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욕망의 변증법 : 누가 공공미술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80년대 현장미술을 보게 하라 021207

public art | 2005/03/14 00:07



저항과 욕망의 변증법 : 공공미술

누가 공공미술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80년대 현장미술을 보게 하라


김준기 (가나아트컨설팅 공공미술팀장)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는 민중을 시민으로 순화시킨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은 분명 시민의 시대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건강한 상식을 제대로 체득한 시민사회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오히려 익명의 대중으로 편재되어 일상의 틀 속으로 함몰되어 가고 있는 시민의 시대이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라는 말처럼 시민(demos)이라는 말도 애초에는 ‘도시의 구성원’이라는 말로서 ‘공적인 인간’을 규정하는 단어였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단지 소비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상투적인 규정이 되어 버렸다. 출근하면 노동자로 퇴근하면 시민으로 옷을 바꿔 입으며 이중적 잣대에 노출되어 있는 대중(혹은 시민)에게 문화 예술은 생산의 장이기보다는 소비(향유)의 대상이다.

이렇듯 생산과 소비의 이원화로 인해 사적(私的)인 코드로 경직되어가는 문화예술의 대안은 무엇인가? 공공예술이란 개념은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공공예술이란 예술생산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대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공동체의 집합적인 사상의식과 생활정서에 바탕을 두고 '생산의 문화 예술'을 꿈꾸는 개념이다. 이 글은 저항하는 민중과 욕망하는 대중을 한 몸에 담고 있는 공중의 개념을 전제로, 한국 사회에서 공공미술 논의가 갖고 있는 현장 미술의 함의를 밝히고자하는 시론(試論)이다.


공공미술 : 시각문화의 정치학

선과 면과 점, 형태와 색채, 입체와 공간, 과정과 결과물 등을 둘러싼 일체의 행위와 개념과 제도 등을 일컫는, 이른바 ‘미술’이라는 말이 있다. 아름다움과 기술이라는 뜻의 낱말을 조합한 이 한자 문화권의 단어는, 감성(感性)에 관한 학문 ‘Aesthetics’를 미학(美學)으로 오역한 것처럼, 시지각(視知覺) 기반의 예술 장르 ‘Visual Art’를 미술(美術)로 오역한 결과다. 이 미술이라는 말 앞에 공공(公共)이라는 단어를 붙인 공공미술이란 개념을 규정하기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공공미술은 총체적인 시각 이미지 정치학이다. 종교와 권력에 귀속되었던 중세시대의 미술 작품들을 상기해보자. 오늘날 훌륭한 문화 유산으로 지정돼 관광지로 각광받거나 문화 답사 코스로 유명해진 오래된 건축과 미술품들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왕권이나 종교 권력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들이다. 사회적 재화와 용역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진 이들이 당대의 공공적 시각 결과물들을 장악해온 것이다. 미술적 가치가 있는 시각이미지들은 당시엔 극히 한정된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었다.

미술에 있어 이런 생산과 소비의 집중현상은 근대 이후 권력이 분산되고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오늘날의 미술, 미술 장식, 환경 조형 등의 개념은 권력과 종교에 봉사하던 중세의 미술 개념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가령 지금 대한민국에서 보통의 시민들은 ‘문화로서의 미술’에 어느 정도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까. 평범한 서울 시민은 1년에 몇 번이나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인사동의 전시장을 찾아가며,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오페라나 발레를 감상하고 있을까. 미술이 중세 시대처럼 소수의 권력층에 의해 사유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공공영역’에서 공중이 향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들 말하지만 미술 영역에 국한해서 보자면 보통사람들이 ‘문화로서의 미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아직도 ‘먼 산의 불 구경’이다.

환경 조형, 장식 미술, 대지 미술, 장소 지정형 미술(Site Specific Art) 등을 포괄하는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새 장르 공공미술 개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이런 현실적 문제에서 출발한다. 이 개념은 물건으로서의 작품을 남기는 것을 넘어서 '행위과정'이나 '프로그램 운영'으로까지 미술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주요한 물적 기반인 '공적 자금에 관련한 미술제도 개혁'에 관해 보다 깊고 넓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문화개혁시민연대>나 <공공미술 제도 도입을 위한 예술인 협의회> 등 몇몇 문화예술관련 시민단체들이 개념과 제도의 정비에 힘을 쏟고 있다. 시각 이미지 영역의 상징 정치는 이제 공공미술의 이름 아래 특정 소수의 것에서 공공의 것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환경 조형이나 기념 건조물의 차원을 넘어서는 공공미술을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공공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며, 공중(公衆)의 감성에 부합하는 미술 행위와 그 결과물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공공미술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0년 안쪽의 일이지만, 그 이전 1980년대 현장미술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오늘날의 공공미술 논의에 실천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잠시 80년대 현장미술의 흐름을 짚고 넘어가자.


현장미술의 흐름: 리얼리즘-포스트모더니즘-공공미술

현장미술은 모더니즘 미학에 근거한 제도 공간을 벗어나 열린 공간에서 미술 실천을 지향한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의 한 흐름이다.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은 실천 영역에 따라 전시장과 현장이라는 두 지점으로 대비되는데, 그 가운데 삶과 투쟁의 현장에 보다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고자 했던 미술 흐름이 현장미술이다.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의 실천적 방법론은 비판적 리얼리즘, 민족미술론, 사실주의론, 전투적 신명론과 공동체적 신명론, 생활 미술론과 노동 미술론, 민중적 리얼리즘, 당파적-계급적-진보적 현실주의 등 지금 들어보면 ‘겁나는’ 범주들로 구분되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갈래의 미술 논의는 1) 전시장 중심의 활동을 통해 미술 변혁 운동의 경향성을 띈 ‘현실 비판적 리얼리즘’과 2) 현장활동을 통해 사회 변혁 운동에 복무하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중요시하는 경향성을 띄는 ‘민중적 리얼리즘’이라는 두 가지 논점에서 출발했는데, 현장미술은 후자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1990년을 전후로 활성화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리얼리즘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거론된 매체론과 시각 문화론 등의 형태로, 현장미술의 실천적 영역과 창작 방식에 대중 매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모색을 가져다주었다. 여기에 공공미술론 또한 특정 공간 대상의 미술 행위, 현실 개입의 실천적 경향성, 장소와 동시대성을 공유하는 현장성 획득 등에 있어서 접합의 지점을 형성한다. 이러한 현장미술은 ‘현실 인식, 현실 개입, 현장 참여’라는 세 가지 원칙의 현장성을 통해 실현되며, 이러한 ‘현장성의 실천적 함의는 동시대 현실과의 소통 가능성을 확보하는 조건’이다.

현장미술은 1980년대에 국내 리얼리즘 미술운동인 민중미술의 실천 방식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 미술 동인 ‘현실과 발언’ 등의 창작 그룹들이 1970년대 이전 추상회화의 고답적인 형식주의 모더니즘 일색의 흐름에 반기를 들고 현실 비판적인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그림들을 제시한 일은 한국적 리얼리즘 미술의 출발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의 새로운 시각 이미지는 이후에 민중미술이라는 큰 이름 아래서 현장미술이라는 행동주의적 미술실천을 경험함으로써 동시대성과 현장성을 획득했으며, 오윤을 비롯해 신학철, 임옥상 등 다수의 걸출한 리얼리스트들이 배출되었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전의 소그룹들이 큰 틀로 묶여진 조직적인 미술 실천이 등장한다. 이 시기 미술 운동은 민족-민중적 리얼리즘의 대두로 새로운 국면을 맞아 사회 변혁 운동과 결합한 미술 실천을 강조했다. 현장미술의 뿌리는 바로 이 사회 운동적 미술 실천에 있다. 전통 미술의 긍정적인 요소를 계승해서 걸개 그림이라는 양식과 공동 창작 방식을 주창한 ‘두렁’과 광주 항쟁을 겪으며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대중 미술 교육에 나선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등은 전시장이라는 일상과 괴리된 공간을 벗어나 일상적인 삶의 공간과 민중의 투쟁 현장에서 직접 만나는 현장미술 실천을 이끌어낸 선구적 역할을 했다. 김봉준과 홍성담이라는 대표적인 현장미술 운동가를 배출한 이들은, 전자의 경우 계급계층운동의 현장에 결합해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의 정서에 부합하는 미술적 실천을 위주로 한 노동 미술의 경향성으로 나타났으며, 후자의 경우에는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 운동 등의 정치적 투쟁 현장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아방가르드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들은 대중이나 시민들과 직접 만나 문화의 향유-소비를 넘어서는 문화의 창조-생산을 실천적 영역에 도입하려 했으며, 조직적인 미술운동의 흐름 속에서 한 시대의 대세를 이루었다.

현장미술은 동시대성과 장소성을 동반하고 있어, 삶의 현장을 예술적 차원에서 매개하는 현장성을 구현한다. 특히 1987년을 전후로 한, 한국 사회의 격변기를 맞아 이들의 미술 실천은 파업의 현장인 공장, 농촌, 민주화 열기로 가득했던 집회장, 시위 현장, 민주 열사의 장례식 등 급박한 흐름 속에서 노동미술과 정치선전미술의 전성기를 일구어냈다. 이 시기의 현장미술가들로는, '민족미술인협회'와 '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 건설준비위원회' 등의 미술가 조직과 창작 소그룹을 통해서 활동한 다수의 익명의 작가들, 그 외 학생미술운동에서 헌신성을 발휘한 무수히 많은 이들이 있었다.


1980년대 민중(民衆) 계급성 저항예술 현장/민중미술-리얼리즘미술

1990년대 대중(大衆) 익명성 욕망예술 여러가지미술-포스트모던미술

2000년대 공중(公衆) 공공성 공공예술 바깥미술-공공미술


21세기 리얼리즘 : 현장에서 공공으로

현장미술이 그 실천적 역동성을 소진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중반 이후의 일이었다. 대중소비문화가 본격화된 후기 자본주의적 양상과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국내 정치의 개량화 등의 변화에 따라 전투적인 현장미술 활동의 반경이 줄어들었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변화는 리얼리즘 미술가들의 실천 영역을 보다 폭넓게 만들었다.

그것은 한때 386세대로 불렸던 젊은 작가들의 경향적 현장미술로 나타나는데 배영환, 이중재, 김태헌, 구본주, 방정아, 박은태, 박영균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전투적 리얼리즘 대신에 정치, 환경, 계급, 가족, 여성, 일상 등 다양한 영역으로 소재를 넓혀 나름의 현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미술 실천은 시각적인 완결성과 더불어 선명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창작 활동을 이어온 확장된 개념의 현장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현장미술과 확장적 양상의 현장미술이 21세기 미술에 안겨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위의 미술 흐름이 보여주는 참여미술의 경향성은 다음의 세 가지 차원에서 미술 개념의 확장에 긍정적인 단초를 제공한다. 우선 매체와 영역에 걸친 미술의 확장적 양상이 나타나고, 다음으로, 미술의 확장에 기여한 흐름은 현장성의 변동과도 맞물린다. 이는 1980년대와 1990년대라는 상이한 정치, 경제, 문화적 환경의 변동은 현장미술의 실천 영역과 방식을 바꾸어 놓았으며, 현장성 개념에도 변화를 주었다.이러한 현장미술의 확장적 양상과 흐름을 같이하는 것이 공공미술이다. 1980년대식 현장미술의 소구 대상이 계급 계층 의식을 염두에 둔 민중이었다면, 1990년대식 현장미술의 대상은 탈계급적 개념인 시민이나 대중이다. 공공미술은 공익적 차원에서 미술이 대중을 만나는 방식을 고민함으로써 진보적 미술 실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새 장르 공공미술의 논객인 수잔 레이시(Suzanne Lacy)는 공공미술의 비평적 언어로 상호작용, 관객, 효과 등을 꼽으면서, 특히 관객과 예술가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의 미학적 전략은 경험, 분석, 보고, 행동의 단계로 나뉘며, 사적인 미술과 공공미술의 차이는 개인의 경험에 따른 주관성적 감성을 공감시키는 단계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상황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며, 나아가 새로운 합의를 세워내는 과정으로 예술행위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의 차이이다. 새 장르 공공미술 논의에서 말하는 행동가로서의 예술가가 사회적, 정치적, 예술적 이슈에 대한 새로운 틀을 만들어나가는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지향은, 80년대 현장미술의 방법이나 목적과도 접합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개인 공공

경험자로서의 예술가 분석가로서의 예술가 보고자로서의 예술가 행동가로서의 예술가

주관성의 공감 정보의 공유 상황에 대한 해답 새로운 합의 도출

1990년대 말 이후에 나타나는 미술 실험들은 미술 행위의 실천적 장소가 전시장인가 아니면 삶의 현장인가 하는 구분을 떠나서 행동주의적 개념적 양상을 띄면서 미술의 심미적 완성도를 유지하면서도 현장성을 담보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계급 계층 운동이나 정치적 운동과 결합했던 이전 세대의 현장미술을 보다 포괄적인 범위에서의 공익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공공미술로서의 가능성과 더불어 현장미술의 문화 생산적인 소통 방식과 미학 이념의 연장선상에서의 새로운 21세기 리얼리즘 미술의 대안적 징후들로 나타나고 있다. 80년대의 저항의 시대와 90년대의 욕망의 시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2005/03/14 00:07 2005/03/1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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