립영화 상영관, 제2 레스토랑”
동네사람들의 문화 아지트, 아파트 작업실
임대아파트에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유치하는 방안에 관한 이야기도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생생한 사람의 삶과 마주하기 보다는 매일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매스미디어 세례에 빠지게 만드는 스포츠와 영화, 드라마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삶의 구체성이 결여된 문화에 또 다른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주거공간과 밀착한 작업실 논의이다. 그것도 현대 도시인과 매우 인접한 곳 아파트 작업실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것은 현대 도시인의 주거 환경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파트 공간 가운데 일부를 공적인 예술 채널로서의 ‘임대 아파트 작업실’로 활용하자는 방안이다. 예술가들은 일년 또는 몇 년에 한 두 번 인사동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들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을 꾸리면서’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삶과 예술 생산을 매개하는 장으로서의 작업실을 삶의 공간에 자리 잡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일구성원으로써의 자리매김을 강화해주는 것은 예술가들의 자폐적인 습성을 덜어주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파트 작업실의 장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아파트 작업실은 작업실 뿐만 아니라 동네사람들의 문화 아카이브 공간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아파트 단위의 작은 문화공간을 생각해보자. 거대한 시스템이 필요한 구청단위의 도서관에 비해서 ‘우리동네 문화공간’의 다양한 쓰임새를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넓다. 둘째 예술가들을 대중의 문화예술 교사로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펼칠만한 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심한 경우 자폐적인 공간 속에서 절망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작가들을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장으로 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셋째는 단편적인 문화소비를 넘어 새로운 문화 생산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전역에 퍼져있는 서점 및 동네의 표구점과 액자집, 붕어빵 키치표 아트샵 등에서 쏟아내는 획일적인 문화 수준을 넘어서는 창의적인 문화소비를 촉발하고 보다 다양한 문화 생산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넷째, 멀티미디어 작가들의 작업공간이 들어설 경우 시민들에게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는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상상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다섯째, 작품 보관 창고 및 작품 대여 등의 동네 단위 예술은행으로서의 기능 또한 매우 중요하다. 아파트마다 비어있는 창고가 넘쳐나지만, 예술가들은 작품 보관 장소가 없어서 피눈물을 삼키며 작품을 불태우거나 파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들 작품을 보관하며 동시에 아파트의 입주민들에게 작품을 소장하거나 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시적 문화정치로서의 임대아파트 작업실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법제도를 정비해서 임대 아파트에 의무적으로 작업실 공간을 만들어서 예술가들의 서식지를 만들어야 한다. 공고하게 예술의 생태를 좌우하는 것은 예술 생산의 근거지로 작용하는 예술가들의 서식지, 작업실의 문제는 이제 거시적 차원의 문화인프라 구축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위의 미시적 차원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예술서식지로서의 작업실과 예술생태
도시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유휴 공간을 되살려서 문화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과 아파트 공간에 작업실을 만드는 일 등 도심 속의 작업실 개념은 현대 도시의 구조와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적합한 방식으로 예술가들의 서식지를 증식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문화 생산을 촉진하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나아가 포스트모던한 문화예술 지형은 장르간 경계를 넘어서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화예술의 종다양성을 보존하며 공존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게 하는 도심 속 작업실의 기능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작업실은 일차원적인 작품 생산 공장의 기능을 넘어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전시와 공연, 교육과 휴게 공간이 한 데 어우러진 근사한 복합문화 공간을 지척에 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일상적인 문화 공동체를 만들고 크고 작은 문화행사를 열 수도 있다. 상업적 목적으로 획일화한 소비문화는 이미 일상 깊숙이 침투해있다. 거리와 건물 곳곳에 천박한 소비문화와 키치적 시각, 청각의 요소들이 가득 차 있으며 대부분의 문화 및 휴게 공간들은 식민화한 문화지형을 체감할 수 있는 최첨단의 장소이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적 문화공간으로서의 도심 작업실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지역 사회 및 시민단체들과의 네트워킹이 가능해진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예술이 시민들에게 단순한 정서함양 수준을 넘어서 적극적인 문화생산의 장으로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기실 수많은 지역 단위의 문화센터들이 양산해내는 체제내적인 교양수준의 문화예술은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수준을 넘어설 필요가 있고, 전통가요나 포크 음악으로 불리우는 왜곡된 대중음악 문화 지형에도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문화가 필요하며 또한 생생한 삶의 노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도 학교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니는 미술학원 음악학원이 아니라 창작교육과 감상교육의 비중을 잘 맞추는 균형감있는 문화예술 교육이 필요하다. 누구도 권력과 자본이 펼쳐놓은 거대담론의 그물망 속에서 붕어빵 찍어내듯이 판에 박힌 정체성을 반복하며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심속 작업실 논의는 문화예술공동체의 초석을 까는 일이다. 근대화가 이룬 가장 위대한 폐해는 역시 미시적 수준의 공동체가 거대 담론과 국가 권력, 자본주의 등 거대한 힘에 의해 힘없이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복원할 수 있는 힘은 전국에 뻗쳐있는 행정단위의 통장이나 이장 수준의 행정단위 네트워킹으로 될 일이 아니다. 동네마다 들어선 붉은 십자가 네온 사인도 신도들을 보살피는 내부의 공동체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거하고 미시담론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진정 미시적 차원의 문화정책이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영역 가까운 곳에 있다. 문화예술공동체 모델을 개발함으로써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동네사람들의 유대감과 연대를 키워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문화예술이 아파트 동네마다 거점을 만들고 지역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채비를 할 시점이다. 예술가들의 서식지로서 기능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예술 창작과 향유의 공간으로 거듭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김준기 (예술학,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예술 생태계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사실 이 문제에 관한 탐색은 기초교육에서 대학교육에 이르는 ‘교육 시스템’, 미술관, 화랑, 비영리갤러리,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과 같은 ‘향유 및 유통 구조’, 비평이나 미술언론과 같은 ‘담론의 영역’에서만 다루어져왔다. 하지만 정작 예술 생태를 논하면서도 예술 생산의 전초기지로서의 작업실, 나아가 예술생산의 매카니즘에 관해서는 매우 무관심했다. 예술가들의 존재 환경을 규정하는 작업실이라는 공간은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나 매몰차게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다. 최근에 들어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 생산에 기여하는 작업실이라는 공간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의미의 담론 생산과 예술적인 실천과 정책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하나는 2004년 이후 한국의 예술계에 작업실의 문제를 본격화한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목동예술인회관 점거 프로젝트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 짓는 건물에 작업실을 마련하는 임대 아파트 작업실 논의이다.
도시 재활 프로그램으로서의 목동예술인회관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목동예술인회관 점거 프로젝트는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점유해서 사용하는 유럽의 스쾃(squat) 전통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서 일종의 사회적 퍼포먼스 형태로 쟁점화한 사안이다. 이것은 한 나절 동안 점거현장에 머물렀던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퍼포먼스를 둘러싼 전후의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특성상 유럽의 점거아뜰리에 전통을 그대로 이식하려하지 않고 현실에 맞게 다른 방법으로 사안을 부각한 점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수년동안 사회문제로 남아있던 목동예술인회관이라는 난제를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문화부로부터 국고보조금 일부 환수조치라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안 자체는 아직 구체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점거 퍼포먼스를 이끈 사람들은 법정에 서야 할 판이고, 문화부 정문 앞에서의 1인 시위는 석달째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범예술계와 시민사회에 이 사안을 함께 논의하자는 제안을 던져놓았다. 그 제안의 항목들 가운데 하나가 이들이 내놓은 목동예술인회관 운영계획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목동예술인회관 운영계획초안>(작성 : 김윤환, 김강)에 따르면, 이 공간은 ‘자유로운 예술실험과 예술공동체를 지향하는 예술자율지대’를 기치로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비디오, 단편영화, 문학, 설치, 퍼포먼스 등 전 장르의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일상적 교류와 장르를 뛰어넘는 실험의 장을 만들며, ‘지역사회와의 소통으로 예술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열린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레지던스 공간, 작업공간, 전시공간, 공연공간, 복합공간, 바, 어린이작업실, 사무공간’ 등이 들어설 수 있다.
몇 가지만 간략히 살펴보면, 레지던스 공간은 국내외 작가들 모두에게 열려있는 장단기 체류 방식으로 해외나 지방의 작가들이 거쳐 가는 장소로 쓰이는 열린 공간이다. 이들의 계획안에 따르면, 작가들의 개인 작업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장비를 이용할 수 있는 공동 작업실, 음악 및 공연 예술을 위한 연습실, 만화, 애니메이션, 사진 및 영화 분야의 작업실 등 열린 시스템의 작업실들은 개인 단위로 흩어진 작업실들과는 다른 차원의 문화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예술 생산의 전초기지로서의 기능을 십분 발휘할 것이다. 여기에 묘미를 더해주는 것이 일상의 최전선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교육을 실현하는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의 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 또한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재정에 관한 대책 또한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는데, 문화 관련 매장이나 휴게시설 운영 수익과 전시-공연 입장 수익 등을 통해서 최소한의 운영비를 마련하되, 비영리 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어기지 않는다는 방침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점을 전제로 최소한의 시설 장비 및 운영경비는 정부지원가 지원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공간 운용 개념을 보충하기 위해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제안한 공간 배치 계획을 인용한다. “지하 5층-3층 : 주차장 / 지하 2층 : 대규모 전시장, 지하 1층 : 음악공연장 및 음악 연습실 / 지상 1층 : 전시장, 바, 레스토랑, 어린이 아뜰리에, 입체조형 작업실, 예술서점 / 지상 2층 : 시민예술도서관, 복합공간 / 지상 3층 -5층 : 사무공간, 조형예술가의 공동작업실, 공연예술가 연습실 / 지상 6층-10층 : 멀티미디어 작업실, 개인 작업실, 만화작업실 / 지상 11층-15층 : 단기 예술가들의 개인 작업실 및 개인 연습실, 전시장 / 지상16층-18층 :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업실, 예술가 유스호스텔 / 지상 19층-20층 : 독립영화 상영관, 제2 레스토랑”
동네사람들의 문화 아지트, 아파트 작업실
임대아파트에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유치하는 방안에 관한 이야기도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생생한 사람의 삶과 마주하기 보다는 매일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매스미디어 세례에 빠지게 만드는 스포츠와 영화, 드라마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삶의 구체성이 결여된 문화에 또 다른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주거공간과 밀착한 작업실 논의이다. 그것도 현대 도시인과 매우 인접한 곳 아파트 작업실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것은 현대 도시인의 주거 환경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파트 공간 가운데 일부를 공적인 예술 채널로서의 ‘임대 아파트 작업실’로 활용하자는 방안이다. 예술가들은 일년 또는 몇 년에 한 두 번 인사동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들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을 꾸리면서’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삶과 예술 생산을 매개하는 장으로서의 작업실을 삶의 공간에 자리 잡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일구성원으로써의 자리매김을 강화해주는 것은 예술가들의 자폐적인 습성을 덜어주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파트 작업실의 장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아파트 작업실은 작업실 뿐만 아니라 동네사람들의 문화 아카이브 공간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아파트 단위의 작은 문화공간을 생각해보자. 거대한 시스템이 필요한 구청단위의 도서관에 비해서 ‘우리동네 문화공간’의 다양한 쓰임새를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넓다. 둘째 예술가들을 대중의 문화예술 교사로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펼칠만한 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심한 경우 자폐적인 공간 속에서 절망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작가들을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장으로 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셋째는 단편적인 문화소비를 넘어 새로운 문화 생산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전역에 퍼져있는 서점 및 동네의 표구점과 액자집, 붕어빵 키치표 아트샵 등에서 쏟아내는 획일적인 문화 수준을 넘어서는 창의적인 문화소비를 촉발하고 보다 다양한 문화 생산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넷째, 멀티미디어 작가들의 작업공간이 들어설 경우 시민들에게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는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상상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다섯째, 작품 보관 창고 및 작품 대여 등의 동네 단위 예술은행으로서의 기능 또한 매우 중요하다. 아파트마다 비어있는 창고가 넘쳐나지만, 예술가들은 작품 보관 장소가 없어서 피눈물을 삼키며 작품을 불태우거나 파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들 작품을 보관하며 동시에 아파트의 입주민들에게 작품을 소장하거나 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시적 문화정치로서의 임대아파트 작업실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법제도를 정비해서 임대 아파트에 의무적으로 작업실 공간을 만들어서 예술가들의 서식지를 만들어야 한다. 공고하게 예술의 생태를 좌우하는 것은 예술 생산의 근거지로 작용하는 예술가들의 서식지, 작업실의 문제는 이제 거시적 차원의 문화인프라 구축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위의 미시적 차원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예술서식지로서의 작업실과 예술생태
도시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유휴 공간을 되살려서 문화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과 아파트 공간에 작업실을 만드는 일 등 도심 속의 작업실 개념은 현대 도시의 구조와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적합한 방식으로 예술가들의 서식지를 증식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문화 생산을 촉진하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나아가 포스트모던한 문화예술 지형은 장르간 경계를 넘어서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화예술의 종다양성을 보존하며 공존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게 하는 도심 속 작업실의 기능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작업실은 일차원적인 작품 생산 공장의 기능을 넘어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전시와 공연, 교육과 휴게 공간이 한 데 어우러진 근사한 복합문화 공간을 지척에 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일상적인 문화 공동체를 만들고 크고 작은 문화행사를 열 수도 있다. 상업적 목적으로 획일화한 소비문화는 이미 일상 깊숙이 침투해있다. 거리와 건물 곳곳에 천박한 소비문화와 키치적 시각, 청각의 요소들이 가득 차 있으며 대부분의 문화 및 휴게 공간들은 식민화한 문화지형을 체감할 수 있는 최첨단의 장소이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적 문화공간으로서의 도심 작업실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지역 사회 및 시민단체들과의 네트워킹이 가능해진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예술이 시민들에게 단순한 정서함양 수준을 넘어서 적극적인 문화생산의 장으로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기실 수많은 지역 단위의 문화센터들이 양산해내는 체제내적인 교양수준의 문화예술은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수준을 넘어설 필요가 있고, 전통가요나 포크 음악으로 불리우는 왜곡된 대중음악 문화 지형에도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문화가 필요하며 또한 생생한 삶의 노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도 학교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니는 미술학원 음악학원이 아니라 창작교육과 감상교육의 비중을 잘 맞추는 균형감있는 문화예술 교육이 필요하다. 누구도 권력과 자본이 펼쳐놓은 거대담론의 그물망 속에서 붕어빵 찍어내듯이 판에 박힌 정체성을 반복하며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심속 작업실 논의는 문화예술공동체의 초석을 까는 일이다. 근대화가 이룬 가장 위대한 폐해는 역시 미시적 수준의 공동체가 거대 담론과 국가 권력, 자본주의 등 거대한 힘에 의해 힘없이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복원할 수 있는 힘은 전국에 뻗쳐있는 행정단위의 통장이나 이장 수준의 행정단위 네트워킹으로 될 일이 아니다. 동네마다 들어선 붉은 십자가 네온 사인도 신도들을 보살피는 내부의 공동체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거하고 미시담론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진정 미시적 차원의 문화정책이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영역 가까운 곳에 있다. 문화예술공동체 모델을 개발함으로써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동네사람들의 유대감과 연대를 키워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문화예술이 아파트 동네마다 거점을 만들고 지역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채비를 할 시점이다. 예술가들의 서식지로서 기능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예술 창작과 향유의 공간으로 거듭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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