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표와 의미의 동행 또는 배리 : 김용호 몸전 리뷰

critic & column | 2008/01/18 03:15


review

기표와 의미의 동행 또는 배리

김용호 <몸> | 2007.11.17~2008.1.27 |대림미술관

봉긋하게 솟은 척추 너머로 빼꼼하게 머리카락을 드러낸 등판은 미지의 세계 신대륙을 은유한다. 김용호의 몸 연작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신대륙의 자연과 생물’ 연작은 인간의 몸을 미지의 땅에 관한 탐험의 세계로 이끈다. 바짝 끌어당겨 부분을 포착하기도 하고 등판 전면을 통해서 몸이 새롭게 표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부황 자국이 선명한 몸과 문신이 새겨진 몸을 통해서도 몸을 입은 인간 존재의 면면을 새롭게 읽어 내도록 한다. 초점을 맞춘 것과 흐리게 한 것 사이의 변주도, 정적인 자세와 역동적인 자세의 차이들도 작가가 치열하고 진지하게 몸을 탐색한 과정을 매우 적극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것은 신체의 부분과 전체에 두루 걸쳐진 새로운 발견 그 자체이다. 김용호의 이러한 태도는 몸 이미지를 예술적 기표로 재생산하기 위해 매우 편집증적으로 파고든 작업의 결과이다. 따라서 그것은 김용호가 미술관이라는 언어 게임의 장에서 펼치는 서막으로 톡톡히 제 구실을 하고 있다.

갖가지 포즈로 신체의 동작을 포착한 ‘채집된 몸’ 연작은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사람의 몸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비례미의 다양한 변주이다. 그는 평범한 시선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다양한 동작과 자세들을 통해서 기호화한 신체 이미지를 연출한다. 그는 인간 신체의 실재를 포착하기보다는 신체를 기호화한 이미지 생산을 위한 오브제로 사용하고 있다. 서 있는 모습이 아닌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통해서, 나아가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통해서 그는 인간 신체가 연출할 수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잡아내고 있다. 김용호는 이러한 연출과 촬영의 결과를 낱개의 이미지로 제시하기도 하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열하기도 하면서 개별과 군집의 미학으로 재배치하기도 한다. 더욱 극단적인 것은 디지털 이미지 합성을 통해서 마치 맨살의 닭을 보는 듯한 기괴한 이미지로 왜곡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김용호가 제시하는 신체 이미지는 실재의 재현에 대한 관심보다는 실재의 왜곡이나 재발견에 가깝다.

그것이 몸의 본질을 향한 비판 정신의 발로인지, 아니면 상품 논리에 관한 신랄한 비판인지조차 모호하게 읽히는 ‘신대륙용 여행 가방-상품화된 몸’은 여행용 가방 표면에 사람의 몸 이미지를 새겨 넣었다. 화폐 가치의 재생산을 위해 복무하는 몸 이미지의 현실을 드러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호화한 신체 이미지의 변주에 공을 들인 이 전시 전체의 기조와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동영상 ‘소녀 신대륙을 가다’는 신체를 탐색하는 과정에 자연을 접목하고 있으며, 문화 예술계에 종사하는 여러 전문가들의 누드를 담은 ‘몸’ 연작은 ‘몸은 OO이다’식의 짤막한 진술들을 동반함으로써 각자의 삶 속에 들어 있는 몸에 대한 가치들을 담아내고 있다. 자세나 표정뿐만 아니라 몸의 구조 그 자체가 등장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매우 효과적인 기제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매우 두터운 신뢰를 깔고 있는 작업들이다.

사람의 몸을 찍는 사람, 사람의 몸을 카메라에 담고 그것을 인화해서 물질화한 이미지 생산을 수행하는 사람은 어떠한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그 활동 반경이 판이하게 다르다. 김용호의 <몸>전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진지하면서도 간접적인 방식으로 질문하고 답한다. 우리가 김용호의 몸 이미지들을 접하면서 고도로 발달한 정보화 사회에서 사진의 효용 가치란 무엇인지를 질문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자신의 이미지 생산물을 미술관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소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전과 이후에 어떤 맥락에서 몸을 다루는가 하는 문제는 따라서 이번 전시를 통해서 보여 준 것들만큼이나 중요하다. 김용호는 직·간접적인 주문에 입각해서 이미지를 생산하는 입장에서 주문 생산과 결별한 자율성의 영역, 다시 말해서 스스로의 예술 의지에 입각한 시각 언어 게임의 장으로 (그것이 일시적이든 지속적이든) 뛰어들었다. 그것은 기관이나 단체와 협업하는 캠페인과는 또 다른 차원 속에 위치한다.

미술관 전시장 벽에 걸리는 사진 작품은 거실 벽에 걸어 두거나 인쇄 매체를 통해서 소비되기 위해서 특정 인물의 캐릭터를 전달하는 신체 이미지와는 다른 방식의 소통을 창출한다. 그는 미술관 전시장이라는 공공영역에서 사람의 몸을 꼼꼼히 뜯어보게 만들고 있다. 전시장은 관찰을 통해서 체험의 현상학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김용호는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남의 몸 이미지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며 해석하게 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논점이 바로 앞서 말한 몸의 이미지와 실재가 분리된 상황에 관해 작가의 보다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가 작품 제목이나 작가의 말, 또는 비평문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노출하고 있는 입장은 논변의 수준에 그치는 것과 실체에 접근하는 것이 반반 섞여 있다. 신대륙, 자연, 채집 등의 몇몇 개념들은 단일한 항목들 안에서는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있지만, 전시 전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꿰뚫는 데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몸과 작품과 의미가 공존하면서도 배리의 상황에 놓이곤 하기 때문이다.

가령 그가 제시하고 있는 기호화한 신체 이미지들과 문화 예술계의 실재 인물들을 포착한 인물 이미지들은 이 전시가 상충되는 관점이나 태도를 공존시키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그것은 미술관이라는 제도 공간이 실재의 영역에서 비켜서 있는 곳이고, 예술적 기표를 소통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보면 매우 정형화한 소통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김용호 자신이 근대 미학에 근거를 둔 자율성의 영역과 그 바깥을 넘나드는 입장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작품과 의미와 실재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 기호화한 몸 이미지에 대한 근본적인 차원의 탐색, 상품화의 논리에 경도된 몸 이미지, 신대륙을 발견하게 하는 몸이나 자연과 교감하는 몸, 몸의 언어를 통해서 스스로 발화자로 나선 익명이 아닌 실명의 인물 이미지 등 김용호의 몸 이미지들은 매우 넓은 관심사에 두루 걸쳐 있다. 이 모든 항목들이 공존하기에는 이 한 번의 전시와 이 한 곳의 전시장이 너무 적고 작은 것 아니겠는가.

김준기 _ 미술비평

* 월간 포토넷 2008년 2월호 기고문

2008/01/18 03:15 2008/01/18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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