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거대도시의 배리 paralogism of the metropolitan
critic & column | 2008/01/31 00:11
4. 거대도시의 배리 paralogism of the metropolitan
자본주의 시스템에 포섭된 거대도시의 이율배반은 구조적으로 개발과 번영의 그늘 아래 소외의 구역을 획정한다는 데 있다. 도시와 농촌 사이의 삶의 질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발생하는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에서 기인한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개발도상 국가의 지위를 가진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상을 규격 안에 채워 넣고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직결하는 기호와 취미의 동질성 아래, 감성과 인식을 포섭하며�. 과밀을 거듭하는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좁은 공간에 최소한의 기능만을 집약한 공간으로 고안된 고층빌딩은 종교보다도 더 엄숙하게 현대인을 지배하는 물신으로 자리 잡았다. 빌딩숲 전광판의 뉴스속보는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이 현실을 지배하는 언론권력의 담지체다. 사무실�백화점�아파트 등 현대도시의 공간은 인간을 배치하고 지배하는 메커니즘으로 가득 차 있다. 현대도시의 건축물들은 하나의 구조체이며 그것을 파악하고 그 구조화 기능을 읽어내는 예술가들의 성찰적 시선은 거대도시의 구조 속에서 파편으로 존재하는 낱개의 서사들을 엮어서 구조와 개체 사이의 대립과 공존, 화해와 갈등의 상황을 집약한다.
예술가들은 메트로폴리탄의 배리를 밝혀내는 비판적 시각의 소유자들이다. 도시 단위의 삶의 정황들을 예술적 실천으로 끌어들이거나 그 문화적 예술적 취향을 보편적인 전지구적 질서와는 다른 맥락에서 예술작품 속에 담는 것이다. 예술가는 거대도시의 구조 속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행위주체로서 그 의미를 배가한다. 구조는 행위자 개인을 억압하는 거대한 틀로서 존재하는데, 이러한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예술가 주체는 구조적인 억압에 대해 매우 유연하게 타협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들은 산업화한 시선의 정치를 거부하면서 구조의 이면에 깔린 모순을 들춰내거나 구조적 모순의 저변에 존재하는 사회 전체의 흐름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근대사회 이전의 화가들인 인물을 그리고 풍경을 그렸던 것과 같은 차원에서 현대의 삶과 더불어 도시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는 예술가가 대하는 자연개념을 폭넓게 해석했을 때 대면할 수 있는 생활환경으로서의 도시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 속에 얽혀 있는 인간 삶의 연쇄체로서 도시생태 개념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시각은 계층간의 격차나 도시와 농촌 사이의 차별을 읽어내는 것으로 직결된다. 오늘날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지구적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사람과 돈과 물질의 교류가 재편되고 있는 현상을 생각해보면 메트로폴리탄의 막대한 권력은 예술가에게 있어 매우 급박한 현실인식의 장소이자 상황이 아닐 수 없다.
13) 장딩(Zhang Ding), 중국 작품 제목 : 아시아의 지금 출품작 리스트 참조
장딩의 사진 작업들은 급속하게 첨단 자본주의 거대도시로 변모해온 상하이의 이면을 담고 있다. 메인 도로를 중심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외형을 갖추고 있는 상하이의 뒷골목에는 과거와 현재의 혼재가 너무도 확연하다. 뒷골목은 외형의 차이만이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다. 거대도시의 이면에는 도시와 농촌 사이의 차이, 부자와 빈자의 간극으로 가득 찬 이율배반이 담겨 있다.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거대도시가 망각하려는 과거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퇴적되어 있다. 장딩의 렌즈가 포착한 이미지들은 이러한 문제에 매우 섬세하게 접근한다.사람을 찾는 구인광고, 직업을 얻으려는 구직광고의 빛 바랜 종이조각들은 거대도시의 배리를 증거하는 기념비적인 오브제들로 장딩의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상하이는 지금 국제적인 시장경제의 중심 거점으로 거듭나는 동시에 혼돈 속에서 삶의 길을 찾으려는 떠도는 영혼들의 집결지로 거듭나는 중이다.
15) 이종구(Lee Jonggu), 대한민국 작품제목 : <내땅에서 농사짓고 싶다1>, 대추리 가옥 벽에 아크릴릭, 2006
80년대 초반 이래 지금까지 민중미술의 주요한 화가로 활동해오고 있는 이종구는 농민화가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농촌의 모습, 농촌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온 화가다. 그가 지난 수십 년간 농민을 그려온 데에는 개발경제의 열풍 속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80년대 이래의 정황에 대한 확고한 시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근대(화)는 서구화-도시화-공업화의 도식을 토대로 농촌을 배반했다.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은 농촌사회를 변모시키는 듯했으나 사실은 도시화를 위해서, 혹은 안정적인 노동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공세로 작동했다. 이종구는 그 배반의 정치를 목도하면서 농민화가의 붓을 놓지 않았다. 그는 최근까지도 농촌 마을을 찾아 다니며 예술가로서의 깊은 성찰을 표현하고 있다. 2006년의 대추리는 삶의 터전을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강제이주로 인해서 시민사회의 이슈로 부각된 곳이다. 마을 곳곳에는 볍씨를 틔우기 위해 수북이 쌓아올린 황토흙이 있었다. 그런데 정부의 행정대집행에 의해 사실상 땅을 빼앗긴 대추리 주민들은 그 흙을 쓸 기회를 놓쳐버렸고 결국 고구마나 콩이라도 심을 수밖에 없었다. 좀더 세월이 흘렀을 때, 이종구는 이 흙무덤을 앞에 두고 그 뒤의 벽면에 밭일 하는 아주머니를 그려 넣었다. 덩그러니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흙무더기를 고구마와 콩을 뒤덮고 화가는 이러한 맥락을 타고 그림을 그려 넣는다. 장소특정성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사례를 위해 예비된 비평언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6) 박영균 (Park Young-gyun), 대한민국 작품제목 : 어는 작품을 선택하셨는지… 제목들은 그의 홈피에 있습니다. http://www.mygrim.net/
박영균은 광고전단지에 적당히가위질을 한 다음 크게 확대해서 전시장 벽에 거는 행위를 통해, 키치적 개념미술가로 거듭난다. 이것이 그가 한 일의 전부로, 광고 행위에 의해 촉발되는 천민자본주의의 허구성을 드러내기 위한 액션이다. 그린다거나 물성을변용하는 등의 조형작업을 최소화한 확대복사만이 작가 박영균이 전단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행위의 전부다. 박영균은 경쟁적인 개발건축붐에 따른 자본주의 사회의 허구성을 드러내기 위해 분양광고 전단지를 예술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장치가 있다면 구체적인 정보를제공하는 전단지의 텍스트들을 뺐다는것이다. 텍스트가 빠진 상가와아파트 분양 광고는 철저하게 익명성의 지배를 받는 현대 도시의 자화상으로 변모한다. 5미터짜리 대작 프린트 <러거킹이 보이는 풍경> 같은경우, 거대한 상가 건물의앞마당에 가득한 사람들과 거물 외벽에 붙어있는 간판들을 부각한편집이 가히 아트스럽기 그지없다. 광고판에는 넌킨도너츠, 게니건즈, 러거킹, 라스킨라빈스, 에스에스텔레콤, 티티에프 등 기성의제품이나 회사의 이름을 교묘하게 변용한 텍스트들이 들어있다. 광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편집 시스템이 보여주는 짝퉁 세상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우리는 박영균을 통해서 통렬하게 읽어낼 수 있다. 회화 작품에서도 잘 드러나는 그의 작품 제목 다는 솜씨는 여지없이 이렇듯 흥미진진한 소스들을 잡아낸다. 작업의개념을 한 두 마디로 집약해서 실마리를 제공하는 박영균의 언어감각이 발군의 묘미를 발휘한 것이다.
17) 신주꾸 노숙자 프로젝트(Shinzuku homeless project group), 일본
신주꾸 노숙자 프로젝트 그룹은일본 도쿄의 신주꾸 지역에서 보이는종이박스로 만든 노숙자의 집을 만들어 전시장에 제시하고 퍼포먼스를 벌인다. 다께 주니치로와 야마네야스히로가 주축이 된 이 그룹은 서울을 방문해서 전시장 인근의가게를 돌며 빈 종이박스를 얻어다가 신주꾸 노숙자 건축양식으로 불리는 종이박스(cardboard house) 집을 지었다. 노숙자들의 생존방식을 예술적 모티프로 차용한 이러한행위는 단순한 예술적 재현을넘어 실재적인 행위를 통한 로컬한체험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들의홈리스 건축 퍼포먼스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 노숙자의 전지구적 보편성과 각 도시 별로 나타나는 로컬한 특성을 보여준다. 노숙자의 보편성이란 특히 일본에서는 전지구화의 진행에 따라서 90년대 이후 등장한 노숙자라의 존재의필연성 같은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접하는 사회의분위기는 도시마다 다르다. 도쿄의 경우 노숙자들이 종이박스로 입방체의 집을 짓는 것이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를 잡을 정도지만, 서울의 노숙자들에게서는 이런 현상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렇다. 노숙자의 전지구적 보편성과 도시별로 각각 다른 특수성을 함께 읽어볼수 있는 대목이다.
18) 양첸종 China <흔들리며 유동하는 상하이의 시선>
동아시아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도시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상하이. 서구화와 근대화가 뒤섞인 아시아의 도시 정체성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는 곳으로, 도시구조와 시민의 삶은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역동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활동 반경 또한 마찬가지여서, '상하이비엔날레'가 자리를 잡아가고 대규모 화랑가가 생겨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양첸종은 근래 들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하이 작가로, 영상�사진�설치�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동원해 현대인의 삶과 도시의 면면을 읽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역동하는 상하이를 닮은 이 작가는 설치와 뉴미디어의 매체 특성을 잘 이용해 단순히 사물을 재현해서 담아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대도시와 현대인들의 욕망을 은유하면서 대상이나 인물의 실체를 뒤집어보고 비틀어보는 적극적인 의미 독해를 시도한다.
<라이트 박스 2005>는 도시의 야경 가운데서 가로등과 같은 조명을 사진 작업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어서 매우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카메라 셔터를 장시간 동안 노출해 놓고 있으면 어둠 속의 건물이나 도로와 같이 고정된 사물들은 고스란히 그 형체를 드러내는 반면에 움직이는 불빛은 선을 남긴다. 그는 지지대를 이용해서 카메라를 매단 막대 끝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펜을 설치하고는 도시의 야경을 향해 셔터를 열어놓은 상태에서 그림을 그린다. 헬리콥터나 전투기, 르네 마그리트의 아이콘, X자, 빗자루를 타고 나는 마녀 등이 등장하는 이 드로잉 사진은 마치 야경 위에 네온사인이 펼쳐진 것 같은 매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도시의 야경을 끌어들이는 매우 낯선 블랙유머다.
상하이의 눈부신 번창을 상징하는 동방명주 탑을 가운데 손가락으로 들어올리고 있는 연출사진 <Light Fuck II>는 도시의 상징에 위해를 가하는 양첸종 특유의 블랙유머 시선을 잘 보여준다. 동방명주 탑을 스테인레스로 제작해서 한 손으로 지탱하며 버티는 퍼포먼스 영상도 같은 맥락이다. 활을 쏘는 영상작품도 있다. 특수 제작한 활로 화살 대신에 카메라를 쏜다. 렌즈를 부착한 원통을 특정 사물을 향해 발사함으로써 대상물을 향해 날아가는 카메라에 의해 포착된 사물을 영상작업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KFC 할아버지의 얼굴을 향해서, 거리의 신호등을 향해서 날아가는 카메라는 숨 가쁘게 변모해가는 현대도시 상하이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다. 시위를 떠난 화살 카메라는 발사 이전의 긴장과 발사된 후의 흔들리며 유동하는 프레임을 통해서 상하이의 불안한 시선을 은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