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와 상징으로서의 오브제 : 배영환, 이반, 정재철, 파견미술팀
예술작품은 소통을 매개하는 물질형식이다. 이 가운데서도 실재의 장소와 상황, 사건 등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오브제를 사용하는 예술작품은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서사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대목에 주목하여 이 섹션 ‘실재와 상징으로서의 오브제’에서는 현장성과 지역성을 기반으로 민주주의와 분단극복, 자율, 생태 등의 이슈를 추구해면 작가들의 오브제 작품에 주목한다. 광주 금람로 거리에서 채취한 벽돌에 민중가요 새긴 배영환의 작품은 민주화운동의 현장의 대변하는 사물의 상징성에 채집한 오브제에 노래가사를 새기는 개념적인 작업이다. 이반이 DMZ 프로젝트에서 사용했던 오브제들과 정재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현수막 오브제 작품들은 오브제 그 자체로서 감성적인 아우라를 풍긴다기보다는 실재의 공간에서 벌어졌던 예술가의 퍼포먼스와의 연계 속에서 온전하게 의미망을 형성한다. 용산참사의 비극적인 현장에서 유가족과 방문객들에게 예술적 소통을 매개했던 파견미술팀의 용산포차 오브제들은 현장의 예술행동이 남긴 결과물들이다.
1. 배영환 : 민중가요 가사를 새긴 금남로 거리 벽돌
배영환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페인팅과 오브제 작업으로 유행가 연작을 해왔으며, 이후 새로운 공공미술 작업으로 노숙자 수첩, 도서관프로젝트 등을 해왔다. 그는 1980년대라는 한국현대사의 격변의 현장을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체험한 세대로서의 감성을 작품 속에, 또는 작업 태도 속에 담아내는 예술가이다. 또한 그는 1980년대의 리얼리즘 미술운동이 남긴 예술적 감성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에 대한 각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21세기 리얼리즘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오브제는 가장 효과적으로 현장의 상황을 증거하고 대변하는 물질이자 그 사물 속에 담긴 정서를 극대화하는 소통의 매개이다. 그는 작업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창백한 물질로서의 종이나 캔버스, 물감 등을 사용하기 보다는 시간성과 장소성, 사건의 흔적 등을 가진 사물들을 작업의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문제의식을 매우 확대재생산한다.
이 작품은 배영환이 1990년대 후반에 광주의 금남로 거리에서 채취한 벽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새긴 것이다. 그는 45개의 벽돌에 한 음절씩의 노래 가사를 적어서 그것을 전시장 바닥에 펼쳤다. 평면과 입체, 영상 등으로 노래 연작을 해온 그의 연작들 가운데서 이렇듯 실재공간에서 채집한 사물을 사용한 작품들은 노래에 담긴 시적 정서를 강렬하게 자극한다. 특히 이 작품은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주요 현장이었던 광주시 금남로 거리의 보도블록이라는 점에서 물질 그 자체로서 일종의 역사적 기록으로 작용한다. 아나가 그것은 시멘트 블록을 일일이 칼로 긁어서 가사를 새긴 작업 방식이나 태도로 인해서 한국현대사의 비극이자 저항의 역사성을 간직한 1980년 5월 광주를 정서적으로 환기하는 예술적 소통으로 작동한다.
2. 이반의 DMZ 프로젝트의 오브제들
이반은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명제를 그 한 몸으로 보여주는 예술가이다. 예술가 이반은 20세기 한반도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동시대 한반도 민중의 고통이 민족모순이라는 본질과 유관한 것이라면, 그 본질의 현현을 이반이라는 한 예술가의 실존으로부터 명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나아가 그는 '본질의 현현으로서의 존재'라는 사유의 틀을 넘어 본질을 재구조화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행위자 주체로서의 실존'을 위해 투쟁해왔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반, 특히 분단의 상황을 예술언어로 표현하는 행위자로서의 예술가 이반은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의 본질로부터 이탈하려는 실존의 몸부림을 보여주었다. 분단작가로 불리는 예술가 이반은 개인사적인 삶의 고통을 딛고 분단의 어두움을 넘어 통일과 생태의 예술행동을 펼쳐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반은 실존적이며, 이반의 예술은 이 질곡의 20세기 한반도를 살아온 실존의 몸부림이다. 그는 분단체제를 살아온 인간실존을 예술적 실천에 투영한 행동주의예술가이다.
문자/상징언어의 정치학은 시회적 의제를 감성적인 차원에서 매우 선정적으로 다루곤 한다. 이반은 사회적 의제들을 감성적 수사학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매우 체계적으로 일관되게 다루었다. 예술적 격정을 가지되 그것을 일관된 기조의 기획 속에서 연작으로 풀어냈다. <한라백두수토통합통혼제>(1990년)에서 그는 제례의식의 형식을 빌어서 남북의 상징인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과 물을 섞었다. 이것은 예술의 장 내에서 벌어진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오갔고, 비무장지대를 주제로 한 작업전을 한해씩 걸러 네 차례에 걸쳐 열었고 그 결과들을 묶어서 <<비무장지대의 과거·현재·미래>>를 편찬했다.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백두산과 한라산에서의 퍼포먼스에 쓰였던 오브제와 비무장지대의 호박을 캐스팅한 브론즈, 현장의 흔적을 담은 캔버스와 포스터 등 비무장지대예술운동을 전개하면서 현장에서 쓰였던 오브제들이다.
3. 정재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현수막 작품들
정재철의 플래카드아트(placard art)는 버려진 사물의 무용성을 전시품으로써의 유용성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정크아트로 불리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무진하는 소셜 퍼포먼스로 이어짐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예술적 소통을 매개한다. 그는 현수막이라는 오브제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작품들을 가지고 무용지물을 유용지물로 전환하는 일종의 개념미술을 수행했다. 그는 전세계 각국의 각각 다른 문화적 풍습과 상황, 장면, 사건들을 두루 꿰어내는 여행 과정에서 현수막으로 만든 작품들을 제시하거나 제공하고 그것을 실재 공간에서 쓰일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작가에게도 새로운 체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현지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도 새로운 체험이거나 유용성의 발견이었다.
정재철은 그 쓰임새를 다한 현수막들을 모아서 만든 재킷 등 의류 석 점을 출품한다. 의류 고유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현수막이라는 소재로 제작되었으므로 실재 사용할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유용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오브제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옷이기도 하고 옷이 아니기도 하다. 옷의 외형과 플래카드의 사물성을 동시에 갖춘 이 작품을 통해서 정재철은 ‘이것은 옷입니다’와 ‘이것은 옷이 아닙니다’라고 문장을 함께 제시하는 셈이다. 이 작품은 옷의 일루전과 플래카드의 오브제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정재철은 이 작품들을 통해서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하면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의 소통을 매개한 플래카드가 실재의 사물이자 동시에 일종의 일루전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4. 파견미술팀의 용산포차
파견미술팀은 용산현장 뿐만 아니라 한국의 첨예한 의제 현장을 찾아 예술행동을 펼쳐왔다. 파견미술이라는 이름은 부평 대우자동차의 비정규직 시위 현장에 참가해서 현장예술활동을 할 때, ‘비정규직들인 자신들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파견노동자들이다’라는 얘기를 듣고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파견미술가들로 정한 데서 유래했다. 나규환, 문정현, 송경동, 신유아, 윤성현, 이윤엽, 이윤정, 전미영, 전진경, 한상덕 등이 그 멤버들이다. 이들은 미술가들을 비롯해서 종교인, 시인, 한의사 등의 여러 직업군이 섞여있다. 현장미술활동을 위해서 미술가들과 함께 논의하고 실천하는 협업과 연대의 대상이 그룹활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만 하다. 이들은 용산참사 현장 뿐만 아니라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부평 대우자동차, 콜트콜텍, 사대강사업현장, 유성기업, 강정마을, 평택 쌍용자동차 등의 현장에 그들 스스로를 파견했다.
걸개그림, 현장설치미술, 판화, 각종 디자인 작업 등을 통해서 파견미술팀은 ‘현장에서 현장을 현장답게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가령 그곳이 농성현장이라면 파견미술가들은 그곳을 가장 농성현장답게 만드는 일했다. 이것은 역설적인 의미의 장식미술이다. 물론 이들이 장식미술의 단계에 머문 것은 아니다. 이들은 현장의 주민, 공동체 구성원들과 협업하고 연대함으로써 커뮤니티아트, 행동주의예술을 실천했다.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현장이 요규하는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그들은 예술이 실천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왔다. 이른바 ‘예술의 쓰임새’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일이 파견미술팀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 이들은 작업의 목표를 현장에서 잘 쓰이는 일로 설정했다. 이들의 예술행동으로 인해 현장의 투쟁이 물리적 대치에서 상징투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기륭전자의 포크레인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위력적인 상징투쟁의 오브제로 존재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파견미술팀의 출품작 <용산포차>는 2009년에 용산참사 현장에서 고인들이 실재 사용했던 포장마차의 실내의 물건들을 예술가들이 일종의 재활용미술품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용산참사 이후 그 포장마차는 유족들의 쉼터이자 방문자들에게는 전시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은 그 곳의 사물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다. 냉장고에 그림을 그린다거나 매뉴에 유족의 얼굴을 그려넣고, 포장마차에 판화를 붙여놓기도 했다. 시위현장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들, 일인시위할 때 섰던 표현물들을 포함해서 주변의 버려진 물건들로 만든 오브제 조각들과 창틀이나 밥그릇에 그림을 그려넣은 것도 있고, 그림을 그린 밥솥도 있다. 파견미술팀이 출품한 오브제들은 용산참사 현장의 사물 그 자체들이다. 예술가들은 그 사물들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조형작업들을 했는데, 그것은 사물 그 자체로서 서사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그리기와 만들기 작업으로 이중의 의미작업을 생성한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오브제로 바라본 한국현대미술, 김해문화의 전당 윤슬미술관, 섹션 서문
trackback :: http://gimjungi.net/blog/trackback/992