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폭력과 갈등의 아시아 violence & conflict in asia
critic & column | 2008/01/31 00:10
5. 폭력과 갈등의 아시아 violence & conflict in asia
전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대륙이나 지역은 단연 아시아이다. 그 아시아에는 그만큼 다양한 인종과 민족과 종교와 국가와 문화가 존재한다. 따라서 아시아는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진 여러 층위의 존재와 개념들이 혼재된 삶의 터전이며, 가치가 교차하는 장소이며, 동시에 폭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역동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폭력과 갈등의 양상이 아시아 내부에서 벌어진다기보다는 아시아의 외부에서 기인한다는 점이 21세기 아시아의 매우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동아시아는 동아시아대로 중국이라는 패권을 견제하려는 아메리카의 전초기지로 자리잡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아랍문화권의 변두리에 있으면서도 문명출동의 한가운데서 수십 년 동안 전쟁의 재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남아시아는 문명충돌의 근원지이자 에너지 전쟁의 발원지다. 이 모든 곳에 전지구의 패권 아메리카가 존재한다.
시각 예술작품이 심미적 가치를 담고 있는 물질형식으로서의 제 기능을 환류하는 방식이 종국에는 화폐와 교환 가능한 쓸모 있는 물건으로 귀결되어온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은 이러한 미술의 쓰임새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변화의 흐름은 기존의 미술 판이 예술적 소통을 용도폐기하고 작품과 화폐를 바꾸는 상품교환의 장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점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근대성의 발현으로 형성된 미술의 장은 가장 유력한 장치로 미술관이라는 제도를 두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술관은 점점 미술문화의 박제화를 매개하거나 미술에 관한 고정관념을 확대재생산할 뿐, 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미술시장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기보다는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만 움직이다 보니 작품의 생산과 향수를 매개하는 중간 고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미술교육 또한 근대적 사유방식에 기초해서 체계적인 영역분할의 틀에 맞춘 미술전문가를 양상하고 있다.
이제 예술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공공적 의제에 대해 공론을 형성하는 하나의 매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술적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발견하는 일, 예술노동의 사회적 교환방식을 재구조화 하는 일,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탈근대적 맥락의 통합적 가치 속에서 맥락화 하는 일 등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시각의 예술생산과 소통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소통의 범위를 좁고 작게 잡아서 의미 있는 예술적 가치를 생산하는 미시적 문화정치학을 통해서 국가단위의 공공성의 허구를 넘어 공론장으로서의 예술의 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폭력과 갈등에 휩싸인 아시아의 도처에서 예술의 이름으로 담아내야 하는 의제는 끊임없이 매스미디어를 타고 구조와 개인을 재구조화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예술은 그 틈에서 여론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소통방식과 교모를 가지고 폭력과 갈등을 중재하고 조절하는 성찰의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19) 리다 압둘(Lida Abdul), 아프가니스탄 <화이트 하우스(white house)>, 단채널 비디오, 2005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축물 잔해 더미를 흰 페인트로 칠하고 그것을 '화이트 하우스'라 명명함으로써 폭력의 근원을 되묻는 리다 압둘의 퍼포먼스 비디오 작업은 장엄한 서사와 더불어 오늘날 아시아가 직면하고 있는 폭력과 갈등의 현실을 정제된 언어로 보여주는 숭고 그 자체로 다가온다. 압둘은 부서진 콘크리트 건물의 잔해와 남아 있는 골조 전체를 기념비적인 장소로 설정한다. 그것은 매스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방식의 고발성 현장보도가 아니라 폭격이라는 상황이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감성적인 호소력을 가진 것이다. 동아시아나 서남 아시아에 비해서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중앙아시아에 있으면서 아랍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은 어찌 보면 문명의 충돌에 있어서도 하나의 변방과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기실 폭력과 갈등은 중심부에서보다는 변경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비극의 상처는 더욱 쓰디쓴 것으로 증폭한다.
20) 마흐무드 모아카르(Mahmoud BAKHSHI MOAKHAR) 이란
<마흐무드의 운전교실(Mahmoud's driving school)>, 설치, 가변사이즈, 2006
마흐무드의 작업은 이란의 운전면허 학원에서 사용하는 거리 상황판을 이용해 중동지역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폭력과 테러의악순환을 드러낸다. 이 설치작품은 '마흐무드의 운전교실’이라는 타이틀로 프린트된 이미지들 사이로, 작가가 새롭게고안한 디렉션에 따라서 작동하며, 본래의 운전을가르치려는 목적과는 다른 차원의맥락을 만드는 운전교실이다. 사진 패널을 벽에 붙이고 바닥에작은 자동차 모형들을 붙여서 관람객들로 하여금 운전교실을 조심스럽게 탐사하도록 공간을 형성한 작가는자국의 운전교실 시스템을 패러디하면서 자동차와 얽힌 중동의 상황을암시하고 있다. 그는 도시를지나는 수많은 자동차들 가운데어느 한 자동차에 폭탄이 실려 있을 수 있고 돌연 포발하여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나가고 있는 중동에서의 삶에 대해 말한다. 일상화된 폭력의 악순환을 상기하는 마흐무드의 운전교실은 발랄한 패러디의 이면에 담긴 음울한 아시아의 한 단면을보여주고 있다.
21) 구본주(Gu Bonju), 대한민국 <갑오농민전쟁>, 150x350x400cm, 브론즈, 1995
지난 2003년에 서른 일곱의 나이로요절한 구본주의 역작 <갑오농민전쟁>이 경기도 평택 대추리의 대추분교 운동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 작품은 그가 대학시절부터 소품 에스키스를 통해 꾸준히 습작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역작이다. 한쪽 발은 앞굽이 자세로 내뻗으며 대지를움켜쥔 듯한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뒤로내디딘 다른 한 발은 균형을 잡기 위해 긴장감속에서 힘을 받혀주는 팽창의기운을 담고 있다. 정면을향하고 있는 몸통의 굵은동세는 물론이고 섬세한 몸의 흐름을 잡아낸 인체의 골격이가히 일품이다. 머리 위로 올린두 팔은 죽창을 움켜쥐고 내리꽂기 직전의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역사적 텍스트를 빌어 인체조형의 ‘솟구치는 힘’을 표현한 이 작품은신체표현의 조형적인 맛을 근저에 깔고 있음은 물론이고, 저항과 혁명의 에너지를 기념비적인 작품에 담아낸 청년작가의 야심을 읽어낼 수 있다. 구본주의 대표작이 대추리에 선 것은 그곳이 폭력과 갈등의 장소기 때문이다. 그의 유족은 작품을미술관에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장소성과 현장성을 가진 살아있는 작품으로 존재하는 일이라는 판단 아래 위험천만한 대추리에 브론즈 작품을 설치했다. 2006년 5월 4일, 공권력의 철거에 의해 대추분교가 폐허로 변하던 그 때, 유일하게 포크레인의 삽질을당하지 않은 구조물로 남아있는 이 작품은 예술의이름으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숙명 가운데 하나임을 말해준다.
22) 코시오 사토(Toshio Satoh), 일본 작품명 : 아시아의 지금 출품작 리스트 참조
제2차 대전 이후 경제�정치�군사 분야에서 완강한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일본의 거대한 그림자다. 토시오 사토는 군국주의 일본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보수적인 정치인 고이즈미와 전지구적인 반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벌여온 부시를 끌어들여 이들의 연관관계를 엮어내는 컴퓨터 합성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사토의 합성사진 작업은 미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일방적으로 대변해온 고이즈미 주니치로 전 수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며, 이러한 비판적 메시지는 세계화의 역동 가운데 위치한 일본의 지위를 매우 극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패권국가인 아메리카가 서아시아에서 동아시아 끝자락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침략과 간섭을 지속하고 있음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23) 노순택(영문이름), 대한민국 <얄읏한 공>, 흑백인화, 가변크기, 2006
노순택은 예술적 소통을 통해서 공공영역을 형성하고자 하는 예술공론장의 첨단에 선 행동주의 예술가다. 미군기지가 확장 이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대추리와 도두리는 동아시아의 냉전 구도라는 첨예한 이슈를 지닌 공공의 영역이다. 그곳은 이전의 뼈아픈 강제이주의 역사를 딛고 풍요로운 농촌으로 변모해온 농부들의 삶의 터전으로써 평범한 농촌의 일상을 담고 있는 사사로운 생활영역이었다. 그러나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위해서 강제이주가 예정되고 공권력 나름의 절차에 따라 수순을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두 마을은 공공적 의제가 설정된 공공영역으로 변모했다. 지금 평택의 의제는 그곳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 사회 전체의 문제고, 한반도의 명운이 달린 문제이며, 동아시아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드러나는 사안이고, 동시에 전세계에 걸쳐있는 전쟁과 평화, 지배와 종속의 논리가 통용되는 관심사다.
노순택은 미국기지 확장이전으로 인해서 평생에 걸쳐 세 번째로 강제이주를 당할 위기에 처한 평택 대추리 마을에 찾아든 평화예술가들 중 한 사람이다. 대추리의 소식을 듣고 마을에 드나들며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온 그가 처음 카메라에 담은 주민들의 모습은 강제이주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는 투사의 면모였으며,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과 설정에 대구를 이루는 또 다른 방법으로 초상사진 찍는 일을 시작했다. 곱게 차려 입은 주민들의 모습을 단정하게 초상사진에 담아 일상에서 만난 그들의 모습과 함께 돌아보도록 함으로써 사적 개인과 공적 개인의 병존 양상을 드러냈다. 또한 그는 대추리 인근의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 내에 있는 레이다 돔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추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자연과 일상을 지배하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레이다 돔을 담아낸 이 연작은 서정적인 비판과 저항의 힘으로 관람자를 끌어들인다.
24) 최평곤(Choi Pyeong-gon), 대한민국 <문무인상>, 대추리 현장 설치, 2004
거대한 크기로 우뚝 선 대나무 인간. 최평곤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드는 방법으로 다양한 인체 표현을 해왔다. 자연과 인공, 생태와 문명을 넘나드는 명상적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작품은 불굴의 주먹을 움켜쥐고 우뚝선 거인이었으며,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생명의 모태이자, 파랑새를 안은 따뜻한 인간이었다. 작가는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사이의 벌판에 거대한문인상과 무인상을 세워 놨다. 이 두 작품은 평택 미군기지 건설공사를 위해 실시된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거대한 크기의 기념비적인 조상이 벌 한가운데 서 있고 그 주변을 전경들이 지키고 서 있는 장면에서 21세기 동아시아 끝자락의 한 시골 마을에 침투해 있는 조직적 폭력의 생생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작품은 이러한 폭력과 갈등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가치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가치의 대립과 갈등을 통한 상징투쟁은 개인적 차원, 계층적 차원, 국가적 차원 등의 다양한 층위 속에서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